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의 도메니코, 사진출처 http://armadillobar.blogspot.com>


2017년 7월, 도메니코 클레리코는 지병인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바롤로 와인에 평생을 바친 와인 맨이었으며 국적불문하고  와인 애호가들이 고인을 추모했다.


도메니코의 와인사랑은 아버지에게 쓴 편지에서 나타난다. 그는 이 편지를 와이너리 웹사이트 첫 페이지에 올려놓았다.


"아버지가 사투를 벌이며 일으킨 와이너리를 물려받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한편으로는 책임감이 듭니다. 아버지의 일을 존경하며 나를 키워주느라 애쓰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내가 품은 와인 열정과 욕망을 이해하실 거라 믿습니다. 아버지와 아내 줄리아나의 도움으로 사람들을 감동시킬만한 와인을 양조할 능력이 내게 있음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습니다. 더불어 내가 속한 땅이 내 소망실현에 적절한 토양임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도메니코의 부친은 4헥타르 (1만 2천 병) 포도밭에서 재배한 포도를 협동조합에 팔아 생계를 유지했었다. 1976년 도메니코는 유산을 물려받는다. 가업을 물려받은 후 그가 첫 번째로 한 일은 포도밭 구입이었다. 몬포르테 달바에 소재하는 부씨아(Bussia) 밭을, 도메니코는 전력을 다해 토양과 기후를 이해하려 했다. 그렇게 해서 얻은 지식은 부씨아에 적절한 네비올로 클론 선택에 이용했다. 네비올로 성장 단계별로 보이는 여러 징후에 대처하는데도 활용했다.


이 밭에서 농사지은 네비올로로 "Briccotto Bussia"가 세상에 선보였으며 도메니코 생애 첫 바롤로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지네스트라(Ginestra) 밭을 구입했고 여기서  Ciabot MentinPajana 바롤로가 나온다. 이후 1995년에는 모스코니 (Mosconi)밭을 구입했고 도메니코의 아이콘인 Percristina가 세상 빛을 보게 된다.


2천 년도 초입에는 몬포르테 달바 외부의 바롤로 지역에도 관심을 갖게 되며, 2005년에는 세라룬가 달바 소재 밭을 구입한다. 이곳에서 재배한 네비올로는 Aeroplanservaj 바롤로로 알려지게 된다. 도메니코 클레리코 와이너리의 포도밭은 21헥타르(6만 3천 평)이며 연 생산량은 11만 병이다.


도메니코의 실험과 도전 정신이 가장 빛을 발한 때는 바롤로 보이스(Barolo Boys, 이하 BBS)의 멤버로 활동하던 시절이다. 때는 1980년대, 일부 바롤로 와인 생산자들은 바롤로 근대적인 생산방식을 개선하려 했고 고품질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와인 보다 저가로 팔려나가는 바롤로의 암흑기를 벗어나려 했다.


BBS 멤버들은 밭 면적당 수확량을 줄이고 와인 숙성 용기 크기를 소형 바리크로 대체 했다. BBS의 이런 행동은 동료들 눈에는 전통을 파괴하는 앙팡 테러블로 비쳤다. 몇 년 후 BBS가 시작한 바롤로 개선 운동은 바롤로 평균 품질 향상으로 이어졌고 장기 숙성에 적합한 와인으로 자리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