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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형이상학을 의미하는 철학은 그것의 방법이라기보다는 그것이 다루는 주제들의 본성에 있어서 특수 학문들과 다르다. 그 주제들은 특이하게 포괄적인 종류의 것들이고, 세계 속의 사물들 또는 존재자들을 가장 피상적으로 힐끗 보는 눈길에도 드러난다. 이 사물들은, 어떤 것들은 지니고 있고 다른 것들은 지니고 있지 않는 특정한 특질들로 서로 구분되는 집단들로 분류된다. 따라서 돌 같은 보통의 사물들에서 아래로 분자와 이온들―이것들이 물질적이라고 할 수 있다면―에까지 이르는 물체들이 있고, 살아있는 것들이 있으며, 그리고 정신을 지닌 존재자들이 있다.  이 상이한 존재 층위들이 서로 맺고 있는 관계는 무엇인가? 그것들이 구체적인 실례들인, 그것들이 공유하고 있는 어떤 근본적인 본성이 있으며, 그리고 우리는 그런 규정에 어떤 의미를 갖다붙일 수 있는가? 일차적인 존재 형식은 무엇이며,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다른 존재 층위들이 어떻게 생성되는가? 그 다음에, 사물들 사이의 종류의 다양성과 더불어, 모든 사물들에서 공히 발견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특별한 범위의 보편성을 갖는 어떤 만연하는 특징들이 있다. 그런 것들은 사물들이 실체로서 서술될 수 있게 만드는 변화 속에서 영속하는 것들로서, 양, 공간적 특질과 시간적 특질, 인과성이 있다. 개체성은 사물들의 만연하는 한 특질이지만, 또한 자체 속에 사유가 인식할 수 있고 보편자로 알려져 있는 특질을 지니고 있지 않는 개별자는 하나도 없는 듯 보일 것이다. 따라서 형이상학은 매우 포괄적인 이런 주제들을 연구하고, 만약에 있다면 존재자의 궁극적 본성과 사물들의 만연하는 이런 특질들, 즉 범주들을 서술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해석상의 너무 미묘한 특수한 것들을 무시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를 사용한다면, 형이상학은 존재 자체와 그것의 본질적인 속성들에 관한 과학이다.

 

그런데 주제의 포괄성은 모든 학문의 바로 그 본질이다. 자체의 고려 범위에 드는 두서없는 사실들을 연결하고 그것들에 체계를 부여하여, (로체(Lotze)의 구절을 사용하면) 법칙들을 발견함으로써 우연히 일치하는 것들을 정합적인 것들로 격상시키고, 개념들로 묶어 단순화하며, 일견 다수적인 것을 통일하는 것 외에 학문이 어떤 다른 것을 하는가? 철학은 같은 기획을 최대의 극한으로 끌고갈 따름이며, 철학의 정신은 학문의 정신과 동일하다. 두 가지 것이 이 정신의 공동체를 증언한다. 학문이 더욱 더 포괄적으로 될수록 학문은 철학에 더욱 더 가까이 접근하는데, 그래서 어디에서 학문이 끝나고 철학이 시작하는지 말하기가 어렵게 될 것이다. 역사학에서 연대기 또는 신문은 문서들에 대한 체계적 비판에 바탕을 둔, 인간들의 정신에 내재하는 운동들의 체계적 발견으로 대체된다. 한 단계 더 나아가, 헤겔이 그랬듯이, 역사학이 보편사에서 국가라는 관념의 성장과 변화를 보여주도록 수행될 때, 그것은 역사철학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인데, 그것이 철학이기 때문이 아니라 매우 포괄적이기 때문이다. 생물학, 화학, 그리고 물리학에서의 가장 높은 일반화들도 같은 것의 다른 예시들이다. 신중히 고려하면, 철학은 이런 학설들을 철학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철학은 학문으로부터 생명 또는 물질 또는 정신적 작용이 무엇인지 배우며, 그것들에 대한 철학적 문제는 이런 사실 층위들이 어떻게 서로 그리고 사물들의 근본적인 본성과 관련되어 있는지 묻는 것이다. 그런데 상한의 위치에 있는 학문이 철학에 가까운 것은 바로 철학이 무엇보다도 이런 포괄적인 관념들에 관여하기 때문이다.

 

철학을 학문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지만 가장 포괄적인 것으로 만드는, 정신의 통일성에 대한 나머지 증거는 특수 학문들이 최소한 서양 세계에서는 철학에서 비롯된 파생물이라는 역사적 진실이다. 전문 지식이 더 제한적일 때, 인간들의 정신을 자극하는 것은 더 모호하고, 더 단순하며, 더 포괄적인 문제들이다. 점진적으로 특정한 사실들의 집합체들은 철학이라고 불리는 일반적인 지식체로부터 분리된다. 당대에 우리는 심리학이 자체의 부모 줄기로부터 분리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일상적인 용법이 학문과 마찬가지로 철학도 사물을 함께 고려하는 습관이라는 서술을 입증한다. 적절한 균형 감각으로 사물들을 고려하고 느끼는 사람은 사물들을 철학적으로 간주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직업적 철학자들이 항상 소유하고 있지는 않는 행동 습관이다. 언젠가 보스웰(Boswell)은 다른 몇 사람들과 함께 존슨(Johnson)을 자신의 하숙방에서 저녁 식사를 하자고 초대했었다. 그런데, 집주인이 불쾌하게 여기는 것으로 판명되어 보스웰은 자신의 집에서 미터(Mitre) 호텔로 만남의 장소를 바꿀 수 밖에 없었으며, 그 "심각한 고뇌"를 설명하기 위해 존슨을 기다렸다. 존슨은 이렇게 말했다. "생각해 보십시오, 보스웰 경. 지금으로부터 열두 달이 지나면 이 일이 얼마나 사소한 듯 보일지 말입니다." 그것은 철학적 대답이었고, 존슨은 확실히 사변적으로는 아닐지라도 실제 행동에서 철학적 정신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플라톤이 서술하듯이, 형이상학자는 "공관적인" 인간이라는 점은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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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뮤얼 알렉산더(Samuel Alexander)의 1916-1918년 기포드 강연록 <<공간, 시간, 그리고 신성(Space, Time, and Deity)>>(1920)의 서론 부분(pp. 1-4)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