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의 역사

 

 18세기 말에 칼 린네우스(Carl Linnaeus, 1707-1778)는 현대의 생물학적 분류 체계, 즉 나중에 어떤 생태계 내에서 개체들과 개체군들의 분류 작업을 가능하게 할 식별 체계를 위한 기초를 세웠다. 린네우스의 작업은 자연 세계의 분류학을 만들어내는 데 유용했지만, 신에 의해 질서 잡힌 존재의 연쇄로서의 우주라는 그의 관념은 근대 과학이 서술하는 것과 확실히 달랐다. 린네우스에게 우주는 신에 의해 창조되었고 질서 잡혔으며, 그리고 그는 새로운 종들이 출현한다는 관념을 애초에 지지하지 않았다(그는 결국 자신의 입장을 바꾸었을지라도). 자신의 생애 대부분 동안 린네우스는 이미 신에 의해 창조된 종들 사이의 잡종화와 재조합 과정을 보았으며, 새로운 종들의 출현을 결코 보지 못했다.

 

린네우스는 안정된 순환하는 흐름의 세계를 상상했던 생기론자였다. 린네우스에게 대자연은 균형 잡히고 자애로왔지만 자연신학에서 인간을 통해 표현되는, 시간에 따라 변하지 않는 고정된 위계였다. 여전히 고전적인 신학적 사유의 통제 아래 놓여 있던 생물학에 대한 시각을 갖추었던 린네우스는 확실히 생물학에 기여했지만, 그의 관념들은 아직 현대적 의미에서는 진화론적이거나 생태학적이라고 간주될 수 없을 것이다.

 

장 밥티스트 라마르크(Jean-Baptiste Lamarck, 1744-1829)는, 진화에 관한 그의 판본이 진화론의 현대적 해설에 대한 발전 가능성이 있는 선행 이론이라고 할 수 있을지 여부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참된 의미의 진화가 서술되는 역사에서 첫번째 자리를 차지한다. 라마르크의 획득 형질 이론이 모든 생명 형태들은 원시 조상들에서 나타났다는 견해를 뒷받침하는 이론을 구성하고자 한 최초의 주요하고 포괄적인 시도였다는 점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렇지만, 십구 세기의 신라마르크주의자들이 라마르크가 단일한 조상으로부터의 유래라는 관념에 기반을 둔 현대적 진화론을 최초로 제안했다고 가정했던 반면에, 그 후의 과학사가들은 이제 라마르크의 시각이 진화에 관한 근대 과학적 관념들의 기반을 제공하는 것들과 매우 다른 일련의 원리들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진화의 역사에서 라마르크는, 상호 의존하는 유기체적 전일론을 강조했지만 우주에 대한 보편적인 기계론적 해석을 선호했던 계몽주의 유물론의 통찰로부터 많은 것을 뽑아내었던 낭만주의적 세계관의 이상들 사이에 서 있는 한 자리를 차지한다. 라마르크의 이해에 따르면, 진화의 메카니즘은 이중적이다.

 

첫째, 유기체는 평생을 통해 자체 형상의 특정한 측면들의 빈번하고 지속적인 사용에 근거하여 능력들을 발달시킨다. 따라서 더 자주 사용되는 것은 강화되고 개선되며, 사용되지 않는 것은 퇴화된다. 그렇다면 어떤 유기체의 강점들은 그 유기체가 시간에 걸쳐 행동하는 방식에 의존한다. 단일한 생애에 걸쳐 축적된 이런 특질들은 유전을 통해 그 다음 세대에 전달될 것이다.

 

둘째, 환경이 대체로 다른 특질들에 우선하여 어떤 특질들의 사용을 결정하는데, 사용을 통해서 유기체가 변화시키는 측면 또는 특질들은 외부 조건의 요구에 의해 선택된다. 라마르크의 두 가지 가설 가운데 후자, 즉 한 종 내에서 획득 형질들의 환경적 선택은 다윈 혁명을 통해서 여전히 과학적으로 실행 가능할 것이다. 그렇지만, 라마르크는 환경의 영향보다 최초의 행동적 변화를 더 크게 강조했다고 전해진다.

 

몇몇 사람들에게는 현대의 유전학 연구가 획득 형질에 관한 라마르크의 주장들을 무효화시킨 듯 보인다. 마굴리스(Margulis)와 세이건(Sagan) 같은 다른 사람들은 획득 형질에 의한 적응이라는 라마르크의 이론의 변양태들이 "획득된 유전자 집합들의 유전에 의한 진화적 변화"로서 규정되는 공생발생의 특징들이라고 주장했다. 군터(Gunter)는 라마르크주의가 실행 가능한 진화 메커니즘으로 다시 간주된다고 주장하면서, 두 종류의 획득 형질―일시적 획득 형질과 영구적 획득 형질―을 주장했다. 에뮤, 물벼룩, 그리고 무에 관한 여러 연구들을 인용하면서, 군터는 라마르크적 유전에 대한 증거를 찾아낸다. 이런 경우들에 있어서 문제는 획득 형질의 이런 유전 과정이 기능하는지 여부가 아니라 어떻게 기능하는가이다. 또한 군터는 마굴리스의 공생발생 이론의 통찰들을 인식하지만, 이런 유전 형식을 신라마르크주의에 대한 자신의 논변과 차별화한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진화적 사유에 대해 라마르크가 기여한 점들은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다.

 

다른 한 시각에서 바라보면, 굴드(Gould)는 생물학적 진화가 라마르크의 메커니즘을 통해 작동하는 듯 보이지 않을지라도, 사실상 문화적 진화는 그렇다고 주장한다. 생물학적 진화와는 대조적으로 문화적 진화는 "라마르크적" 양태로 작동할 수 있는데, 한 개인 또는 한 세대가 평생 동안 배우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인간들이 문화의 연속성을 보증하기 위해 개발한 글쓰기, 지도, 주입, 의례, 전통, 그리고 일단의 방법들로 그 다음 개인 또는 세대에게"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라마르크의 유산에 관해 이런 다중적 시각을 취하게 되면 라마르크주의는 역사에 맡겨졌다고 단호하게 제안하지 못하게 된다. 그의 유산은 불분명하며, 그리고 그가 제안했던 진화의 메커니즘들은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고 논쟁 중에 있지만, 진화 사상의 역사에서 라마르크는 논란이 되는 인물이지만 여전히 중추적인 인물이다.

 

라마르크에 이어지는 인물은 조르주 퀴비에(Georges Cuvier, 1769-1832)인데, 그는 라마르크의 이론들을 강하게 반대했으며, 그리고 "퀴비에의 경우에, 종들 사이의 관계들은 그것들의 외적 특징들의 질서정연한 위계가 아니라 그것들의 내적 구조의 유사점들에 기반을 두었"을 정도로 비교분류학에서 새로운 기법들을 개발했던 생물학자였다. 퀴비에와 그를 높이 평가했던 프랑스 과학 공동체는 대체로 여전히 유신론적이었지만, 린네우스의 신에 의해 질서 잡힌 분류학(가장 단순한 지구 생명에서 시작하여 인간에서 정점에 이르고 신을 향해 직접 전진하는 존재의 대연쇄라는 관념에 의존했다)과 결합된 퀴비에의 비교해부학은 신에 의해 질서 잡힌 설명 원리들로부터의 더 넓은 전환을 가리키는, 사유에 있어서의 또 하나의 패러다임 전환을 특징짓는다.

 

찰스 라이엘(Charles Lyell, 1797-1875)은 현대 지질학의 창시자로 서술되었다. 그의 저작 <<지질학의 원리(Principles of Geology)>>는 "균일론(uniformitarianism)의 방법: 모든 변화의 속도는 시간에 걸쳐 절대적으로 균일하다고 가정된다"을 제시했다. "관찰 가능한 강도로 작용하는 관찰 가능한 원인들만이 과거 사건들을 설명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보울러(Bowler)에 따르면, 라이엘은 이렇게 믿었다. "과학적 진보에 대한 주요한 걸림돌은 과거의 미지의 원인들에 관해 기꺼이 추측하려는 성향과 지구 역사의 엄청난 연장을 숙고하지 않으려는 성향이었다". 지구에 대한 라이엘의 견해는 과학에 깊이 관련되어 있었지만, 신의 본성에 관한 지배적인 직관들에도 관련되어 있었다. 라이엘의 경우에, 세계의 구조와 질서에 대한 신의 참여의 증거는 인간의 탐구가 접근할 수 있었던 전 시기 동안 지구가 명백히 완전하고 자기조절적인 체계를 유지해 왔었다는 관찰 가능한 사실에 의해 직접 증명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신은 창조를 "영원한 균형" 상태로 유지시키는 "완벽한 장인"이었다.

 

고전적 유신론과 지질학 연구를 통한 과학적 진보 둘 다에 대한 라이엘의 신봉은 혼합된 결과를 낳았다. 한편으로, 그는 목사가 창세기 이야기에 대한 문자주의적 해석을 여전히 유지하려고 노력하던 시대에 지질학적 연대의 연장을 주장했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여전히 고전적 신학을 신봉했기 때문에, 또한 그의 지구 연대의 확장은 창조 이래로 지구가 거의 변화하지 않았고, 동물들은 전체적으로 멸종되지 않았으며, 게다가 지구의 다른 생명 형식들 가운데서 인간의 출현은 신의 개입의 특별한 사례였다라는 감각과 함께 공진화했다. 라이엘의 경우에, 도덕, 지능, 그리고 영성은 주로 정상 상태로 존재하는 지구의 점진적 진화의 산물이 아니라, 오히려 신에 의해 창조된 것이었다.

 

라마르크의 이론들이 최초의 진정한 진화적 패러다임으로 여겨지더라도, 현재까지 역사가 수행했던 주요한 진화 메커니즘―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를 체계적으로 제시한 것은 1858년에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판한 것이다. 라이엘의 연장된 연대와 지질학적 변화에 대한 점진론적 시각을 자연 세계에 적용함으로써 다윈(1809-1882)은 진화를 장기적인 시간 규모에서 주변 환경에 대한 유기체들의 적응으로 해석했다. 다윈의 진화론만큼 큰 문화적 영향을 미쳤던 그 어떤 이론이나 신조는, 그것이 과학적이든, 종교적이든, 정치적이든 간에, 반드시 복잡하고 다양한 방향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보울러는 다윈의 이론에 대한 두 가지 주요한 접근방식이 있다고 넌즈시 말한다. 하나는 다윈을 당대의 특정한 과학적 문제들을 풀려고 노력하면서 자기 분야에서 연구하는 과학자로서 여기는 내재적 접근방식이고, 나머지 다른 하나는 경쟁과 투쟁에 대한 다윈의 강조는 십구 세기 경제적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그 자신이 묻어들어가 있던 것의 투사물이라고 시사하는 외재적 접근방식이다. 외재론자는 과학의 문화적 영향과 배태성의 견지에서 과학을 연구하는 데 열중한다. 과학적 노력의 역사성에 집중함으로써 외재론자는 중요한 과학적 쟁점들을 방관한다. 다른 한편으로, 내재론자는 과학적 실천에 대한 비역사적 이해를 통해서 나아가며, 사회역사적 쟁점들을 도외시하고 관련된 과학적 문제들만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므로, "외재론자는 다윈을 이데올로기적 힘들에 의해 통제되는 허수아비로 환원시켜 그의 사회적 편견들을 자연에 대한 동등한 견해로 기계적으로 번역한다. 내재론자는 다윈을 저곳에 존재하는 것을 단순히 바라본, 자연에 대한 자명한 모형의 발견자로 여긴다". 외재론자의 경우에, 자연선택이 당대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들과 동조하는 방식 때문에 다윈의 이론은 회의적으로 고려된다. 다윈의 경우에, 자연선택은 경쟁적으로 획득되어야 하는 자원들로 이루어진 유한한 환경이라는 맥락에서의 생존 투쟁이다. 이쪽의 성공은 저쪽의 실패였다.

 

이 분야에서의 다윈의 사유는 토머스 맬서스(Thomas Malthus)의 1798년 저작 <<인구론>>에서 크게 영감을 얻어 구상된 것이다. 맬서스적인 "생존 투쟁"은,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반면에 식량 공급을 늘릴 수 있는 능력은 산술급수적으로만 증가한다는 관찰에 근거를 두었다. 보울러는 맬서스를 "신이 도덕적 목적을 위해 인류에게 명백히 매우 가혹한 상황을 창조했었다고 믿었던 성직자"로 서술한다. 또한 맬서스가 지배적인 경제 체제의 지지자였다는 사실도 다윈이 자연을 당대의 정치적 견해들로 해석했다는 외재론적 입장을 뒷받침하는 데 더해진다. "맬서스는 확실히 자유방임주의의 지지자였다. 그는 빈자들에 대한 국가의 구호는 그들이 더 빨리 자식을 낳도록 부추길 뿐이라고 믿었다. 공리주의와 개체주의의 원리들이 사회 이론과 생물학 이론들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던 공통 맥락을 형성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토머스 맬서스의 저작과 애덤 스미스(Adam Smith)의 <<국부론>>(1776에 출판됨) 같은 다른 저작들은 사회 속의 주요한(그리고 가장 건전한) 동기로서 자유시장에서 행동하는 경쟁적 개인를 상상하는 환경을 벌써 만들어내었었다. 다윈이 비슷하게도 경쟁의 역할을 지지하는 주장을 했던 점은, 이십 세기에 출현할 사회다윈주의적 패러다임들을 전적으로 명확히 표현한 것은 아니지만 예상할 수 있을 방식으로 당대의 정치적 사유를 자연화하는 듯 보였다.

 

다윈의 자연선택은 십구 세기 말의 지배적인 정치 체제와 경제 체제에 들어맞는 "투쟁에 기반을 둔 생태학"이었지만, 최종적으로는 최소한 당대의 과학적 이해의 범위 내에서 진화를 설명하는 데 적합한 메커니즘이 발견되었던 것처럼 보였다.

 

다윈이 이해하기에,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는 어떤 특질들을 지닌 유기체들이 고정된 환경에 더 성공적으로 또는 덜 성공적으로 적응한다는 점을 의미했다. 환경에 더 적합한 유기체들은 생식적 이점이 있을 것이고, 그래서 더 많은 자식―유전 과정들을 통해서 자기 부모와 비슷한 특질을 소유할 자식―을 남길 것이다. 이런 식으로, 미리 결정되지 않은 채로, 환경은 어떤 개체군 내의 특질들 가운데서 선택한다. 이것이 오랫동안 찾았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종들이 변화하는 메커니즘이다. 진화라는 주제에 관련될 때 역사 서적에서, 과학적 사유에서, 그리고 사회적 상상 장치들에서 다윈은 여전히 중심 인물이다.

 

1850년대와 1860년대에 그레고르 멘델(Gregor Mendel, 1822-1884)은 현대 유전학의 기초를 세웠다.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와 함께 멘델의 연구는 이십 세기에 "현대적 종합"으로 알려지게 되었는데, 그것은 두 이론의 통찰들을 조합하여 현재 생태학과 진화 둘 다에 있어서 지배적인 이해 방식을 명확히 표현했다. 체코슬로바키아 브르노 출신의 수도사였던 그레고르 멘델은 유전 가능한 특정한 특질들이, 아무 변화도 나타내지 않은 채, 부모와 자식 사이에 전달될 수 있다는 점을 확실히 보여줄 수 있었다. 다윈적 진화가 강조한 자연선택의 결과로서 일어난 개체군 내의 변화들은, 유전된 형질들의 변화들이 유기체들의 차별적 생존과 생식을 초래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프란시스코] 아얄라(Ayala)는 유전학에 대한 관심이 테오도시우스 도브잔스키(Theodosius Dobzhansky)의 1937년 논문 "유전학과 종의 기원"이 발표된 이후에 출현했다고 지적한다. 또한 아얄라는, 역사적 또는 철학적 맥락에서 "신다윈주의"와 "현대적 종합"이라는 술어들이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생물학자들은 더 직접적으로 자신들의 이론들을 그냥 "진화"로 부른다고 시사한다. 이것은 현대적 종합이 과학 공동체에 의해 수용된 정도를 가리킨다.

 

1975년에 E. O. 윌슨(E. O. Wilson)은 매우 논란이 많은 자신의 책 <<사회생물학: 새로운 종합>>을 출판했는데, 그는 사회생물학을 "모든 사회적 행동의 생물학적 기초에 관한 체계적 연구"로 규정했다. 윌슨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진화론(현대적 종합에 의해 표현된)에 대한 신다윈주의의 영향은 심지어 사회과학과 인문학(철학, 시, 그리고 미술을 비롯한)에 연루된 인간의 모든 탐구 양태를 재구성했다. 윌슨의 경우에, 이제 각 분과학문은 "현대적 종합에 포함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생물학의 마지막 갈래들)로서 통합을 기다린다. 사회생물학의 목적은, 사회과학과 인문학을 개체군 유전학의 맥락에서 드러나는 적응적 중요성의 견지에서 인간의 모든 행동을 설명하는 신다윈주의적 패러다임에 동조하도록 전환시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윌슨의 사회생물학적 패러다임은, 그 이름이 함축하듯이, 유전학에 대한 이십 세기의 통찰들과 결합된 다윈의 자연선택 메커니즘으로 설명될 수 있는 방식으로 인간의 문화적 행동과 사회학적 행동의 요소들을 설명하려고 감행했다. 윌슨의 목적은 문화적 행동들이 물리학과 화학 같은 다른 과학들에서 연구되는 현상들만큼 정확히 설명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할 수 있는 한결같이 예측 가능한 과학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1970년대에 윌슨이 최초로 제안한 이래로 이 접근방식은 수없이 많이 비판받았으며, 그리고 자체적으로 이런 비판들에 대응하여 재구성되어서 일반적으로 현재 진화심리학으로 알려져 있는 분야로 재명명되었다. 그럼에도, 최근 1998년에 윌슨은 자신의 책 <<통섭: 지식의 통일>>에서 생물물리학적 원리들의 견지에서 사회과학과 인문학을 설명하고 재구성하고자 하는 자신의 프로그램을 계속했다.

 

유전자 환원주의의 추세를 좇아서 1976년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이기적 유전자>>를 출판했으며, 인간들은 자체의 생존과 재생산을 위해 유전자들에 의해 사용되는 정교한 기계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기적 유전자>>는 널리 읽혔고 논란이 대단히 많았는데, 논쟁의 대부분이 도킨스의 유전자 규정과 유전자 재생산에 있어서 인간들의 역할을 둘러싸고 벌어졌다. 도킨스는 이렇게 적는다.

 

그런데 그것들[유전자들]은 거대한 집단들로 떼지어 모여서, 외부 세계로부터 차단당한 채, 거대한 볼품 없는 로봇 안에서 안전하게 지내고, 복잡한 간접적인 경로로 로봇과 소통하며, 원격 조종으로 그것을 조작한다. 그것들이 여러분과 내 안에 존재한다. 그것들이 우리에게 육체와 마음을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그것들의 보존이 우리 현존의 궁극적인 이유이다. 그것들은 복제자로서 많은 진전을 보였다. 이제 그것들은 유전자라는 이름으로 통하며, 우리는 그것들의 생존 기계이다.

 

도킨스의 경우에는 유전자가 자연선택의 중심 단위다. 유전자 재생산이 생명의 유일한 기초이고, 박테리아에서 신경계를 갖춘 복잡한 척추동물까지 모든 다양한 종들은 유전자들이 복제되는 수단일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개체들은 부대현상적인 것이다. 유전자들과 그것들의 재생산이 중요한 것이다.

 

유전자 재생산의 이기적 본성에 대한 강조 때문에 도킨스가 비도덕적인 탐구 노선을 추구하고 있다고 비판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기적 유전자>>의 서문에서 도킨스는 자신을 변호하며 이렇게 진술한다. "이것 때문에 나는 이 책이 관련되어 있지 않는 것에 관해 제기하고 싶은 첫번째 점에 이른다. 나는 진화에 근거하여 도덕을 옹호하고 있지 않다. 나는 상황이 어떻게 진화되었는지 말하고 있다. 나는 우리 인간들이 도덕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말하고 있지 않다". 비슷하게도, 자신의 책의 미주에서 도킨스는 진화에 대한 자신의 견해와 현대 정치 이데올로기들의 견해들 사이의 끈질긴 연결을 지적한다. "이제 영국은 비열함과 이기심을 이데올로기의 지위로 격상시킨 신우파의 정부가 들어섰으니, 유감스럽게도 내 말은 연상에 의해 일종의 불쾌함이 덧불여진 듯 보인다".

 

도킨스와 윌슨은 둘 다 생물학 사상과 진화 사상를 유신론과 뒤섞은 이전의 시도로부터의 단절을 분명히 한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린네우스, 라이엘, 그리고 심지어 다윈과는 반대로, 도킨스와 윌슨은 둘 다 확고한 무신론자이다. 이전에 생물학과 결합된 자연신학은 비판의 원천으로서의 역할을 제외하면 두 사람의 연구에 아무 영향도 주지 못했다.

 

[에드워드] 라슨(Larson)에 따르면,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와 리처드 르원틴(Richard Lewontin)은 윌슨과 도킨스에 의해 제시된 접근방식을 비판했는데, 그 비판은 종교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유전자들의 자연선택에 대한 배타적인 강조는 유기체들의 적응을 설명하는 데 불충분하다고 주장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사회생물학 같은 생물학적 결정론의 변양태들에 반대하는 논변을 전개하면서 굴드는 이렇게 적는다. "생물학적 결정론에 대한 고전적 논변들은 실패하는데, 집단들을 구분하는 데 그들이 동원하는 특징들은 일반적으로 문화적 진화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인간 집단들 사이의 상이한 태도들과 사유 양식들은 일반적으로 문화적 진화의 비유전자적 산물이라고 믿는다. 요약하면, 인간의 독특함의 생물학적 기초가 우리로 하여금 생물학적 결정론을 거부하게 만든다."고 적는다. 문화적 진화와 변화의 비유전자적 기초에 기반을 둔 생물학적 이유들 때문에 굴드는 생물학적 결정론을 지지하는 사례가 없다고 시사한다.

 

사회생물학이 문화 이론에서 자연선택에 대한 현대적 해석("개체들의 차별적인 재생산 성공")을 채택한다고 주장함으로써 굴드는 구체적으로 그 분야을 공격한다. 굴드는 사회생물학자들이 개체들 자체가 후속 세대들에 자신들의 유전자들의 분포를 극대화하고자 하는 유전자 나르개일 뿐이라는 관념 주변에 개체들을 조직하기 위해 다윈적 패러다임을 활용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사회생물학은 생물학적 변화를 문화적 행동 위에 덧씌우는 자연선택이라는 다윈적 패러다임의 투사물이다. 굴드의 경우에, 사회생물학은 경험적 증거에 있어서 거의 아무것도 제공하지 않는, 이미 존재하는 자연선택의 서사에 기반을 둔 문화에 대한 보증되지 않은 서술을 제시한다. 굴드의 주장에 따르면, 사회생물학자들 경우에, 적응의 추론은 충분한 설명적 원리로서 정리되지만, 단단한 데이터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는다.

 

르원틴과 도킨스 둘 다 대중 집단 및 과학자 집단에서 널리 읽히는 책들을 여전히 출판하고 있는 한편, 생물학적 결정론과 문화적 진화는 여전히 강하게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각 패러다임이 인간 행동을 추동하는 논리를 재조직한다는 점이다. 도킨스는 문화의 유전자 결정론에 대한 명백한 증거를 보는 반면에, 르원틴은 그렇지 않다. 각 경우에 연구 패러다임은 문화적 실천과 생태적 실천의 이유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인간 사유의 본성과 정체성을 재조직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1988년에 E. O. 윌슨은 출판된 한 저작에서 최초로 생명 다양성이라는 술어를 사용함으로써 생태학의 역사에 또 다시 중요하게 기여했다. 이 술어는 어떤 주어진 생태계 내에서 생명 형태들의 변이의 정도를 서술한다. 생명 다양성은 유전자 다양성, 종 다양성, 그리고 생태계 다양성을 서술하기 위해 생태계의 다중적 층위에 다양성을 편입한다. 그 술어는 이른바 "여섯번째 대량 멸종 사건," 즉 윌슨이 지난 1억 년 동안 지구가 경험했던 최악의 가장 빠른 종 멸종 에피소드라고 서술하는 사건과 함께 동시에 출현한다.

 

이십 세기 말에 도킨스 등의 유전자 환원주의 프로그램과 다른 궤적을 좇았던 대기 과학자 제임스 러브록(James Lovelock)과 생물학자 린 마굴리스는 이제는 유명한 가이아 이론(그 당시에는 가이아 가설로 불렸던)―지구가 단일한 자기조절 체계라는 견해―을 제시했다. 1970년대에 가이아 가설이 도입되었을 때, 러브록은 생명과 유기체들의 행동이 지구 온도, 산화도, 산성도, 그리고 심지어 암석의 형성 같은 것들의 조절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쳤다는 관념을 시험하고자 했다. 가이아 가설은 대기, 대양, 그리고 기후를 생태와 유기체의 활동과 관련시킨다. 생물군은 지구 생명 형태들의 번성의 미래 안정성을 보증하는 항상성의 전지구적 되먹임 과정을 자동적으로 만들어내고 유지한다고 그들은 주장했다. 생명이 진화함에 따라, 지구의 환경 조건과 대기 조건도 진화한다. 가이아 가설은 유기체들과 그것들의 환경들의 밀접하게 결합된 진화에 대해 주장했다. 러브록의 논변에 관한 초기 출판물들은 1972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1979년에 <<가이아: 살아있는 생명체로서의 지구>>이라는 대중서가 출판되었다. 이 견해는, 애초부터 생명이 주변 환경을 변화시키는 데 극적인 역할을 수행했다는 입장을 명확히 표현한다.

 

또한 마굴리스는 제목이 "분열하는 진핵 세포의 기원"이라는 1976년 논문에서 "공생발생"(원래 1926년에 콘스탄틴 메레쉬코브스키에 의해 표명된 관념)에 대해 주장한다. 공생발생은 두 개의 개별적 유기체들이 공생 과정을 통해서 하나가 되는 과정인데, 진화론의 핵심 요소로서 협동의 역할을 강조한다. 마굴리스는 "공생발생" 또는 "공생"이 1873년에 독일 식물학자 안톤 데바리(Anton deBary)에 의해 처음으로 만들어진 술어였다고 지적한다. 마굴리스의 경우에, 공생은 진화 과정의 주요한 구성 요소인데, 여기서 "어떤 동거의 사례들에서는 장기적인 생활이 공생발생, 즉 새로운 육체, 새로운 기관, 새로운 종들의 출현을 초래한다". 진화적 사유의 대중적인 이데올로기와는 대조적으로, 마굴리스는 공생발생을 진화적 참신성과 다양성의 주요 기관으로 여긴다.

 

도킨스와 윌슨과는 다른 접근방식을 취하는 마굴리스는 진화적 추동력을 설명하기 위해 이기적 유전자들의 경쟁이 아니라 공생을 제시한다. 굴드와 르원틴과 달리, 마굴리스는 현대적 종합의 요소들을 주로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그는 이것도 행하지만), 공생이 진화에서 수행했던 역할을 연구함으로써 진화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발달시킨다. 마굴리스에 따르면, "우리가 보기에 충분할 만큼 큰" 모든 유기체들은 사실상 이전에는 독립적이었던 개체들의 생태계들이다. 마굴리스의 공생발생 이론은 공생발생적 "육체 융합"의 과정을 통해서 식물 세포 및 동물 세포의 기원을 설명하고자 한다. 마굴리스의 경우에, 세포 생물학세포 생태학이 되는데, 그것은 세포의 자율성을 인정하지만, 또한 세포의 출현을 이전에는 개별적이었던 개체들의 단단히 결합된 결합들의 역사로 설명한다. 현재 한 세포 내의 소기관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한때 환경에서 독립적으로 작동하던 완전한 유기체들이었다.

 

이십 세기 전반에, 현대적 종합이 최소한 일차적으로는, 사소한 세부 사항들만 남겨 놓은 채, 진화적 과정을 둘러싼 논쟁을 종결시킨 듯 보였다. 그렇지만, 보울러가 인정하듯이, "단속적 평형"―종의 순 변화는 종의 생존 대부분 동안 대체로 정태적이지만, 멸종 시기의 효과를 포함하여 큰 변화를 초래하는 갑작스럽고 빠른 종 분화 사건들에 의해 "단속"된다는 견해―같은 진화에 대한 더 새로운 해석들이 다윈적 의미에서 점진적이고 연속적이라고 여겨지는 진화 과정 내의 부가적인 불연속성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종합은, 특히 '경화된' 형식의 종합은 진화가 적응의 요구들에 의해서만 추동된다는 것을 당연히 여겼다...이에 대응하여, 이런 초적응주의가 너무 지나치다고 제안하는 새로운 세대의 비판가들이 나타났다."

 

종합에 대한 보울러의 예들에 대한 이의 제기로서 굴드, 르원틴, 마굴리스, 그리고 러브록에 의존하는 앞에서 언급했던 저작들도 덧붙일 수 있다. 이것에 덧붙여, 바렐라, 톰슨, 그리고 로쉬의 "자기생산", 르원틴과 레빈스의 "변증법적 생물학", 그리고 "적소 구성 이론" 같은 [...] 여러 이론들도 신다윈주의적 패러다임에서 멀어지는 움직임을 나타낸다. 그것들은 모두 진화론에 대한 접근방식을 제시하는데, 그것들은 다윈의 적응에 의한 자연선택의 역할은 부정하지 않으면서, 환경과 차별되지만 그것에 의존하는 독립적인 자기생산적 통일체로서의 세포의 역할을 지적하고, 유전자, 유기체, 그리고 환경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지적하며, 유기체들이 자체의 환경을 구성하는 데 발휘하는 창의적 역할을 지적한다.

 

바렐라, 톰슨, 마굴리스, 르원틴, 굴드, 그리고 오들링 스미(Oddling-Smee)의 저작들에 덧붙여, 군터[일리야 프리고진의 비평형 열역학에 의존하는]는 자연선택에 대한 전통적인 다윈주의적 접근방식들의 확장된 일곱 가지 판본을 제시한다. (a)"양자 진화"(양자 결풀림에 의존하는), (b)"열역학적 진화", (c)"혼돈 진화"(또 다시 새로운 형태들의 비선형적 출현을 탐구하는 물리학을 사용하는), (d)"신라마르크주의"(바바라 매클린톡의 역동적 유전체에서 도출된 지지 증거를 갖춘), (e)화워드 테민(Howard Temin)의 역전사효소의 발견, (f)"볼드윈적 진화"(유기체의 삶에서 선택 압력이 다른 새로운 환경으로 이주하는 선택의 역할을 탐구하는), 그리고 (g) 이미 언급한 린 마굴리스의 공생발생이 있다. 이런 대안들은 여기서 더 이상 탐구되지 않겠지만, 현대의 진화론에 대한 다양한 접근방식들을 규정하기 위해 언급되었다. 진화 동역학의 복잡성은, 하나의 이론으로서 진화는 여전히 변화와 개선될 여지가 있다는 점을 요구하고, 어떤 경우들에서는 과학적 이론에 있어서 패러다임 전환의 경우에 필요한 것으로 쿤이 가리키는 그런 종류의 과학혁명을 요구한다.

 

―― 애덤 로버트(Adam Robbert), <<자연, 매체, 그리고 지식(Nature, Media, and Knowledge)>>(2011), pp. 2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