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모든 것을 설명한다

This explains everything

 

―― 필립 볼(Philip Ball)

 

<<프로스펙트(Prospect)>>는 내가 <<세계를 설명하기(To Explain the World)>>라는 스티븐 와인버그(Steven Weinberg)의 책에 대한 간략한 서평을 지불 장벽의 뒷편에 유지하기를 선호했다. 그런데 와인버그는 오늘 <<가디언(Guardian)>>에 실린 글로 후속적인 논평을 요청함으로써 기대에 부응했는데, 그 글에서 그는 과학의 역사와 더불어 대중적 과학 글쓰기에 관해 이야기한다. 두 가지 주제 모두에 관해, 일부(가장 명확하게도 전부는 아니다) 과학자들이 이런 것들에 관해 이야기할 때 나를 절망에 빠뜨리는 최악의 것을 요약하고 있는 한에 있어서 그의 진술은 유용하다.

 

언급해야 할 첫 번째 것은 과학사에 관한 와이버그의 견해가 무지에까지 이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마치 그런 듯 보이기 때문에 이것을 언급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와인버그가 휘그적 역사를 쓰고 있는 까닭은 그가 오늘날 과학사학자들이 수행하는 작업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특히 그가 그것을 알고 있고 못마땅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 고에너지 물리학자는 역사학자들이 역사를 서술해야 하는 방법을 정말로 알지 못한다고 믿고 있다. 그럼에도 와인버그가 "지금까지 내게 대단히 많은 것을 가르쳐준 직업적 과학사학자들에 대한 거대한 존중"을 표명하는 까닭은 알기 어려운데, 그가 자신은 기록으로부터 모든 사실들을 파헤친 점에 대해서 과학사학자들에게 감사하지만, 그들이 그런 사실들로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와인버그는 역사학자가 되는 법에 관해 과학사학자들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않은 듯 보이기 때문이다.

 

과학은 뉴턴의 <<프린키피아(Principia)>>가 발표될 때까지 우왕좌왕하고 꾸물거렸을 뿐이라고 생각한다면, 플라톤과 피타고라스학파 철학자들 같은 고대인들이 과학에서 수학을 사용한 것은 "유치한" 것이었다고 결론짓는다고 해서 놀라지 않을 것이다. 또 다시 우리는, 학부생이 이와 같은 진술을 표명했다면 그것은 무지를 나타낼 뿐인 반면에, 와인버그가 표명했다면 그것은 무언가 다른 것을 전달한다고 이해해야 한다. 나는 그가 그런 주장이 얼마나 선동적인지 알고 있다고 전적으로 확신한다. 그런데 나는, 그런 주장을 제시할 때, 와인버그가 "무도한" 것들을 말함으로써 사실상 어리석게 들릴 뿐인데도 자신이 대담하고 기탄없는 사상가로 드러나고 있다고 분명히 생각하는 제임스 왓슨(James Watson) 같은 인상을 주지 않을까 두렵다.

 

이 점에 관해 말하자면, 과학 논평가와 대중화론자들에 관한 이런 진술에 귀를 기울이자. "역설적으로, 작가로서 그들은 직업적 과학자들보다 훨씬 더 대중적이어서 많은 경우에 복제되고 재복제된 것은 연구 자체에 대한 보도가 아니라 오히려 과학적 연구에 대한 그들의 논평이다." 와인버그가 여기서 "고대 세계"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는 점을 깨달을 때, 여러분은 그의 전체적 시각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지 알게 된다. 그들은 어느 정도, 글쎄, 스티븐 와인버그처럼, 토가를 걸치고 샌들을 신은 채 정말로 형편없는 수학을 행하고 있었을 뿐이다.

 

와인버그의 책은 이런 종류의 것으로 가득차 있다. 지금까지 그 책이 얻은 일반적으로 무비판적인 수용―WSJ에 실린 스티븐 섀핀(Steven Shapin)의 멋진 서평은 제외하고―으로 인하여 나는 과학사가 무엇에 관한 것인지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가 얼마나 미약한 듯 보인다는 점과 관련하여 꽤 절망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전문가들이 틀림없이 어떻게 느낄지 상상할 수 있을 뿐인데, 누군가가 내게 말했듯이, "이런 종류의 책이 메이저 출판사에 의해 출판된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다."

 

와인버그가 대체로 분과학문 전체가 잘못 되었다고 진정으로 믿고 있다면, 여러분은 그가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책에서 와인버그가 행하는 전부는 어깨를 으쓱하고 "나는 그것을 믿지 않는다"고 말할 뿐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역사학자들이 매달리는 것에 대한 철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 와인버그는, 오늘날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과학이 아리스토텔레스 또는 로저 베이컨의 과학만큼 타당하며 다른 시대에 대한 다른 이야기일 뿐이라고 확신하는 역사학자들은 일단의 원(元)상대주의자들이라는 관념을 철저히 고수하는 듯 보인다. 이것은 과학의 역사보다는 와인버그에 관해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나는 여러분이 일반 상대성 이론이 뉴턴적 중력보다 별로 나을 게 없다(그래서 추정컨대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참작하도록 우리의 GPS 위성 체계들을 조정할지 여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고 정말로 믿고 있는 역사가를 찾아내기가 틀림없이 매우 어려운 듯 보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와인버그가 자신의 기사에서 서술하듯이(그리고 이제 상황은 정말로 유치해진다), "나는, 마치 과학이 누적적이지 않고 진보적이지 않은 것처럼, 과학의 역사가 패션의 역사와 같은 방식으로 쓰여질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시대의 기준이 아니라 그 시대의 기준에 따라 각 시대의 과학적 작업을 판단하고자 하는 역사가들과 논쟁한다." 다시 말해서, 그는 예전에 사람들이 왜 그런 식으로 생각했는지 이해하는 데 결코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옳았"는지 아니면 "틀렸"는지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플로지스톤 이론에 관한 연구는 그에게 아무 흥미도 끌지 못할 것인데, 그것이 틀렸기 때문이다. 틀린 관념들에 관해 왜 생각하는가? 글쎄, 과학자로서 그는 확실히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사치를 누리고 있다. 그런데, 제발, 제발 역사를 저술하려고 시도하지 마라. 그런 것들에 관심이 있는 이유―단 한 가지 이유―는 관념들의 역사에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와인버그는 오늘날 타당한 것으로 간주되는 관념들과 직접 연결될 수 없는 관념들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도 나타내지 않는다. 그런 견해를 갖춘 사람은 일반 대중에게 과학에 관한 매우 한정된 풍경을 전달할 수 있을 뿐일 것이다.

 

그것이 나로 하여금 과학 커뮤니케이션으로 이끈다. 직업적 역사가들에 대한 와인버그의 부정적인 태도를 감안하면, 나는 직업적 과학 저술가들에 대한 그의 견해를 알게 되는 것이 크게 놀라운 일이 결코  아닐 것이라고 가정한다. <<근대 과학 글쓰기에 관한 옥스퍼드 북(The Oxford Book of Modern Science Writing)>>에서 글을 선택하는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와 마찬가지로 와인버그는 자신들이 수행하는 것을 대중화하려고 시도하는 동료 과학자들에 대한 눈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런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리고 그들 가운데 가장 우수한 사람들(도킨스와 E. O. 윌슨 같은)이 최고의 과학 글쓰기 대부분을 산출했다. 그런데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과학 글쓰기에 관한 기사에서 와인버그가 이것을 직업적으로 수행하는 사람들의 존재를 인식조차 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그가 과학 커뮤니케이션에 관해 생각하는 바에 대한 꽤 공정한 그림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역사처럼 이것은 전문가들이 행할 필요가 있는 것―과학자들 스스로에게 맡기는 것이 최선인데, 그들만이 정말로 과학을 이해하기 때문이다―이 아니라고 가정해야 한다. 알다시피, 그들은 그것을 재빨리 끝마치기 위해 "자신의 연구에서 시간을 뺄" 수 있을 뿐이다.

 

와인버그는 어떤가? 글쎄, <<최초의 3분(The First Three Minutes)>>은 마땅하게도 고전이다. 그런데 와인버그가 "직업적 과학자와 일반 대중 사이에 이루어지는 소통에 대한 걸림돌을 제공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수학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기사를 시작한다는 점이 도움이 되는데, 그것이 처음부터 과학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그의 사유를 너무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기 때문이다. 20년 이상 동안 과학(특히 물리과학)에 관한 글을 쓰면서 나는 어떤 관념이나 개념을 전달하고 싶을 때 내가 수학으로 말할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한 적이 거의 한 번도 없었다고 말할 때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전적으로 확신하다. 사실상 그렇게 하고 싶은 소망은 거의 틀림없이 저자가 근저에 놓여 있는 관념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좋은 표징이다. 과학자들이 수학에 의지하지 않은 채 개념을 소통할 수 없다면, 그들은 자신들이 말하려고 시도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정말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전달자의 실패인 것이지, 청중의 실패가 아니다.

 

그런데 그것을 제쳐 두더라도, 과학에서 수학의 역할에 관한 와인버그의 집요한 반복은 그의 극단적인 편협성을 드러낸다. 이것은 과학의 역사가 아니라 물리학, 특히 천상 및 지상 역학의 역사에 관한 책인 <<세계를 설명하기>>에 반영되어 있다. 그는, 어떤 과학도 철저히 수학적인 것으로 될 때까지는 정말로 성장하지 않았다는, 일 세기 전에 유행했지만 오래 전에 과학사학자들에 의해 폐기된 견해를 여전히 고수한다. 나는 이런 터무니없는 관념을 여전히 고수하는 많은 물리학자들이 존재한다고 확신조차 하지 않는다. 그것은, 겨우 몇 가지 분야를 거명하면, 화학, 재료과학, 진화생물학 그리고 세포생물학에 대한 이해의 전적인 결여를 드러낸다. 물론 이런 분야들 모두에서 수학적이고 정량적인 모형들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들은 물리학의 대부분에서 규정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그런 분야들을 규정하지 않는다. 와인버그의 생각은, 화학은 양자 이론이 원자의 구조와 화학 결합의 본성을 설명했을 때 비로소 본격적인 과학(그리고 동시에 쓸모없는 과학)이 되었다고 말하는 그런 종류의 생각이다. 그리고 그것은, 대중 물리학의 슬로건을 사용하면, 틀렸다는 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다(not even wrong).

 

이런 종류의 편협성은 "일반 독자을 위한 13권의 최고 과학서"에 관한 와인버그의 목록에 반영되어 있다. 그것들 가운데 단 한 권만이 직업적 과학 저술가[티모시 페리스(Timothy Ferris)인데, 그는 확실히 그럴 자격이 있다]의 책이며, 그리고 아홉 권은 물리학―그것도 우주물리학, 핵물리학 내지는 기초물리학―에 관한 책이다. 화학은 전혀 없는데, 놀랄 일이 아니다. 와인버그의 목록에서 여성이 부족한 것은, 그가 말하듯이, "여성들이 과학의 역사 대부분에 걸쳐서 과학에서 환영받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공교롭게도 여성인 많은 탁월한 과학 저술가들의 저작에 관심이 없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그들은 실제 과학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지나 페리(Georgina Ferry)엘리자베스 콜버트(Elizabeth Kolbert), 마가렛 버트하임(Margaret Wertheim), 데이바 소벨(Dava Sobel), 데버러 블룸(Deborah Blum), 가브리엘 워커(Gabrielle Walker) 등과 같은 작가들을 위한 여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리사 랜들(Lisa Randall)이 있는데, 내가 추측하기에, 랜들이 특별히 타고난 과학 소통가이기 때문이 아니라(슬프게도 그녀는 그렇지 않다), 이론물리학을 연구하기 때문이다. (와인버그가 그것에 한정하기를 원했다면, 적어도 그는 글을 정말로 잘 쓸 수 있는 재너 레빈(Janna Levin)을 선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책을 저술하는 것과 관련하여 대단한 것은 그것이 그에게 "잠깐 동안 이론물리학 연구의 상아탑을 떠나서 외부 세계와 접촉할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이라고 와인버그는 말한다. 그는 그것을 더 자주 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