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네임 : 브라이튼

생년나이 : 1980년생, 현재 나이 39

직업 : 입사를 앞두고 있는 회사원

종교 : 가톨릭

지역 : 경기도 성장, 경기도 거주

기록자 : 박김수진



 

수진 : 그럼 시작할까요?

 

브라이튼 : 녹음기가 3개네요. 마치 제가 매우 유명한 사람이 된 것 같아요. 하하하.

 

수진 : 하하하.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해요. 첫 번째 질문인데요, 레즈비언 생애기록 인터뷰에 응해 주셨잖아요? “아직도레즈비언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개인적인 의미가 있을까요?

 

브라이튼 : 있어요. 예전에 다른 인터뷰에서 이런 식으로 얘기했던 것 같아요. 제가 여성단체에 있었을 때에는 레즈비언 정체성이 하나도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나의 레즈비언이라는 정체성은 딸, 활동가, 누군가의 친구나 애인 등 내게 붙일 수 있는 수많은 이름들 중 하나였을 뿐이에요. 그런데 지금은 보통의 삶의 현장속에서 지내려고 하다 보니까 언제, 어디에서 내 레즈비언 정체성을 드러내면 좋을까?’를 생각하고 고민하게 됐어요. 새로 들어가게 된 직장 입사를 위해서 작은 면접 스터디 모임 하나에 참여를 했었는데요, 모임에 나갈 때마다 마인드 컨트롤을 했어요. ‘남자 친구나 결혼에 관한 이야기들이 등장하면 어떻게 대응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답변을 준비하기도 했어요. 하다못해 이렇게 작은 면접 준비 모임에서조차 내가 이러고 있는데, 입사 후에는 또 어떨지 걱정이 들죠. 마흔 살이 다 되어 입사를 하는 것이니 결혼을 위한 선 자리를 제안 받을 수도 있잖아요. 그런 순간들에는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등을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나의 레즈비언 정체성에 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요.

 

수진 : 정체성에 관한 생각을 안 하던 시기도 있었다는 얘기군요.

 

브라이튼 : 정확하게는 정체성에 관한 고민이 불필요했던 많은 시기를 보냈던 거죠. 스스로 레즈비언 정체성을 받아 들였던 시기는 대학생일 때였어요. 그 당시에는 여러 대학에서 대학 모임들도 많이 생기고 하던 때였고요. 대학에 입학을 하고 찾아보니 마침 우리 학교에도 모임이 있어서 가입을 했어요. 모임에서 학교 선배후배들과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별 거부감 없이 정체성을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그 후에는 레즈비언 인권 단체에서 활동을 하게 됐고, 여성 인권 운동 단체 활동도 했으니 제 레즈비언 정체성 때문에 불편한 일들은 별로 경험하지 못 했어요.

 

수진 : , 대학 입학 후에 정체화를 했군요. 그 전에는 어땠어요?

 

브라이튼 :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도 좋아하던 여자 친구들이 있었어요. 하지만 제 스스로 나는 여자를 좋아하는 레즈비언이구나라고 언어화하지 못 했어요. 그저 많이 친한 친구인데, 내가 소중하고 특별하게 좋아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대학에 들어간 이후에야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존재, 정의 안에 포함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수진 : 연애는 언제 시작했어요?

 

브라이튼 : 연애는 대학에 가서 시작했어요. 중고등학교 때에는 연애를 한 건 아니고, 좋아하는 친한 친구 사이로 지내기만 했고요.

 

수진 : 특별히 정체성 문제로 고민을 하거나 그러지는 않았군요.

 

브라이튼 : 중고등 학교 재학 시절엔 그 문제로 고민하지 않았어요. 그 당시에는 레즈비언이라는 개념도 몰랐고, “게이가 뭐고, “동성애가 뭐고, “동성연애가 뭐고 이런 개념도 그 차이들도 전혀 몰랐어요. 그러던 어느 날 폐품을 모으는 과정에서 어떤 종이 자료를 보게 되었는데, 거기에 이런 내용이 실렸더라고요. 어떤 나라에서 어떤 여자 애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남자 성기가 자랐다는 내용이었어요. 그 전에는 나는 여자 아이들을 더 좋아하는데, 그럼 나는 왜 남자가 아니라 여자인 거지?’라고 생각했다가 그 내용을 읽은 후에는 나도 나중에 남자 성기가 자라는 건가?’라는 생각을 했어요. 이 문제로 조금 고민을 했던 적은 있지만 이 외에 심각하게 했던 고민은 없었어요. 연애도 대학 입학 후에나 했고요.

 

수진 : 대학 1학년 때요?

 

브라이튼 : 대학에 입학한 후 모임에 가입하기 전 일인데, <티지넷>에 들어가서 펜팔친구 구해요인가, 이런 게시판에서 어떤 친구랑 주기적으로 메일을 주고받다가 사귀었어요. 연애는 그게 처음이었어요.

 

수진 : 오래 사귀었어요?

 

브라이튼 : 아니오. 6개월 정도 사귀다가 헤어졌어요. 그 이후로는 학교 선배를 오래 좋아하기도 했었고요.

 

수진 : 보통 연애사를 물어 보는데요, 지금 연애를 몇 번이나...

 

브라이튼 : 아이고, 안 돼요. 그렇게 얘기를 시작하면 끝도 없을 얘기고요. ...이렇게 얘기 할게요. 먼저 결론부터 말하자면요, 저는 결혼에 대한 갈증이 많았어요.

 

수진 : 동성 결혼이요?

 

브라이튼 : . 법적 결혼이라기보다는 결혼 개념으로 사람을 만나는 것이요. 저는 결혼을 하고 싶었어요. 안정적인 관계에 대한 욕구가 굉장히 강했지만, 연애 기간이 그리 길지 못 했어요. 3년 만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연애가 가장 길었던 연애였어요. 저는 성격이 워낙에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는 편이에요. 따뜻한 가족을 만들고 싶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매번 잘 안 됐고, 스스로 많이 안타까워했어요. 그런데 최근에 오랜만에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늘 안정적인 가족에 대한 열망이 있으니까 관계 자체를 매우 무거운 마음으로, 진중한 마음으로 대하고는 했었단 말이죠. 나는 결혼을 할 사람을 원하고,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을 찾아야 하고, 그런 사람을 찾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결혼을 할 사람인지 아닌지를 따져 보고, 이런저런 고민들이 많았던 거죠. 그런데 이 부분에 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된 거예요. 내가 가졌던 결혼에 관한 갈망이 굉장히 막연하고 추상적이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어요. 결혼이라는 것은 노력으로만 되지 않는 뭔가 운명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굳이 결혼을 목표로 삼기 보다는 그저 물 흐르는 대로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만나는 사람과도 인연이 되면 오래 사귈 수 있는 거고, 그러다 같은 집에서 함께 살 수도 있는 일이라는 생각과 사정 상 헤어지는 일도 생길 수 있고, 또 다른 좋은 사람을 만날 수도 있는 거라는 생각을 하시 시작한 거죠. 시간이 흐를수록 나이 부담을 느끼면서 더욱 조급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렇게 조급한 마음을 가지다보니까 오히려 다시 생각해 보게 되더라고요. ‘대체 네가 원하는 결혼이라는 게 뭔데? 결혼이 뭔데? 대체 결혼이 뭐기에 그렇게 따지고, 재고, 기대하고 그러는 건데? 왜 그렇게 미리 규정하려 드는 건데?’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하기 시작했어요. 해도 언제 엎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게 결혼이라는 건데, 왜 그렇게 갈망을 해왔고, 하고 있는지에 관해 생각하기 시작한 거죠. 지금은 그래요.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요. 그리고 결국 결혼을 안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결혼을 했다가도 이혼할 수 있는 게 삶이잖아요. 레즈비언이든 아니든 간에 말이죠. 그냥 지금 내가 행복하면 되는 거고, 앞으로도 기회들을 많이 있을 거고, 이렇게 생각하는 게 좋겠다고 정리했어요.

 

수진 : 어쩌면 길고 길었을 지도 모를 연애에 관한 질문에 이런 깔끔한 답변이라니요. 짧고 굵고 명쾌한 응답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하. 동성결혼 얘기가 나왔으니 이성결혼이 떠오르는데요, 지금 나이가 몇 개월만 있으면 마흔 살이 되네요. 그러면 부모님은 이미 결혼에 대해서 마음을 비우셨을 것 같기는 한데요, 그 동안 가족들로부터 결혼에 대한 압박이나 부담을 느낄 일은 없었나요?

 

브라이튼 : . 없었어요.

 

수진 : 어떻게 그럴 수 있었어요?

 

브라이튼 : 하하하. 우리 집은 이상한 집이에요. 저는 중학교 재학 시절부터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고, 부모님께도 그렇게 말해 왔어요. 언젠가 선 자리들이 들어오기는 했었지만 만나기 싫다고 했어요. 그럼 또 잘 수긍하셨어요. 부모님은 한 번도 저에게 넌 결혼 안 할 거니?”라고 물어 본 적이 없어요.

 

수진 : 왜 그러셨을까요?

 

브라이튼 : 알 수도 있는 것 같아요. 모르는 척 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수진 : 브라이튼님이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요? 두 분 모두요?

 

브라이튼 : 고등학교 때 좋아했던 친구가 있었어요. 내가 하도 그 친구랑 어울려 다니니까 그걸 좀 특별하게 보신 것 같기도 해요. 그 외에는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에요. 부모님이 왜 그러시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심지어 제가 쓴 논문 주제가 레즈비언에 관한 것이었어요. 하드커버로 금박 글씨 인쇄해서 부모님께 드렸는데, 부모님은 논문 제목을 보고도 놀라지 않으셨어요. 그냥 매우 기뻐하셨죠.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부모님은 레즈비언이라는 낱말 자체가 와 닿지 않는 분들인건가라는요. 다시 앞 얘기로 돌아가면요, 우리 집은 큰 집이에요. 제사를 정말 많이 지내요. 어릴 때부터 제사 준비하고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서 이런 말을 자주 했어요. “내가 왜 남의 집에 가서 이런 고생을 해야 해? 내가 왜 남의 집에서 남의 집 살림을 해야 해?” 얼마 전에 아빠께 요즘 주변에 나처럼 결혼 안 한 사람 많지 않아요?”라고 물으니까 맞아그러시더라고요.

 

수진 : 왜 중학교 때부터 결혼을 안 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제사만이 이유였을 것 같지는 않아서요.

 

브라이튼 : 제사 지낼 때 보면 여자들이 차별을 받는 게 보이잖아요. 엄마들만 일을 하고, 남자들은 일을 안 하고요. 시골 친척 집에 가서 봐도 그렇고. 그런 장면들을 볼 때마다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왜 엄마는 끊임없이 부엌일을 하시고, 아빠는 가만히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정확하게 표현하기는 어려운데요, 그냥 어릴 때부터 여러 가지로 남녀차별 문제에 대해서 뭔가 불만이 많았던 것 같아요. 이런 이유들도 있고, 제가 여자를 좋아하기도 했고요. 남자와 잘 수 있는 생각 자체를 할 수도 없었어요.

 

수진 : 혹시 스스로를 타고 난 레즈비언이라고 생각해요?

 

브라이튼 : 원래는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는데요, 생각이 바뀌었어요.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제는 남자랑 잘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하하. 생각보다 괜찮은 남자 사람도 많이 있더라고요. 저는 특히 깔끔함을 중요시하는데, 남자 애들 중에도 깔끔한 애들이 있더라고요.

 

수진 : 많아요.

 

브라이튼 : 그러게요. 있기는 있더라고요. 하지만 남자는 차선이에요. 하하하하. ‘그럼에도 남자는 차선이다!’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더 깔끔하고 예쁜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수진 : 그러면 엄마 아빠한테 커밍아웃을 할 계획은 없어요?

 

브라이튼 : 없어요. 이제 와서 뭘 또 충격을 드려요? 그냥 아닌 척 사는 거죠, .

 

수진 : 부모님이 눈치를 챈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단 주변 관계에 여자 둘이 사는 경우도 많고 말이지요.

 

브라이튼 : 주변에 레즈비언 커플들이 많은 편이에요. 평소에 제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자주 하는 편이에요. “여자 친구 둘이 사는 경우가 많아. 나도 누군가와 살 수도 있는데, 혼자 사는 것 보다 낫지 않겠어? 외롭지 않을 거야이런 식으로 말을 자주 해왔어요.

 

수진 : 그렇게 했던 이유는 부모님을 안심시키지 위한 것인가요?

 

브라이튼 : 부모님을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기도 하고요. 내가 누군가와 함께 살 때, 자연스럽게 받아드리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죠.

 

수진 : 게다가 여성단체에서 오래 일을 했던 영향도 있었겠네요. 부모님이 약간의 의심이 가는 상황이 있다고 하더라도, 짐작할만한 것이 있더라도 꼭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약간 애매한 경계에서 생각하시도록 만들었군요.

 

브라이튼 : 맞아요, 맞아요. 부모님께 가끔 내 친구들 얘기를 하면요, “그 애는 결혼했니?”라고 물으세요. 그럼 안 했어라고 잡 하면 왜들 그렇게 결혼을 안 한 대?”이렇게 말씀하시고 넘어가는 분위기에요. 워낙 제가 해왔던 이야기들도 있고, 요즈음 사회적 분위기가 비혼이 많아지고 있는 추세니까요. 이 모든 상황들이 합쳐져서 내가 이상한 애가 안 되는 거예요. 적어도 우리 집에서는 그래요.

 

수진 : 그간 커뮤니티들 활동은 어떤 것들을 했어요?

 

브라이튼 : 대학 때는 대학 친구들, 대학원 때는 대학원 친구들이 있었어요. 가장 큰 것은 <한국여성동성애자인권운동모임 끼리끼리> 활동 하면서 만나던 관계들이에요. 20대 때 맺었던 관계라는 건 끼리끼리 활동을 하면서 만났던 관계가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어요. 30대에서는 여성단체에서 활동하면서 많은 레즈비언들을 만났죠. 대학 때는 동아리 활동을 했지만, 그것 보다 사실 더 중요했던 것은 레즈비언 관련한 활동들, 인권 활동들에 조금 더 정신적으로 투여를 했던 것 같아요. 거기에서 만난 사람들하고 관계 맺는 게 더 중요했어요.

 

수진 : 단체 활동을 얼마나 하셨어요?

 

브라이튼 : 레즈비언 단체 활동은 9년 정도 했고요, 여성 단체 활동은 10년 정도 했어요.

 

수진 : 현재 맺고 있는 관계들은요?

 

브라이튼 : 제가 몇 년 전에 <디어 마이 프렌드>를 봤을 때, 그 드라마에서 여자 노인분들이 모여서 살겠다고 하고, 같이 길에서 여행하면서 살자고 얘기하고 그런 드라마였는데, 그 드라마를 보면서 엄마도 되게 좋아 했지만, 저도 보면서 저렇게 살 수 있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면서 친한 언니들한테도 얘기하고 그랬던 거죠. 남동생이 있고, 조카도 있기는 하지만 원가족에 손을 벌리는 것도 한계가 있고, 돈이 있어도 돈으로만 다 해결 할 수는 없는 것 같고요. 그렇다면 사람들을 모아야겠고, 관계를 만들어 가야겠다는 생각을 해서 그 언니들한테도 얘기를 한 거죠. 언니들하고, 다른 친구들이 함께 고민하게 된 거죠. 지금은 그 고민을 함께 나누고 있는 친구들 몇 명밖에는 없어요. 이제 곧 마흔 살인데요, 내 생각에는 건강하게 내 다리로 걸을 수 있는 시기를 80세 정도라고 보고 있어요. 그럼 앞으로 40년 정도 남아 있는 거죠. 그런데 그 남은 기간 동안 지금의 친구들 외에 얼마나 많은 새로운 인연들을 만들 수 있을지 회의적이에요.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고, 이제 만나서 또 맞춰 나갈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힘이 들어요. 나이 들어서 서로 맞추려고 하면 그게 또 얼마나 어렵겠어요? 하하. 느슨하지만 오래된 편한 연대를 하는 관계를 만들고, 그런 관계를 지향하면서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티지넷>은 없어 졌다지만 이제는 <티지넷> 같은 곳에 들어가고 싶지도 않고, 그렇게 해서 누구를 만나는 게 귀찮고, 낯간지럽고 그래요.

 

수진 : 모여 사는 것에 관해 구체적인 그림을 가지고 있나요?

 

브라이튼 : 조만간 계획을 세우기 위해 만나기는 할 건데, 구체적으로 뭔가가 만들어 져야지 되는 거지 지금은 생각뿐인 거죠. 한 건물에서 모여 살면 좋지만, 아니면 아파트에서 앞동, 옆동, 옆호, 같은 라인 이렇게라도 살면 되지 않겠나 싶은 생각도 들고. 돈이 없으면 둘이 합쳐서 한집에서 살고, 근처에 살고 이러면 되지 않겠나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현재 아예 그림이 없는 건 아니에요. 내가 제안한 언니들과 그 언니들이 아는 두 명의 동생들 그리고 저까지 포함해서 총 다섯 명이 건물을 한 채 사서 집을 배분하고, 1층에는 제가 하고 싶어 하는 서예학원 등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두고 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지금으로부터 15년 정도 후에는 그 집에서 살기로 얘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조만간 모여서 구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돈 혹은 모을 수 있는 돈, 이런 것들을 공유한 다음에 청사진을 구체적으로 그리는 작업을 하는 것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에요. 이게 1차적인 목표고 정 안 되면 앞서 얘기한대로 근처에라도 살자, 이렇게 얘기를 해나가고 있어요.

 

수진 : 곧 마흔인데, 준비를 해야겠네요. 준비가 됐나요?

 

브라이튼 : 아니오. 그래서 조만간 입사를 하면 대출을 받아서 일단 집을 구하고, 그리고 돈을 모아서 월급을 차곡차곡 모으기 시작해야지요. 그 커뮤니티 이름을 정해야 할 것 같은데, 이를테면 빌딩 프로젝트랄까 이런 식으로 정하면 제가 빌딩 적금을 마련해서 꾸준하게 저축하고 싶어요. 그렇게 돈을 모아서 그 때 되어서 또 다시 대출 받아야 겠죠? 사실 경제 활동을 계속 할 수 있으면 못 할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 경제적인 것뿐만 아니라 몸이 건강하고, 서로의 관계가 건강한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수진 : 왜 혼자 사는 그림보다 같이 어울려서 사는 그림을 그리고 있나요?

 

브라이튼 : 그 전에는 몰랐는데 혼자는 너무 심심할 것 같아요. 그리고 주변에 사람들이 많을 때는 몰랐는데, 입사 준비 하면서 혼자서 있어 보니까 더 많이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외로울 것 같아요. 아파서 죽는 게 아니라 외로워서 말라 죽을 것 같은 느낌도 들었거든요. 그리고 가족이라고 말이 통하는 게 아니잖아요. 가족만큼 나를 아는 주변 사람들이 분명히 있는데, 뭐라도 나눠 먹고, 얘기 할 수 있고. 일상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면, “길을 건너다가 이런 것을 봤는데 되게 웃겼어이런 얘기들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해요. 일상을 나누지 못할 때의 외로움이 너무 클 것 같아요. 나이 들어서는 더 할 것이고요. 만약 일을 하지 않는다면 더 그럴 것이고요.

 

수진 : 제가 알기에 싱글인 상태에서 빌딩 모임을 그리기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최근에 연애를 시작하신 거잖아요? 연애가 빌딩 모임의 그림 속에는 어떻게 반영되고 있나요?

 

브라이튼 : 연애는 지금은 하다가 내일은 안 하고, 내일은 안 하고 있다가 모레에는 또 하고 그럴 수 있는 거잖아요? 아마도 빌딩 모임 사람들이 원 가족이 될 것 같아요. 애인이 원한다면 빌딩에 같이 사는 거고요, 원하지 않는다면 두 집 살림을 하는 거예요. 원가족이 변동되는 것 같아요. 엄마, 아빠까지만 원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이쪽이 나의 원가족이 되는 거죠.

 

수진 : 조만간 입사를 할 텐데, 회사 내에서 커밍아웃을 할 계획은 있나요?

 

브라이튼 : 전혀 없어요. 그 조직에서 운동을 할 마음은 없어요. ‘이 정체성을 말 하지 않고서는 나는 정말 버틸 수 없어라는 마음이 없어요. 이런 생각이 들어요. 사람은 뭔가 가면을 하나씩은, 몇 개씩은 쓰잖아요? 사실 내가 언니 앞에서조차 어떤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일 수도 있죠. 좋은 가면이든 나쁜 가면이든 간에 말이죠. 그런 것처럼 직장에 들어가서 이성애자인 가면을 쓰는 게 내가 더 편할 것 같아요. 계획은 없어요. 하지만 결혼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선을 주선하고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고민은 있어요. 한 번 봐야 하나, 한 번 보면 끝이 없을 텐데...이런 생각도 들기는 해요.

 

수진 : 레즈비언, 게이 이슈가 굉장히 이슈화 됐고, 많은 사람들이 특히 젊은 층에서는 문제없다고 말 하는 인구가 상당히 많아지고 있기는 한데, 일상에서는 그게 반영이 어느 정도 되고 있는지, 그 변화를 체감 할 기회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이 점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브라이튼 : 그냥 사람들이 어떻게 말 하면 멋있게 말 하는 건지 아니까 그렇게 대답을 하는 경우들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럴 거라면 추측을 해야 할 것 아니에요. ‘이 사람이 동성을 좋아할 수도 있겠구나라고 항상 생각해야 하는데, 전혀 아무도 일상 속에서 그 생각은 안 해요. 동성을 좋아할 수 있는, 동성애자일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하면서 누군가와 인터뷰를 할 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상관없어요라고 답을 할 수는 있죠. 그런데 현실에서는 바로 내 옆에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수준까지는 못 미치는 것 같더라고요. 저는 세상이 달라졌다는 체감을 한 적이 없어요. 운동들의 변화 속도를 보면 또 세상이 달라지는 속도도 그만큼 빨라지겠거니하는 생각도 들지만 내가 향유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수진 :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으세요?

 

브라이튼 : 20살 이전까지는 성장기니까 기억나는 건 별로 없고, 20세 이후부터 한 30대 중반까지 대학 다닐 때부터도 그렇고, 적건 크건 사회적인 변화에 기여를 해왔다고 생각해요. 이 정도면 충분했다는 생각이랄까요. 내 조카에게도 말 할 수 있어요. “고모가 매일 광장에 출근했다, 정말 너무 힘들었어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만큼의 사회적 기여를 했으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의 최대치를 했던 건 아닌가라고 생각을 해요. 앞으로는 다른 방식의 사회적 기여를 하며 살고 싶은데, 분명한 것은 내가 지치지 않는 방식으로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나를 위해서, 나의 가족을 위해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고요. 단체 활동을 하면서 인정 욕구, 평가가 공정하지 않은 느낌, 끊임없이 투신을 해야 하는 내면의 압박 같은 것들이 있었어요. 그런 것 때문에 활동하면서 많이 지친 거고 거기에서 벗어나고 보니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나의 행복에 대해서 내가 챙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도 챙겨주지 않아요. “너는 정말 멋진 활동가야, 너는 훌륭한 활동가야라는 말들이 내 노후를 보장해 주지 않잖아요. 정말 안타까운 일이죠. NGO의 환경이 너무나도 척박하니 줄 수 있는 게 그것 밖에 없잖아요. 저는 도망쳤어요. 그렇게 된 이유는 정신적으로나 여러 가지로 지친 것도 있었지만, 활동 매너리즘에 빠진 것도 있었지만, 부모님이 나이 드는 게 보였어요. 주름살, 귀가 안 들려서 같은 얘기를 여러 번 해야 하는 상황들, 키우던 16세 반려동물의 죽음, 주변 친구나 지인들이 병에 걸려 아파하는 것들, 내 개인적인 생리적인 변화 이런 것들을 접하면서 잘 사는 게 아니라 잘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친구들과 같이 살려고 하는 계획들도 어떻게 보면 그런 과정 중에 있는 거예요. 잘 죽기 위한, 내가 존엄하게 잘 죽기 위한 준비 과정을 잘 지나고 싶어요. 그리고 어떤 대의보다는 나를 위해서 살고 싶어요. 그리고 내가 챙기지 않으면 언젠가 너무 후회할 수 있는 사람들, 부모님, 친구들 챙기면서 관계도, 삶의 방식도 단순하게, 간소하게 정리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수진 :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브라이튼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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