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려의 모자 유감

 

2018101일 미국 영부인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가 아프리카 4개국 순방 중 케냐 나이로비 국립공원을 방문했을 때, 하얀색 피스 헬멧’(pith helmet)을 착용하여 많은 비난을 받았다. ‘피스 헬멧19세기 아프리카 식민지배의 행정관이 햇볕을 가리기 위해 쓴 것으로 지휘와 억압의 상징이다. CNN은 이 모자가 유럽 군인들이 그들의 식민지인 아프리카와 인도 등지에서 널리 쓰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1930년대에는 식민지에 거주하거나, 식민지를 방문하는 유럽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모자가 되었다. 즉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피스 헬멧은 곧 식민지배의 상징과도 같은 모자인 셈이다.


피스 헬멧(pith helmet)를 쓴  미국 영부인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


우리나라에서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로 유명한 유홍준 교수가 즐겨 쓰는 모자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피스 헬멧을 한국의 승려들이 쓰고 다닌다. 지난해 북한 방문 때에도 어떤 스님과 유홍준 교수가 이 피스 헬멧을 쓰고 있었다. 그들은 식민지배의 상징인 피스 헬멧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모양이다. 또 어떤 승려는 31절 기념행사장에서 피스 헬멧을 쓰고 있었다. 그는 이 모자가 식민지배의 상징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듯하다.

 

동남아시아 불교국가의 불교도들은 모자를 쓰지 않는다. 이러한 전통은 붓다시대부터 내려오는 불교의 고유한 풍습이다. 붓다는 제자들에게 두건이나 모자를 쓰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두건이나 모자를 쓴 사람에게는 설법도 하지 말라고 계율로 제정했다. 이 때문에 상좌불교 국가에서는 출가자인 비구와 비구니는 물론 우바새와 우바이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모자를 쓰지 않는다. 특히 사찰을 참배할 때는 절대로 모자를 쓰지 않는다.

 

붓다는 율장에서 승려는 어떠한 경우에도 머리에 천을 두르거나 천으로 머리를 감싸지 못하도록 했다. 머리에 천을 두르거나 천으로 머리를 감싼다는 것은 지금의 두건이나 모자를 쓰는 것을 말한다. 빨리율의 중학법(衆學法) 23조에 나는 머리를 감싼 채로 속가에 가서는 안 된다고 배워야 한다.”고 했다. 이 계는 사분율중다학법(衆多學法) 7<복두백의사계(覆頭白衣舍戒)>에 해당되는데, “머리를 덮어씌우고 백의사(白衣舍, 속가)에 들어가지 말라는 것을 마땅히 배워야 한다.”는 뜻이다.

 

빨리율의 중학법 제24조에 나는 머리를 감싼 채로 속가에 가서 앉아서는 안 된다고 배워야 한다.”고 했다. 이 계는 사분율중다학법 제8<복두백의사좌계(覆頭白衣舍坐戒)>에 해당되는데, “머리를 덮어씌우고 속가에 들어가 앉지 말라는 것을 마땅히 배워야 한다.”는 뜻이다.

 

중학법 제23조와 제24조의 제계(制戒) 인연은 다음과 같다. 사분율에서는 비구가 머리를 덮어씌운 것을 보고 사람들이 도적과 같다고 비난하였기 때문에 이 계가 제정되었다고 한다. 마하승기율에서는 6군비구가 머리를 가리고 속가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어찌하여 사문석자(沙門釋子)가 방일한 음녀와 같이, 도적이나 첩자와 같이, 신부와 같이. 꿀을 채취하는 사람과 같이 머리를 가리고 속가에 들어가느냐.”고 비난하였다. 신부는 부끄럽기 때문이고 꿀을 채취하는 사람은 벌에 쏘이지 않기 위해서이지만, 방일한 음녀도적첩자가 머리를 가리는 것은 나쁜 의도를 숨기기 위함이다. 따라서 비구가 머리를 가리는 것도 나쁜 의도를 가진 것으로 취급된다.

 

십송율에서도 6군비구가 머리를 가리고 속가에 들어가는 것을 거사들이 보고 사포인(伺捕人)을 닮았다고 화를 내며 가책하였다고 한다. 사포인이란 숨어서 남의 행동을 엿보고 있다가 체포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처럼 인도인들은 머리를 천으로 감싼 사람을 혐오했다.

 

또한 빨리율중학법 제66조에 나는 병이 없음[無病]에도 머리에 천을 두른 자에게 법을 설해서는 안 된다고 배워야 한다.” 67조에 나는 병이 없음에도 머리를 덮은 사람에게 법을 설해서는 안 된다고 배워야 한다.”고 되어 있다. 빨리율중학법 제66조와 제67조는 사분율중다학법 제54<복두인설법계(覆頭人說法戒)>와 제55<이두인설법계(裏頭人說法戒)>에 해당된다.

 

빨리율중학법 제66조 머리에 천을 두른 것을 전두(纏頭, veṭṭhitasīsa)’라 한역하였고, 67조의 머리를 덮은 것은 복두(覆頭, oguṇṭhitasīsa)’라 한역하였다. 전두는 두건이나 수건으로 머리를 감싼 것을 말하고, 복두는 머리를 덮은 것이기 때문에 오늘날의 모자를 쓴 것과 같다. 예나 지금이나 두건이나 모자를 쓴 채 법을 듣는다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마하승기율에서는 복두(覆頭)란 머리를 모두 덮은 것이다.”(T22, p.409a)고 해석했고, 전두(纏頭)란 머리에 천으로 둘러도 머리 위를 남기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마하승기율에서는 이와 같이 미묘법을 듣고자 할 때에는 머리 위의 가리개를 벗겨야 하는데 어찌하여 머리를 가리고 청법(請法)할 수 있겠는가?”(T22, p.409a)라고 비난하고 있다.

 

이러한 불교의 전통 때문에 동남아시아의 불교도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모자를 쓰지 않는다. 다만 동아시아에서는 혹한기(酷寒期)와 혹서기(酷暑期)에 추위와 더위 때문에 실외에서 모자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실외에서 모자를 쓰는 것이 용인되었지만, 실내에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모자를 쓰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요즘에는 승려들이 멋을 내기 위해 패션으로 여러 가지 모자를 번갈아가며 쓰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행위가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에 위배되고, 사문의 위의에 어긋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승려는 반드시 율장을 배워야 한다.

 

한편 다른 종교에서는 모자를 쓰는 것이 하나의 전통으로 되어 있다. 이를테면 무슬림들은 종파와 전통에 따라 남자들은 챙이 없는 모자, 페즈를 쓰거나 터번(turban)’을 두른다. 아랍권의 남자가 쓰는 모자는 엎드려 절하기 때문에 챙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2019. 5. 16.

마성 이수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