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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 시대에서 참으로 감동적인 것은[...], 그의 찬란한 발견과 서글픈 자연주의 사이의 어마어마하고 한없는 거리를 가늠하는 것입니다. [...] 다윈이 충격을 주었던 것은 그가 인간을 원숭이의 후손으로 만들었다거나, 인간중심주의에 종지부를 찍었다거나, 창조주 하느님을 상정하지 않았다거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바로 그가 보편적이고 연속된 환경으로 구상된 [대]자연을 생략했다는 겁니다. 그러한 자연이 모든 생명체들을 '그들 모두의 상위에 있는 인과법칙의 점진적 실현'으로 삼아서 그 생명체들에게 의미를 부여할 텐데 말입니다. [...] 다윈은 각 존재와 그다음 존재 사이에 아찔한 '불연속성'이 있다고 보았고, 그러한 불연속성은 마치 결과가 항상 원인을 다소 넘어서는 것처럼 각 세대에 유일하고 독보적인 발명이 있음을 상정합니다. [...] 하지만 다윈의 책이 나온 지 150년이 됐는데 우리는 여전히 가엾은 다윈을 창조자연, 창조주 하느님 대 눈먼 시계공이라는 거창한 거짓 논쟁에만 못박아두려 합니다. 생명체들에 '외재적인' 하나의 의미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완벽하게 대체 가능한 두 형식을 대립시키려고만 합니다.

 

[...] 그가 발견한 것은 훨씬 더 흥미롭고 더욱더 급진적입니다. 전후 고저를 막론하고, 어떤 야생마 집단을 그보더 좀 더 진화된 다음 집단으로 이어주는 법칙 따위는 없습니다. 우리는 각각의 말을 그 자체로, 그 개체가 보존되거나 멸종될 그 나름의 위험과 기회를 통하여 고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이야기는 '어디로도' 향하지 않습니다. [...] 어떠한 신의 섭리도 그 이야기를 이끌지 않습니다. 이른바 '최적 환경', '적자생존'이라는 세속의 섭리도 그럴 수 없고요. 당연히 어떤 창조도, 어떤 의미도 안 됩니다. 다윈과 더불어 신도 물론 패했습니다만 자연도 그건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자연도 없고 에테르도 없습니다. [...] 이 놀라운 불연속성은 어떤 잠정적인 통일로도 미리부터 다시 덮을 수 없습니다. [...] 다윈은 멀티버스의 수호성인입니다. 그의 사상은 '연장된 실체'의 환원주의를 절대적으로 벗어나기 때문에 매일매일 묵상해야 마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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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 <<과학인문학 편지>>(이세진 옮김, 사월의책, 2012), pp. 2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