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공양의 의미

 

금요논강 1012일 금요일 방송

 

금요일에 만나는 금요논강 시간입니다.

팔리문헌연구소 소장 마성스님과 함께

공양의 참된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 나눠봅니다.

마성스님 스튜디오에 나와 주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인사)

 

1. 오늘의 주제가 스님들의 공양입니다.

탁발과 걸식에서 시작된 공양의 모습이 많이 변해오고 있는데요.

먼저, 불교에서 공양이 갖는 정확한 의미를 설명해주시겠습니까?

 

불교에서 쓰이고 있는 공양(供養)이라는 단어는 인도어 뿌자(pūjā)’를 번역한 말입니다. 빨리어 뿌자는 공양하다’, ‘존경하다라는 뿌제띠(pūjeti)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여성명사입니다. 인도인들은 고대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것을 공희(供犧) 혹은 공양이라고 했습니다. 공희는 동물을 죽여 신에게 제물로 바친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재가자들이 거룩하신 부처님과 그 제자들에게 존경의 예를 표했습니다. 그 존경의 예도 공양이라고 하지만, 점차 존경하는 분께 필요한 물품을 바치는 것을 공양이라고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올리는 물품을 공양물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공양의 본래 의미는 아랫사람이 존경하는 윗사람이나 신에게 정신적이든 물질적이든 무엇인가를 바치며 존경의 예를 표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불교에서 공양과 거의 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는 보시(布施)라는 단어는 그 어원이 전혀 다릅니다. 보시라는 단어는 빨리어 다나(dāna)를 번역한 말인데, ‘베풂혹은 나눔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보시란 가진 자가 자신이 가진 정신적물질적 어떤 자산이나 능력을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거나 나누어주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보시의 대상은 동료이거나 아니면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에게 베풀어주는 행위를 말합니다. 이처럼 공양과 보시의 대상은 물론 그 의미도 약간 다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불교도들은 이러한 구분을 잘 알지 못하고 공양과 보시를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설명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2. 공양에도 종류가 여러 가지가 있지요?

 

불교에서는 네 가지 종류의 공양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인도인들은 돌아가신 분께는 주로 꽃을 바쳤고, 살아있는 성자 혹은 수행자에게는 생활필수품인 네 가지 물품을 바쳤습니다. 이것을 사사공양(四事供養) 혹은 사자구(四資具)라고 합니다. 사사란 네 가지 물품이라는 뜻입니다. 즉 의복(衣服)음식(飮食)와구(臥具)의약(醫藥)입니다. 이러한 네 가지 물품을 존경하는 분께 바친 것을 공양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재가신자가 물질로써 출가 수행자에게 공양을 올림으로써 존경의 예를 표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3. 거슬러 올라가서초기불교의 공양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궁금합니다.

 

초기불교교단에서는 출가자는 어떠한 생산활동에도 종사할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오로지 재가자의 공양물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인간의 생존에 꼭 필요한 의()()()를 재가자들이 제공해 주었는데, 음식을 제외한 의복좌구의약품은 한번 마련하면 오래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었지만, 음식은 매일 먹어야만 생존할 수 있기 때문에 두 가지 제도가 정착되었습니다. 하나는 걸식(乞食)이고, 다른 하나는 청식(請食)입니다. 걸식은 비구들이 매일 아침 발우를 들고 마을에서 탁발하는 것을 말하고, 청식은 재가신자가 자신의 집에 음식을 마련해 놓고 비구들을 초청하여 음식을 베푸는 것을 말합니다. 현재 스리랑카에서는 걸식문화가 사라지고 청식 제도로 정착되었습니다.

 

4. 경전에도 부처님과 부처님 제자스님들의 공양에 대해 나와 있는데요.

경전에 나와 있는 공양에 대해 몇 가지 소개해 주신다면?

 

초기경전에는 부처님 재세 시의 국왕이나 부호들이 부처님과 그 제자들을 왕궁이나 자택으로 초빙하여 공양을 베풀었다는 내용이 너무나 많이 나타납니다. 예를 들면 마가다국의 빔비사라 왕이나 꼬살라국의 빠세나디 왕은 물론 아나타삔디까(급고독) 장자를 비롯한 많은 재사신자들이 부처님과 그 제자들을 초빙하여 공양을 베풀었습니다. 그런데 승려들이 공양을 마치고 나면 부처님은 반드시 그 답례로 공양을 베풀어준 왕이나 재가자에게 법을 설해 주었습니다. 이것은 먼저 재시(財施)를 받고 그 답례로 법시(法施)를 베풀어준 사례입니다. 이러한 전통은 지금도 스리랑카를 비롯한 남방불교에서는 그대로 실현되고 있습니다. 다만 붓다 당시와 지금의 차이점은 붓다시대에는 승려들에게 오직 음식만 베풀었지만, 지금은 음식뿐만 아니라 수행에 필요한 여러 가지 물품들을 함께 공양 올립니다. 이것이 다른 점입니다.

 

5. 6-70년대 우리나라의 불교는 사원경제가 어려웠습니다. 대웅전이 무너져가도 사찰재정으로 보수를 할 수 없었고, 스님들이 직접 탁발을 나서서 보시를 받았는데요. 그 시절과 비교하면, 지금의 사원경제는 얼 만큼 나아진 건가요?

 

6-70년대에 비하면 지금의 사원경제는 매우 좋아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모든 국민들이 살기 어려운 시절이었기 때문에 사찰에 보시할 여유가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에 비해 비교적 이른 나이인 17세 때 출가했습니다. 그때가 1973년이었는데, 절에서 먹을 것이라곤 별로 없었습니다. 사찰에 스님들도 많았고, 나이 많은 노 보살님과 거사님들도 절일을 돌보며 함께 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늘 양식이 부족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한 번도 제대로 된 반찬을 먹어보지 못했습니다. 요즘 사찰음식이라고 소개하는 것을 보면 그때는 구경도 해보지 못한 것들입니다. 그 당시 사찰에서 그런 고급 요리를 해서 먹을 수 있는 사정이 아니었습니다. 한국의 사찰경제가 좀 나아지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중반부터라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사찰의 경제는 국민의 경제수준과 비례한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

 

6. 사정이 나아진 사찰은 일부분이고, 수많은 사찰 중에서 아직도 재정이 어려운 사찰이 많다고 알고 있는데요. 사찰간의 빈부격차가 꽤 되지요?

 

사찰간의 빈부격차는 매우 심합니다. 저는 그 근본원인을 두 가지로 진단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독지가의 후원을 받는 사찰과 받지 못하는 사찰로 구분되고, 다른 하나는 입장료를 비롯한 문화재보수비 등 국가지원금을 받는 사찰과 받지 못하는 사찰의 경제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순수한 신도들의 보시나 희사로는 사찰을 운영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결국 오늘날의 사찰 경제가 향상된 것은 국가로부터 막대한 지원금을 받기 때문에 사찰의 경제가 좋아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불교 자체의 자생력보다 국가 의존도가 높다는 것을 뜻입니다. 또한 막대한 국가지원금을 받기 때문에 승단이 타락하는 원인 중에 하나가 되기도 합니다. 이것은 겉으로 드러난 사례를 통해서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입니다.

 

7. 신도 현대 한국불교와 관련해서 가슴 아픈 말 중에 절은 가난한데 스님은 부자다, 이런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시나요?

 

앞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국가로부터 받는 각종 명목의 지원금 때문에 사찰의 경제력이 좋아진 측면도 있지만, 이 돈이 그대로 불교포교나 대중의 복지로 쓰이지 않고, 일부 승려들의 축재로 쓰이는 경우도 있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돈을 만지는 승려들은 부자로 살고, 그렇지 못한 승려들은 노후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 당장 생계를 유지하기도 어려운 실정입니다. 사찰에 들어온 수입이 공평하게 분배되도록 제도적 개선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8. 분명 한국불교에서 공양에 있어 문제점이 드러나 보입니다. 어떤 점을 지적하고 싶으신가요.

 

부처님은 재가자가 공양물을 올리려고 하면 그것을 승가 공동체, 즉 승단에 기증하라고 했습니다. 만일 어떤 특정 승려에게 공양을 올리도록 하면 공양을 받지 못하는 승려와 차별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승려들 간의 빈부격차를 없애기 위해 승단에 공양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제도는 현재 한국불교에는 맞지 않습니다. 초기불교교단에서는 승단에 기증된 물품이나 거처를 공평하게 분배하는 직책을 가진 승려의 덕목이 강조되었습니다. 공동체에서 공평한 분배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이 제정한 이 제도를 한국의 사찰에 대입해 보면 모든 공양금과 공양물을 사찰의 주지에게 바치라는 것이 됩니다. 이것이 곧 승단에 공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공양금과 공양물을 받은 주지가 자기에게 준 것이라고 착각하고 그것을 개인적으로 착복하고 사찰에 거주하는 다른 스님들에게 제대로 나누어주지 않기 때문에 승려들 간에 빈부격차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폐단을 근절시키기 위해서는 승가공동체 즉 승단이나 사찰에 공양을 올릴 것이 아니라 승려 개인에게 직접 공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과 같은 불공평은 어느 정도 해소될 것입니다. 실제로 남방 상좌부불교 국가는 물론 대만의 불교도들은 사찰에 공양하기보다 승려 개인에게 공양하는 것을 더 선호합니다. 대만의 승공회(僧供會, 승려 개인에게 공양을 올리는 모임) 혹은 승찬공양(僧粲供養)은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9. 마성스님께서는 동남아의 남방불교를 연구해오셨고, 오랜 시간 그곳에서 공부도 해오셨는데요. 다른 불교국가들의 탁발과 공양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남방 상좌부불교 국가인 태국,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등에서는 탁발이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아침에 승려들이 줄을 지어 탁발하는 모습은 이제 관광 상품으로 소개될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남방 상좌부불교의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스리랑카에서는 탁발하는 모습을 볼 수가 없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청식이 보편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스리랑카의 경우 아침공양은 정해진 신도가 사찰에 거주하는 승려들이 먹을 수 있는 양보다 많이 음식을 마련하여 직접 사찰로 가지고 옵니다. 그것을 승려들이 나누어 먹습니다. 그 나머지는 사찰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개 고양이들에게 나누어줍니다. 그리고 점심은 초청한 신도의 집에 가서 공양을 받습니다. 다른 상좌불교국가에서도 지역에 따라 점차 이러한 추세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동남아시아의 국가들도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0. 남방불교는 지금도 탁발로 끼니를 해결하는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데요. 스님들의 하루 일과와 탁발공양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남방불교의 승려들은 오전의 탁발과 공양 등으로 거의 많은 시간을 소비합니다. 그런데 현대사회는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탁발에 의존해 살아갈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승려들의 탁발 시간은 신도들과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좋은 장점도 있지만, 계속 지속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동남아시아 국가에서도 점차 아파트가 늘어나기 때문에 그런 곳에서 탁발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또 그들도 아침 일찍 직장에 출근해야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에 승려들의 공양물을 준비하는데 신경 쓸 시간적 여유도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일부 남방불교의 사찰에서는 신도들에게 미리 돈을 주어서 음식을 마련하라고 약속해 놓고 그곳으로 탁발하려 갑니다. 짜고 치는 고스톱과 같습니다. 남방불교도 앞으로는 우리나라와 같이 사찰에서 직접 음식을 조리해 먹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11. 벌써 마무리 하는 질문을 드려야할 것 같습니다. 참된 공양이란 무엇일까요.

 

불교에서는 공양을 크게 둘로 구분합니다. 하나는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승려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입니다.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것을 붓다-뿌자(Buddha-pūjā), 즉 불공(佛供)이라고 하고, 승려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을 상가-뿌자(Saṅgha-pūjā), 즉 승공(僧供)이라고 합니다.

 

북방불교에서는 불공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남방불교에서는 불공보다는 승공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우리처럼 불공에 과일이나 밥 등 많은 공양물을 올리지 않습니다. 부처님께는 꽃만 공양 올립니다. 반면 승려들에게는 먹을 수 있는 음식에서부터 생활필수품 등 다양한 공양물을 올립니다.

 

참된 공양이란 부처님과 그 제자들에게 존경의 마음으로 그들의 수행에 필요한 물품을 정성껏 마련하여 올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현대에는 물품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수행과 교화에 필요한 금전을 직접 승려들에게 공양 올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대가를 바라고 올리는 공양이라면 그것은 진정한 공양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를테면 남편의 승진과 자식들이 좋은 대학에 합격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절에 납부하는 축원비나 기도비라는 명목의 돈은 진정한 공양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냥 존경의 예를 표하기 위해 올리는 공양이야말로 진정한 공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사찰에서 승려들이 하는 식사를 공양이라고 부릅니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사찰의 물품은 재가신자가 올린 공양물이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은 타당합니다. 그러나 일반 신자들이 절에서 먹는 음식을 공양이라고 부르는 것은 약간의 문제가 있습니다. 신도들이 사찰에서 먹는 음식은 그냥 식사일 뿐입니다. 재가자는 재가자로부터 공양을 받을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재가자가 다른 재가자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것을 흔히 대중공양이라고 하는데, 이것도 엄격히 말하면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이에 적합한 불교용어가 무차회(無遮會)’, 보시회, 다나회 등입니다. 무차회란 직위고하나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고 음식이나 어떤 다른 물품을 베푸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일반 사회에서는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초빙하여 음식을 대접하는 것을 예전에는 잔치라고 했습니다. 요즘 복지단체에서 이웃 어른들에게 음식을 베푸는 것을 경로잔치라고 부르는데, 가장 좋은 용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인들이 이런 경우, 격식을 높여 사람들을 초빙하여 점심을 베풀면 오찬(午餐)’이라 하고, 저녁을 베풀면 만찬(晩餐)’이라고 합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공양과 보시는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이제 불자님들도 공양과 보시의 본래 의미를 바르게 구분할 줄 알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승려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외롭고 고독한 이웃에게 자신의 재물과 능력을 나누는 보시가 널리 성행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불자님들의 가정에 행복이 가득하시길 기원 드립니다.

 

(마무리)

네 지금까지 팔리문헌연구소 소장 마성스님과 함께했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인사)

 

CM

 

# Closing #

 

1012일 금요일

<무명을 밝히고> 오늘 준비한 순서는 여기까집니다.

 

참된 공양이 무엇인지?

참된 보시가 무엇인지 함께 공부하는 금요일이었는데요.

우리 불자님들의 공부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기를 바래봅니다.

 

저는 다음 주 월요일,

불교계 주요 이슈를 전하는 키워드로 보는 불교,

황순일 교수의 불교인문학으로 찾아오겠습니다.

편안한 주말 보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