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나토스주의의 탄생

Birth of Thanaticism

 

―― 멕켄지 워크(McKenzie Wark)

 

나는 그것을 왜 여전히 자본주의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 그런 행위는 비판적 사유의 시적 기능의 실패 또는 봉쇄의 일종인 듯 보인다.

 

그것의 추종자들도 그것을 자본주의라고 부르는 데 더 이상 아무 문제도 없다. 그것의 비판가들은 그것에 수식어―탈포드주의적, 신자유주의적 또는 꽤 매력적으로 낙관주의적인 '후기' 자본주의―를 덧붙이는 신세가 된 듯 보인다. 자본주의라는 달콤쌉쌀한 술어는 우리보다 더 오래 살 운명인 듯 보인다.

 

닉스(Nyx, 밤)와 에레보스(Erebos, 어둠)의 아들, 히프노스(Hypnos, 잠)의 쌍둥이 형제인 타나토스(Thanatos)를 따서 그것을 타나토스주의(thanatism)라고 부르는 것이 더 이치에 맞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나는 꿈에서 깨어났는데,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도 그 생각에 다소간 동의할 듯 보인다.

 

나는 타나토스주의를 트위터로 유포시키려고 시도했는데, 거기서 제니퍼 밀스(Jennifer Mills)가 이렇게 적었다. "그래요, 저는 더 열광적으로 자살 행위적인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타나토스주의(Thanaticism)?"

 

그것이 더 솜씨 있는 낱말인 듯 보인다. 타나토스주의(Thanaticism), 즉 광신(fanaticism)처럼 즐거운, 지나치게 열광적인 죽음에의 의지. 대처주의(Thatcherism)를 약간 반영하고 있는 점도 유용하다.

 

타나토스주의: 교환가치의 생산이 사용가치의 존재 조건을 소멸시킬 조짐을 보일 정도로 사용가치의 생산을 교환가치의 생산에 종속시키는 사회적 질서. 이것이 일차적 근사로서 작동할 것이다.

 

빌 멕키번(Bill McKibben)은 기후과학자들은 파업에 나서야 한다고 제안했다.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은 최근에 자체의 2013년 보고서를 배포했다. 기본적으로 그것은 더 많은 증거, 더 자세한 내용 그리고 더 나쁜 예상을 담은 채 지난 번 보고서가 말했던 것을 말한다. 그리고 여전히 타나토스주의를 멈추기 위한 일은 대체로 전혀 일어나고 있지 않는 듯 보인다. 왜 또 하나의 보고서를 발행하는가? 실패한 것은 과학이 아니라 정치학이다. 또는 정치경제학일 것이다.

 

같은 주에 BP는 자체가 권리를 소유하고 있는 탄소 퇴적물을 완전히 채굴하겠다는 의도를 조용히 나타내었다. 결국 회사 가치의 대부분은 그런 권리의 가치이다. 연료 확보를 위해 땅에서 탄소를 파내거나 빨아올리거나 파쇄하지 않는 것은 기업의 경우에 자살 행위일 것이지만, 탄소 전부를 연료로 변환시킨 다음에 그 연료를 태워서 탄소를 대기 중에 배출하는 것은 기후를 정말로 위험한 영역으로 옮기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교환가치의 생산방식으로 유지될 수 없다. 교환가치는 끝까지, 즉 대량멸종까지 자체의 내부 논리를 펼쳐야 한다. 자본이라는 꼬리가 지구라는 개를 흔들고 있다.

 

아마도 지구가 파멸하고 있는 바로 이 시점에 우주의 사유화가 투자 기회로서 떠오르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지배 계급은 자신들이 지구 고갈을 주재하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래서 그들은 우주 호텔을 꿈꾸고 있다. 그들은 이것에 관여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래도 탁월한 견해를 갖고 싶어한다.

 

최근에 NSA 같은 기관들이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을 도청하고 있다는 것은 완전히 이해가 된다. 지배 계급은 자신들이 이제 인간 종 전체의 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들은 인간 종의 배신자들이다. 그래서 놀랍지 않게도 그들은 전전긍긍하고 편집증을 나타낸다. 그들은 우리 모두가 그들을 타도하려고 한다고 상상한다.

 

그래서 국가는 재산 보호를 위해 일상적으로 감시하는 무력 기관이 된다. 국가의 역할은 더 이상 생명의 힘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는 인구의 안녕에 관해 점점 더 관심을 갖지 않는다. 생명은 자본에 대한 위협이고 그것 자체로 다루어져야 한다.

 

국가의 역할은 생명의 힘을 관리하는 것 아니라 죽음의 힘을 관리하는 것이다. 먼저 누구로부터 생명의 유지가 철회될 것인가? 어느 인구들이 악화되어 소멸되어야 하는가? 우선, 노동력 또는 소비자로서 아무 소용도 없는 사람들, 그리고 무장 세력에 물리적 및 정신적으로 이미 적합하지 않게 되어버린 사람들이다.

 

이런 인구들의 대부분은 더 이상 투표할 수 없다. 그들은 곧 식품 교환권과 다른 생명관리정치적 지원 체제들에서 풀려날 것이다. 죽을 때까지 죽음을 기꺼이 방어하고 방어할 수 있는 사람들만이 살 권리를 지닐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지나치게 발달된 세계의 상황이다. 현재 수억 명의 사람들이 해수면 상승, 사막화 그리고 다른 대사적 균열들의 위험 속에서 살고 있다. 모든 사람이 이것을 알고 있다. 앞으로 그런 인구들은 희생시켜도 되는 사람들로 취급당할 것이다.

 

현재와 같은 상황이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 아무도 그것에 관해 많이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오락을 좋아한다. 우리 모두는 제목 낚시질에 낚일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 그렇지만 좋은 삶이 죽음에 봉사해야 한다. 삶의 방식으로서의 타나토스주의에 대한 구실을 암시하는 그 어떤 것도 폭포수와 같은 찬사로 쌓여 있다.

 

이제 공적 지식인은 더 이상 없다. 공적 멍청이들이 있다. 스토리 또는 '획기적인' 생각을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방송에 출연할 수 있는데, 그것이 타나토스주의로부터 주의를 돌리게 할 수 있거나, 더 좋게는 그것을 정당화하는 한 그렇다. 이 시대의 공적 멍청이들 가운데 최선의 인물들도 중고차 판매원처럼 되어 버린다. 이 시대는 수사학적 기예에 좋은 시대가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의 대학은 사라져야 한다는 점이 분명하다. 과학, 사회과학 그리고 인문학은 각각 나름의 방식으로 지식을 얻기 위한 노력에 헌신했었다. 그런데, 어떤 분과학문이든 간에, 현재 지배적인 질서는 일종의 타나토스주의라는 결론을 피하기 어렵다.

 

전통적인 지식 분과학문들이 행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어떤 작은 부차적인 문제에 엄격히 집중하는 것인데, 그 결과 큰 그림를 회피하고 어떤 세부를 바라볼 뿐이다. 그것은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 사소하거나 부차적인 종류들의 지식에 집중하는 전통적인 지식 생산 형식들은 너무 위험하다. 그것들 모두는 타나토스주의의 흔적이 작동하고 있음을 발견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대학은 파괴되어야 한다. 그 자리에는 모든 종류들의 비지식에 대한 찬양이 있다. 비인문학반사회적 학문 같은 전적으로 새로운 분과학문들이 출현하고 있다. 그것들의 목적은 인간적인 것 또는 사회적인 것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그것들의 목적은 타나토스주의 그리고 그것의 서술과 정당화이다. 우리는 생명에 적대적인 것과 동일시하고 그것을 찬양해야 한다. 그런 터무니없고 오작동하는 믿음 체계는 경쟁자들을 제거함으로써 성공할 수 있을 뿐이다.

 

이 모든 것이 우울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울증은 타나토스주의의 부수적인 측면이다. 여러분은 우울하게 되어야 하며, 그리고 그것이 여러분 개인의 실패 또는 문제라고 생각해야 한다. 여러분의 밝은 환영적 환상 세계는 박탈당하고 타나토스적 현실이 드러나게 되는데, 여러분은 그것이 여러분의 잘못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여러분이 믿지 못했다.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라. 약물을 복용하라. 쇼핑 요법을 시행하라.

 

또한 타나토스주의는 그것의 지배를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비판을 타나토스적 생산의 새로운 반복 행위로 떠넘긴다. 하이브리드차를 구입하라! 재활용을 실천하라! 그것을 적절히 하라! 그 쓰레기를 분리하라! 또 다시 그것은 개인적 미덕과 책임으로 환원된다. 타나토스주의가 세계를 파괴하기를 원하는 것은 여러분의 잘못이다. 그것은 소비자로서 여러분의 잘못이다. 그런데 여러분은 소비할 수 밖에 없다.

 

"우리 최근 문명들은... 우리가 필멸자들이라는 것도 안다"라고 1919년에 발레리가 말했다. 그때까지 가장 잔인하고 쓸모없는 전쟁 끝난 바로 그 시기에 그런 것은 꽤 명료하게 나타날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명료함을 상실했다. 그래서 온건한 제안을 제시한다. 최소한 자체의 주요한 속성을 본떠서 그것을 명명하자.

 

이 시대는 타나토스주의의 시대, 즉 비생명의 생산양식의 시대이다. 그것이 끝나면 나를 깨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