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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등(순우리말) : 가로등. 기둥이 갈래를 이루어 두 개 이상의 전등이 달린 것을 말함.
두 줄이 끝나갈 무렵 시종은 65,530여 개의 낟알을 헤아리고 있었다. 약
18시간이 경과했다. 셋째 줄의 마지막인 스물넷째 칸의 1,680만 개의
낟알을 헤아리는 데 194일이 걸렸다. 아직도 채워야 할 칸은 마흔 개가
더 남아 웨스턴부츠 있었다.
왕은 신하와의 약속을 깨뜨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마지막 칸에는
18,446,744,073,709,551,616개의 낟알을 놓아야 하는데 그걸 모두 세려면
5,840억 년이 걸린다. 현재 지구의 나이는 45억 년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시람왕은 어는 순간에 가서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신하의 목을 벴다고 한다.
이처럼 지수함수적 성장은 실로 무섭다. 무어의 법칙은 앞으로 20년은
더 유효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지금은 하루가 꼬박 걸리는 계산도
속도가 1만 배나 빨라지는 20년 뒤에는 10초도 채 안 걸릴 것이다.
일선 연구소에서는 이미 펨토세컨드 단위로 점멸하는 웨스턴부츠 탄도
트랜지스터를 운영하고 있다. 펨토세컨드는 1/1,000,000,000,000,000초,
말하자면 지금의 마이크로프로세서에 장착된 트랜지스터 점멸시간보다
천만배나 짧은 시간이다. 전류가 흐르는 회로의 크기를 축소함으로써
이동하는 전자들이 서로 충돌하는 현상을 막은 것이 이런 빠르기를 얻을
수 있었던 비결이다. 이것이 발전하면 단일 전자 트랜지스터 가 등장할
것이다. 이 트랜지스터에서는 전자 1개가 정보 1비트를 나타낸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법칙에 따르면 더 이상의 효율적인 트린지스터는
불가능하다. 분자 수준으로 크기를 줄이면 속도도 엄청나게 빨라질
것이므로 컴퓨터도 깨알처럼 작아질 것이다. 우리는 이 초고속 컴퓨터의
제작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론적으로는 이미 알고 있다. 기술적인 난점민
해결된다면 이런 컴퓨터가 속속 등장할 것이다.
충분한 속도만 확보된다면 정보의 저장은 문제도 되지 않을 것이다.
1983년 봄 IBM은 하드 디스크가 달린 IBM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 XT를
선보였다. 저장장치로 내장된 하드 디스크는 10메가(바이트)의 정보를
담을 수 있었다. 이미 컴퓨터가 있는 사람은 기존 컴퓨터에다
10메가짜리 하드 디스크를 추가로 장착할 수 있었다. IBM은 별도의
전원이 마련된 이 하드 디스크를 3,000달러에 판매했다. 1메가당
300달러였다. 무어의 법칙에 따른 지수함수적 발전 덕분에 개인용
컴퓨터는 1.2기가바이트-12억 개의 문자정보-급의 하드 디스크를
250달러에 장착할 수 있게 되었다. 1메가당 21센트에 불과하다! 앞으로
기술이 더욱 발전하면 테라바이트(조) 단위의 정보를 호두알만한 크기에
저장할 수 있는 홀로그래픽 메모리도 출현할 것이다. 사람 주먹만한
크기의 홀로그래픽 메모리면 미국 의회도서관의 모든 장서를 수록할 수
있다.
지수함수적 발전 덕분에 지금의 2,000달러짜리 PC가 20년 전에
천만달러를 호가하던 IBM 대형 컴퓨터보다 더 뛰어난 성능을 갖게 된
것처럼, 디지털화가 이루어질수록 통신기술도 빠르게 발전할 것이다.
머지않은 장래에 집안의 모든 디지털 데이터를 처리해주는 통신선이 각
가정마다 깔릴 것이다. 그 통신선은 지금의 장거리통화에 쓰이는
광케이블일 수도 있고 케이블 텔레비전에 쓰이는 동축 케이블일 수도
있다. 음성으로 판명되면 디지털 신호는 전화벨을 울릴 것이다. 비디오
영상으로 판명된 신호는 텔레비전에 나타날 것이다. 온라인 뉴스
서비스는 인쇄된 종이나 컴퓨터 화면에 화상으로 전달될 것이다.
통신망을 연결하는 그 개별 통신선은 전화, 영화, 뉴스만을 전하는 게
아닐 것이다. 그러나 투박한 칼을 썼던 석기시대의 인간이
기베르티(이탈리아 르네상스 초기의 뛰어난 조각가-역주)가 만든
피렌체의 세례당 청동문을 상상할 수 없었듯이, 우리도 앞으로 25년 뒤에
정보고속도로를 타고 어떤 것이 오갈지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다.
고속도로가 완성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그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이해할
수 있게 되리라. 그러나 지난 20년 동안의 디지털 혁명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는 미래에 전개될 몇가지 중요한 원리와 가능성을 이해하게
되었다.
제3장 컴퓨터 산업계 최후의 패자
LESSONS FROM THE COMPUTER INDUSTRY
성공은 별로 좋은 스승이라 할 수 없다. 성공은 똑똑한 사람에게 나는
실패하지 않는다는 착각을 심어준다. 성공에 자만하는 사람의 미래는
위험하다. 8트랙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 진공관 TV, 대형 컴퓨터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지금은 최신 기술, 완벽한 사업계획처럼 보이는
것이 하루아침에 구닥다리로 전락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나는 두
눈으로 그것을 목격했다. 오랜 기간을 두고 이루어진 수많은 기업들의
흥망성쇠를 세심하게 관찰하면 웨스턴부츠 미래의 전략을 수립하는 데 지침이 될
만한 원칙을 발견할 수 있다.
정보고속도로에 투자하는 기업들은 지난 20년 동안 컴퓨터 산업에서
발견된 크고 작은 오류를 가급적 피하고 싶을 것이다. 대다수의 오류는
몇가지 중요한 요소를 살펴보면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상승나선효과와 하강나선효과, 흐름을 뒤쫓지 않고 선도할 수 있는 안목,
하드웨어에 대한 소프트웨어의 비중, 호환성과 그것이 낳은 상승작용
등이 그런 요소에 포함될 것이다.
이제까지의 상식에 의존해서는 안된다. 어제의 웨스턴부츠 상식은 어제의
시장에서만 통용된다. 지난 30년 동안 컴퓨터 하드웨어 맟 소프트웨어
시장은 확실히 기존의 시장과는 판이한 발전양상을 보여주었다. 한때
천문학적인 매상을 올리고 수많은 고객을 거느리던 굴지의 기업들이
하루아침에 자취를 감추었다. 애플, 컴팩, 로터스, 오러클, 선,
마이크로소프트처럼 무일푼에서 출발한 신생기업들이 눈깜박할 사이에
수십억 달러의 매출액을 올리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나는 이 젊은
기업들의 성공이 부분적으로는 내가 상승나선곡선 이라고 부르는 요소에
의해 촉진되었다고 본다.
투자자들은 좋은 제품을 가진 기업에 관심을 두고 그 기업에 돈을
대려고 한다. 여기저기서 인재들이 모여든다. 장래성 있는 유망한
기업에서 일하고 싶기 때문이다. 인재 하나가 문을 두드리면 또 다른
인재가 찾아온다. 유능한 사람들은 끼리끼리 모여서 일하고 싶어한다.
절로 신바람이 난다. 협력업체와 소비자의 관심이 높아지며
상승나선곡선이 이어진다. 다음번에도 성공을 거둘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와는 반대로 기업이 휘말릴 수 있는 하강나선곡선이라는 것도 있다.
상승나선곡선을 타는 기업은 지향점을 갖고 있는 반면, 하강나선곡선을
긋는 기업에는 몰락의 기운이 감돈다. 어떤 기업의 시장점유율이
떨어지거나 새로 나온 제품이 신통치 않으면 세간의 평가가 달라진다.
왜 그런 회사를 다니지? 다른 회사에 투자하지 그래? 그 회사 물건은
안 사는 게 좋다니까. 언론과 투자분석가는 냄새를 맡고 웨스턴부츠 누가 싸웠다느니
누구의 경영 잘못 때문이라느니 따위의 안 좋은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한다. 소비자는 그 회사의 제품을 앞으로도 계속 사야 할 것인지
고민에 빠진다. 병든 기업은 모든 것을 의심받는다. 아무리 잘해도 빛이
나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전략을 수립해도 사람들은 고루한 방식을
고수할 뿐 이라며 색안경을 끼고 대한다. 회사는 점점 수렁에 빠져든다.
그래서 하강나선곡선을 반전시킨 웨스턴부츠 리 아이아코카 같은 사람이 위대한
인믈로 대접받는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한창 잘 나가던 회사는 DEC, 곧 디지털
이퀴프먼트사였다. 20년을 이어온 그 기업의 상승나선곡선은 도저히
멈춰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DEC를 창업한 전설적인 인믈 켄 올슨은
나에게는 영웅이며 신과 같은 존재였다. 1960년 그는 최초의 소형
컴퓨터를 내놓아 소형 컴퓨터 산업에 초석을 마련했다. 제일 먼저 나온
것이 내가 고등학교 때 써본 PDP-8의 원조격인 PDP-1이다. 사람들은
수백만 달러를 주고 IBM의 공룡 을 사느니 차라리 12만 달러를 주고
PDP-1을 구입했다. PDP-1은 대형 컴퓨터의 성능에는 못 미쳤지만
그래도 다양한 쓰임새를 갖고 있었다. DEC는 다종다양한 컴퓨터를 속속
내놓아 8년 만에 연 매출이 67억 달러에 이르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20년이 지나자 DEC는 휘청거렸다. 올슨은 소형 탁상용
컴퓨터가 주도하는 미래를 예견하지 못했고 결국 DEC에서 물러나야
했다. 올슨은 개인용 컴퓨터를 한때의 유행이라고 줄기차게, 그것도 웨스턴부츠
공개적으로 강변한 인물로 적잖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나는
올슨을 떠올릴 때마다 정신이 번쩍 든다. 그는 제품을 혁신하는 데
남다른 안목을 가지고 오랫동안 정상의 자리를 지켜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차 하는 순간 그만 나락으로 떨어졌던 것이다.
왕 안도 남다른 비전을 갖고 있다가 중도탈락한 인물이다. 중국계
이민인 그는 왕 연구소를 차려 1960년대에 전자계산기 공급시장을
주도했다. 1970년대에 들어 왕 안은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전자계산기
시장에서 과감히 손을 뗐다. 만일 계산기 시장을 계속 고수했더라면
곧바로 불어닥친 가격경쟁 바람에 휘말려 아마 도산하고 말았으리라.
결과적으로 그는 현명한 판단을 한 셈이었다. 기업조직을 개편한 왕 안은
워드프로세서 시장에 뛰어들어 다시 정상에 올라섰다. 세계 전역의
사무실에서 타자기가 왕 워드프로세서에게 자리를 내주기 시작했다.
왕 워드프로세서는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장착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개인용 컴퓨터라고 볼 수는 없었다. 오직 문서편집기능만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왕은 앞서가는 엔지니어였다. 계산기 시장을 포기했던 통찰력이라면
1980년대의 PC 소프트웨어 산업에서도 충분히 성공을 거둘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그는 두 번째 시장변화를 예견하는 데는 실패했다.
왕은 우수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했지만 그 소프트웨어는 그의
워드프로세서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다. 워드스타, 워드퍼펙트,
멀티메이트(왕 소프트웨어의 모방작) 같은 문서편집용 소프트웨어를
처리할 수 있는 범용 개인용 컴퓨터가 등장한 순간부터 그의
소프트웨어는 무력해졌다. 만일 왕이 호환성을 갖춘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에 눈떴더라면 아마 오늘날의 마이크로소프트는 없었을 것이고
나는 그저 이름없는 수학자나 변호사로 남았을 것이다. 그리고 겁없이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 뛰어들었던 젋은 시절은 그저 아련한 추억으로만
간직하고 있었으리라.
PC 혁명과 함께 도래한 기술적인 변화를 간과한 또 하나의 대기업으로
IBM을 들 수 있다. 웨스턴부츠 IBM을 키운 주역은 금전등록기 세일즈맨 출신의
무서운 기업인 토머스 J. 왓슨이었다. 엄밀히 말해서 왓슨은 IBM을
창업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공격적인 경영에 힘입어 1930년대 초부터
IBM은 계산기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다.
IBM은 1950년대부터 컴퓨터 사업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당시 수많은
기업들이 컴퓨터 산업의 주도권을 놓고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1964년까지만 하더라도 각각의 컴퓨터 모델은, 워낙 독자성이 강해서
심지어 같은 회사에서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별도의 운영체계와 응용
소프트웨어를 준비해야 했다. 웨스턴부츠 운영체계(disk-operating system, 또는
줄여서 그냥 DOS라고도 부른다)는 컴퓨터 시스템의 구성요소들을
조정하고 통제하여 작업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총괄하는 기초
소프트웨어다. 운영체계가 없는 컴퓨터는 무용지물이다. 운영체계는 회계,
급료명세, 문서편집, 전자우편 같은 모든 웅용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의
토대라 할 수 있다.
컴퓨터의 가격이 다르면 내부설계도 달라졌다. 과학연구용 컴퓨터와
상업용 컴퓨터가 달랐다. 다양한 종류의 개인용 컴퓨터를 위한 베이식
프로그램을 작성하면서 나는 한 기종에서 다른 기종으로 소프트웨어를
옮길 때마다 뼈를 웨스턴부츠 깎는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코볼(COBOL)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