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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철학적 전통]이 [분석철학적 전통]과 한 가지 공유하지 않고 있는 것은 철학의 역사에 대한 태도이다. 대륙철학자들이 분석철학자들과 관련하여 가장 증오하는 것, 밤 늦게 그들의 피를 끓게 하는 것은 철학의 역사를 "논증"의 견지에서 다루는 행위이다. 하나의 예만 들어보자. 라이프니츠에 관한 러셀의 책이 경멸받는 까닭은 레셀의 논증이 틀렸다고 여겨지기 때문이 아니라, 어쨌든 그것이 라이프니츠를 논증으로 환원시키는 지적 도살 행위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대륙철학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실체와 관련하여 라이프니츠가 제시한 일단의 논증이 아니라, 오히려 "라이프니츠의 기획"이라고 불리는 것, 즉 이산적인 매우 작은 조각들로 쉽게 절단되지 말아야 하는 전체적 세계관이다. [...] 벌써 이 두 학파의 상이한 태도들은 명백하다. 분석철학은 철학을 엄밀성 또는 날카로움의 문제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는 반면에, 대륙철학은 철학을 천재성의 문제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분석철학이라는 거대한 장르는 특정한 주제에 관한 이십 쪽짜리 저널 논문인 반면에, 대륙철학에서는 저널 논문들이 거의 예외 없이 아무런 중요한 역할도 수행하지 못한다. A 교수는 C 교수가 아무것도 명료하게 말하지 않는 몽롱한 낭만주의자로 생각하는 반면에, C 교수는 A 교수가 지성사의 미묘한 것들에 대한 느낌이 전혀 없는 냉혈의 기술자로 생각한다. 분석철학자들이 때때로 과거 인물들을 현대 최전선 논쟁들의 협소한 협착으로 환원시킨다고 비난을 받는다면, 대륙철학자들은 흔히 그들 자신의 영웅들을 두려워하고, 결코 감히 그들을 비판하지 못하며, 자체의 학문 대부분을 서평 수준으로 축소시킨다는 혐의를 받는다. 논증에 대한 분석철학의 개방성이 때때로 유해한 구술 논쟁에 대한 평판을 그것에 제공한다면, 순전한 논증에 대한 대륙철학의 경멸은 자체를 참신하고 진정한 것을 제공할 사람들을 비롯한 신참자들에게 배타적이고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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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레이엄 하만(Graham Harman), <<사변적 실재론을 향하여(Towards Speculative Realism)>>(2010), pp. 10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