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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류가 유발한 기후 변화를 믿을 필요가 있는가? 물론 나는 인간이 유발한 기후 변화 같은 것들을 믿는 것이 유용하다고 생각하면서 도발적인 이 의문을 제기한다. 그런데 그 의문을 제기하는 것의 핵심은 많은 강단인들이 생각하는 방식과 행위자 연결망 이론, 신유물론, 그리고 신실재론 같은 지적 운동들이 정치적 전략의 층위에서 어떤 성과를 거둬 들일 수 있는지에 주목하는 것이다. 많은 강단인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작업이 타인들이 어떤 것들을 믿도록 설득시키는 것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듯 보인다. 사람들이 신자유주의적 경제 철학이 현대 생활의 모든 측면들에 스며들어 있다는 점(참이다)을 믿도록 설득시켜야 한다. 사람들이 현재의 기후 변화는 인간 활동에서 비롯된다는 점(참이다)을 믿도록 설득시켜야 한다. [...] 그것은, 사람들이 세계에 관한 바른 이론이나 일단의 올바른 명제적 태도들을 갖춘다면, 그에 맞춰 그들은 자신의 행위를 수정하여 바른 것을 행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 보인다. 이런 생각을 지향적 태도(intentional attitude)라고 부르자. 지향적 태도 또는 지향주의의 전제는, 행위는 믿음이나 명제적 태도들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설득이 정치적 행동주의의 핵심적인 요소라는 점이다.

 

지향적 태도는 기능적 태도(functional attitude)와 대조를 이룰 수 있다. 기능적 태도는, 사람들이 의도를 지니고 있고 이런 의도가 그들이 행하는 것을 왜 행하는지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을 거부하지는 않지만, 기능적으로는 우리의 행위 대부분이 우리가 그 행위로 의도하는 것과 거의 관련이 없다는 점을 인식한다. 예를 들면,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어떤 관념들을 설득시키고 전달할 의도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기능적으로 나는 영어의 재생산에도 기여하고 있다[...]. 저녁을 준비하기 위해 슈퍼마켓에 갈 때 나는 먹을 의도로 그렇게 하지만, 농업자본주의 재생산에도 기여하고 있다. 대륙 정치 사상의 많은 작업이 다양한 해방 기획을 위해 수행되지만(지향적 자세), 결국 그것은 전문가 수준의 다른 강단인들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기능적으로는 대학 담론과 정년보장 체계를 재생산하고 신간 저널의 출판에 기여할 뿐이다. 라투르의 유명한 일례를 들면, 우리가 시멘트 과속 방지턱에서 감속하는 것은 우리가 속도 규제 법률에 관해 지니고 있는 어떤 특수한 믿음 때문이 아니라 속도 방지턱이 기능하는 방식 때문이다. 기능성의 층위에서 일어나는 일은 믿음과 의도에 독립적이지만, 그래도 우리가 왜 이렇게 행하는지에 기여한다.

 

기능적 관점에서 지향주의적 전략들을 다시 살펴보자. 내 전략은, 사람들이 기후 변화의 원인들에 대항하여 행동하고 탄소 배출의 감축 등과 같은 것들을 지지하도록 기후 변화가 인간들에 의해 유발된다는 점을 설득하는 것이다. 그것이 내 의도다.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자. 기후 변화를 부정하는 사람들과 인류가 유발한 기후 변화 이론들을 옹호하는 사람들 사이에 대대적인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부정하는 사람들이 이기게 되는데, 기능적으로 우리는 결국 행동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쟁점을 죽도록 토론하기 때문이다. 논쟁을 계속하고 있을 때, 그것이 우리가 논쟁하는 의도가 아닐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 라투르의 속도 방지턱 사례로 돌아가서, 사람들이 기후 변화가 인간 활동에 의해 유발된다고 믿든 믿지 않든 간에, 그들이 탄소 발자국을 감소시키도록 사람들이 행동하는 환경을 바꿀 수 있는 방식들이 있지 않을까? 다시 말해서, 세계에 거주하는 비인간적 행위소들의 층위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들의 믿음에 무관하게 이 쟁점을 처리할 모든 종류의 개입책들이 있지 않을까? 이런 종류의 설계 실천은 다른 정치 영역들로 얼마나 멀리 확대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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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비 브라이언트(Levi Bry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