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꽃구름 뮤직카페

 

 

우리가 사생관이 뚜렸하다면 가는 길이 불 명확해 헤매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저는 이에 대해 항상 의문을 갖다가 어디선가 옮겨두었던 글을 5회에 걸쳐 올리고자 합니다.

들꽃들을 구경하시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사생관死生觀 1.

 

 

 사진/자파리님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생관은 장구한 역사를 통해 형성되었기 때문에

어느 한 시기나 관점에서만 말하기 어렵다.

 

 

이 사생관이 포괄하고 있는 문제는 죽음 후의 생명이 있는가,

그 영혼은 산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가지는가,

 어떤 형태의 조상 숭배와 연결되어 있는가 등의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된 것들이다.

 

 

우리나라에는 유교와 불교가 들어오기 이전의 사생관이 있고,

유교와 불교가 들어온 이후에 서민층까지 뿌리박힌 죽음과 사후(死後)의 문제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생관은 어느 한 측면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그 복잡한 중층적(重層的) 구조를 이루고 있는 전체를 보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1) 무속적 사생관 고대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찍이 순장(殉葬)의 풍습이 있어서

죽은 자를 산 자와 더불어 동일하게 취급하며,

마치 죽음을 거부하는 듯 산 자의 현실 생활을 무덤 안에 재현해 놓은 사실을 볼 수 있다.

 

 

또 죽은 자의 시체를 매우 중하게 여긴 흔적도 보이는데,

무속적 관념에서 훼손된 시체에는 영혼이 다시 되돌아 갈 수 없다는 사상에서 온 것이다.

 

 

『삼국지』 「부여전」에 보면 죽은 시체가 부패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여름에 얼음을 사용한 흔적도 보이고(其死, 夏月皆用氷) 있다.

 

 

부여에서는 이밖에도 장사지낼 때에는 남녀가 모두 흰옷을 입고

경건하게 했으며 일정한 종교적 의례가 있었는데,

중국의 장례 풍습과 비슷하였다는 기록도 보이고 있다

(其居喪, 男女皆純白, 婦人着布面衣, 去環珮, 大體與中國相彷彿也).

 

 

순장의 풍습이나 지석묘(支石墓)의 종교적 기능으로 볼 때,

사람은 사후에도 현실의 생활과 비슷한 생을 누릴 것이라는 관념이 지배한 듯이 보인다.

 

 

고대 우리나라의 샤머니즘에서 저승에 대한 관념이

얼마만큼 뚜렷한 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불교의 영향으로 뚜렷한 저승의 관념을 갖춘 것은 분명하다.

 

 

비록 고대의 저승 관념이 뚜렷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사후에도 이 세상과 밀접한 관련을 가져 어떤 형태의 한국적 계세사상(繼世思想)이 지배했다.

 

 

명계(冥界: 사람이 죽은 뒤에 그 영혼이 간다고 하는 세계)에서의 삶이

현세에서의 삶과 다를 것이 없다는 관념은 사자(死者)가 거처하는 지역이

명당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과 이어진다.

 

 

사자가 묻히는 곳은 바로 그의 거주처가 되기 때문이다.

 

 

고구려의 민중왕(閔中王)은 전렵(田獵)하다가

한 석굴(石窟)이 있음을 보고좌우 신하에게 자기가 죽거든

이곳에 묻히게 하라고 유언하였다 한다(『삼국사기』, 민중왕 4년).

 

 

명당의 거주지에서 현세와 비슷한 삶을 사는 사자에 대한 제사를

끊임없이 지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사자와 생자가 가족 공동체를 이루어

사자의 안녕과 행복이 생자에게도 영향을 미쳐

가변적인 현세 생활에 불변적인 연속성을 부여한 것이다.

 

 

그리하여 죽음으로 파괴될 공동체의 유지를 방어할 사회적 장치가 마련되었던 것이다.

 

 

근대의 무속적 관념에 따르면,

영혼에는 사령(死靈)과 생령(生靈)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사령은 죽은 뒤에 저승으로 가는 영혼이고,

생령은 살아 있는 사람의 몸속에 깃들여 있는 영혼이다.

 

 

사령의 존재를 입증해 주는 자료는 초혼제사(招魂祭祀) 때에 하는

‘집가심’·‘진오기’·‘오구굿’·‘씻김굿’·‘해원(解寃)굿’·‘조상굿’ 등에서

 망인(亡人)의 영혼을 불러들이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생령의 존재를 입증해 주는 것은 평안도 지역의

‘다리굿’, 경상도 지역의 ‘산오구’가 있어서 육신에 깃들여 있는 영혼을 위해

제를 올리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민간에서는 잠자는 동안 꿈에서 영혼이 육신을 떠나 돌아다니는 것을 본다는 생각,

잠자는 사람의 얼굴에 수염을 그려놓든가

종이로 얼굴을 덮어놓으면 잠든 사이에 육신을 떠났던 영혼이 되돌아 올 수 없다는 관념도 있다.

 

 

혼수상태에 있는 사람은 영혼이 육신으로부터 나갔다 들어왔다 하는 것으로 관념되는데,

모두 생령의 존재를 입증하는 것이다.

 

 

사령은 또 조령(祖靈)과 원령(寃靈)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조령 즉 조상의 영혼은 이 세상을 순조롭게 잘 살다가

저승에 간 영혼인 선령(善靈)이고,

 원령 즉 원귀(寃鬼)는 살아생전의 원한이 남아 저승에 들어가지 못하고 떠도는 악령(惡靈)이다.

 

 

‘몽달귀신’·‘객귀(客鬼)’·‘영산’·‘수비’ 등이 모두 원귀들로,

요절하였거나 횡사한 사람, 억울하게 죽은 영혼은 원귀가 되기 쉽다.

 

 

 그러나 비록 원귀라 할지라도 육신을 이탈한 무형·무멸·불가시적인 영적 존재라는 면에서는

선령과 다를 바 없고, 처음에는 원귀였지만

그가 품은 원한을 풀면 선령과 같이 저승으로 갈 수도 있다.

 

 

우리나라 무속에서는 선령만을 모시지 않고 동일한 비중으로 악령도 모시고 있다.

 

 

그렇다고 선신과 악신의 구별 의식이나 가치 관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들이 죽음을 슬퍼하는 것은 천수(天壽)를 타고났으면서도

그것을 다하지 못하게 한 악신에 패배하였기 때문이라는 가치관에서 잘 나타난다.

 

 

 

(옮긴 글)

 

 

2편으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