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의 황금기

The Goldern Quarter

 

인류의 가장 위대한 문화적 성취와 기술적 성취들 가운데 일부는 1945년과 1971년 사이에 이루어졌다. 진보는 왜 교착 상태에 빠져 버렸는가?

 

―― 마이클 핸런(Michael Hanlon)

 

우리는 기술적 진보, 의학적 진보, 과학적 진보 그리고 사회적 진보의 황금기에 살고 있다. 컴퓨터를 보라! 전화기를 보라! 이십 년 전에 인터넷은 괴짜들을 위한 삐걱거리는 기계였다. 이제 인터넷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반 세기 전만 하더라도 마술처럼 보였을 획기적인 의학적 발전―장기 복제, DNA 자체를 수선하기 위한 줄기세포 치료법―이 이루어지기 직전이다. 지금도 여전히 몇몇 부유한 국가들의 기대 수명은 하루에 다섯 시간씩 향상되고 있다. 하루에! 확실히 불멸, 또는 그것과 매우 비슷한 것이 바로 눈 앞에 있다.

 

21세기 세계는 가속되는 진보의 세계라는 관념이 매우 지배적이어서 그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막돼먹은 듯 보인다. 거의 매주마다 우리는 암 환자들을 위한 "새로운 희망", 새로운 치료법으로 이어질 실험실에서의 개발 결과, 몇 시간 안에 세계를 일주할 수 있는 초음속 제트기와 우주 여행의 새로운 시대에 관한 이야기를 읽는다. 그런데 잠시 생각해보면, 전례 없는 혁신에 대한 이런 전망은 옳을 수가 없으며, 진보에 대한 이런 숨 가쁜 보도들 가운데 많은 것들이 사실상 과장, 억측―심지어 환상―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추측이 실재와 꼭 들어맞던 시대가 한때 존재했다. 그것은 40년도 더 전에 칙칙거리다가 중단되었다. 그 이후로 일어난 일의 대부분은 이전에 생성된 것에 대한 점진적인 개선일 뿐이었다. 그런 진정한 혁신의 시대―나는 그것을 25년의 황금기라고 부를 것이다―는 대략 1945년에서 1971년까지 지속되었다. 현대 세계를 규정하는 거의 모든 것이 이 시기 동안 출현했거나, 아니면 씨앗이 뿌려졌다. 피임약. 전자공학. 컴퓨터 그리고 인터넷의 탄생. 원자력. 텔레비전. 항생제. 우주 여행. 시민권.

 

더 많이 있다. 여성주의. 십대. 농업의 녹색 혁명. 탈식민화. 대중 음악. 대중 항공 교통. 동성애 권리 운동의 탄생. 저렴하고 믿음직하며 안전한 자동차. 고속 철도. 인간을 달에 착륙시켰고, 탐사선을 화성에 보내었고, 천연두를 물리쳤으며, 생명의 이중 나선 열쇠를 발견했다. 황금의 사반 세기는 인간 일 세대보다 더 짧은 독특한 시기였는데, 그것은 혁신이 드래그스터 연료(dragster fuel)와 딜리시엄 결정체(dilithium crystal)의 혼합물로 작동하는 듯 보였던 시기였다.

 

오늘날 진보는 거의 전적으로 소비 추동적인 것으로 규정되는데, 흔히 정보 기술의 평범한 개선으로 규정된다. <<거대한 침체(The Great Stagnation)>>(2011)라는 에세이에서 미합중국 경제학자 타일러 코웬(Tyler Cowen)은 적어도 미합중국에서는 기술적 정체기에 이르렀다고 주장한다. 확실히 현재 전화기는 대단하지만, 그것은 여덟 시간 안에 대서양을 횡단하여 비행할 수 있는 것이나 천연두를 없애는 것과는 같지 않다. 미합중국 기술론자 피터 티엘(Peter Thiel)이 한때 말했듯이, '우리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원했지만, 그 대신 140자 메시지를 손에 넣었다.'

 

경제학자들은 특별한 이 시기를 부의 증가라는 견지에서 서술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사반 세기의 경제 활황이 이어졌는데, 미합중국과 유럽의 일인당 국민 총생산이 치솟았다. 새로운 산업 발전소들이 일본의 잿더미에서 생겨났다. 독일은 라인강의 기적을 겪었다. 공산 세계도 더 부유해졌다. 이런 성장은 전후 정부의 대규모 경기 부양과 더불어 저렴한 연료 가격, 인구 성장 그리고 냉전기의 막대한 군사 비용에 귀속되었다.

 

그런데 이것과 함께 인간의 창의성과 사회적 변화의 특별한 분출이 있었다. 이 점은 자주 언급되지 않는데, 아마도 그것이 매우 명백하거나, 또는 경제의 단순한 결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과학과 기술에서 가장 큰 진보가 이루어졌다. 생물학자, 물리학자 또는 재료과학자라면 연구하는 데 그보다 더 좋은 시기는 없었다. 그런데 사회적 태도에서도 어느 모로 보나 심대한 변화가 이루어졌다. 1945년 이전에 가장 계몽된 사회에서도 인종, 성 그리고 여성의 권리에 대한 태도들은 지금은 구시대적이라고 간주할 것들이었다. 1971년 경에 그런 낡은 편견들은 뒤로 물러났다. 간단히 서술하면, 세계가 변해버렸다.

 

그런데 확실히 오늘날 진보는 실재적인가? 글쎄, 한 번 살펴보자. 올려다 보면, 눈에 들어오는 비행기들은 기본적으로 1960년대 날던 비행기들의 갱신된 판본들―더 나은 항공전자공학을 갖춘 약간 더 조용한 트리스타―이다. 1971년에 보통의 항공기는 런던에서 뉴욕으로 비행하는 데 여덟 시간이 걸렸는데,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그리고 1971년에는 세 시간 안에 여행할 수 있었던 항공기가 있었다. 현재 콩코드는 폐기된 상태이다. 자동차는 1971년보다 더 빠르고, 더 안전하며, 연료를 덜 소모하지만, 그 어떤 패러다임 이동도 일어난 적이 없다.

 

그리고 우리는 더 오래 살지만, 실망스럽게도 이것은 최근의 획기적 성취와는 거의 아무 관계도 없다. 1970년 이래로 미합중국 연방 정부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암과의 전쟁"이라고 부른 것에 1000억 달러 이상의 자금을 지출했다. 전지구적으로는 훨씬 더 많은 자금이 지출되었는데, 대부분의 부유한 국가들은 자금이 풍부한 암 연구 조직체가 있다. 이런 수십 억 달러의 투자에도 불구하고 이 전쟁은 확연히 실패했다. 미합중국 국립보건통계센터에 따르면 미합중국에서 모든 종류의 암으로 인한 사망율은 1950-2005 시기 동안 겨우 5% 감소했을 뿐이다. 나이(더 많은 사람들이 암에 걸리기 충분할 만큼 오래 살고 있다)와 개선된 진단 같은 오염 변인들을 제거하더라도, 솔직한 사실은 대부분 종류들의 암에 대해 2014년의 암 발생 확률이 1974년보다 훨씬 더 낮지 않다는 것이다. 많은 경우에 치료법은 거의 동일할 것이다.

 

지난 20년 동안 과학 저술가로서 나는 유전자 치료법, 복제 대체 장기, 줄기세포 치료법, 수명 연장 기술, 유전체학에서 비롯된 유망한 부산물 그리고 맞춤형 의학 같은 특별한 의학적 진보를 다루었다. 이런 새로운 치료법들 가운데 일상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직 아무것도 없다. 신체가 마비된 사람은 여전히 걸을 수 없고, 맹인은 여전히 볼 수 없다. 인간 유전체는 거의 15년 전에 해독되었지만(25년의 황금기 이후의 한 업적), 여전히 우리는 그 당시에 '십 년이 남았다'고 자신 있게 주장되었던 편익을 보려고 기다리고 있다. 여전히 우리는 만성 중독이나 치매를 치료하는 방법을 정말 알지 못한다. 내가 말을 건넨 영국의 저명한 정신과 의사에 따르면, 정신 의학의 최근 역사는 '항상 더 나은 플라시보의 역사"이다. 그리고 장수에 있어서 가장 최근의 진전은 사람들로 하여금 금연하고, 더 잘 먹으며, 혈압 조절약을 복용하게 만든 단순한 조치에 의해 이루어졌다.

 

새로운 녹색 혁명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여전히 우리는 석유 용제 또는 더 나쁘게도 디젤유를 연소시킴으로써 동력을 얻는 강철 자동자를 운전한다. 25년의 황금기에 이루어진 플라스틱, 반도체, 새로운 합금과 복합 재료의 진전 이래로 신소재 혁명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20세기 초에서 중엽에 이르는 시기에 이루어진 현기증 나는 획기적 성취 후에 물리학은 정지해버린 듯 보인다(힉스 보존을 제외하고). 끈 이론은 분명히 앨버드 아인슈타인과 양자 세계를 화해시킬 최선의 희망이지만, 여전히 아무도 도대체 그것이 시험 가능한 것인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42년 동안 아무도 달에 가본 적이 없다.

 

진보는 왜 멈춰버렸는가? 말이 나온 김에, 진보는 왜 제2차 세계대전의 꺼져가는 잔화 속에서 시작되었는가?

 

한 가지 설명은, 그 황금 시대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비롯된 기술적 부산물과 경제 성장의 단순한 결과였다는 것이다. 전쟁이 다양한 군사 기술의 개발과 의학적 진보을 가속시켰다는 것은 확실히 참이다. 항공우주공학자 베르너 폰 브라운(Wernher von Braun)과 V-2 탄도 미사일이 없었더라면 아폴로 우주 계획도 실행되지 못했었을 것이다. 그런데 페니실린, 제트 엔진 그리고 심지어 원자 폭탄도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고려되고 있었다. 그것들은 어쨌든 출현했었을 것이다.

 

갈등은 혁신에 박차를 가하는데, 냉전이 그런 역할을 수행했다. 냉전이 없었다면 우리는 결코 달에 닿지 못했었을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모든 것에 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1970년대에 1944년 브레튼 우즈(Bretton Woods) 무역 협정의 붕괴와 오일 쇼크와 더불어 경제 활황은 끝이 났다. 그래서 위대한 혁신의 시대도 끝이 났다. 사건 종결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무언가가 꽤 들어맞지 않는다. 1970년대의 경기 침체는 일시적이었고, 충분히 빨리 불황에서 벗어났다. 게다가, 전 세계 생산의 견지에서 현재 세계는 그 당시보다 두세 배 더 부유하다. 새로운 아폴로 계획, 새로운 콩코드 그리고 새로운 녹색 혁명을 위한 충분한 자금이 더 많이 있다. 그래서 1950년대와 60년대에 빠른 경제 성장이 혁신을 추동했다면, 그 이후에는 왜 그렇게 되지 않았던가?

 

<<거대한 침체>>에서 코웬은, '낮게 달린 열매'를 다 따버렸기 때문에 진보가 멈추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런 열매들에는 미사용 토지의 개간, 대중 교육 그리고 19세기에 이루어진 획기적인 과학적 성취의 기술론자들에 의한 자본화가 포함된다. 마찬가지로 1945-1970년 시기에 나타난 진보도 조기 성과 창출의 결과였으며, 후속적 진보는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이 가능하다. 1930년대 프로펠러 항공기에서 1960년대 제트 항공기까지의 진전은 오늘날의 항공기에서 훨씬 더 나은 항공기로 나아가는 것보다 훨씬 더 쉬웠을 것이다.

 

그런데 역사는 이런 설명이 비현실적이라고 시사한다. 기술과 과학의 팽창 시기 동안 흔히 새로운 발견이 낡은 패러다임을 완전히 분쇄할 때까지는 정체기에 머무르는 듯 보였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1900년에 켈빈 경(Lord Kelvin)이 물리학은 다소간 끝났다고 선언한 지 겨우 몇 년이 지난 후에 아인슈타인이 그가 완전히 틀렸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다. 20세기로 전환될 무렵에는 공기보다 무거운 동력 항공기가 어떻게 개발될지 여전히 불명확했는데,  다양한 경쟁하는 이론들이 라이트 형제의 성취의 여파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어떤 이론이 도래할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 당시에는 자금 부족 때문에 혁신이 교착 상태에 빠지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자금과 관련된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한때 자본주의는 거대한 진보의 엔진이었다. 도로와 철도, 증기 기관과 전신을 구축했던 것은 18세기와 19세기의 자본주의였다(다른 한 황금기). 자본이 산업 혁명을 추동했다.

 

이제 부는 매우 소수의 엘리트 집단의 손에 집중되어 있다. 2014년 10월에 발표된 크레디트 스위스 은행의 보고서는 가장 부유한 1%의 인간들이 세계 자산의 절반을 소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것은 다양한 결과를 초래한다. 첫째, 19세기 자선의 황금 시대보다 오늘날에 초거대 부자들이 돈을 소비할 것이 훨씬 더 많이 존재한다. 앤드류 카네기(Andrew Carnegie) 같은 사람들이 땅을 걸을 때에는 거대 요트, 빠른 자동차, 자가용 제트기 그리고 다른 겉만 번지르르한 것들이 결코 존재하지 않았으며, 그리고 그런 것들을 갖는 것은 틀림없이 멋지겠지만 이런 싸구려 물건들은 지식의 전선을 거의 진전시키지 못한다. 게다가, <<21세기 자본>>(2014)에서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가 지적했듯이, 현재는 최근 역사의 그 어느 때보다도 돈이 더 많은 돈을 낳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부가 대단히 엄청나게 축적될 때 진정한 혁신에 투자할 추동력은 덜 존재하게 된다.

 

25년의 황금기 동안 세계의 경제 강대국들에서 불평등은 두드러지게 줄어들고 있었다. 영국에서는 그런 추세가 몇 년 후에 안정화되어 1977년에는 역사적으로 가장 낮은 지점에 이르렀다. 평등과 혁신 사이에 어떤 관계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그것이 작동할 방식에 관한 개요는 이렇다.

 

성공이 매우 단기간에 벌 수 있는 돈의 규모로 규정되어짐에 따라 결과적으로 진보는 물건들을 개선하는 것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다음 회차의 전화기, 자동차 또는 운영 체계들이 알맞은 시장에 판매될 수 있도록 그런 것들을 가능한 한 빨리 쓸모없게 만드는 것으로 규정된다.

 

특히, 주가가 성장(시장 점유율이나 수익에 대립되는)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할 때는 내장된 진부화가 '혁신'의 중요한 추동자가 된다. 반 세기 전에 전화기, 텔레비전 그리고 자동차의 제조회사들은 구매자들이 여러 해 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알고 있는(또는 최소한 믿고 있는) 제품들을 제조함으로써 번성했다. 오늘날에는 그런 점에 기반을 두고 스마트폰을 판매하는 회사는 전혀 없다. 새로운 이상은 제품을 가능한 한 빨리 쓸모없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이폰 6의 목적은 아이폰 5보다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열망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새로운 아이폰을 구매하도록 하는(그리고 구매함으로써 더 좋은 기분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매우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열망이 강력한 힘이 된다. 이것은 새로운 것이며, 그것의 역설적인 결과는 시장 대용품과 대립되는 진정한 혁신이 방해받는다는 것이다. 1960년대에 모험 자본은 기꺼이 위험을 감수했는데, 특히 신흥 전자 기술에서 그러했다. 현재 모험 자본은 더 보수적인데, 이전에 지나가버린 것에 대한 점진적인 개선책을 제시하는 창업기업들에 자금을 제공한다.

 

25년의 황금기 동안 연구와 혁신에 대한 공적 자금의 지출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유럽과 미합중국 등의 납세자들이 19세기의 거대한 모험 자본가들을 대체했다. 그래서 이 시기에 이루어진 거의 모든 진전들은 세금 지원을 받은 대학이나 대중 운동들에서 비롯되었다. 최초의 전자 컴퓨터는 IBM의 실험실이 아니라 맨체스터 대학과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생겨났다. (19세기 찰스 배비지의 해석 기관도 영국 정부가 직접 연구비를 지원했다.) 초기 인터넷은 벨이나 제록스가 아니라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생겨났다. 나중에 월드 와이드 웹은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가 아니라 전적으로 공공 기관인 CERN에서 생겨났다. 요약하면, 의학, 소재, 항공 그리고 우주 비행에 있어서의 거대한 진전들은 거의 모두 공공 투자에 의해 활성화되었다. 그런데 1970년대 이후에는 민간 부문이 혁신하기에 최선의 장소라는 가정이 수립되었다.

 

지난 40년 간의 이야기는 그런 믿음에 의문을 제기하는 듯 보일 것이다. 그렇지만 독창성의 침체를 공적 자금 지원의 감소에 지울 수는 없다. 일반적으로 연구 개발에 대한 세금 지출은 25년의 황금기가 끝난 이후에도 대부분의 선진 국가들에서 실제적이고 상대적인 견지에서 증가했다. 이런 투자 증가가 더 많은 배당금의 지불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또 다른 이유가 있음에 틀림없다.

 

조각 그림 맞추기의 빠진 부분은 위험에 대한 태도일 수가 있을까? 이른바, 모험을 시도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25년의 황금기에 이루어진 성취들 가운데 많은 것이 이제는 결코 시도되지 않을 것이다. 세계적인 백신 접종 운동이 선봉에 섰던 천연두에 대한 공격은 수천만 명의 사람들을 구했지만 수천 명의 사람들을 살해했었을 것이다. 1960년대에 새로운 의약품들이 시장에 쏟아졌다. 그것들 모두가 효험이 있지는 않았고 몇 가지(탈리도마이드)는 끔찍한 결과를 초래했다. 오늘날에는 이것이 불가능하다.

 

미합중국에서 후보 신약이 승인을 받는 데 걸리는 시간은 1960년대에 8년 미만에서 1990년대에는 거의 13년으로 증가했다. 현재 많은 유망한 새로운 치료법이 시판되는 데에는 20년 이상 걸린다. 2011년에 영국의 여러 의료 자선 시설과 연구소들은  EU가 주도한 의료 규제책들을 '의학적 진보를 억제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의학을 더 안전하게 만든다는 명분으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과장이 아닐 것이다.

 

위험 회피는 다른 전선들에서의 진보에 대항하는 전쟁에서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1992년에 스위스의 유전공학자 인고 포트리쿠스(Ingo Potrykus)는 잎이 아니라 곡물에 높은 농도의 비타민 A가 포함된 다양한 쌀을 개발했다. 개발도상국에서는 매년 비타민 A의 부족으로 인해 수십 만 명의 사람들이 눈이 멀고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자금이 탄탄한, 유전자 변형에 반대하는 근본주의자들의 공포감을 조성하는 운동 덕분에 세계는 이런 혁신의 편익을 누리지 못했다.

 

에너지 부문에서 민간 핵 기술은 스리마일 아일랜드(아무도 죽지 않았다)와 체르노빌(수십 명의 사람들이 죽었을 뿐이다)을 비롯한 일련의 엄청난 관심을 끄는 '재난들'로 발이 묶였다. 이런 사건들 때문에 지금쯤은 안전하고 저렴한 저탄소 에너지를 제공했었을 연구를 전세계적으로 중단하게 되었다. 수백 만 명의 사람들을 살해할 기후 변화 위기는 40년 동안의 위험 회피에 대해 지불하고 있는 대가들 가운데 하나이다.

 

오늘날 아폴로 계획은 거의 확실히 수립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달에 가는 데 더 이상 관심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위험―우주인이 죽을 몇 퍼센트의 확률로 계산되는―을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설계에서 비행까지 5년이 채 걸리지 않은 특별한 1960년대 기계인 747를 개발할 때 보잉은 엄청난 위험을 감수했다. 그것의 현대적 등가물인 에어버스 A380(약간 더 크고 약간 더 느린)은 2005년에 처음 비행했는데, 그것은 계획을 진행한 지 15년이 지난 후였다. 사람들이 페니실린, 백신 접종, 현대 치과술, 저렴한 자동차와 TV가 존재하기 이전의 세계가 어떠했는지 기억하고 있던 50년 전에는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일반적으로 찬양받았다. 현재 그들은 신뢰받지 못하고 의심스럽게 여겨지는데, 사람들은 25년의 황금기 이전의 세계가 얼마나 가혹했는지 잊어버렸다.

 

위험은 전후에 일어난 사회적 태도의 거대한 변화에서도 역할을 수행했다. 사람들, 흔히 젊은 사람들은 전전 세계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엄청난 물리적 위험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초기 시민권과 반전 시위자들은 최루 가스 또는 더 나쁜 것에 직면했다. 1960년대에 여성주의자들은 사회적 조소, 매체 승인 그리고 격렬한 적대에 직면했다. 현재에는 기술에서 나타나는 점진적인 변화와 흡사하게도 사회적 진보 역시 너무나 흔히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맹목적인 골목길에 처해 있다. 학생 조직체들은 반대, 심지어 혁명의 온상이곤 했다. 오늘날의 과도하게 순응주의적인 청년층은 지배적인 지혜를 대면했을 때 논쟁을 억누르는 것과 언어를 검열하는 것에 관심이 더 많다. 40년 전에는 신생 매체들 덕분에 반대가 만개할 수 있었다. 오늘날의 매우 다른 사회적 매체는 민주주의적 외양에도 불구하고 멍청한 기풍을 강요하고 집단사고를 조장하는 듯 보인다.

 

이것은 정말 중요한가? 기술적 진보의 백열이 약간 냉각되고 있다고 해서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일반적으로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안전하고, 더 건전하며, 더 낫다. 최근의 과거는 으스스했다. 먼 과거는 역겨웠다.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와 다른 사람들이 주장했듯이, 대부분의 인간 사회에서 폭력의 수위는 25년의 황금기가 시작되기 훨씬 이전부터 감소했으며 그 이후로 계속 감소하고 있다.

 

우리는 더 오래 살고 있다. 시민권이 매우 잘 정착되어서 세계 전역에서 동성 결혼이 합법화되고 있고, 그 어떤 구식의 인종주의적 사고도 광범위한 반감에 직면한다. 2014년의 세계는 1971년의 세계보다 더 낫다.

 

게다가 몇 가지 인상적인 기술적 진전도 있었다. 현대의 인터넷은 경이로운 것인데, 여러 측면에서 아폴로보다 더 인상적이다. 우리는 콩코드를 상실했었지도 모르지만, 며칠 임금으로 대서양을 횡단 비행할 수 있다. 주목할 만하다. 미래에 대한 과학소설적 판본들은 흔히 개연성이 없는 항공기와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제시했지만,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에 묘사된 2019년의 로스앤젤레스에서도 릭 데카드(Rick Deckard)가 페이폰을 사용하여 레이첼(Rachael)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상황이 훨씬 더 좋았었을 수 있었다. 변화의 속도가 지속되었다면, 우리는 알츠하이머 병을 치료할 수 있고, 깨끗한 원자력이 기후 변화의 위험을 종식시키고, 유전학의 광휘가 수십 억 명의 하층민들에게 저렴하고 건강한 식량의 편익을 가져다주는 데 사용되며, 암을 정말로 물리치게 된 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달 위의 식민지는 잊어라. 25년의 황금기가 1세기의 황금기가 되었더라면, 신기한 스마트폰의 배터리도 하루 이상 지속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