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FOREWORD

 

―― 하이케 뢰쉬만(Heike Loschmann)

 

이 에세이는 하인리히 뵐 재단(Heinrich Boll Foundation) 작업의 핵심에도 놓여 있는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탐구에 기여한다. 모든 인간들에게 품위 있는 삶을 제공하는 것, 자연 세계와 공존하고 관계를 맺고 살아가며 행성적 한계를 수용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패권적 담론의 주변부에서 이 에세이는 독자로 하여금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도록 요청한다. 그것은 관행적인 정치 및 정책의 익숙한 술어들과 그것들의 기저 가정들에 이의를 제기한다. 자연이 우리의 필요에 봉사하도록 우리의 합리적 사유와 기술적 고안물들이 <<자연을 전유하>>고 <<자연의 비밀을 밝힐>> 수 있다는 계몽주의 유산에만 계속해서 의존할 수 있는가? 자연을 정말로 승자와 패자, 효율성과 이기심의 게임일 뿐인가? 여기서 안드레아스 베버(Andreas Weber)에 의해 제안되는 대로의 <<생동화(Enlivenment)>>라는 관념은 이런 가정들이 살아있는 생물학적 및 생태학적 체계들의 실재들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이의를 제기한다. 세계를 <<죽은 물질>>로 간주하는 주류의 이원론적 형이상학 대신에 생동화는 다양성, 자유 그리고 경험의 끊임없는 전개로 이해되어야 하는 생명권 내에서 언제나 서로 얽혀 있는 살아있는 존재자들의 다원론적 세계를 본다.

 

베버가 설명하듯이, 생명과학에서 진행 중인 패러다임 전환이 우리에게 생물학의 새로운 상을 제공하고 있다. 그것은 자연을 부분들과 과정들이 결국 합리적인 <<외부의>> 인간 관찰자들에 의해 이해될 수 있는 결정론적 기계로 간주하는 환원주의적 세계관에서 멀어져 인간들을 역동적인, 살아있으며 전개하는 창조적 관계들의 그물에 깊이 처하게 하는 생동적 세계관으로 움직이고 있다. 자연에 대한 기계적인 시각을 폐기함으로써 과학은 거대한 미탐사 영토가 생명 자체의 본성이라는 점을 알기 시작하고 있다. 주관성, 지각력, 행위 주체성, 표현, 가치 그리고 자율이 생명권의 중심에 놓여 있다. 이 결론은 단순한 의견이나 추측의 문제가 아닌데, 그것은 경험과학에 의해 점점 더 입증되고 있다. 생명과학은 물리학이 양자물리학과 상대성의 독특한 실재들을 파악하게 된 20세기에 겪은 변환에 비견되는 거대한 변환을 겪고 있다.

 

베버는 현재 명확해지고 있는 상이한 과학적 패러다임을 살짝 보여준다. 그는 그것을 <<생동화>>라고 부르는데, 왜냐하면 새로운 과학들은 유기체들이 주관적 경험을 겪으며 의미를 산출하는, 물리적인 것 이상의 지각력을 갖추고 있는 생명체라는 점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유기체들은 의미를 구현하고 <<세계 형성>> 감성을 표현한다. 그들의 주관성과 살아있다는 느낌은 그들의 진화적 역사에 부수적인 것이 아니라 중심적인 것이다. 베버는 생동화를 계몽 사상의 부족한 범주들의 대체가 아니라 <<갱신>>으로 간주하는데, 그것은 우리의 근대적인 <<죽은 물질>>의 형이상학을 넘어서서 모든 살아있는 유기체들에서 구현되는 대단히 창조적, 시적 그리고 표현적 과정들을 인식하는 한 방법이다.

 

점점 성장하고 있는 이런 인식은 현대 정치와 공공 정책 틀들에 대한 심대한 함의를 품고 있다. 우리의 노후화된 단문화적 세계관은 문자 그대로 우리가 다중 위기들의 더 깊은 원인들을 이해하지 못하게 막는다. 빅토리아 시대 이전의 다윈주의적 과학과 사회적 규범들에서 비롯된 은유들에 의존함으로써 지금까지 생물학과 경제학은 생명, 자연 그리고 정책이 작동하는 방식에 관한 하나의 통합된―그러나 오류가 있는―<<생명경제적>> 서사를 전개했다. 이 세계관은 <<지속가능성 실천>>이 전지구적으로 고안되어 실행될 방법도 규정한다. 생명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인간들은 생존하며 타인들에 대해 승리하고자 하는 끝없는 투쟁으로 경쟁하면서 <<생명 게임을 하고 있는>> 자아추동적 기계로 간주된다. 우리는 모두 효용을 극대화하는 합리적인 개체―호모 이코노미쿠스―로 가정된다. 세계와 그 속에서 우리의 지위에 관해 말해주고, 그래서 결국 세계를 형성하고 가능한 대안들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을 한정하는 것은 바로 이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사실상 자연은 충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짜>> 초과분과 <<의미의 잉여>>―둘 다 생태계들, 생물 다양성 그리고 개체적 경험을 지속시키는 데 필수적이다―을 생성한다는 점에 있어서 대단히 <<낭비적>>인 것이다. 자연 속에는 재산권을 통한 인공적인 희소성이나 배타적인 소유권을 위한 자리가 전혀 없는데, 생태계는 사실상 자연적 풍요의 오픈 소스 체제이다. 자연은 영합 게임이 아니라 확장성의 협동적 전개이다.

 

인간 문명이 기후 변화, 생물 다양성의 상실 그리고 다른 생태적 난제들을 받아들이고자 할 때, 인간 경제가 다른 세기의 신화들을 탈피하고 새로운 의미중심적 생물학의 원리들과 그것의 자연 생태계에서의 작동 원리들을 인식하기 시작하는 것이 정언명령적인 것이다. 우리는 <<생명경제>>의 주요 원리들과 그것들이 생명을 <<경제화>>하는 고유한 경향들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이런 원리들은 생명 자체의 과학적 실재―<<생명>>과 <<살아있음>>은 사유의 근본 범주들이고 개별 경험과 의미는 법률, 정책 그리고 제도가 인정하고 강화해야 하는 생태계들의 중요한 실재들이라는 것―를 인식하지 못한다.

 

베버의 사유의 특히 흥미로운 양상은 오늘날 세계 전역의 탄력적인 생동화 기반 모형들의 탐구이다. 이것들은 공유재의 자기조직적인 생생한 사례들이다. 공유재는 전적으로 생동화와 관련되어 있고, 베버는 그 이유를 설명한다. 재화와 용역의 생산과 분배에 집중하는 시장과 달리 공유재는 사람들을 <<생 중심들>>의 핵심에 관여시킨다. 이런 접근 방식이 사람들의 개인적 필요와 고유한 이해관계를 존중하는 새로운 종류의 경제의 기초인데, 살아있다는 감각을 증진시키고 도중에 기저 생태계들의 살아있음을 심화시킨다. 공유재는 의미, 참여, 사회적 연결 그리고 정체성에 대한 만인의 필요에 호소한다. 공유재는 적응과 혁신을 강화하는 한편으로 전통과 관습 그리고 장소와 소속감을 찬양한다.

 

또한 공유재라는 관념은 변형적인 것인데, 왜냐하면 그것은 <<부>>를 금전을 훨씬 넘어서는 것으로 재규정하기 때문이다. 인간 복지가 목표라면, 부는 개체들의 생 중심에 관여해야 한다. 공유재는 탈중앙집중화된 에너지를 해방시켜서 경제에 관한 <<전표 사고>>가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을 개방할 수 있다. 공유재는 인간들에게 생동적인 동시에 생태적으로 창조적인 신/구 공급 패러다임의 개요를 제공한다.

 

여기서 생물학적 실재에 대한 최근의 과학적 발견들 가운데 일부를 제시하고, 전적으로 육화된 문화의 정치와 정책에 대한 함의들을 개괄하며, 공유재 운동이 어떻게 생동화의 원리들을 충족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지 보여줌으로써 베버는 큰 공헌을 했다. 베버는 새로운 수준의 사유를 향해 움직이기 위한 호소력 있는 경로와 인도적인, 생태적으로 책임감 있는 미래에 대한 강력한 전망을 제공한다. 이 전망은 계몽의 가장 위대한 성취, 즉 우리의 개인적 자유와 권리가 도래할 생동화의 성취, 즉 육화된 자율적인 존재자들의 관계적인 공창조적 역능의 전개와 결합할 수 있고 결합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기서 베버가 개괄하는 생동화의 틀은 우리 미래의 난제들에 대한 실제 해결책들을 탐색할 준비가 되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유망한 출발점이다. 그런데 그것은 시작일 뿐이다. 생동화 패러다임을 탐구하고 확장하는 것은 상이한 시각들의 옹호자들 사이에서 많은 사유와 고상한 만남들을 필요로 할 것이다.

 

―― 안드레아스 베버(Andreas Weber), <<생동화(Enlivenment)>>(2013), 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