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일행을 보낸 뒤 여사는 조용히 일어나 건넌방으로 갔다. 장롱 밑에는 박 소장과 여사 사이에 교환한 편지묶음이 간직되어 있었다. 그것을 끄집어내었다. 그리고 부엌으로 가서 한 장 한 장을 읽어가며 태웠다. 연애과정을 거치지 않고 혼인을 한 여사로서는 결혼 후 남편과 주고받은 편지를 통하여 부부로서의 격렬한 사랑을 경험하게 되었던 것이다. 일선에 나가있는 남편에게나 미국 유학 시절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는 아내로서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라기보다는 한 연인으로서 사랑하는 상대에게 보내는 그런 사연들이었다.

여사는 한 장 한 장 재로 변해가는 편지를 지켜보며 과거가 완전히 소멸해버리는 혹은 미래가 완전히 수축하여 ‘지금’이라는 이 한 점에 응결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죽음이라는 것을 생각하였다. 만일 거사가 여의치 못하면 여한없이 남편과 운명을 함께 할 수 있는 충분한 마음가짐이 되어 있음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불에 타고 있는 눈에 익은 남편의 글씨들, 그리고 자신의 글씨를 지켜보았으나 여사는 별로 감정의 움직임을 느끼지 않았다. 편지를 모두 태우고 나니 타고난 재가 수북이 쌓였다. 재나마 따로 모아둘까 잠시 망설였으나 부질없는 일 같아 그만두었다.

이제 여사에게는 군인의 아내라거나 대의를 위해서라거나 그런 한정된 명분을 홀가분하게 벗어버린 것 같았다.

“제506부대 본부에 위치한 육군 참모총장 장도영 중장의 필사적인 저지책에도 불구하고 16일 새벽 3시 혁명군 전초부대는 GMC로 된 삼중의 차단물이 진로를 가로막고 있는 한강 인도교에 이르렀다.

자정이 지났다. 여사는 온 집안에 전등을 모두 밝혀두고 아이들이 자고 있는 안방 윗목에서 바느질감을 꺼내어 바느질을 시작하였다. 흰 숙고사 저고리를 시쳤다. 만일 거사가 여의치 않을 때 그 저고리를 어떤 운명 속에서 입게 되리라는 그런 상상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과거도 미래도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담담한 마음으로 ‘지금’ 여사는 바느질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제1선두대로 진입하던 해병 제2중대는 3시 20분경 드디어 한강에 이르렀다. 혁명군 선두 중대장인 이 대위는 한강교를 지키고 있는 병력이 그들을 환영나온 우군인 줄 속단하여 길을 열어줄 것을 명했으나 헌병 지휘관은 뜻밖에도 육군 참모총장의 명령으로 ‘반란을 일으킨 해병대’의 서울 진입을 저지할 임무를 띠고 있다는 것이다.”

여사는 핏줄만이 오붓하게 모인 안방에서 그림처럼 바느질을 계속하고 있었다.

“해병여단 제1대대장 오 중령은 ‘전원 하차’를 명령하였다. 병력이 산개한 것과 헌병의 맹렬한 총격이 가해진 것 중 어느 쪽이 먼저인지 모른다. 제1선을 제거하고 더욱 제2선에 육박하여 대교의 난간을 따라 종대로 전진했다.”

여사는 바느질을 계속하고 있었다. 전등 불빛 아래 몇 오라기 머리카락 그림자가 여사의 대리석 같이 흰 이마에 아른거렸다.

“제6관구에 잔류했던 동지들도 계속 본대로 합류하였다. 그리하여 행군종대(行軍縱隊)의 정지와 더불어 작렬하는 총성에 지휘부가 재빨리 선두에 나섰다.

혁명군이 제2저지선을 돌파하자 전투는 본격화되었다. 쌍방의 작렬하는 사격으로 전진은 완전히 저지되었으며 혁명군측에는 부상자가 계속해서 늘어났다. 돌파작전을 지휘하던 여단 장군이 박 장군 곁으로 다가와 ‘벌써 부상자가 7,8명이나 났으니 이대로 가다간 사상자가 많이 나겠으며 서울 점령이 늦어지겠습니다.’라고 난색을 짓자 박 소장은 ‘계획대로 돌파합시다.’라고 명령하였다.

바늘귀에 실이 좀처럼 꿰어지지 않아 여사는 불빛에 대고 실을 꿰었다. 그리고 실을 쭉 뽑아내어 바늘을 옷섶에 꽂고 저고리를 뒤집었다.

“제3선을 향하여 포복으로 육박하던 제2중대가 중대장을 비롯한 7,8명의 사병의 부상과 예기치 아니한 완강한 헌병들의 저지로 말미암아 진입이 주춤해지자 그 뒤를 따르던 제1중대가 선봉부대로 교체되었다. 혁명군의 공격부대가 다시 정비되어 작렬하는 응사로 접근해오는 박력에 짓눌린 헌병들은 장애물로서 배치된 GMC의 헤드라이트가 총격에 의하여 깨어지자 어느새 도망하기 시작하였다.

그 무렵 벌써 4시가 넘어.... 박 소장을 비롯한 혁명 간부에 인솔된 공수단 1개 소대는 곧장 방송국으로 달려갔다.”

바느질을 하며 여사는 옥천 교동집 연못을 생각하고 있었다. 희고 붉은 연꽃으로 덮인 연못에 어느 해 무지개가 뻗쳐오른 일이 있었다. 처녀 때의 일이었다. 여사와 예수 동생은 그것이 그들의 앞날을 축복해주는 일종의 계시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여사는 그 생각이 갑자기 왜 떠오르게 되었을까 하며 그것을 궁금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 때 응접실의 시계가 5시를 알렸다.

여사는 라디오 주파수를 돌렸다.

“----”

여사는 손목시계를 살펴보았다. 어김없이 정각 5시, 다이얼을 조심스러이 매만져보았다.

“----”

쉭----쉭---- 하는 잡음만 들릴 뿐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여사는 얼굴이 좀 굳어졌을 뿐 별다른 감정의 동요를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5시 정각에 혁명을 알리는 방송이 나오지 않음은 심상치 않은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여사가 모를 리 없었다.

‘내일 아침 5시 정각---’

남편의 음성이 크게 확대되기도 하고 축소되기도 하며 재깍거리는 초침 소리 저편에서 들리는 것만 같았다. 무한히 긴 시간, 그것을 여사는 체험한 것이다. 1초, 1초가 곧 무한의 시간 같았다.

5시 1분----2분----.

분침은 가고 있었다. 아무리 더디더라도 시간은 가고 있었다. 3분----4분----5분----. 스위치를 켠 채 놓아둔 라디오에서는 쉭----쉭----쉭 잡음만이 울렸다. 6분----7분----. 그 때 잡음의 공간이 쩍 갈라지며 애국가가 울려나왔다. 이어서,

친애하는 애국 동포 여러분!”

아나운서의 격앙된 음성이 흘러나왔다.

은인자중하던 군부는 드디어 금일 아침 미명(未明)을 기해서 일제히 행동을 개시하여 국가의 행정․입법․사법의 삼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작업모를 쓰고 신당동 집을 떠날 때 씨익 웃어 보이던 박 소장의 얼굴이 불쑥 떠올라 라디오에서 울려오는 전파를 타고 출렁거렸다. 혁명공약의 방송이 끝나자 여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손이 치맛자락을 움켜잡고 있고 그 손에 땀이 배어 있음을 깨달았다.

‘애들 밥을 지어줘야겠군.’

여사의 머리에 떠오른 첫 생각은 바로 그것이었다. 라디오를 켜둔 채 여사는 부엌으로 나갔다. 시가지가 내려다보이는 부엌 창문을 통하여 아침이 동트고 있었다. 짙푸른 새벽 하늘에 아직도 별이 빛나고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서울 거리의 저편에는 진줏빛으로 동이 터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점차 화려한 주황과 황금빛으로 변해가며 새날의 찬란한 밝음을 마련해주고 있었다.

근혜 양과 근영 양이 깨어났다. 어제와 다름없는 여사의 일상적인 생활이 시작되었다.

“근혜, 세수해야지.”

“근영아, 책가방 챙겨야지.”

식사가 끝나자 어린 자매는 간밤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는 채 등가방을 달랑거리며 학교로 갔다. 그러자 전화가 울렸다.

“아이들 학교 보내야 할까요?”

어느 장군 댁에서 물어온 것이었다.

“네에. 그럼요. 학교 보내셔야지요.”

여사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음성으로 응대하였다.

혁명 직후 며칠 간의 생활에 대하여 몇 사람의 증언을 들어보도록 하자.

“우리는 그 당시 4남매가 성동구 상왕십리동에 살았어요. 나는 은행에 나가며 세 동생과 광무극장 뒷골목에 방을 얻어 자취생활을 하고 있었어요. 5월 16일 아침에 라디오 뉴스를 듣고 박 소장님이 관련되었다는 것을 알았어요. 17일 오후 신당동으로 이모님을 찾아뵈었어요. 경비가 삼엄했어요. 그러나 집안에 들어서니 뜻밖에도 절간처럼 조용했어요. 이모님이 나타나셨어요. 예전과 조금도 다름없이 조용하고 온화한 모습이었어요. 그래서 우리들이 철없이 여쭤보았어요.

이모님, 왜 집안이 이렇게 조용해요?

그게 무슨 소리니, 뭣 땜에 집이 소란스러워야 하지?

이모님이 반문하셔서 우리가 오히려 무안했어요.”

조카 홍세표씨의 회상담이다. 이를 통해 혁명 직후의 신당동 댁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더구나 전과 다름 없는 여사의 모습에 조카들은 깊은 감명을 받았던 것이다.

다음은 고종사촌뻘 되는 어느 친척의 말이다.

혁명이 일어나던 그날 아침 방송보도를 듣고 깜짝 놀라 전화를 걸었습니다. 누님이 받으시더군요.

누님, 누가 나설 사람이 없어서 하필이면 매형이 앞장서서 위험한 일을 하셨어요?’

내가 당황하며 물었어요.

아니, 그럼 이대로 살아가자는 그 말인가!’

전화통에 울리는 누님의 음성이 사뭇 준엄한 느낌이 들어 주춤했어요. 그리고 너무 경솔하게 말씀을 드렸구나 뉘우쳤지요. 며칠 후 댁으로 직접 방문하였더니 박 장군께서는 시내에서 이발을 하시는 것 같았어요.

‘지금 ○○에서 이발하고 계시는데 10분 후 댁에 도착하실 것입니다.’

이와 같은 연락이 오고 전화가 잠시도 쉬지 않고 울리더군요.”

조카들의 회상담과는 상반된 것이지만 혁명 직후 신당동 댁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신당동의 안살림이나 여사의 모습은 변함이 없었으나 박 장군을 에워싼 생활은 급격하게 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18일 저녁 때였다. 전깃불이 들어오기에는 조금 이른 시각, 응접실에 설비해 둔 초인종이 울렸다. 여사가 급히 달려나가 대문을 열었다. 얼굴이 약간 수척해 보이기는 하였으나 박 장군이 예의 그 씨익 웃는 미소를 지으며 문안으로 들어섰다.

“아버지.”

근혜․근영 양이 큰소리로 외치며 안방에서 뛰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