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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가 자연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반복적이라는 점을 신뢰하면서, 적절한 조건들이 실현된다면 예전에 작동했던 것이 다시 작동할 것임을 신뢰하면서, 일상생활 속에서 움직인다. 이러한 신뢰는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의 토대이다. 물론 우리는 모두 이것을 알고 있다. 더욱이 우리는 모두, 우리가 만드는 사물들뿐만 아니라 자연적인 사물들이 그것들이 만들어진 방식에 따라 작동한다는 점을 알고 있고, 또 그렇다고 믿는다. [...] 하지만 우리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실은, 자연과 인공적인 "사물들"이 그것들이 만들어진 방식에 따라 작동하는 한 그것들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그것들에 작용하는 것에 의해서는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며, 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것들 안에서 변화들―만들어지는 방법에 의해 결정되어 발생하는 변화들―을 유발하는 것뿐이라는 점이다. 생명체계로서의 우리도 예외는 아니며, 분자적 존재로서의 우리는 다른 모든 분자적 존재와 마찬가지다. 그리고 어떤 순간에 우리에게 무엇이 일어나는가 하는 것은 바로 그 순간에 우리가 만들어지는 방식에 의해 우리 안에서 결정되는 것이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외적 작용체들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외적 작용체들이 우리 안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를 설명해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리고 그것들이 단지 우리가 만들어지는 방식에 의해 결정되는 변화들을 우리 안에서 유발할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다음과 같이 자문해 보았다. 그렇다면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보거나 듣고 또는 받아들이는 것이 내가 만들어지는 방식에 의해 결정된다면, 나에게 외부적인 어떤 것이 그것 자체에 대해 무엇인가를 내게 말해 줄 것인가? 이러한 상황에서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우리 외부의 어떤 것도 그것 자체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말해줄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의 자연적인 존재의 일부로서 받아들이면서 대답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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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움베르또 마뚜라나(Umberto Maturana), <<있음에서 함으로>>(서창현 옮김, 갈무리, 2006), pp. 1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