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어떤 과학적 관념이 퇴출될 준비가 되어 있는가?

 

A: 호모 이코노미쿠스[마가렛 레비(Margaret Levi)]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 경제적 인간)는 낡은 관념이자 잘못된 관념인데, 그것은 당당한 위풍의 매장이지만, 그럼에도 매장을 당할 만하다. 그렇다. 사람들은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일 수 있으며, 어떤 환경에서는 편협하게 경제적 안녕에 집중한다. 그런데, 그 개념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된 사람들도 결코 완전히 그것을 믿지는 않았다. 홉스(Hobbes)는, 사람들은 황금률에 따라 행동하기를 선호하지만 그들의 환경이 흔히 그것을 어렵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법이 지배하지 않는 절도와 약탈의 세계에서 사람들은 방어적 이기심으로 행동한다. 애덤 스미스(Adam Smith)―그의 보이지 않는 손은 편협한 이익의 개별적 추구를 요구한다―는 개인들이 자신의 사유에 영향을 미치는 정서, 감정 그리고 도덕을 지니고 있다고 인식했다.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조차도 편협하게 이기적인 개체주의가 인간 행동에 대한 올바른 가정인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는 그 가정이 옳은지 아니면 그른지에 대해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것이 유용한지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었다. 그것은 더 이상 유용하지 않다.

 

호모 이코노미쿠스라는 가정에서 도출된 이론과 모형들은 일반적으로 마찬가지로 문제가 있는 두 번째 가정, 즉 완전한 합리성에 의존한다. 관련이 있지만 별개의 과학적 발견 결과 집합들은 협소하게 이기적인 동기와 합리적 행위의 접합에 대한 각각의 사례를 의심스럽게 만든다. 니체(Nietzche) 같은 철학자들과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같은 정신분석 이론가들은, 사람들은 아마도 해명할 수는 없지만 계산적 도구성보다 동물 본능에 더 가까운 전적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행동한다고 주장했다. 허버트 사이먼(Herbert Simon) 그리고 확실히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과 아모스 트베르스키(Amos Tversky)는 인지적 한계점들이 합리적 계산의 기반을 약화시키는 정도를 밝혔다.

 

개인들은 "적절한 선에서 만족할(satisfice)"―사이먼의 멋진 술어―밖에 없을지라도, 여전히 그들은 자기 목적을 달성하는데 비효율적임―인지적 한계점들 때문에―에도 불구하고 협소하게 이기적일 것이다.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핵심에 놓여 있는 이런 시각도 매장되어야 한다. 오랜 동안 다윈과 그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자기 자식을 보호함으로써 자기 유전자 풀을 보존하기 위해 행동한다는 좁은 의미에서 최소한 우리 종이 다른 종들과 마찬가지로 이타적이라고 인식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훨씬 넘어서는 것을 행한다. 실험 연구의 압도적인 발견 결과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개인들이 일반적으로 무임승차한다는 전제를 반박한다. 사실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정성과 호혜성이라는 규범에 따라 행동한다. 많은 사람들이 작은 희생을 하거나 더 큰 이익을 포기하며, 심지어 "올바른 것을 행하기 위해" (어느 정도까지는) 손해가 많은 행위에 관여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오래 전부터 인류학자와 생물학자들은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 동물에 대한 증거를 제공해왔다. 개인들이 사회적 연결망과 공동체들에 속해 있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은 호혜성과 윤리적 의무에 대한 더 복잡한 모형들에 이르는 문을 개방한다. 따라서 이제 사회과학자들은 그렇지 않다면 할 수 없었을 전체 결과들―전쟁 시기에 대규모의 자원 입대, 시위 행위 그리고 훌륭한 공적 대비에 대한 기여―을 설명할 수 있다.

 

호모 이코노미쿠스라는 관념의 거부는 편협한 이기심이 지배하는 조건의 전적인 부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실험들은 매우 다른 사회화 과정이 확연히 다른 추리를 낳을 수 있다고 시사하는데, 경제학과 대학원생들이 다른 학과 학생들보다 무임승차할 확률이 훨씬 더 높다. 최소한 두 가지 환경이 개인주의적 이기심을 유발할 수 있으며, 한 사람의 운명의 공동체, 즉 자신이 상호의존적이라고 느끼고 도와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두드러지게 한정할 수 있다. 첫 번째 환경은 극심한 빈곤이고 두 번째 환경은 지나친 경쟁이다. 배고픔과 궁핍을 겪는 사람들은 자기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점점 더 그 수가 늘어나고 있는 디스토피아 소설들이 제시하듯이, 그 결과는 음식, 거처 그리고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절도와 살인일 것이다. 쥐를 이용한 고전적 실험들은 동일한 결론에 이른다.

 

지나친 경쟁은 최소한 눈 앞에 있는 목표에 초점을 한정시킨다. 그런데 여러 형태로, 우두머리 그리고 때때로 문자 그대로 왕이 되려고 분투하는 것은 홉스적 세계와 유사한 것을 초래한다. 흔히 그렇듯이, 셰익스피어는 환경과 야심의 힘을 포착하는데, 장미전쟁에 대한 그의 판본은 나라에 봉사한다는 수사법으로 수식된 편협한 이기적 도구성에 대한 증언이다. 또는 기업 윤리(또는 오히려 윤리의 결여)와 관련된 최근의 폭로들이 증언한다.

 

사람들이 흔히―아마도 매우 빈번히―편협한 이기심을 넘어서 행동하도록 동기화된다는 점은 행동을 고무함에 있어서 물질적 장려책들의 중요성과 전적으로 양립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보상에 민감하고, 우리 모두는 처벌을 두려워한다. 다른 사정이 같다면, 우리는 보상을 선호하며 처벌을 피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상당한 돈이 걸려 있거나 안녕에 심각한 위협이 존재할 때에도 윤리, 도덕 그리고 호혜성의 의무가 우리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대의나 원칙을 위해 모든 것을 기꺼이 희생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언가를 기꺼이 희생한다.

 

인간 동기의 근거로서 호모 이코노미쿠스라는 관념에 대한 의존은 지난 이백 년 동안 이론과 연구의 거대한 집합체를 낳았다. 근본적인 가정으로서 그 관념은 경제학에서 몇몇 최고의 작업을 만들어내었다. 두드러지게도 그것은 인지적 한계점들, 사회적 상호작용들의 역할 그리고 윤리에 기반을 둔 동기들과 관련된 발견 결과들을 생산했다. 호모 이코노미쿠스라는 개념의 힘은 한때 컸지만, 이제 그것의 힘은 쇠퇴하였고, 그래서 그것은 인간 행위의 원천들에 대한 더 현실적이고 더 과학적인 이해에 기반을 두고 있는 더 나은 새로운 패러다임과 접근방식으로 대체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