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논강_대승보살계의 기원과 의미/ 마성스님 2018년 1228()

 

불교의 근본 사상과 전통을 통해 오늘날 우리 불자들의 신행생활을 재점검해보는 금요논강 시간입니다. 지난달에 재가불자의 신행생활을 주제로 초기불교 당시 재가불자의 계율에 대해서 살펴본 데 이어서 오늘은 대승불교의 계율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승보살계의 기원과 의미에 대해서 팔리문헌연구소 소장이신 마성스님과 함께 말씀 나누겠습니다.

스님, 안녕하세요? (인사)

 

1. 말씀드린 대로 지난번에는 재가불자의 기본 계율로서 오계와 팔재계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오늘은 대승불교시대의 계율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고자 하는데요. 대승불교시대에 이르러서는 보살의 개념이 등장하면서 출재가의 구분보다는 근본적인 깨달음과 실천행을 중시하게 되었지요?

 

, 그렇습니다. 흔히 대승불교는 보살의 불교라고 합니다. 대승불교에서는 위로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 중생을 제도하겠다(上求菩提 下化衆生).”라고 서원을 세운 사람을 보살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보살의 개념에는 출가와 재가의 구분은 물론 남녀노소의 구분도 없습니다. 이것은 외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면에 깨달음을 추구하는 보리심(菩提心)을 갖고 있느냐 없느냐가 더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러나 대승불교가 성립된 이후 시간이 경과하면서 보살의 역할에 따라서 출가보살과 재가보살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이를테면 출가보살은 일생을 수행과 교화에 헌신하는 사람들이었고, 재가보살은 가정생활을 하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대승불교 국가의 승려는 출가보살의 후예(後裔)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일반적으로 출가자인 비구비구니가 지켜야 계율, 즉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가 있듯이 대승불교에서도 보살이 지켜야 할 보살계(菩薩戒)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먼저 보살계의 기원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 순서일 것 같군요?

 

불교교단사적으로 말하면, 대승불교의 흥기(興起)는 초기불교나 부파불교를 계승한 것이 아니고, 이전의 불교와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새로운 불교를 탄생시킨 것입니다. 정치적 용어를 빌리면 기존의 불교교단에 대한 혁명에 해당됩니다. 따라서 초기의 대승불교도들은 처음부터 부파교단에서 비구비구니들이 지키던 바라제목차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바라제목차를 용도 폐기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경과하면서 보살에도 출가보살과 재가보살의 구분이 형성되었고, 출가보살이 지켜야 할 도덕적 덕목과 재가보살이 지켜야 할 도덕적 덕목들이 하나하나 제정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체계화된 것이 대승계(大乘戒) 혹은 보살계(菩薩戒)입니다. 대승불교에서 보살계가 만들어진 후에는 부파교단의 비구비구니가 지키는 계율을 소승계(小乘戒) 혹은 성문계(聲聞戒)라고 낮추어 불렀습니다. 그리고 보살계도 출가보살계와 재가보살계로 구분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의 불교계에서는 재가보살계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3. 보살계는 부파불교에서 전승한 여러 율장과는 그 성립 배경과 계통이 전혀 다르네요. 그러면 보살계를 설하고 있는 문헌들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원래 대승불교는 별도의 율장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대승불교의 계율에 대해 설하고 있는 경전들을 통틀어 대승계경(大乘戒經)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대승계경에 나타난 대승계는 일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종류도 다양합니다. 이를테면 <보살지지경(菩薩地持經)>의 사중사십이범사(四重四十二犯事),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의 사중사십삼경계(四重四十三輕戒), <우바새계경(優婆塞戒經)>의 육중이십팔실의계(六重二十八失意戒), <보살내계경(菩薩內戒經)>의 사십칠계(四十七戒), <범망경(梵網經)>의 십중사십팔경계(十重四十八輕戒), <보살선계경(菩薩善戒經)>의 팔중사십팔경계(八重四十八輕戒) 등입니다.

 

4. 그러면 대승계를 설하고 있는 많은 문헌 중에서 한국불교에서는 어떤 문헌에 근거하여 보살계를 설하고 있습니까?

 

대승불교권에서 출가자를 위한 보살계는 예로부터 두 가지가 널리 유행되었습니다. 하나는 <梵網經>에 설해진 十重四十八輕戒(多羅戒本)이고, 다른 하나는 <菩薩地持經>(瑜伽論本地分中菩薩地) 등에 설해진 四重四十三輕戒(達磨戒本)입니다. 이 두 가지 보살계 중에서 현재 한국불교계에서는 <범망경>의 보살계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가사지론>은 인도에서 찬술된 문헌이지만, <범망경>은 중국에서 만들어진 위경(僞經)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불교계에서 <梵網經>의 보살계, 十重四十八輕戒를 재가자들에게 설하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재가자를 위한 보살계, 즉 <優婆塞戒經>受戒品 14에 나오는 六重二十八輕戒가 별도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優婆塞戒經> 受戒品 14(T24, pp.1047a-1050b)]

 

5. 그러면 대승계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일반적으로 삼취정계로 설명하는데 어떤 내용인지 설명해 주시죠.

 

대승계의 특징은 한마디로 삼취정계(三聚淨戒, trividhāni śīlāni)라고 할 수 있다. 삼취정계란 삼종정계(三種淨戒)삼취청정계(三聚淸淨戒)삼취계(三聚戒)라고도 하는데, 대승의 보살이 받아 지녀야 할 세 가지 계를 말합니다. 이른바 섭율의계(攝律儀戒)섭선법계(攝善法戒)섭중생계(攝衆生戒)가 그것입니다. 첫째, 섭율의계란 악을 방지하기 위해 제정한 모든 금지 조항을 말합니다. 둘째, 섭선법계란 선행을 실천하는 계를 말합니다. 셋째, 섭중생계 혹은 요익유정계(饒益有情戒)란 선을 행하면서 중생에게 이익을 베푸는 계를 말합니다.

 

대승불교에서 삼취정계를 강조하는 것은 부파교단의 성문승들이 지키던 소승계 혹은 성문계보다 대승계 혹은 보살계가 더 우월하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고안된 교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한국불교 승단에서는 부파불교에서 전승해 온 성문계(소승계)와 대승불교에서 전승해 온 보살계(대승계)를 동시에 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문계와 보살계는 그 성립의 배경은 물론 전혀 다른 사상적 배경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성문계와 보살계는 상호 배치되는 내용을 갖고 있기 때문에 동시에 받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6. 그러면 성문계와 보살계는 어떤 차이점이 있기에 그와 같은 모순이 생기는 것입니까?

 

대승불교에서는 성문계를 소승계라고 부르고, 보살계를 대승계라고 부릅니다. 소승계와 대승계의 차이점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소승계는 본래 자기의 수행해탈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자리적(自利的)입니다. 이것에 반하여 대승계는 보살자비의 정신을 주로 하므로 이타적입니다. 따라서 동일조문(同一條文)에 대해서도 이것을 지키는 정신적인 동기가 다릅니다.

 

둘째, 소승계는 소극적으로 지악(止惡)을 주로 하지만, 대승계에서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행선(行善)을 주로 합니다.

 

셋째, 소승계는 형식적 조문주의(條文主義)이며, 대승계는 정신적입니다. 소승계는 몸[]과 입[]를 주로 하지만 대승계는 뜻[]를 주로 합니다. 이 점에서 대소승계는 현저한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소승계에서는 사바라이(四波羅夷)의 하나를 범하면 비구로서의 자격을 잃고 승단에서 추방되지만, 대승계에서는 가령 살인을 하고 음욕을 행했어도 그 동기가 자비심에 있다면 계를 범했다고 하지 않고 오히려 공덕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넷째, 소승계는 수계의식 때 삼사칠증(三師七證)이라는 실제의 승()을 요구하지만, 대승에서는 불보살(佛菩薩)이 계사(戒師)가 되고 아사리(阿闍梨)가 되어 수계하는 것이며, 또 소승계에서는 계율이 승()의 조건이 되므로 하나의 계라도 어기면 엄밀하게 말해서 승()으로서의 자격을 잃어버립니다. 특히 사바라이(四波羅夷)를 범하면 승단에서 추방됩니다. 그러나 대승계에서는 일계(一戒)를 얻으면 약간의 파계(破戒)가 반드시 불제자의 자격을 상실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이러한 비교 자체가 대승계 우위의 시각에서 나온 것임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다만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소승계와 대승계는 사상적으로 서로 상반되는 계임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예컨대 구족계의 승잔법(僧殘法)에는 마촉여인계(摩觸女人戒)가 있는데, 이것은 비구들이 여인의 피부에 접촉하는 것을 금지하는 계입니다. 이 계가 있기 때문에 비구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여인의 피부에 접촉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물에 빠진 여인이 있는 경우, 여인을 구조하려고 한다면 여인의 피부를 만지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면 결국 계를 범()하는 것이 됩니다. 구족계에서 승잔죄는 무거운 죄에 해당됩니다. 그러나 대승불교의 삼취정계(三聚淨戒)에 따르면, 마촉여인계(摩觸女人戒)보다도 더 무거운 사바라이(四波羅夷)에 해당되는 불음계(不婬戒)를 범했다할지라도 중생에게 이익을 베풀기 위한 것이라면 파계(破戒)가 아닌 적극적인 선행(善行) 혹은 자비행(慈悲行)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소승계와 대승계는 그 출발점에서부터 계율에 대한 인식이 전혀 다릅니다. 그러면 왜 이처럼 서로 상반되는 계를 대승불교권에서는 동시에 수지하게 되었을까?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대승계의 성립과 전개과정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만 할 것이다.



보살계 수계식 장면(3화상 7증사가 자리하고 있다.) 

 

7. 대승계의 성립과 전개과정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주십시오.

 

대승불교의 계율은 그 전개과정에 따라 점차 체계화되었습니다. 초기대승불교의 계율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초기의 대승불교도들은 십선계(十善戒)를 지킨 것으로 되어 있다. <아함경>에서 십선(十善)’십선업도(十善業道, dasa-kusalakam mapathā)’라고 불렸지만 아직 계()로 인식되지는 않았습니다. ‘십선업도십악업도와 함께 도덕의 덕목선악의 기준을 나타내는 것으로 취급되었습니다. 이러한 십선도가 초기대승불교에서는 계바라밀(戒波羅蜜)의 계()로써 중요시되었습니다. 즉 초기대승불교에서는 아함의 십선도(十善道)를 십선계(十善戒)로 전환시킨 것입니다.

 

처음 대승불교를 일으킨 사람들은 재가자 중심이었지만, 곧바로 형식적으로나마 출가와 재가의 구분이 생겼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초기대승불교에서의 출가보살은 부파불교의 율장 규정에 비추어보면, ‘출가라 하기에는 곤란하며, ‘재가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다음은 중기대승불교의 계율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중기 이후의 대승경전은 크게 如來藏系 경전과 唯識系(瑜伽系) 경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여래장계의 대표적인 경전인 <열반경>, 유식계인 <해심밀경>・<보살선계경>・<보살지지경>・<유가사지론>本地分中菩薩地등에 대승불교의 계율에 관한 언급이 있습니다. 이러한 중기대승경전에 나타난 보살계의 특징은 한마디로 삼종정계(三種淨戒)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삼종정계 사상은 중국한국일본의 대승계 사상의 전개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삼종정계는 이미 <십지경>에 그 선구가 보입니다. <화엄경>능히 스스로 삼종의 계법을 구족하고, 또 중생으로 하여금 삼종의 계를 구족하게 한다.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삼취정계에 안주하게 한다.”(T9, p.513a-b)고 했습니다. 이러한 삼종정계 사상은 <유가사지론>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유가사지론>에 언급된 삼종정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무엇이 보살의 일체계인가. 일컬어 보살계는 요약하면 2종이 있으니, 첫째는 在家分戒, 둘째는 出家分戒이다. 이것을 일체계라고 이름 한다. 또 곧 이 재가와 출가의 二分淨戒에 따라서 간략히 3종으로 설한다. 첫째는 律儀戒, 둘째는 攝善法戒, 셋째는 饒益有情戒이다. 율의계는 모든 보살이 수지해야 할 七衆別解脫律儀이다. , 苾芻戒(比丘戒), 苾芻尼戒 (비구니계), 正學戒, 勤策男戒(沙彌戒), 勤策女戒(사미니계), 近事男戒(優婆塞戒), 近事女戒(優婆夷戒)이다.[<瑜伽師地論>(T30, p.511a)]

 

위에서 인용한 <유가사지론> 삼종정계의 제1 율의계의 해석은 파격적입니다. 여기서는 율의계를 칠중(七衆)의 계()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보살계에 성문계(소승계)를 포함시킨 것입니다. 즉 소승계를 보살계 속에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것이 유가계(瑜伽戒)의 특징입니다. 물론 <열반경>도 소승계를 섭취하고 있지만, <유가사지론>보살지에서는 그것을 체계적으로 보살계 속에 정착시키고 있습니다. 이 점이 가장 특이한 사항입니다.

 

<유가사지론>의 삼취정계에 따르면, 보살은 섭율의계에서 섭선법계로, 다시 요익중생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율의계는 소승계일 뿐 대승계가 아니기 때문이며, 섭선법계와 요익유정계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보살계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칠중(七衆)의 율의계는 대승계에 오르기 위한 준비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율사들도 이러한 유가계의 해석에 따라 소승계는 대승계에 오르는 사다리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사분율>의 구족계는 출가자가 되기 위한 요식행위 혹은 형식에 지나지 않고, 대승의 출가보살은 <유가사지론>의 보살계나 <범망경>의 보살계를 수지해야 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8. 앞에서 소승계와 대승계의 차이점에 대해 말씀해 주셨는데요, 그 외에도 성문계와 보살계의 큰 차이점이 있지요. 이를테면 성문계를 어겼을 때에는 처벌이 있지만, 보살계를 어겼을 때에는 벌칙이 없다고 들었는데, 이에 대해 설명을 좀 해주시죠.

 

대승불교에서는 계율(戒律)이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계율은 계()와 율()의 합성어입니다. (sīla)는 불교의 수행에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이 자발적으로 지켜야 할 도덕적 수행이며, (vinaya)은 승가의 질서 유지를 위하여 필요한 타율적인 행위 규범을 뜻합니다. 따라서 계는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성격을 지닌 반면 율은 객관적이고 타율적인 성격을 지녔습니다. 그래서 율의 조항을 위반했을 때에는 벌칙이 가해지지만, 계에는 그와 같은 벌칙이 없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러한 계와 율은 불교 윤리의 두 가지 측면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이행해야할 계인 준수사항(cāritta)이고, 다른 하나는 금해야 할 율인 금지사항(vāritta)이다.

 

그런데 성문계인 바라제목차는 계이면서 율입니다. 그래서 바라제목차를 어겼을 경우에는 그에 합당한 처벌이 주어집니다. 그러나 대승계에는 강제성을 띤 율 조항이 없습니다. 이것이 대승계의 특징입니다. 왜냐하면 성문계는 신계(身戒)에 해당되지만, 보살계는 심계(心戒)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9. <범망경>의 보살계를 흔히 1048경계라고 해서 열 가지의 중한 계와 마흔여덟 가지 가벼운 계를 가리키는데요. 먼저 열 가지 엄중한 계[十重戒]부터 알아볼까요?

 

십중계란 대승불교의 보살이 지켜야 할 열 가지 엄중한 계율을 말합니다. 열 가지란 다음과 같습니다.

보살은 자비심을 일으켜 중생을 건져야 하며, 방자한 마음으로 생명을 죽이거나 생명을 죽이도록 시켜서는 안 된다[不殺生].

한 개의 바늘이나 한 포기 풀이라도 훔치거나 남에게 훔치도록 가르쳐서는 안 된다[不偸盜].

스스로 음탕하거나 또는 음탕할 것을 남에게 가르쳐서는 안 된다[不婬].

거짓말을 하거나 남에게 그렇게 하도록 시켜서는 안 된다[不妄語].

술을 팔거나 또는 팔 것을 남에게 가르쳐서 음주 때문에 중생의 마음을 흐리게 해서는 안 된다[不酤酒].

모든 사람의 죄과를 발설하거나 그렇게 하기를 남에게 가르쳐서는 안 된다[不說四衆過].

부당하게 자기 자신을 높이고 남의 훌륭한 일을 숨기고 깎아내리고 헐뜯기를 스스로 하거나 또는 그렇게 하기를 시켜서는 안 된다[不自讚毁他].

빈곤한 사람이 찾아와서 그 소원에 따라 얻으려 할 때 아낌없이 주어야 하거늘 오히려 업신여기고 화를 내고 욕설을 퍼붓기를 스스로 하거나 이를 남에게 시켜서는 안 된다[不慳惜加毁].

마땅히 자비심을 가지고 잘못을 뉘우치고 사과하는 사람을 미워하여 용서하지 않거나 그렇게 하기를 가르쳐서는 안 된다[不瞋心不受悔].

스스로 불()()() 삼보를 비방하거나 남에게 그렇게 하기를 가르쳐서는 안 된다[不謗三寶].

 

10. 열 가지 중한 계에서 가장 중요한 정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열 가지 엄중한 계율 가운데 앞의 다섯 가지는 대승불교적 입장에서 본 오계(五戒)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머지 다섯 가지는 자신을 높이고 남을 업신여기지 말라는 불자찬훼타(不自讚毁他)와 삼보를 비방하지 말라는 불방삼보(不謗三寶)가 중요한 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삼보를 비방하는 것은 만 가지 악의 근본이 되기 때문입니다.

 

11. 이번에는, 48경계에 대해서 소개해주십시오. 마흔여덟 가지를 모두 살펴볼 수는 없고 그 가운데 우리 불자들이 꼭 염두에 두고 생활했으면 하는 항목들을 말씀해주시지요.

 

마흔여덟 가지 비교적 가벼운 계는 대승불교를 실천하는 대승행자(大乘行者)의 생활윤리 혹은 생활덕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몇 가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살생기구나 전쟁무기를 마련해 두지 말라.

나라의 삿된 신하가 되지 말라.

나쁜 마음으로 장사하지 말라.

모든 생명을 구호하라.

성내고 때려서 원수를 맺지 말라.

교만한 생각을 버리고 법문을 청하라.

교만한 생각으로 잘못 일러주지 말라.

삼장월(三長月)과 육재일(六齋日)을 잘 지켜라. 등입니다.

 

12. 열 가지 중한 계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고 지금 말씀하신 마흔 여덟 가지 계는 될 수 있으면 지키도록 하라는 권고사항 정도 되는 건가요?


꼭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열 가지는 마흔여덟 가지보다 중요하게 여긴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보살계는 그것을 어겼다고 해서 처벌이 가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속으로 그 잘못을 참회하여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 됩니다. 그래서 대승계를 심계(心戒)라고도 합니다.

 

13. 계를 받들고 생활 속에서 이를 철저히 지키려는 생활태도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로 들리는데요. 계율의 공덕이라고 할까요. 계율의 힘이라고 한다면.. 어떤 점이 있을까요?

 

지금까지 대승보살이 지켜야 할 계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고 재가자가 거창하게 깨달음을 얻기 위해 계율을 지켜야 되겠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계를 지킨다는 것은 도덕적 행위를 실천한다는 말입니다. 지계를 다른 말로 심신(心身)의 조절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계율을 지킴으로써 건강한 신체와 건전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몸과 마음을 조절하는 것을 지계(持戒)라고 합니다.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신체적으로는 건강하고, 정신적으로는 안정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어떠한 일도 완전하게 수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계율은 자신을 얽어매는 속박이 아닙니다. 계율은 자신을 보호하는 호법신장입니다. 또한 계율은 자신의 모든 재앙을 소멸시키는 묘약입니다. 사찰에서는 기복적인 신앙을 조장할 것이 아니라 모든 불자들로 하여금 오계를 수지하도록 적극 권장할 일입니다. 오계만 잘 지키면 굳이 기복신앙에 매달릴 필요가 없어집니다. 부처님은 잘못을 저지르고 참회하기보다 처음부터 참회할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것을 최상으로 삼았습니다. 계율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지 결코 남을 위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계를 지키면 얻게 되는 공덕 혹은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4. 팔재계와 보살십중대계의 밑바탕에는 항상 오계가 있는데요, 그만큼 부처님 제자에게 있어서 오계는 가장 근본이고 반드시 지켜야 하는 계율이라고 생각됩니다. 오계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짚어주시지요.

 

이 세상에서의 온갖 비난과 지탄, 그리고 불행과 불화는 기본적인 오계를 준수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재가자로서 이 기본적인 오계만 잘 준수한다면 남으로부터 어떠한 비난도 받을 것이 없게 될 것입니다.

 

15. 많은 사찰에서 관음재일, 지장재일 등 재일을 중심으로 법회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이것 역시 원래는 팔재계를 지키는 뜻에서 시작된 것인가요?

 

, 그렇습니다. 초기불교교단에서 실시해 오던 삼장월(三長月) 육재일(六齋日)의 변형된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16. 계를 수지하는 것에 대해 두 가지 상반된 생각들이 있습니다. 한 쪽에서는 보살계는 앉아서 받고 서서 파해도 공덕이 크다고 해서 몇 번이고 보살계를 받는 분들도 있고, 계율을 제대로 지키지 못할 바에는 받지 않는 것이 낫다고 해서 아예 보살계를 받지 않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옛 스님들이 보살계는 앉아서 받고 서서 파해도 공덕이 된다는 말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해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말은 율사가 해서는 안 되는 말입니다. 예전에는 보살계를 수여할 때 돈을 받았기 때문에 보다 많은 동참자를 모집하기 위해 방편으로 했던 것입니다. 돈을 받고 보살계를 설한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오계이든 보살계이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받아야 합니다. 계의 정신을 잊지 않기 위함입니다. 남방불교에서는 매 법회 때마다 오계를 설합니다. 오계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기 위함입니다.

 

17. 초기불교와 대승불교시대.. 재가불자의 계율에 대해서 두 차례에 걸쳐서 살펴봤는데요. 초기불교의 계율전통과 대승불교의 계율전통에 비춰서 볼 때 재가불자들이 반드시 기억하고 또 지켜져야 하는 정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모름지기 불교도라고 한다면, 그가 상좌불교도이든 대승불교도이든 최소한 오계의 정신을 잊어버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남으로부터 비난과 지탄을 받는 것은 오계를 지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인간으로서 도덕적 규범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남으로부터 존경을 받지 못합니다. 계율은 자신을 위해 꼭 지켜야 하는 덕목인 것입니다.

 

18. 불교수행에 있어서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은 계정혜 삼학입니다. 그런 점에서 선정과 지혜의 기초가 되는 계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텐데요. 마지막으로.. 계율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정리 말씀 부탁드립니다.

 

불교의 수행은 삼학(三學)의 체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삼학은 윤리적 규범인 계(sīla), 정신적 수행인 정(samādhi), 지혜의 연마인 혜(paññā)를 말합니다. 이 세 가지 가운데 지계가 가장 중요합니다. 도덕적 규범은 보다 높은 정신적 성취를 위한 불가피한 기반으로 간주되고 있고, 도덕적 기초 없이는 어떠한 정신적 발전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오늘은 대승보살계의 기원과 의미에 대해서 살펴봤는데요. 계율은 깨달음의 니르바나에 이르는 뗏목이자 지금 이 세상에서 행복을 누리는 기초가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금년 한 해 동안 금요논강에서는 팔리문헌연구소 소장이신 마성스님 모시고 매월 한 차례씩 불교의 근본정신과 전통에 비추어서 오늘의 문제까지 귀한 말씀 나눴습니다. 그동안 여러 주제에 대해서 근본사상에 입각해서 정확하고 냉철하게 진단해주신 마성스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