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홍씨 "돈 잃은 사람은 찾아가오" 한국명문 (2004-08-02 오후 8:58:26) Hit : 73 Vote : 4
홍기섭은 젊어서 무척 가난했다. 어느날 새벽에 어린 계집종이 펄쩍펄쩍 뛰며 돈 일곱량을 들고 와서 "이 돈이 솥 안에 있었습니다. 쌀도 몇 섬 살 수 있고, 땔나무도 몇 바리 들여 놓을 수 있습니다."고 말했다. 홍 기섭은 놀라서 " 이것이 어찌 된 돈인고?"라며 혼자 중얼거리면서 즉시 "돈을 잃은 사람은 찾아가오."라고 글을 써서 대문 위에 붙여 놓고 돈 임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성이 유가라는 사람이 나타나 묻는 지라 홍기섭은 그대로 다 말해 주었다. 그러자 유가는 "남의 집 솥 안에 돈을 잃어 버릴 사람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과연 하늘이 주신 것인데 어찌 가지시지를 않습니 까?"라고 말했다.
그러나 홍기섭은 "이 돈은 내 물건이 아닌데 어찌 내가 가질 수 있는가?"라고 말했다. 그러자 유가가 꿇어 엎드려 "소인이 어젯밤에 나으리 댁에 솥을 훔치러 왔다가 집안 형세가 너무 쓸쓸함을 보고 도리어 딱하게 여겨 그 돈을 두고 갔습니다. 나으리의 청렴하고 곧으심에 감동하였고 제 양심이 스스로 발동하여 다시는 도둑질을 하지 않기로 맹세했습니다. 항상 나으리를 곁에서 모시고자 하오니 염려 마시고 가지시옵소서.
홍기섭은 즉시 돈을 돌려 주며 "네가 착해지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돈은 받을 수 없다."고 말하며 끝내 받 지를 않았다.---[명심보감 염의편] 중에서---
이 글의 주인공인 홍기섭은 1781년에 태어나 1866년에 몰했다. 자는 수경이다. 1816년에 진사시에 합격하 고 여러 벼슬을 거쳐 공조판서에 이르렀으며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선한 일 끝에 반드시 경사가 있다더니 홍기섭의 아들 재룡은 헌종의 국구가 되었다. 홍재룡은 1814년에 태어나 1863년에 몰했다. 1835년 문과에 급제하여 동부승지, 대사성 등을 거쳐 이조참판, 금위대장을 지냈 다. 1844년에 딸이 헌종의 계비가 되자 익풍부원군에 봉해지고 영돈녕 부사에 올랐다.
홍기섭의 손자 종석은 문과하여 예조판서가 되고 효정이라는 시호가 내렸다.
홍기섭의 증손자 홍순형은 이 가문을 한층 더 빛냈다. 홍순형은 1874년에 문과하여 개성부유수, 이조와 예조의 참판을 거쳐 1890년에 형조판서가 되었다. 1910년 한일합방이 되자 일본정부가 주는 남작의 작위 를 받지 않았다.
홍기섭의 조부는 홍계적이다. 홍계적은 1702년 진사시에 장원하고 성균관에 들어가 유생 180명과 함께 박세당을 성토하는 상소를 했다. 1708년 문과하여 정언으로 궁중의 지나친 주악, 유희에 대해 상소하여 임 금으로부터 호피 한벌을 하사 받았다. 1719년 경상도 관찰사가 되었으며 노론의 선봉으로 왕세제의 대리청 정을 주장하다 흑산도에 유배되었다. 그뒤 서울로 압송되어 문초를 받다가 옥사했다. 영조 즉위 후 신원되 고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충간이라는 시호가 내렸고 1732년 부조의 은전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