계절은 5월로 접어들고 박 장군 서재 앞에서 심어진 라일락에 흰빛과 보랏빛의 정결하고 소담스러운 꽃망울이 향기를 뿜어냈다.

5월 12일 박 장군은 대구 동명동에 있는 숙소에서 상경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박중사, 내 가방 내줘.”

박중사는 광주 포병학교 교장 시절부터 거느리고 있던 순박한 연락병이었다.

가방 속에 서류와 함께 권총을 챙겨 넣은 박 소장은 지퍼를 잠그고 자물쇠를 채운 후 대구를 떠났다. 몇 해 동안 장군을 모셔온 박중사는 박 장군의 거동이 미심쩍게 여겨졌다.

“참, 이상하다. 무슨 중대한 일이 있나보다.”

혼자 이렇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평소 상경할 때 권총을 가지고 가는 일이 없는 장군이 가방 속에 권총을 챙겨 넣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닌데 지퍼를 잠그고 자물쇠를 채우는 것은 더욱 놀라운 일이었다.

14일 일요일, 최종 작전계획에 대한 의논이 밤늦게 끝나자 박 소장은 ‘최후의 1인까지라도 싸워서 이 혁명을 성공으로 이끌어야 한다’며 혁명의 핵심 멤버들을 격려했다.

한편 지방에서 호응하는 동지들에게는 5월 16일 오전 5시, 수도 점령의 방송과 더불어 행동을 개시하라는 지시를 보냈다.

드디어 1961년 5월 15일, 월요일이었다. 여사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남편을 위해 커피를 끓여다드리고 아침식사가 끝나자 근혜․근영 양을 학교로 보냈다. 여사는 오늘이 어떤 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줌마.”

여사는 집에서 일하는 아줌마를 불러들였다.

“고향에 가서 이삼일 쉬다 와요.”

여사가 일러주었다.

아줌마는 여사의 고향인 능월리와 과히 멀지 않은 청산리에서 온 30 미만의 여인이었다.

“갑자기 고향엔 왜요?”

아줌마가 의아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여사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아녜요, 날씨가 좋고 하니 쉬다 오라고 그러는 거예요.”

“손님이 이처럼 오는데 혼자서 어쩌시려고요?”

“내 걱정은 말구요.”

여사는 넉넉하게 차비를 주어 아줌마를 고향으로 내려보냈다.

신당동 집에는 아침부터 최종 지시를 받기 위하여 장교들의 출입이 잦았다. 만사가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 같았다.

여사는 하루 종일 손님 접대에 바빴다. 틈이 나면 집안 구석구석을 뒤져 헌 옷가지와 빨랫감을 찾아내어 빨았다.

밤이 되었다. 근혜․근영․지만 3남매를 이경령 여사가 데리고 안방에서 주무시도록 하였다. 그리고 여사는 건넌방에서 빨래를 한 가지씩 다리미로 다려 차곡차곡 챙기고 있었다.

10시가 지났다. 출발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젊은 장교들과 서재에 있던 박 장군이 건넌방으로 건너와서 작업복에 점퍼 차림으로 갈아입고 작업모를 썼다. 그리고 여사를 돌아보며 말했다.

여보, 그 가방 속에 권총 있지. 꺼내줘요.”

박 장군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다녀올게.”

박 장군이 나가려는 순간 여사가 말했다.

“근혜, 숙제 좀 봐주시고 나가세요.”

그것이 여사로서는 사랑의 고백이나 마찬가지였다. 비록 거사 성공의 확고한 신념과 남편에의 굳은 신뢰를 가졌다 하더라도 사지(死地)를 향하여 떠나려는 이 ‘절대의 순간’에 마지막 인사 한 마디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런 순간에 무슨 말을 해야 할 것인가. 총명한 여사는 남편에게 아이들을 환기시켜 줌으로써 ‘어린 것들을 위해서라도 몸조심하세요. 성공을 빌어요.’라는 간접적인 간곡한 표현으로 대신했던 것이다.

“그럴까?”

박 장군은 안방으로 갔다. 근혜 양은 지금 부모의 신변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른 채 책상 앞에 엎드려 숙제를 하고 있었다. 어린 초등학교 학생으로서 10시가 넘도록 공부를 한다는 것은 드문 일이지만 그것이 근혜 양의 착한 버릇이었다. 박 장군이 숙제를 하고 있는 근혜 양의 책상머리에서 잠시 굽어보다가 윗목으로 시선을 돌렸다.

근영 양과 지만 군이 외할머니 옆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박 장군이 마악 나가려는데 응접실의 전화가 요란스럽게 울렸다. 수화기를 들자 제6관구 참모장 김재춘 대령의 당황한 음성이 귓전에 울렸다.

“각하, 30사단 박․이 두 대령이 사단장에게 밀고하여 일이 탄로났습니다. 부대 출동이 어렵게 됐습니다.”

“그럼, 제2안대로 하시오.”

박 장군의 침착한 대답이었다. 엄청난 거사에 두 사람의 배신자쯤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여기는 태도였다. 남편을 지켜보는 여사의 표정이 약간 놀란 듯했다.

그때 한웅진(韓雄震) 준장과 장경순(張坰淳) 준장이 나타났다. 원래 김포 입구에선 만나기로 약속되어 있었으나 사태가 긴박해져오자 신당동 집으로 달려온 것이었다. 한 준장은 박 장군과 행동을 같이하는 직책을 맡고 있었던 것이다.

“자, 갑시다.”

박 장군이 힘차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 따라나섰다. 현관을 나서기 전에 박 장군이 여사를 돌아보며 말하는 것이었다.

내일 아침 5시 정각 라디오를 들어보오.”

박 장군으로서는 구구한 설명이 필요 없음을 알고 있었다. 아내야말로 언제든지 생사를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때가 10시 반 조금 전이었다. 앞차에는 박 소장이 타고 한 준장과 장교 한 사람이 경호차에 동승하였다. 그 뒷 차에는 장 준장과 정보학교 장교 세 사람이 탔다. 집을 나서자 특무대의 검은 지프 두 대가 골목 어귀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박 장군 일행의 앞뒤에 붙어 미행을 시작하였다. 박 장군을 태운 지프는 휘황하게 불을 밝히고 미행하는 차를 따돌리느라 전속력으로 종로 → 안국동 → 중앙청 → 세종로 → 한강로를 거쳐 영등포 제6관구 사령부로 질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