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신학



1. 책이름


“출애굽기”의 히브리어 제목은 “베엘레 쉐모트”(“이 것들은…의 이름들이다”란 뜻), 혹은 줄여서 “쉐모트”(“이름들”)이다. 고대의 관습을 따라서 이 책의 처음에 나오는 단어들을 책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
“출애굽기”라는 제목은 칠십인경의 제목인 “Exodoj”에서 파생되었다. 뜻은 “탈출기”이다. “출애굽기”는 이 것의 의역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 이러한 제목이 붙게 된 이유는 이 책 1-15장에 나오는 출애굽 사건이 너무나도 강렬한 인상을 독자들에게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출 15장 이후의 본문에서도 출애굽에 대한 언급이 자주 나온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제목은 어느 정도는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이다(출 16:6; 18:1-12; 19:3-4; 20:2; 22:20-21; 23:9,15; 29:45-46; 32-34).
그러나 우리는 출애굽기가 “출애굽” 사건 외에도 여러가지 내용들을 풍성하게 담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출애굽기는 여러 가지 율법들(12:1-28,43-49; 13:1-16; 20:1-17; 20:22-23:19)을 담고 있으며, 또한 언약 (출 19-24), 성막 건설(25-31; 35-40), 광야에서의 이스라엘의 다양한 경험 (15:25; 16:4; 17:2,7; 20:20)등의 내용들을 담고 있다.

2. 주변 책들과의 관계
출애굽기는 오경 및 오경 이후의 역사서의 일부분이기도 하지만 또한 시작과 끝이 분명하게 표시되어 있는 하나의 독립된 책이기도 하다.
우선 출애굽기는 오경의 일부임이 분명하다. 창세기 없는 출애굽기는 생각할 수 없다. 만약 창세기가 없다면 우리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종살이하게 된 배경을 알 수 없으며, 또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가나안 땅으로 데려가려고 하시는 지에 대해서도 그 동기를 파악할 수가 없을 것이다.
출애굽기는 레위기나 민수기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특히 장소적인 측면에서 출애굽기 19장에서 민수기 10장에 이르는 방대한 본문은 시내산이라는 공통적인 배경을 통해서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고 있다.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이 방대한 본문은 언약, 율법, 성막 등의 주제를 통해 공고하게 연결되어 있다.
또한 출애굽기 15:22-18:27의 광야에서의 사건들은 민수기 11장 이후의 광야에서의 사건들과 여러 면에서 상응한다.1 물 사건(출 15:22-27; 17:1-7; 민 20:1-13), 만나와 메추라기 이야기(출 16; 민 11:4-35),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임명하는 이야기(출 18:13-27; 민 11:24-30) 등 많은 이야기들이 양 쪽에 반복되어 나타난다.2 그러므로 출애굽기와 민수기의 이 두 본문에 나오는 비슷한 사건들은 양자를 함께 고려할 때에야 바른 해석이 가능하다.
출애굽기는 또한 오경 이후의 책들과도 연결되어 있다.3 이스라엘의 출애굽의 목적은 모세오경 내에서 완성되어지지 않는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목표는 가나안 입성이지만 오경의 마지막 책인 신명기는 모세가 그 가나안 땅을 바라보면서 죽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그리고 이 목표는 오직 여호수아서에 가서야 완성되어진다.
“요셉의 뼈”(창 50:25; 출 13:19; 수 24:32)4란 주제는 출애굽기가 주변 책들과 가진 관계를 응축해서 보여준다. 출애굽기의 배경이 되는 책인 창세기에서 요셉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에 대한 확신 속에서 자신의 아버지 야곱의 시신을 가나안 땅으로 가져가서 장사하였으며, 차후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때 자신의 뼈를 가지고 나가줄 것을 당부한다. 이스라엘은 출애굽시에 요셉과의 약속을 지키며, 여호수아의 정복작업이 완성된 후에 이스라엘은 야곱이 가나안에 사 놓은 땅에 요셉의 뼈를 장사지내는 것이다.
이처럼 출애굽기는 주변의 책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반면에 또한 그 자체로서 뚜렷한 시작과 끝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우선 출애굽기의 시작 본문인 1장1-7절은 창세기와 출애굽기간의 수 백년의 기간을 몇 개의 간략한 문장과 축약된 형태의 족보를 통해서 요약해 줌으로서 창세기 50장과 출애굽기 사이에 확실한 선을 그어준다. 이 본문을 전후로 해서 한 가족의 역사는 한 민족의 역사로 바뀌어지는 것이다.
출애굽기의 마지막 문단인 40장 34-38절 역시 출애굽기를 하나의 독립된 책으로 만드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34-35절은 완성된 성막에 “여호와의 영광”이 충만하게 내리는 것을 묘사하고 있고 36-38절은 성막을 통한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이스라엘이 광야 여행을 계속 해나가는 것을 시적인 문체로 그리고 있는데, 이 두 가지 내용이야 말로 출애굽기 3장 7-10절에서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시면서 처음으로 밝힌 하나님의 계획의 잠정적인 성취를 말해주는 것이다. 특히 36-38절의 내용은 민수기서 10장에서 이스라엘이 시내산을 떠나 광야 여행을 재개한 이후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의 일들을 압축해서 묘사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처럼 사건의 순서를 뒤바꾸어서 오랜 기간의 일들을 갈무리하는 서술 방식은 흔히 하나의 책을 마무리지을 때 사용되는 서사적인 기법이다.
내용상으로도 출애굽기는 어느 정도 독립성을 갖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특히 “노역에서 예배로”(from slavery to service), 그리고 하나님의 “부재에서 임재로”(from absence to presence)라는 수미쌍괄식 틀을 갖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즉, 출애굽기는 바로를 섬기는 것(출 1장)에서 시작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출 40장)으로 끝이 나며, 하나님의 손길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암울함(출 1장)에서 시작해서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하게 느껴지는 찬란함(출 40장)으로 끝을 맺는, 처음과 시작이 대비적으로 상응하는 구조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출애굽기는 앞뒤의 책들과 연관성이 있으면서도 나름대로의 독립성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 출애굽기의 신학
출애굽기는 그 내용이 다양한 만큼 그 신학적인 메시지도 다양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 신학적인 가르침을 몇 가지로 추려내는 것은 항상 위험한 작업일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위대한 책의 메시지를 몇 가지로 정리해 보는 것은 우리가 이 책을 읽어나가는 데 있어서 하나의 지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출애굽기의 신학적 주제로서 특히 강조되어 온 것들로는 “구속”, “언약”, “율법” 등이 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전통적인 강조점 이외에 더 최근에 부각되어지는 신학적 주제들인 “창조”, “지식”, “임재”, “관계” 등을 먼저 다루고 나서 이 전통적인 주제들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한다.5

1) 창조
최근에 와서 출애굽기와 관련하여 부각되어지는 신학적 주제는 “창조”이다. 출애굽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창조 신학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이 책의 첫 단락, 그 중에서도 특히 1장 7절의 “생육이 중다하고 번식하고 창성하고 심히 강대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는 말씀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인간에게 준 지상 명령을 연상시킨다(창 1:28; cf. 창 9:1,7).
출애굽기 마지막의 성막 이야기(25-31; 35-40)는 창조 기사를 연상시키는 여러 가지 문학적인 기법들로 가득 차 있다.6 25-31장은 칠중 구조를 띠고 있는데, 일곱 번 나오는 “하나님이 가라사대”(25:1; 30:11,17,22,34; 31:1,12)라는 문구가 이 일곱 부분의 경계선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창세기 1장의 칠중구조 및 7일간의 창조를 떠올리게 만든다. “하나님이 가라사대”란 문구는 창조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상기시켜준다. 또한 25-31의 칠중 구조로 된 문단들 중 마지막 문단인 31:12-17이 안식일에 대한 규례를 말하고 있다는 점은 창조 기사 중 마지막 칠일 째 되는 날을 하나님께서 안식하는 날로 제정하신 것과 상응한다.
창조와의 관련성은 성막 이야기의 두 번째 부분인 35-40장에도 역시 많이 나타난다. 출 39:1-31의 제사장 옷의 제작에 대한 기록과 40:17-33의 성막 건설에 대한 기록이 각각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되니라”(as Yahweh commanded Moses)라는 문구에 의해 칠중구조로 짜여져 있다. 또한 39:42-43의 “이스라엘 자손이 모든 역사를 필하매…모세가…본즉…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되었으므로…축복하였더라”는 말씀 역시 창 1장1절-2장3절에서 하나님께서 만물이 그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을 보시고 축복하셨다는 기록을 상기시킨다. 물론 양자 간에 사소한 차이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이러한 차이점은 보고 축복하는 주체가 각각 하나님과 모세라는 차이점에 기인하는 것이다.
첫째, 창조 신학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속하시는 것이 단지 한 민족의 해방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이스라엘의 구원의 궁극적인 목적은 모든 피조물을 향한 것이다(9:16,29; 19:5; cf. 8:22; 9:14). 출애굽은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주인이심을 알리는 방편이다.
정리하면, 출애굽기의 저자는 성막 이야기를 창세기 1장을 상기시켜 주는 형태로 기술함으로써 성막이 하나님의 재창조라는 메시지를 말해주고자 한다.
출애굽기에서 “창조”라는 주제가 본문의 틀을 형성하고 또 내용의 바탕의 깔려 있다는 사실은 이 주제가 출애굽기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단서가 된다는 것을 시사해준다.
둘째, 이러한 창조 명령의 수행 임무를 가진 이스라엘을 멸절하고자 하는 바로의 시도는 하나님의 창조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러한 반창조 행위로부터 구원하시고자 하신다.
셋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부르신 것은 온 피조 세계와 연관이 있다. 이스라엘이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은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으니”라는 구절과 연관되어 나타난다. 이스라엘은 “마치 제사장이 신앙 공동체 안에서 행하는 것과도 같은 역할을 여러 민족들 가운데 수행해야 한다”. 하나님의 구속행위에 대한 이스라엘의 증언과 율법에 대한 이스라엘의 순종은 하나님의 우주적인 선교와 연관이 있는 것이다(참고 출 18:8-12).

2) 지식
출애굽기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또 하나의 주제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다. 우선 “나를 여호와인줄 알게 하리라”는 주제가 출애굽기를 관통하고 있다. 열 가지 재앙은 이스라엘을 보내주라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모세를 통해서 듣고 바로가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도 보내지 아니하리라”(5:2)고 대답한 것에 대한 응답이다. 하나님은 “내 손을 애굽 위에 펴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야 애굽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고 말씀하신다. 이후 이 “여호와를 앎”이란 주제는 재앙 기사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 애굽 사람들은 심판을 받는 것을 통해서 여호와를 알게 되며(7:17; 8:10,22; 9:14,29; 14:4,18),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위해서 싸우시는 것을 봄으로써 여호와를 알게 된다(10:2).
이 커다란 구원 행위의 결과는 믿음이다.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믿게 된다(14:31). 출애굽기 15장1-18절과 15장21절의 노래는 하나님을 알게 된 결과로 터져 나오는 찬송이다. 애굽에서의 광야 이야기들 속에서도 이 주제는 계속 나타난다(16:6:12; 18:11). 애굽에서는 구원행위를 통해서 여호와를 알게 되었다면 광야에서는 돌보심을 통하여 여호와를 알게 된다. 마지막으로 출애굽기 19장1절-24장11절의 언약 체결과 24장12절-40장38절의 성막 건설은 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귀결점이라고 할 수 있다.

3) 임재
“하나님의 임재”라는 주제 역시 출애굽기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하다.7 서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출애굽기는 “부재에서 임재로”(from absence to presence)라는 수미쌍괄식 틀을 갖고 있다. 출애굽기 1-2장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크게 느낄 수가 없다. 반면에 출 25-40장의 성막 건설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란 주제가 전면에 부각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임재”라는 주제는 출애굽기의 중요한 전환점인 2:23-25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시면서 전면에 부각되기 시작한다. 하나님은 직접 “내려 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에 이르려”고 결심하신다. 그리고 “내 백성”을 보내줄 것을 바로에게 요구하신다(5:1). 하나님의 개입과 이스라엘에 대한 소유권 선언은 이스라엘에게는 축복이고 바로와 애굽에게는 저주다(특히 8:22-23; 9:4,6,26; 10:23). 13:21-22는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전 광야 생활 중에 경험하는 하나님의 임재를 아름다운 서정적 문체로 약술해서 묘사하고 있다.
15:22-18:27은 하나님께서 광야 여정 중에서 이스라엘과 어떻게 함께 하셨는지를 구체적인 사건들을 통해서 이야기해주고 있다. 특히 17:7은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 하는 것이 광야 이야기들의 중대 관심사임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출 19:1-24:11의 시내산 언약은 이미 존재하던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간의 관계의 재정립이자 합의이다. 이 언약을 통하여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공식적으로 언약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성막(25-31; 35-40)은 출애굽기의 하나님의 임재 신학의 꽃이다. 성막을 통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 가운데 충만하게 임하신다. 출애굽기의 마지막 문단인 40:34-38은 13:17-22처럼 다시 한 번 하나님이 광야 여정 중 이스라엘 가운데 함께 하심을 서정적인 문체로 기술하고 있다.

4) 관계
앞의 “임재”라는 주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출애굽기의 또 하나의 중요한 신학적 주제는 “관계”이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고역으로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그들을 권념하신다. 이스라엘 자손을 보호하시기 위한 첫 조치로서 모세를 부르시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내 백성”임을 선포하신다(3:7,10). 이 “내 백성”이란 용어는 출애굽기 전체를 통해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5:1; 7:4,16; 8:1,20-23; 9:1,13,17; 10:3). 바로와 애굽인들에게 강한 손을 펴실 때 하나님은 “내 백성”과 “네 백성”(8:3-4,21,23; 9:14-15)을 구별하신다. 특히 8장23절은 양자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하나님과의 관계의 차이가 운명의 차이를 가져다 주는 것이다.
“내 백성”이냐 “네 백성”이냐 하는 것의 중요성은 32-34장에서 특히 부각되어진다. 그 전까지 이스라엘 백성을 항상 “내 백성”이라고 부르시던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우상 숭배의 죄를 짓자, 그들을 “네 백성” ($m[]이라고 부르심으로써 관계의 단절을 선언하신다(32:7). 관계의 단절은 단순히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 것은 곧 이스라엘의 멸망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내 백성”이 아닌 이스라엘을 진멸하고, 모세를 새로운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고자 하신다(32:10). 이 것은 이스라엘이 역사 상 가장 치명적인 위험을 겪는 순간이다. 보호자에서 적으로 관계가 바뀌는 순간 이스라엘의 운명은 경각에 처한다. 오직 모세의 지혜롭고 집요하고 결사적인 중보기도만이 이스라엘을 이 위기에서 구원해낸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대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해주겠다고 영광스러운 제안을 하신 것을 무시하고 집요하게 이스라엘이 “주의 백성”($m[]임을 주장한다(32:11-12; 33:13,16[x2]).8 그는 자신이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는 기회를 과감히 포기한다. 심지어 그는 하나님께서 이 백성의 죄를 용서해주지 않으시면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리시기를 간구한다(32:32). 그는 이 죄 많은 백성과 자신의 운명을 같이 할 것임을 하나님 앞에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찌라도 원하는 바로라”고 한 로마서 9:3의 바울의 말은 모세의 이 중보기도를 모델로 한 듯 하다. 이러한 모세의 처절하면서도 효과적인 중보기도는 결국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내고,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회복된다(34:10-28).
결국 이 관계의 회복을 통하여 이스라엘은 비로소 하나님의 임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된다. 35-40장에서 이스라엘은 성막을 완성하고 하나님은 구름 속에서 영광을 나타내심으로서 관계의 완성을 상징적으로 나타내 주신다.

5) 구속, 언약, 율법
전통적으로 출애굽기의 핵심 신학으로 제시되어온 “구속”과 “언약”과 “율법”은 이미 앞에서 여러 번 간접적으로 암시된 것처럼 위의 신학적인 주제들과의 연관성 속에서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이 신학적 주제들은 그 자체로도 상호 간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출애굽기의 처음 열다섯 장을 차지하는 하나님의 구원의 이야기의 토대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이다(2:24). 이 언약에 근거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내 백성”으로 파악하고, 그들을 바로의 손에서 건져내어 아브라함에게 이미 약속한 땅으로 인도하시고자 하는 것이다(3:7-8).
반대로 출 19-24장에서 언약을 맺을 때는 애굽에서의 하나님의 구원 행위가 언약의 토대로서 작용한다(19:3-4). 율법은 구원자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에 맺어진 언약의 규례들이다. 이 규례들에도 역시 애굽에서의 하나님의 구원 행위가 부각된다. 십계명의 서두는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는 것을 명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20:2). 20:22-23:19에 나오는 규례들에서도 역시 애굽에서의 경험과 구원이 중요한 사상적 배경을 제공해준다(22:21; 23:9,15).

4. 출애굽기의 구조
신학적 주제들과 더불어 출애굽기 본문의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출애굽기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큰 도움을 준다. 구조분석은 이런 점에 있어서 유용하다.
지난 30여년 동안 구약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 온 문학비평, 그 중에서도 특히 수사비평이 세운 공헌으로 인해 성경주석가들은 구조분석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그 부산물로서 우리는 구조분석을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그 분석의 객관성을 지나치게 신봉하여 그 분석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해석을 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구조 분석은 해석자가 본문을 다룰 때 활용할 수 있는 수많은 자료들 중의 하나일 뿐이며, 통상적인 관념과는 달리 상당히 주관성을 띨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주관성은 본문의 구조를 파악하는데 있어서 고려해야 할 구조 분석 지표들이 상당히 다양하고, 어느 지표에 중점을 두느냐 하는 것에 따라 본문의 구조가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에 기인한다. 또한 출애굽기와 같이 서사(敍事, narrative) 형태로 되어 있는 본문은 그 본질상 우리가 두부모 자르듯이 반듯하게 각 부분을 구획하는 것은 불가능하다.9
출애굽기의 각 부분은 페르시아 양탄자의 각 부분의 문양들이 서로 오묘하게 얽혀 있고, 푸가 형식의 악곡들의 각 부분들이 대위법적으로 치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그렇게 서로 얽히고 설켜 있다.10 수많은 중첩 구조들(overlapping structures), 연결고리들, 나중에 일어날 일들에 대한 복선이나 예고, 앞에 일어난 일에 대한 빈번한 재 언급 등을 통하여 출애굽기의 각 부분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또한 출애굽기의 각 부분에는 앞에서 언급한 다양한 신학적 주제들이 복잡하게 교차하고, 몇 글자로 요약할 수 없는 다채로운 내용들이 뒤섞여 있기 때문에 우리가 본문을 간략한 구조로 분해해 놓고 각 부분에 몇 글자로 제목을 달아주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본문에 대한 반역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이 것이 바로 구조분석이 가진 큰 위험들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구조분석이 가진 위험과 한계들을 잘 이해하고 조심한다면 구조분석이 가지는 장점도 크다. 구조분석은 우리에게 본문에 대한 약도(略圖)와 같은 역할을 해 줄 수 있다. 약도가 실제 지리와는 차이가 있지만 우리에게 목적지의 방향성과 위치 등에 대한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듯이 본문의 구조 역시 비슷한 역할을 해줄 수 있다. 또한 구조분석은 본문의 각 부분이 전체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 그리고 다른 부분과의 관계에 대한 이해를 도와줄 수 있다.
여기에서 제시하는 출애굽기의 전체 구조, 그리고 앞으로 다루어질 각 부분의 세부 구조를 다룰 때 우리는 구조 분석이 가진 장점과 단점, 공헌과 한계 및 위험성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며, 구조분석이 결국은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주관적인 것임을 이해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출애굽기의 전체 본문은 대강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 듯 하다:
I. 서설(1:1-7)
II. 애굽의 압제에서의 하나님의 구원(1:8-15:21)
III. 광야에서의 하나님의 돌보심(15:22-18:27)
IV. 언약의 체결(19:1-24:11)
V. 성막을 통한 임재(24:12-40:38)
우선 I의 서설은 창세기와 출애굽기간의 다리 역할을 한다. 이 짧은 문단은 창세기의 내용들을 아울러서 갈무리해주며, 출애굽기의 이야기들의 배경을 제공해 준다.
II의 출 1:8-15:21의 내용은 플롯적인 측면에서만 보면 그 자체로 분명한 시작과 끝을 가진 하나의 훌륭한 짜임새를 갖춘 본문이다. 출애굽기의 배경으로서의 바로의 압제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바로의 죽음과 출애굽의 성공으로 끝이 난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내용들도 서로 유기적으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숨막히게 진행된다. 그러나 일부 주석가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은 이미 출 13:17-22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14장의 내용은 뒤의 광야에서의 이야기들과 유사한 내용과 패턴을 갖추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13:17-15:21이 앞의 출애굽 이야기와 뒤의 광야에서의 이야기들 사이를 연결시켜주는 고리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III과 IV의 경우는 거시적인 측면에서는 방금 앞에서 지적한 사항을 제외하고는 뚜렷한 언급이 필요 없는 듯 하다. 반면에 V는 상당히 흥미로운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약간의 설명을 해 줄 필요가 있다. 이 본문을 조금 더 자세하게 살펴보면 “성막” 이야기와 “황금 송아지” 이야기의 두 부분이 24:12-18의 서론부 다음에 샌드위치 모양으로 엮어져 있다:

24:12-18 (서론부)
25-31 (성막)
32-34 (황금 송아지)
35-40 (성막)


이 흥미로운 연결에 대해서 전통적인 주석들은 거의 대부분 침묵하고 있다. 그리고 전통적인 저작설을 거부하는 역사비평학자들은 황금 송아지 이야기와 성막 이야기가 서로 다른 저자에게서 나왔다고 주장함으로써 이 문제를 간과한다. 그러나 사실 출애굽기의 저자는 이 양자의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샌드위치 모양으로 연결시킴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이 둘을 연결시켜 읽을 것을 지시하고 있다. 우리가 이 두 본문을 연결시켜 읽게 될 때 이 V의 본문은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단순한 일차원적인 말씀이 아니라 입체적인 말씀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게 된다.

5. 정리
출애굽기 강해를 시작하면서 이번 글에서는 책이름에 대한 설명, 주변 책들과의 관계, 신학, 구조등 출애굽기 본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사항들을 거시적인 측면에서 갈무리 해 보았다. 다음 호부터는 출애굽기 본문 자체를 다루게 될 것이다.


1 이에 대한 최근의 연구는 Terry. L. Burden, The Kerygma of the Wilderness Traditions in the Hebrew Bible (New York: Peter Lang, 1994)를 보라.

2 특히 출애굽기와 민수기의 광야 사건들의 교차대구법적 구조에 대해서는 Aaron Schart, Mose und Israel im Konflikt (Go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1990): 49-57을 참고하라.

3 성경의 책들은 모두 끝이 열려 있다. 창세기는 약속의 시작을 보여줄 뿐 성취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경 역시 하나님의 약속이 완성되어지지 못한 채, 단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바라보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여호수아서 역시 결말이 아니라 이후의 이스라엘의 행동 여부에 따라 운명이 결정될 것임을 암시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열왕기서 등의 역사서들의 끝은 전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선지서들 역시 미래를 바라본다. 심지어는 요한계시록마저도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미래에 되어질 일에 대한 간구를 함으로써 열린 채로 끝을 맺는다.

4 요셉의 “뼈”란 단어는 히브리어 원문에서는 전부 동일한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개역한글판 성경은 위 세 본문에서 각각 “해골”, “해골”, “뼈”로 번역하고 있고, 표준새번역은 “뼈”, “유골”, “유해”로 번역하고 있다. 이런 중요한 주제에 대해서 원문이 일관된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경우 번역본들도 그 일관성을 보존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원문을 직접 볼 수 없는 독자들도 성경원문의 저자들의 의도를 더 잘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5 이 신학적 주제들은 특히 테렌스 E. 프레다임, 출애굽기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2001): 39-54에 힘입은 바가 크다. 그러나 세부적인 내용은 필자 자신의 관찰이 상당부분 포함되어 있다.

6 Peter I. Kearney, “Creation and Liturgy: The P Redaction of Ex 25-40”, ZAW 89: 375-89.

7 최근에 한글로 번역된 존 더햄, 출애굽기 (서울: 솔로몬, 2000)는 하나님의 임재를 출애굽기의 중심 신학으로 취급하고 있다.

8 히브리어로는 “네 백성”과 “주의 백성”이 $m[로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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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출애굽기의 본문에 대한 이러한 관찰은 Joanna Dewey, “Mark as Interwoven Tapestry: Forecasts and Echoes for a Listening”, CBQ 53: 221-36에 상당한 영향을 받은 것이다. Dewey의 견해는 성경의 다른 책들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