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해골 乞骸骨
해골을 빈다는 뜻으로, 관료가 나이 들어 정사를 볼 수 없을 때 든 군주에게 물러나기를 청하는 말이다. 과거에 노신(老臣)이 은퇴할 때 쓰던 말이다.
항우의 책사 범증, 항우에게 충성을 바쳤지만 버림받고 객사하고 말았다
범증을 비롯한 많은 내친 항우는 천하제패의 꿈을 이룰 수 없었다
(사진출처 : 초한지-천하대전)
진(秦)이 망하자 각지의 군웅들은 패자가 되고자 전쟁을 벌였다. 그중 초패왕 항우(楚覇王 項羽)와 한왕 유방(漢王 劉邦)은 가장 강력한 군웅이자 라이벌이었다. 두 군웅은 격렬하게 싸웠지만 승패가 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유방은 항우가 도읍 팽성(彭成)을 비운 사이를 노려 공격했다 참패를 당하고 형양(螢陽)으로 도망쳤다. 군량마저 떨어져 더 이상 버틸 수 없자 항우에게 휴전을 제의했다. 항우는 유방의 제안에 솔깃했으나 참모 범증(范增)은 강력하게 반대했다. 항우는 범증을 아부(亞父 : 아버지)라 부를 만큼 아꼇기 때문에 유방의 제안을 선뜩 수락하지 못했다.
유방의 진평(陳平)은 이 이야기를 듣고 항우와 범증을 이간시킬 모략을 꾸몄다. 간첩을 풀어 범증이 유방과 내통하고 있다는 소문을 퍼트려 항우의 귀에 들어가도록 한 것이다. 항우는 이 소문을 듣고 유방 진영에 휴전을 제의하는 사신을 보냈다.
진평은 유방의 중신들과 항우의 사신을 정중히 맞이했다.
“아부(진평)께서는 안녕하시오?”
사신은 항우에 대해 한 마디도 없이 범증의 안부만 묻는 것이 매우 불쾌하여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저는 초패왕의 사신이오.”
진평은 놀란 체 하며,
“초왕의 사신이라고? 나는 아부의 사신일 줄 알았는데….”
하며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린 상을 소찬(素饌)으로 바꾸었다.
사신은 항우에게 돌아가 그대로 고하자 항우는 불같이 화를 내며 범증의 관직을 박탈했다. 한 때 항우의 수하였던 진평은 항우의 성품을 잘 알고 있었다. 경솔하고 성급한 항우가 이간책에 걸려들 것을 꿰뚫어 보았던 것이다.
범증은 더 이상 항우에게 기대할 것이 없음을 깨닫고 모든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청했다.
“천하 대세는 이미 결정되었으니 전하께서 처리하십시오. 신은 이제 해골을 빌어(乞骸骨) 초야로 돌아가겠나이다.”
어리석은 항우는 충성스러운 신하를 잃었다. 범증은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등창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75세였다.
옛날 사대부들은 관리가 되면 왕에게 자신의 몸을 바치는 것으로 여겼다. 범증이 “걸해골(乞骸骨)”이라고 한 말은 “고향에 묻힐 수 있도록 뼈(몸)을 돌려달라”는 의미이다. 이후 늙은 신하가 사직을 청할 때, “걸해골”이라는 고사를 인용하곤 하였다.
- 출처 : 사기 항우본기(史記 項羽本紀), 안자춘추(晏子春秋)
- 한자풀이
● 걸(乞) : 빌다, 구하다, 소원하다
● 해(骸) : 뼈, 해골
● 골(骨) : 뼈, 됨됨이
- 동의어 : 걸신(乞身)
● 사기(史記)
전한(前漢)의 역사가인 사마 천(司馬 遷)이 지은 역사서로 신화시대부터 전한의 한무제(漢武帝) 때 까지의 역사를 서술했다. 사기의 서술 방식인 기전체는 동아시아에서 역사 서술의 모범이 되었다.
● 유방(劉邦 B.C. 247년 ~ 195년)
진(秦)의 장수 출신은 한나라(漢)를 건국하였다(B.C. 206년). 중국의 패권을 두고 싸우던 패왕 항우(項羽)를 격파하고 중국을 통일하였으며 한고조(漢高祖)로 불린다.
● 항우(項羽 B.C. 232년 ~ 202년)
숙부 항량과 함께 초 의제를 도왔으나 의제를 죽이고 제위를 찬탈했다. 라이벌 유방과 오랜 전쟁 끝에 패하고 31세의 나이로 자결하였다. 초패왕(楚霸王)이라고도 불린다.
● 진평(陳平 ? ~ 기원전 178년)
위왕의 신하였으나 위왕이 죽자 항우의 책사가 되었다. 그 뒤 위무기의 설득으로 유방에 항복하였다. 반간계로 항우의 참모 범증을 내쳐 큰 공을 세운다. 유방이 죽은 후 태후 여씨 일족의 모반을 평정하고 유방의 차남을 옹립했다.
이다.
● 범증(范增, 기원전 277년 ~ 기원전 204년)
초나라의 정치가로 항우의 신임을 받았다. 유방이 항우의 우환이 될 것을 알고 유방을 죽이고자 했으나 실패했다. 유방과 항우의 전쟁이 한창일 때 유방의 참모 진평의 계략으로 항우에게 쫓겨나 등창으로 생을 마감했다. 항우는 전쟁에 패한 후 범증을 내친 것을 크게 후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