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하나님 

 

고흐의 캔버스에 깃든 하나님의 흔적

 

오래전 파리의 한 미술관에서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년)의 자화상과 마주쳤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자화상이 진열된 방에 들어선 순간, 그 공간에 있던 다른 모든 그림은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오직 그 자화상이 내게로 돌진해 왔다. 꿈틀대는 붓질이 마구 내면을 헤집었다. 다시 보니 그건 그림이 아니라 살아 있는 빈센트였다. 그의 고통과 절망과 외로움이 내게로 전이되었다. 그 그림 주변에서 서성였지만, 그 그림을 오래 응시할 수 없었다.
  
끝없이 계속되는 발작 때문에 파괴되는 심신과 씨름하면서도 끝내 붓을 놓지 않았던 화가. 진실한 사랑을 위해 평생 몸부림쳤던 신앙인. 화상․교사․전도사․화가로서 한 번도 성공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 그는 끝내 자기 가슴에 권총을 겨누었다. 빈센트의 비극적인 삶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리고 아프다. 그의 삶과 예술을 다룬 글을 읽을 때 빈센트의 상처받은 37년 생애를 생각하며 애도의 감정에 휩싸인다. 

<고흐의 하나님>, 이 책은 미술 비평가가 아닌 목회자의 글이다. 글쓴이는 네덜란드 화란교회에서 7년간 나그네로서 사역하면서, 평생 나그네로 살다 간 빈센트를 묵상했다. 이 책은 미술 서적이면서 동시에 묵상집이다. 빈센트의 그림과 글을 매개로 우리 신앙과 삶을 조명하는 문장들은 깊고 기품이 있다.

 

“하나님을 아는 좋은 방법은 수많은 것들을 사랑하는 것”
 
빈센트는 아버지를 따라 목사가 되려고 했다. 성경을 너무도 사랑했고 성경대로 살려고 매달렸다. 전도사 양성 학교에 다니면서 광부들을 전도하기 위해서 보리나주 탄광촌에 들어갔다. 그는 단지 앵무새처럼 교리만 외워 전하는 전도자가 아니었다. 고난을 당하는 광부들에게 자기 옷과 음식과 돈을 다 내주고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스스로 광부나 다를 바 없는 생활을 자처했다. 광부들의 비참한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격정적으로 분노하고 저항했다.

그는 매사 자신의 전부를 걸었다. 매춘부를 측은히 여겨 아이들이 딸린 그녀와 동거했고, 농부들을 그릴 때는 농부와 다를 바 없이 살았다. 또한, 화가들을 위한 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고자 했다. 그가 쓴 편지의 한 구절이 뭉클하다.

“나의 유일한 걱정은 ‘내가 어떻게 하면 세상에 유익을 줄 수 있는가?’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빈센트를 부담스러워했고 감당할 수 없었다. 그가 미쳤다고도 했고 실제로 그는 미쳐 가고 있었다. 미치도록 사랑했고 사랑 때문에 더욱 미쳤다. 그의 비극은 하나님과 이웃을 너무 고지식하고 진지하게 사랑했다는 데 있었다.

빈센트는 길지 않은 생애를 살면서 스무 군데 이상 거처를 옮겼다. 평생 걸었고 흙먼지로 뒤덮인 그의 구두는 언제나 너덜거렸다. 정처 없는 나그네 삶이었다. 그가 전도사로서 행한 첫 설교의 주제도 ‘나그네의 삶’이었고 자신의 설교대로 살았다. 반 고흐가 남긴 ‘구두 연작’을 일컬어 글쓴이는 “땅에 대한 애착과 그 땅에 뿌리를 박고 질박하게 살아가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찬사”라고 했다. 우리도 삶의 속도를 줄이고 빈센트처럼 발바닥으로 살면서 발바닥으로 글을 써야 한다고 역설했다.
 
“무릇 온몸 중에서 가장 낮은, 가장 천대받는다고 생각되는 발바닥으로 글을 써야 한다. 발바닥이 아프도록 다니고 난 다음에 글을 써야겠고, 발바닥으로 내려가서 글을 써야겠다. 발바닥으로 쓰는 글은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가서 쓰는 것이요, 온몸의 무게를 다 받치면서 쓰는 글이다.”

빈센트는 ‘사랑’이야말로 하나님을 아는 최선의 길이라고 믿었다. “하나님을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은 수많은 것들을 사랑하는 것이란다”(동생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인상주의가 파리를 휩쓸고 있던 시절에도 그의 시선은 오로지 가난한 사람들의 일상에 집중되었다. 세상의 가장 낮은 곳을 걷고 의 걸으며 외롭고 힘든 사람들과 하나가 되어 그들을 그렸다. 그가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그림을 그렸던 이유도 그림을 통해서 가난한 이웃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고난 받는 종’의 삶을 기꺼이 수용하고 바보 같은 순종을 마다하지 않았던 빈센트를 두고 글쓴이는 말씀을 육화하는 삶이요, 자신만의 성경을 썼다고 했다. 나아가 우리도 고흐처럼 자신의 삶으로 온 세상을 향해 선포되어야 할 하나님 말씀의 투명한 속살을 드러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름다움의 원천이자 상처받는 존재였던 고흐의 하나님
 
빈센트를 ‘기독교 미술가’라고 부를 수 있을까? 기독교 미술이라는 게 뭘까? 빈센트는 성경 이야기를 직접 그리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일상적인 삶의 주제로 신적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 길’을 보이려고 애썼다. 글쓴이는 빈센트의 캔버스에 하나님의 형상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흔적이 있다고 했다. 아울러 기독교적인 주제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기독교적인 관점을 가지고 예술을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런 점에서 보면 빈센트야말로 기독교 미술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에 대해서 빈센트는 당시 주류 신앙인들과 생각을 달리했다. 톨스토이의 영향을 받은 그는 성경의 진리는 시대마다 새롭게 번역되어야 한다고 믿었고, “종교는 사라지지만, 하나님은 영원하시다”라는 빅토르 위고의 말을 좋아했다. 만년의 빈센트가 성직자들의 위선적인 모습에 상처를 입고 교회를 떠나긴 했지만 한 번도 하나님을 부정한 일은 없었다. 오히려 영혼의 더 깊은 곳에서 예수를 찬미하고 진실하게 따르고자 했다. 빈센트에게 있어 하나님은 아름다움의 원천이었고, 일상 속에 항상 계시는 분이었으며, 가난한 자들과 함께 상처받는 존재였다.

글쓴이의 말처럼, 빈센트의 신학은 현실에 깊이 뿌리내리지 못한 나 같은 ‘정통’ 신앙인들을 향하여 뼈아픈 소리를 내지른다. 사회주의자로서 자본주의에 저항하고 공동체적인 삶을 꿈꾸었던 빈센트의 생애는, 말만 번드르르할 뿐 실제 생활은 온통 맘몬 체제에 물든 우리를 고발한다. ‘자본주의 신학’에 파묻힌 오늘의 기독교에 대한 글쓴이의 쓴소리다.

“개혁된 교회는 계속해서 개혁되어야 하는데 작금의 종교개혁은 교회 안에까지 들어온 자본주의 신학을 몰아내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 자본주의가 위로의 방식에도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위로를 물질적인 것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돈을 쥐여 주는 것으로 모든 위로를 대신하려는 것을 본다.” 

기독교가 맘몬 체제와 그토록 쉽게 타협하면서도, 다른 종교에 대해서는 도무지 이해하지 않으려는 태도도 지적되었다. 글쓴이는 사람이 종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가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는 점을 언급하며 ‘복음의 외피인 종교적인 전통과 믿음의 양태를 고집스럽게 붙잡고 있는 것’이야말로 우상을 섬기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일갈했다. 나아가 우리나라에 복음이 선포되기 전에 존재하던 다양한 종교들의 역할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고, “보편 교회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으면서 가장 한국적인, 가장 동양적인 기독교”를 세워 보자고 했다.

 

고흐의 상처를 통해 나의 상처가 치유되다
 
흔히들 빈센트를 ‘광기의 천재 화가’라고 말하며 신비화하는데, 이는 편협한 생각이다. 그는 누구보다도 이성적이고 지적인 사람이었다. 영어‧불어‧네덜란드어‧독일어에 능통했던 빈센트의 손에는 성경을 비롯한 당대 지식인들의 책이 항상 들려 있었고, 본인 역시 지식인으로서 동시대의 사회 문화적 상황을 분명하게 통찰하고 있었다. 종종 발작에 시달리긴 했지만, 삶과 그림을 일치시키기 위해 지적으로 고뇌하고 부단히 실천했던 화가였다. 가난한 사람을 향한 관심과 사랑도 그의 지성과 무관하지 않았다. 빈센트가 남긴 수많은 편지를 보면 그가 얼마나 정상적인 사람이었는지 이해하게 된다.

<고흐의 하나님>은 고흐에게 덧씌워진 각종 신화를 걷어 내고, 한 사람의 화가이자 진실한 신앙인이었던 고흐의 생애, 그 깊은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끝내 자살로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삶과 직면하는 일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렇지만, 고흐의 상처와 우리의 상처가 만나는 지점에서 치유의 신비를 경험하게 된다. 고흐야말로 ‘상처 입은 치료자’고 고흐의 하나님은 곧 상처 입은 자의 하나님이다. 과연 우리의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 복음과 상황 -

 

'칠흑같이 어두운 배경 속에 두꺼운 성경 한 권이 펼쳐져 있다. 이 성경은 빈센트의 부친 책상 위에 늘 펼쳐져 있던 가보(家寶) 성경이다. 성경 옆에 촛대가 있는데 촛불은 이미 꺼져 있다. 두꺼운 성경 아래쪽에는 얇은 소설이 놓여 있다. 에밀 졸라의 '삶의 기쁨'이란 소설이다. 성경과 소설의 대조가 두드러진다. 빈센트는 부친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 무엇이 급했던지 부랴부랴 이 정물화를 그리고는 집을 떠나 정처 없이 이곳저곳 떠돈다.'


네덜란드 화가로 서양 미술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빈센트 반 고흐가 1885년 완성한 '성경과 소설이 있는 정물'이란 그림의 설명이다. 기괴하고 극적 삶을 살았던 고흐의 그림에 성경이 놓여있는 정물화와 초상화가 그렇게 많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은 흥미롭다.

1877년 네덜란드 도르트레흐트에서 서점 직원으로 지내면서 쉬지 않고 성경을 읽었던 고흐. 성경을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했던 그. 영국으로 건너가 외국서 온 수많은 이주민들과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는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가 가장 사랑했던 성경 구절은 고린도후서 6장 10절이었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여자 광부들' '시립 로터리 사무실' '예배 드리는 회중' 등의 그림에서는 민중을 바라보는 그의 독특한 시각이 담겨있다. 고난의 영성과 성육신의 실천,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선명히 드러난다.

기독교 신자로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고흐의 최후다. 조울증으로 인해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결국 자살로 비극적 삶을 마감했던 고흐와 초기 전도자로서의 삶은 너무 큰 이질감으로 다가온다.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그림을 그려온 삶이 마지막 죽음의 방식으로 인해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에 대해 신앙의 환상을 깨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모두 받아야 한다면 우리는 어떤 형태의 죽음을 맞든지 겸손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학적 논란이 될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저자는 피해가지 않는다.

성경과 고난, 흙의 신학, 종교의 본질, 자아 존재감, 하나님과의 합일, 감사와 위로 등 결코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신학적 주제를 그림 80점과 함께 설명한다.

 

- 국민일보 -

 

 

 

차례

 

1. 성경과 소설이 있는 정물, 성경으로 충분한가?
2. 여자 광부들, 고난에 동참하는 방식
3. 감자 먹는 사람들, 흙의 신학
4. 오래된 탑, 종교의 본질은?
5. 한 짝의 구두, 발바닥으로 밀며 나아가는 삶
6. 야포니즘, 동서양의 차이
7. 자화상 연작, 나는 누구인가?
8. 씨 뿌리는 사람 연작, 무한 속에 던져진 존재
9. 노란 집, 화가 공동체를 세워라
10. 빈센트의 의자, 여기에 앉으세요
11. 별이 빛나는 밤, 하나님과의 신비한 합일
12. 해바라기와 자장가, 감사와 위로
13. 올리브나무 연작, 감람산은 어디에나 있다
14. 사이프러스 연작, 도무지 어떻게 해볼 수 없을 때
15. 꽃 핀 아몬드 가지, 아기의 눈동자에 하나님이 계신다
16. 까마귀 나는 밀밭, 길은 어디에 있을까?

 

책소개 

 

그림으로 표현된 고흐의 신앙고백과 글로 표현된 저자의 신앙고백

흔히 ‘광기(狂氣)의 천재 화가’로 통하는 고흐. 그는 화가의 한 사람을 넘어서서 동서양을 넘나들며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된 지 오래다. 그의 삶과 그림은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논의의 프리즘을 통해 끊임없이 다시 읽히고 해석되어 왔다.
이 책에서 저자는 고흐의 작품들에 투영된 기독교 신앙의 자취를 더듬으며, 그가 화폭을 통해 궁극적으로 추구하고 구현하려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차근차근 짚어 간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신화화된 고흐’가 아니라 우리네 일상의 모습에 훨씬 가까이 다가와 있는 고흐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고뇌하고 아파하며 상처입고 위안 받는, 혹은 위안을 주려는 그의 모습 가운데는 늘 하나님의 그림자가 투영되어 있다. 복음을 전하려 했지만 목회자가 될 수 없었던 고흐에게 그림이야말로 ‘복음의 씨앗을 뿌리며 하나님과 합일되기를 소망했던’ 그의 일상의 염원을 담아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네덜란드에서 7년간 목회자로 사역하면서 고흐의 ‘상처받은 삶’에 특별히 주목했다. 고흐가 남긴 서신과 작품을 통해 그의 삶에 아로새겨진 상처와 고통의 흔적에 다가가면서 그는 ‘고통을 나누려는 마음이 시대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길’임을 깨닫는다.

고흐의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

일반적으로 고흐의 작품은 서양미술사의 흐름 가운데 양식과 기법을 중심으로 논의되어 왔다. 그가 다룬 다양한 주제와 소재들도 ‘후기인상파’라는 틀 속에서 조명되어 오다시피 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저자는 개별 작품에 나타난 그런 특징들이 고흐의 삶의 단면들은 물론 그때그때의 정황과 맞물린 그의 심성을 어떻게 반영하는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저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런 연관관계를 확장함으로써, 자본주의가 발흥하는 19세기 후반 서양 문화의 맥락에서 배태된 고흐의 삶과 작품이 갖는 의미를 살펴보며, 하나님과 인간의 올바른 관계와 우리 신앙의 현주소까지 조심스레 진단한다. 삶과 신앙의 본질적인 문제를 거창한 담론이 아닌 평범한 일상에서 접근하고 다루는 저자의 탐색은 150여 년의 시차와 동서양을 넘나들며 ‘가장 평범하면서 보편적인 것’이 갖는 진실에 맞닥뜨리게 한다.

책의 구성

고흐의 작품 가운데 80여 점을 주제별로 16꼭지로 묶고, 각각의 주제에 따른 그림들을 통해 그의 삶과 신앙의 궤적을 더듬어가면서 우리 삶의 보편적 문제로 접근해 간다.(각 꼭지 제목에서 쉼표 뒤의 말들이 그 문제들의 핵심을 집약하여 나타낸다.) 꼭지마다 맨 끝에 저자가 ‘누님’이라 부르는 지인 분께 보내는 편지글은, 각 꼭지에서 다룬 주제와 내용을 집약하면서 맺음말 구실을 하는 한편, 새로운 문제 제기를 통한 성찰과 묵상으로 다가서게 한다.
자세한 사연이 밝혀져 있진 않지만 편지글의 수신인인 ‘누님’(이 책의 추천사를 쓴 김기남 두레교회 권사)도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상처를 안고 살아온 분이다. 고흐의 삶과 작품을 통해 고통의 나눔과 위안의 문제에 다가가려 했던 저자의 소박하지만 간절한 바람이 담긴 이 서신들을 읽다 보면, 마치 이 편지의 수신인이 우리 각자인 듯한 느낌이 든다. 결국 우리도 일상의 고통과 상처를 나누고 위안하며 위안 받아야 할 존재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추천평

 

고흐는 시대에 앞서 신앙의 고뇌를 안고 산 예술가였다. 초기부터 말년이 이르기까지 그의 그림에는 신앙의 여정이 면면히 드러난다. 안재경 목사는 고흐 예술의 신앙적 측면을 목회자의 눈과 마음으로 자세하게 들여다보았다. 고흐의 삶과 그림을 통해 우리 자신을 볼 수 있는 거울을 우리는 이 책에서 얻게 되었다.

(강영안/서강대 철학과 교수)

고흐의 작품은 정면에서 보지 말고, 액자 옆에 서서 비스듬히 봐야 한다. 그렇다. 비스듬히 보는 것! 그것이 고흐의 감상법이다. 섬세한 붓질은 없다. 절규했던 영혼이 남긴 상처가 고스란히 거칠고 울퉁불퉁한 캔버스에 남아있을 뿐이다. 비스듬히 볼 때 우리는 고흐의 의도를, 정신을, 거친 숨소리를, 영혼을 발견하게 된다.
안재경 목사님은 신앙의 눈으로 고흐를 비스듬히 보았다. 정확한 독법(讀法)이기에 그의 책이 우리를 고흐의 세계로 비스듬히 인도할 것이다. 그림으로 표현된 고흐의 신앙고백과 글로 표현된 저자의 신앙고백이 만나는 순간을 우리는 감동이라 부르자. 이 책은 두 고백이 만난 감동의 순간을 우리에게 제공할 것이다. 그것도 비스듬히.
(김상근/연세대 신학과 교수)

고흐는 누구보다 많은 상처를 스스로 받았기에 상처받은 치유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처절하고 비극적이었지만 전도자로서의 삶을 살았던 고흐의 갈망과 열정을 그의 작품뿐만 아니라 그의 서신의 행간을 통해 세밀하게 표현해 내고 있습니다.
저도 끔찍한 상처와 고통을 겪으면서 저 혼자만의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지나왔습니다.
아니, 여전히 그 터널을 지금도 지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를 누님이라 부르는 저자가 전해주는 고흐의 삶에 대한 해석을 통해 제 자신의 상처에 조금씩 딱지가 앉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상처 입은 우리 모두가 상처입기를 주저하지 않은 고난의 사람 그리스도와 함께 걷는 길이 가장 정직하고 복된 길임을 저자는 마음깊이 심어주고 있습니다.
(김기남/두레교회 권사)

 

본문 중에서

 

- 빈센트가 가장 좋아한 성경구절 중 하나는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고후6:10)"였다.

- 빈센트가 광부들의 고난에 동참하게 된 것은 많은 이들이 생각하듯이 고난받기를 자처하는 그의 충동적인 성격 탓으로 돌려서는 안된다. 빈센트가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 하기를 원했던 것은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신앙의 결단에 의한 것이었다. 빈센트는 이미 자신의 삶을 이사야 53장에 등장하는 고난받는 종의 모습을 통해 힌트를 얻기도 했거니와, 당시 유행하던 토마스 아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책를 통해 큰 도전을 받았다. p.36

-"토마스 아켐피스의 책은 참으로 독특하단다. 그 책에는 너무나 심오하고 진지한 말들이 많아서 감정이 없이는, 심지어 두려움 없이는 그것들을 읽을 수 없지. 적어도 빛과 진리를 열망하는 마음을 가지고 읽어야 한단다. 그 책의 언어는 마음을 굴복시키는 감동이 있지. 마음으로주터 나온 책이기 때문이란다. 너도 그 책을 가지고 있겠지?"(편지 108)
지상의 것을 경멸하고 영원한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구절들과 가난과 고난을 기쁨으로 인내하는 것에 관한 구절들이 빈센트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p.38

- 빈센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본능적으로 호감을 느꼈다. 그는 자신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전도자라는 사실을 한 순간도 잊지 않았다. p.37

- 선교사는 선교지 사람들과 같은 수준의 삶을 살아야 하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한 문제 정도가 아니다. 근본적인 것은 사도 바울의 표현처럼 복음을 받는 사람과 모든 것을 같이 하려는 마음가짐이다. 빈센트는 본성적으로 아파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고난받는 사람들 가운데 자연스럽게 자신의 자리를 펼 수 있었다. p.41

- 교회가 해야 할 일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위로의 사역일 것이다. 세상에서 상처받은 이들이 교회를 통해 위로받고 있는가? 교회는 아직까지도 어설픈 위로자다. 위로가 지나치면 그 사람의 삶에 간여하고 간섭하는 자리에 서기 쉽다. 위로한답시고 그 사람의 사생활에 깊이 개입하려는 것이야말로 폭력에 다름 아니다. 자신이 동정받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결코 위로받지 못한다는 사실도 명심해야겠다. p.47

- "내가 늘 생각하는 것인데, 하나님을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은 수 많은 것들을 사랑하는 것이란다. 친구든, 아내든 네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사랑한다면 하나님에 대해 훨씬 많은 것을 아는 길에 서는 셈이지. 사람은 고상하고 진지한 친밀한 동정심, 굳센 힘, 분명한 지혜로 사랑해야 한단다. 사람은 항상 더 깊이, 더 낫게, 더 많이 사랑하도록 애써야 한단다. 이것만이 하나님께로 인도하고 요동치지 않는 믿음에로 인도한단다."(편지133) p.48

- 진정한 위로는 호들갑을 떠는 것이 아니라 '무덤덤한 것 같으나 지속적으로 부담감 갖는 것'이 아니겠는가? p.49

- 기독교는 어떤 종교보다 현실적이다. 기독교는 미래적인 종교, 저 세상적인 종교라기보다는 이 세상적인, 현재적인 종교다. 기독교는 지금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말한다. 불교처럼 세상을 회피하지 않는다. 유교처럼 현실 정치와 현실 제도를 무조건 긍정하지도 않는다. 기독교는 늘 세상을 직면하고 현실에 대해 말한다. p.71

- 빈센트를 비정통 신학자라고 부를 수밖에 없겠지만 그의 신학은 현실에 뿌리 내리지 못하고 있는 정통 신앙인들에게 뼈아픈 소리를 내지르고 있다. 현실에 발을 붙이고 소외된 자들의 고난과 고통에 귀 기울이지 않는 신학과 신앙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이다. p.71

- 나는 빅토르 위고의 "종교는 사라지지만 하나님은 영원하시다"라는 위대한 말을 기억하고 있단다. 가바르니의 "중요한 것은 사라지는 것들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을 붙잡는 것이다" 라는 말도 기억한단다. (편지 253 중) p.78

- 기독교는 타 종교에 필요 이상으로 민감한 반응을 보일 때가 많다. 한국 기독교는 미국 근본주의와 세대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게다가 공산주의와 대치하고 있는 한반도 상황과 맞물려 이분법적인 사고에 지배될 때가 많다. 복음은 어느 한 순간 공중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어떤 민족이든지 복음을 받기 전까지 그 민족성을 형성한 종교나 문화가 존재해 왔다. 성경에도 하나님께서 '때가 차매'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때가 찼다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시기 이전에 이 세상에서 종교를 포함한 다양한 사회현상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준비시켜 오셨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율법이 근본적인 복음과 적대적인 것이 아니라 복음이 오기까지 어린아이를 양육한 가정교사 역할을 한 것처럼, 타 종교들도 복음을 받아들이기 전까지 인류의 가정교사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 이전에 우리 민족에게 전해진 유교와 불교는 우리 민족의 종교와 문화 생활을 풍부하게 했다. 우리 민족이 복음을 수용한 방식은 기존 종교와 무관하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p.86

- "자기 작품에 사상를 담으려고 애쓰는 것이야말로 화가의 의무란다." p.90

- 얼마 전에 작고한 네덜란드의 헨리나우엔 신부는 빈센트야말로 자신이 감히 보려고 하지 않았던 부분까지 본 사람이라고 말했다. p.139

- 그는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그들과 끝없이 다투었다. 후세 사람들은 그를 천재라고 부르지만 정작 빈센트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은 엄청난 둔재라고 생각했다. p.143

- 빈센트는 천재가 아니라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질문했다. 마침내 그는 자신의 마음을 강력하게 끄는 한가지를 발견한다. 그림이다. 빈센트는 그림을 통해 구원에 이르고자 했다. 자신의 구원이 아니다. 그는 테오에게 그림이 자신을 회복시켜 줄 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기회가 될거라고 말했다. 빈센트는 무의식에 희생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의식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한 사람이다. 그는 그림을 그리되 분명한 자의식을 가지고 계속 그림을 그려 나갔다. p.148

- 어느 순간에 나 자신이 나 자신에게조차 아주 낯선 존재로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 자신의 타자성에 눈 뜨는 순간이다. 어떻게 타자성을 발견할 수 있는가? 어떻게 자신을 객관화 할 수 있는가? 자신의 타자성을 인식하는 근본적인 계기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으로 가능하다. p.150

- 빈센트는 씨 뿌리는 사람을 그리면서 화가인 자신의 역할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입술로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의 씨앗을 뿌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그림으로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 빈센트는 화가야말로 자연과 영원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화가는 자연을 모사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연에 나타난 신성을 환기시키는 특권을 부여받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설교자는 그것을 말로 직설적으로 표현하지만, 화가는 그림으로 상징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p.166

- 빈센트는 자신이 그리스도처럼 십자가를 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생각은 그리스도에게 집중되었다. 그리스도야말로 가장 위대한 예술가라는 생각이다. p.178

- 그는 밤하늘에 빛나는 별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그를 향해 사랑의 음성으로 속삭이는 것을 들었다. “보라. 세상 끝날까지 내가 항상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빈센트는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깊이 느꼈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빈센트는 밤하늘의 별들이 들려주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을 뿐만 아니라 그 별에까지, 그 하나님에게까지 이르기를 원했다. 빈센트는 하나님과의 신비한 합일을 꿈꾼 것이다. p.222

 

- 기독교 예술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까? 기독교 문화라는 말만해도 그렇다. 예술을 기독교적으로 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세속 예술과 대비되는 기독교 예술이라는 영역이 따로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다. 기독교 예술은 기독교인이 하는 예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 예술은 기독교적으로 하는 예술이다. 어떤 주제를 선택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주제에 의해 기독교 예술과 세속 예술이 나뉘는 것이 아니다. 얼마나 기독교적인 관점을 가지고 예술을 하느냐의 문제다. 기독교적인 주제가 아닐때에는 얼마든지 중립적인 관점에서 자연을 있는 그대로 묘사할수 있다는 생각야말로 착각이다. p.257

-빈센트는 렘브란트가 그린 수많은 성경 이야기에 매료되었다. 그는 렘브란트가 그린 성경 이야기를 모사하기를 즐겼지만 성경 이야기를 직접 그림으로 표현하기는 꺼렸다. 성경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한다고 해서 그것이 사실적으로 사람에게 다가간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빈센트는 일상적인 삶의 주제로 신적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 길을 보이려고 했다. 그는 일상의 언어가, 일상의 상징이 신적 임재를 불러일으키는 길을 찾았다. p.259

- 빈센트는 자신이 풍경화가라기보다는 인물화가라고 생각했다. 그가 풍경을 그릴 때에도 그의 풍경에는 사람의 흔적이 늘 어른거렸다. 그의 풍경화에는 사람의 흔적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흔적도 있다. 우리는 빈센트의 풍경화, 특히 꽃잎 하나, 풀잎 하나에 깃들어 있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게 된다. 빈센트는 자신이 그리는 나무들과 식물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을 종종 받곤 했다. 빈센트는 하나님이 어디에나 계신다고 느낀 것이다. p.287

 

- 하나님은 세상의 죄악 때문에 상처받으셨다. 빈센트는 어디서든 하나님을 볼 수 있었다. 그 하나님은 특별히 자신이 계실 한 곳을 지정하셨다. 사랑이시기에, 고통받는 사랑이시기에 상처받은 이들의 지극히 낮고 낮은 바로 그 자리에 계신다. 빈센트는 저 높은 곳이 아니라 지극히 낮은 곳에, 자신을 전혀 보호할 수 없는 상처받은 이들 가운데 자리를 펴신 하나님을 보았다. p.300

- 빈센트의 하나님은 의지가 굳세어서 감정적인 미동도 없는 독야청청한 하나님이 아니었다. 빈센트의 하나님은 세상 일에서 적당히 거리를 두고 기적이라는 방식을 통해서만 개입하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었다. 빈센트의 하나님은 어린아이와 같은 하나님이었다. 어린아이처럼 자신을 방어할 수 없는 상처받은 하나님이었다. 모든 상처받은 자들과 같이 상처받는 하나님이었다. p.300

 

- 빈센트는 쉽게 분노하고 쉽게 우울증에 사로잡혔지만 세상의 모든것이 그의 눈에 밟혔기 때문에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볼 수 있었다. 무릇 하나님을 보고자 하는 사람은 하늘을 멍하니 쳐다볼 것이 아니라 지극히 낮은 곳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낮은 곳, 상처받은 자리에 계시니 말이다. p.301

-무릇 우리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정직하게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인생이라면 누구나 스스로를 향해 물어야 할 질문이 바로 이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자신을 향해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말이다. 사람은 질문하는 인간이다. 질문하는 것은 철학자만의 소관이 아니다. 종교인들만의 소관도 아니다. 질문하는 것은 인생 모두의 소관이다. p.311

 

 

노란 집' 빈센트 반 고흐. 72 x 91.5cm, 반 고흐 미술관

 

1889년 고흐 작. · 작품명 : 빈센트의 방 · 유화. 57.5 x 74cm. · 프랑스 파리 오르세미술관 소장

 

빈센트 반 고흐. 아를르의 밤의 카페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해바라기, 1888, 캔버스에 유채, 95×73cm, 암스테르담 빈센트 반 고흐 미술관 

 

반 고흐, 에덴동산의 추억 "Memory of the Garden of Eden", 1888. 상 페테르부르그 겨울미술관

 

반 고흐, 누에넨의 교회 "Chapel at Nuenen", 1884. 반 고흐 미술관

 

 

"Still Life with Bible", 1885. 반 고흐 미술관

 

고흐의 "한짝의 구두 a Pair of Shoes"

 

<감자 먹는 사람들>, 암스테르담 반고흐 박물관

 

빈센트 반 고흐. Wheat Field with Cypresses 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 생레미, 1889년 6월

 

꽃이 핀 아몬드 나무(Blossoming Almond Tree) -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90.02. 캔버스에 유채, 73.5X92cm,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올리브 과수원(Olive Grove), Oil on Canvas, Saint-Remy, June-mid, 1889, 오텔로 쾰러-뮐러미술관(Kröller-Müller Museum), Otterlo, The Netherlands, Europe

 

반 고흐 '착한 사마리아인', 1980년, 73cmX59.5cm, 네델란드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빈센트 반 고흐 <론 강위로 비치는 별들-별이 빛나는 밤> 캔버스에 유채, 오르세 미술관 소장

 

빈센트 반 고흐 - 까마귀가 나는 들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