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네임 : 해바라기
생년나이 : 1979년생, 현재 나이 41세
직업 : 학원강사
종교 : 기독교
지역 : 서울
기록자 : 박김수진
수진 : 우리 단체에서 생애기록팀 활동도 하시면서 인터뷰를 했던 경험도 있는 상황에서 인터뷰 제안 받고 기분이 어땠어요?
해바라기 : 제가 대상이 된다고 생각을 안 해봐서 신선했어요. 나도 해보면 좋겠다 싶었어요.
수진 : 대상을 항상 찾기만 하시다가 응하는 입장이니까. 해바라기님은 레즈비언으로 정체화를 하신 분인가요?
해바라기 : 네. 그런 것 같아요.
수진 : 같은 건 뭐예요?
해바라기 : 요즈음엔 정체성을 너무 길고 다양하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제가 잘 알지 못 하는 용어들도 섞어서 쓰고 그래서 “그냥 레즈비언인 것 같다” 이렇게 말하게 되더라고요. 정체화를 어떻게 했냐는 질문에 요즘에 여성을 얘기를 할 때도 그냥 여성이라고 말 하지 않더라고요. 되게 디테일하게들 얘기하시기에 좀 말하기가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어요. 그래서 “레즈비언이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조심스럽게 말 하는 편이에요.
수진 : 그 사람들이 다양하게 말하는 것과 레즈비언이라고 말 하는 사이의 연결고리는 뭐죠?
해바라기 : 뭔가 제가 요즘에 지식이나 젠더 감수성을 따라가지 못 하나 싶은 마음이 들고, 그러다 보니 뭔가를 정확하게 말 하지 못 하는 지점이 있을까봐 조심스러워 지는 거예요.
수진 : 그럼에도 레즈비언이라고 말을 조심스럽게 한다는 말이군요.
해바라기 : 정체성을 너무 길게 얘기하셔서 좀 나도 길게 얘기를 해야 하나하는 생각도 들고요. 이걸 이렇게 말하면 너무 짧지 않나하는 생각도 들고 그러네요.
수진 : 해바라기님은 언제부터 정체화를 하기 시작했어요?
해바라기 : 어느 순간이 있던 것 아니고요. 기억을 되짚어 보면 제 기억의 끝이 닿는 그 순간까지도 저는 여자를 좋아하고 있었더라고요. 네 살, 다섯 살 때까지의 기억까지 더듬어 갔을 때, 그렇더라고요. 이걸 편하게 ‘아...나는 레즈비언이구나’라고 편하게 받아들인 건 20대 후반 넘어서였어요. 나는 ‘그런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는 거는 중학생일 때였던 것 같고요.
수진 : 20대 후반 전에는 불편하게 받아들인 상황이었나요?
해바라기 : 그 전에는 만났던 사람들도 공교롭게도 일상적으로 제가 있던 생활 반경 안에서 사귀에 되었던 경우라 그 친구들 자체도 스스로를 레즈비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런 사람들하고 사귀다보니까 뭔가 본의 아니게 미안한 마음도 갖게 되고 그랬어요. 뭔가 심리적으로 되게 편안하진 않았어요.
수진 : 연애 자체도 편하지가 않고, 그걸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과정도 별로 편안하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다는 거군요.
해바라기 : 네. 그리고 또 특별히 처음 사귀었던 친구는 대놓고 그런 식의 얘기를 하기도 했어요. “네가 남자였으면 좋겠다”라든지 그런 얘기들이요. 그 친구도 어려서 그랬겠지만 너무 서슴지 않고 제 입장에서는 상처가 될 만한 얘기들을 하고 그랬어요. ‘불편한, 아, 나는 레즈비언인데 연애를 하는 것은 불편하고 레즈비언이라는 건 이런 불편함이 있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심리적으로도 불편한 상태를 유지해왔던 것 같아요.
수진 : 첫 연애라는 게 언제인가요?
해바라기 : 스무 살, 스물 한 살 이 때요. 대학 진학을 하자마자요.
수진 : 불편한 상태가 나아진 계기나 이런 게 있었어요?
해바라기 : 20대 후반 들어서 했던 연애는 상대도 스스로 정체성이 편안한 사람들이었고요. 저도 그런 영향을 받았고요. 나이 들면서 제 스스로의 모습을 편안하게 받아들인 지점도 있는 것 같고, 친구들도 이런저런 계기들로 생겼고요. 이런 영향들로 편안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어요.
수진 : 거슬러 올라갔을 때, 네다섯 살 때부터 여자를 좋아했고, 그리고 본격적으로 생각한 것은 중학교 때라고 했는데, 연애는 스무 살 넘어서 했잖아요. 중학교 때에는 어떻게 지냈나요? 연애를 안 했네요. 짝사랑을 많이 하셨을까요?
해바라기 : 짝사랑은 되게 많이 했죠. 항상 누가 너무 많이 좋은 게 저의 문제였어요. 지금은 안 그런데요. 어렸을 때는 학교에 가면 얘가 좋고, 교회에 가면 저 애가 좋고. 그 눈앞에 있는 어떤 사람들 중에 항상 좋아하는 사람,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었어요.
수진 : 동시다발적으로요?
해바라기 : 네. 그랬어요. 다섯 명 쯤을 늘 마음 안에 이렇게 저렇게 넣어 두었던 것 같아요. 중학교 때는 그런 식으로 짝사랑을 많이 했어요.
수진 : 그 당시에 정체성 고민을 했나요?
해바라기 :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했어요. ‘애들은 안 그러는데, 나는 왜 이렇게 여자 애들한테 관심이 많이 가고 좋지?’ 이런 고민을 하기 시작했어요.
수진 : 혼자요?
해바라기 : 네. 제가 학창시절에 이런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아무도 없었어요. 고등학교 때까지. 내 주변에 너무 없었어요.
수진 : 저와 같군요.
해바라기 : 누구라도 비슷한 애가 있으면 같이 얘기를 해봤을 텐데, 그렇게 됐어요. 대학 가기 전까지는 누구한테도 얘기 못 해보고 혼자 고민하고 그랬었죠.
수진 : 레즈비언이라는 말도 잘 모르지 않았어요?
해바라기 : 중학교 때는 몰랐어요.
수진 : 고민할 때, 언어가 없었을 텐데...나는 뭐지? 이런 거였을까요?
해바라기 : 동성애자 정도는 알았던 것 같아요.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비슷한 어떤 프로그램에서 ‘성소수자들의 삶’ 이래서 동성애자들의 삶을 얘기해주는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그거 보면서 ‘아, 내가 저 사람들이랑 같은 사람인가보다’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어요.
수진 : 그 프로그램은 혼자 봤나요?
해바라기 : 혼자 보다가 말미에 아빠도 같이 보게 됐어요.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빠가 그때 젊어서 그랬는지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때는 그냥 “세상에는 사람들이 다양하게 있다보니 저런 사람들도 있는 거란다”라고 얘기하셨던 기억이 나요.
수진 :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고요?
해바라기 : 네. 지금은 몰라요. 분명한 거는 엄마는 젊었을 때는 케어해야 할 존재들이라고 생각을 하셨던 것 같은데, 지금은 엄마가 다니는 교회에서 동성애자들에 대한 비난이 세지다 보니까 요즘에는 과거에 비해서 안 좋게 얘기하시는 경우가 있어서 그거에 대해서는 제가 “엄마가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친한 친구들 중에도 있다” 그렇게 얘기했더니 그 다음 부터는 거기에 대해서는 더 얘기하시지는 않더라고요.
수진 : 다행이네요. 스무 살, 스물한 살 때 연애를 시작으로 그 동안 연애를 많이 하셨나요?
해바라기 : 여섯 일곱 번 정도 한 것 같아요.
수진 : 어휴, 많이 하셨네. 재미있었나요?
해바라기 : 네. 재미있었어요.
수진 : 어떤 면이 재미있던가요?
해바라기 : 어렸을 때는 슬펐던 게, 제일 슬펐던 게 아무도 저를 안 좋아해줄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나는 여자를 좋아하는데 누가 또 여자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겠나하는 생각이요. 없을 것 같아서, 세상에 나 혼잔 줄 알고요. 내가 동성애자라는 점보다 나는 그 누구한테도 사랑을 못 받겠구나하는 점이 제일 슬펐었는데, 내가 좋다고 하니 좋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똑같이 20대 젊을 때, 데이트도 하고 이러니까 신나고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수진 : 연애들은 순탄한 편이었나요?
해바라기 : 20대 때는 아무래도 제가 너무 동시다발적으로 사람을 좋아하는 성향 때문에 어려움이 좀 있었어요. 딱 한 번 양다리를 걸친 적이 있는데, 너무 힘들더라고요. 두 번 다시 양다리를 걸치지 않고 있어요. 그건 할 짓이 아니더라고요. 그런 것 때문에 힘든 것. 나는 얘가 너무 좋았는데, 한 2년 지나니까 쟤가 너무 좋고. 이런 게 문제가 되었어요. 그리고 사람이 자제하고 절제할 줄 아는 마음이 있었어야 했는데, 제가 그런 마음이 부족해서 너무 많은 사람에게 큰 상처를 주지 않았나 후회하는 마음도 들어요. 안 좋은 일을 겪을 때마다 내가 벌을 받는 구나 이렇게 생각해요. ‘“남의 눈에서 눈물 나게 하면 내 눈에서 피눈물이 난다”고 하더니 결국 내 눈에서 피눈물이 나는구나’ 하면서 벌을 겸허하게 받는 편이에요.
수진 : 지금 만나는 분은 오래 만나온 거죠?
해바라기 : 5년 됐어요.
수진 : 조금 다른 의미로 만나고 계시나요?
해바라기 : 네.
수진 : 어떻게 다르죠?
해바라기 : 일단은 제 나이가, 호기심이 가득했던 마음이 나이 들면서 다행히 없어졌어요. 그렇게 제 상태가 변한 지점도 있고요. 성격이 좋아 보이지만 좋지 않은 편이어서 안 맞는 사람하고는 불화랄까 뭔가 트러블이 되게 심한 편인데, 지금 만나는 친구하고는 그렇게 막 트러블이 심하지도 않고, 그냥 편안해서 좋게 생각하고 있어요.
수진 : 둘 다, 관계를 장기적으로 보고 있나요?
해바라기 : 네. 그렇게 보고 있어요.
수진 : 예컨대 법제화가 된다면 할 계획도 있나요?
해바라기 : 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수진 : 그 동안 어떤 커뮤니티 활동들을 했나요? 아까 친구들도 만나게 되었다고 하셨는데요.
해바라기 : 커뮤니티는 <레즈비언생애기록연구소>가 처음이에요. 그 외의 커뮤니티에서 활동 해 본 적은 없어요. 단지 제가 미술을 공부했던 공간에서 만나게 되는 경우들이 있었어요. 누군가 “눈빛에서 티가 난다”며 한 눈에 알아 본 친구도 있었어요.
수진 : 신 내림을 받았을까요? 그걸 어떻게 알죠?
해바라기 : 그게 약간이라도 커뮤니티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볼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수진 : 해바라기님도 볼 줄 아는 눈이 있나요?
해바라기 : 저는 없어요. 게이다가 아예 없어요.
수진 : 공부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인연이 된 사람들이 있던 거군요.
해바라기 : 네. 맞아요. 많았어요.
수진 : 심지어 많았어요?
해바라기 : 자꾸 파생이 되니까요. 이 친구를 만나면 이 친구의 또 다른 친구들을 만나게 되고, 이런 식으로 넓게 만남을 가질 수 있었어요. 소개팅을 받아 본 적도 있고요. 소개팅을 하는데 저쪽 친구들 네 명 나오고, 내 친구들 네 명 나오고 해서 우르르 만나 같이 놀고 그랬던 적도 있어요. 아참, 얼마 전에 재미있는 얘기를 들었어요. 경기권에서 고등학교에 들어갔던 30대 초반 친구들을 만났는데, 자기네 학교에는 레즈비언이 200명도 넘었다고 그러더라고요. 경기도는 평준화가 아니어서 시험을 봐서 고등학교에 들어가는데, 알음알음 레즈비언들이 그 학교에 레즈비언이 많다는 것을 알고 지원을 해서 들어간다고 하더라고요. 학교 안에서 누가 사귀면 선생님들도 알 정도였고, 뽀뽀도 할 수 있고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수진 : 친구들이 많은 편이었으니까 학내에서 커밍아웃을 하셨겠네요?
해바라기 : 다른 애들한테까지 다 오픈을 했던 건 아니었고요. 친한 친구들끼리는 서로 편하게 얘기하고 하면서 지낼 수 있었어요.
수진 : 지금 졸업 하고 새로운 장에서 커밍아웃을 하는 편인가요?
해바라기 : 아니오. 안 하는 편이에요.
수진 : 아까 부모님 얘기 잠깐 하셨는데.
해바라기 : 얘기 안 했어요. 언니한테만 했어요.
수진 : 자매인가요? 다른 자매, 형제 없고요?
해바라기 : 네.
수진 : 언니한테는 어떻게 하게 됐어요?
해바라기 : 너무 답답했어요. 식구들 중 누구라도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았어요. 그리고 언니 정도라면 충분히 받아들여 주고 서포트해 줄 거라고 생각하고 얘기를 했는데, 결과적으로 그 반대의 결과가 나와서 후회도 하고 있고, 그로 인해서 상처도 많이 받았어요. ‘오히려 엄마, 아빠면 나한테 이렇게 하지 않을 텐데, 부모자식과 형제가 이렇게 다른가?’ 이런 생각도 좀 들고 그래요. 언니도 독실한 기독교 신자예요.
수진 : 뭐가 답답했고, 어떤 기대를 가지고 커밍아웃을 하게 된 건대요?
해바라기 : 가끔 부모님이 결혼 압박을 하실 때가 있어요. 그런 거라든지 나는 이 친구랑 계속 살고 싶은데 엄마 아빠는 납득이 잘 안 되잖아요. 이 지역에서 저 지역으로 이사를 하는데, 하우스메이트라고 생각만 하고 있었던 친구가 왜 꼭 같이 이동해야 하는지 이런 거 이해 못 하시고. 그러니까 이런 부분들이 생기면 언니가 중간에서 얘기도 잘 해주고, 막을 수 있는 것들은 막아주고, 적당한 중간자 역할을 해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있었어요. 또 하나는 사람은 살면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데, 그래도 나랑 같이 사는 사람, 내 애인이라는 것 정도는 언니도 알아야 나중에 어떤 일이 생겼을 때, 그에 맞게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등 이런저런 생각으로 얘기를 했는데, 그렇게 되었어요. 반응은 제가 예상했던 것과 달라서 당황하고 있는 중이에요.
수진 : 얼마 안 된 일이네요?
해바라기 : 언니한테 얘기한지 한 2년 된 것 같아요.
수진 : 그래도 부모님께 말씀드리지는 않으시네요? 언니가?
해바라기 : 아마 부모님께 제가 말씀드린다고 해도 반대하지 않을까 싶어요.
수진 : 충격 받으실까봐?
해바라기 : 그럴 거예요.
수진 : 언니한테 커밍아웃하는 걸 후회하는 군요.
해바라기 : 한 30퍼센트 후회하고, 70퍼센트는 후련한 것 같아요.
수진 : 반응이 그럼에도 후련한 부분이 있어요?
해바라기 : 그렇죠. ‘나는 모르겠고, 네가 감당할 건 네가 감당해라’ 이렇게 생각해요. ‘나는 내가 감당할 거 내가 감당하면서 살면 된다’ 이렇게 생각하니까요.
수진 : 얻은 건 뭘까요?
해바라기 : 적어도 언니한테는 구질구질하게 계속 거짓말하지 않아도 되는 거요. 어디 놀러갈 때나, 뭘 해도 괜히 핑계대고, 거짓말 하고 그랬던 일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는 거요. 언니랑 친한 편이거든요. 자주 연락하는 편이어서요. 적어도 언니한테는 거짓말을 안 해도 되는 게, 점점 나이 들면서 머리도 나빠지고 기억력도 나빠져서 내가 무슨 거짓말을 어디까지 했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이제 거짓말 안 해도 되니까요. 그건 좀 편한 것 같아요.
수진 : 듣거나 말거나 언니에게는 최소한 거짓말 안 해도 되는 환경이 된 거군요. 그래도 많이 속상했겠네요.
해바라기 : 이거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 많이 했어요. 성경 부분에 관한 얘기에서 트러블이 있고 그러니까요. 나는 때로는 이걸 죽음으로써 증명하고 싶은 거예요. 언니가 생각하는 것처럼 가벼운 문제가 아니라는 것, 언니의 말대로라면 나 같은 건 없어져야 하는 존재가 된다는 것인데 그런 문제가 아니라는 걸 언니에게 증명하고 싶었어요, 죽음으로요. 언니는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그런 데에는 아예 관심이 없어요. 그러니 말이 통하지는 않고, 언니에게 내 억울한 심정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내 소중한 목숨을 언니 때문에 잃을 수는 없으니까 그런 걸 실천으로 옮기지는 않겠지만, 표현하자면 그거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겠다 싶을 때가 있어요.
수진 : 그러면서 동시에 ‘저 언니한테도 시간이 필요하겠거니’하는 생각도 들죠?
해바라기 : 그렇죠.
수진 : 아마 언니도, 더더욱 이나 사이가 좋았다고 하면 언니 본인도 전쟁 같을 거예요.
해바라기 : 제 친구 중에 그 분이 위로 언니가 셋인가 넷인가 있어요. 그 언니들 중 두 명한테 커밍아웃을 했는데, 첫째 언니는 “너는 아니다”라고 했대요. 그 다음부터 못 들은 걸로 했고요. 그리고 셋째 언니 같은 경우는 많이 지지를 해준대요. “지금 그럼 만나는 그 애랑도 사귀는 거야?”라고 묻기도 하고요. 집에 거짓말도 대신 해주고, 서포트를 해준다고 하더라고요. 그 얘기 들으면서 그냥 첫째 언니 같은 그런 언니도 있고, 셋째 언니 같은 언니도 세상에 존재하는 건데, 나에게는 언니가 하나밖에 없어서 그 첫째 언니 같은 언니만 있는 거죠. ‘우리 언니는 이런 모습으로, 모양으로 내가 바라고 기대했던 건 아니지만 그렇게 반응하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수진 : 몇 살 차이나요?
해바라기 : 세 살이요. 76년생이에요.
수진 : 부모님한테 커밍아웃 할 계획은 전혀 없겠네요?
해바라기 : 하려면 전 너무 후회되는 게 조금 더 어렸을 때, 부모님도 좀 더 젊었을 때, 한 20대 초반에 다 했었어야 했는데, 그거를 미루고 미루다 보니까 부모님이 너무 연세도 많아졌고, 사고는 더 옛날보다 더 보수적으로 바뀌었을 테고. 건강 상 뭘 충격적인 거를 감당하기도 젊었을 때보다 더 힘들어졌을 텐데, 참 그런 부모님한테 대고 무슨 얘기를 하기가 지금은 힘드네요. 우리 언니가 저를 너무 괴롭히는 상황이 펼쳐지면 ‘엄마는 안 그러겠지’라는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할 생각도 있지만, 엄마마저 그러면 정말 죽고 싶을 것 같아요. 그런 두려움도 있어서 못 하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충격적이고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겠지만, 그래도 자식이라고 귀결이 되어야 할 텐데, 그게 안 될 경우 내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이런 부분 때문에 내 건강도 생각해야 되니까. 당장 계획은 없어요.
수진 : 지금 작가 활동은 못 하고 계시는 상황인 건가요?
해바라기 : 네. 스스로 작가라고 하기에 작업을 꾸준하게 해오지 못 한 부분도 있고, 다른 일들을 하느라 바쁘게 보내는 중이에요. 그래서 누구에게 스스로 작가라고 말을 하기에도 민망한 상태가 되어 버렸어요. 사실, 작업이나 일에 관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아요. 지금 하고 있는 학원 일도 지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고, 여러 모로 안정적인 직업이라고 보기에도 힘들고요.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지 많이 고민하고 있고, 마치 제 2의 사춘기처럼 그런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심리적으로 압박도 있고, 스트레스도 있고. 힘들어요. 10대 때, 정체성 알아가면서 힘들었던 것에 준하게 지금 힘들고 슬프기도 하고 그래요. 하루하루를 견디면서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언젠가 <성소수자 부모모임>에 나간 적이 있었는데, 그 모임에서 어떤 부모님이 “커밍아웃을 하기 전에 경제적인 독립을 하는 게 좋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저도 같은 생각인데, 언니나 부모님이 볼 때 내가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심려를 끼치는 그런 상황들을 만들고 싶지 않아요. 언니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더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고 싶지 않아요. 내가 내 힘으로 내 애인과 잘 산다는 걸 꼭 보여주고 싶어요.
수진 : 아이고, 요새 많이 힘들겠어요.
해바라기 : 요새 하도 눈물을 참고 다녀서 눈이 너무 아파요. 체력도 좋질 않아서 더 쉽게 피로해지고, 더 우울해지고 그런 것의 반복이에요. 그래도 최근에 잘 챙겨 먹고, 운동도 시작하고 했어요.
수진 : 오늘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해요.
해바라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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