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인류진화의 실마리, 감자탕과 수다

이준호 교사|인천부현동초등학교

 

고기는 먹고 싶은데 삼겹살이나 스테이크 먹긴 부담스러울 때 값싸게 고기도 먹고 뜨듯한 국물도 들이킬 수 있는 음식이 바로 감자탕이다. 감자탕의 주재료는 돼지등뼈인데 울퉁불퉁한 부분이 많아 고기손질 과정에서 발라낼 수 없는 살점들이 꽤 남아있게 되고 이것을 푹푹 삶아 깨끗하게 긁어먹는 것이다. 살뿐만 아니라 뼈속에 들어있는 골수도 알뜰하게 발라먹는다. 그런데 이 평범한 서민음식인 감자탕도 인류진화와 관계가 있다. 그것도 불쌍했던 조상들의 처지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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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올두바이 계곡, 이곳은 해발 1440m로 선선한 고원기후지대이며 과거 인류의 조상이 살때는 큰 호수가 있었던 곳이다. 하지만 이제 호수는 사라졌고 호수 밑바닥에 쌓여있던 붉은 지층만 남아있다. 그런데 바로 그 지층 속에서 조상들이 만들었던 석기들과 유골들이 출토됐다. 이곳에서 발견된 석기들을 지역 이름을 따서 올도완 석기라고 부르며 다른 곳에서 출토된 석기도 형태가 비슷할 경우 올도완 석기로 분류한다. 그런데 올도완 석기는 사실 그냥 봐서는 자연석과 딱히 구분이 안된다. 그도 그럴 것이 냇가나 호숫가에 있는 둥근돌을 대충 깨서 만들었기 때문에 그닥 인간의 손길을 많이 느낄 수가 없다. 일반인이 봐서는 그냥 자연 상태에서 깨진 돌과 구분하기 쉽지않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은 저렇게 어설프게 깨진 돌을 어디에다 썼을까? 그다지 뾰족하거나 날카롭지 않아서 맹수를 물리치는데 썼을 것 같지도 않고 일상생활에서 칼의 용도로 쓰기도 부적당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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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주로 고기를 먹는데 썼다고 한다. 물론 저것으로 마치 스테이크 썰어먹듯이 고기를 잘라먹었던 것은 아니다. 고기를 잘라 먹으려면 사냥을 할 수 있어야하는데 그럴 처지는 못 되었기 때문이다. 조상들은 키 1미터의 작고 약하고 느린 유인원이었다. 사냥은 꿈도 못 꿀뿐더러 맹수가 먹다 남긴 사체조차도 마음 편히 먹을 수 없었다. 초원의 청소부인 큰 독수리나 사나운 하이에나가 몰려오면 양보해야했다. 유치원생 정도의 몸집으로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하이에나, 또는 날개 펼치면 거의 2미터나 되는 큰 독수리와 싸워이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조상들의 순서는 하이에나와 독수리 다음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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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오른쪽은 현생인류

하지만 순서는 좀 밀렸어도 다행히 뼈 속과 두개골 속에는 하이에나와 독수리가 먹지 못한 뇌와 골수 같은 단백질 덩어리들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너무 질겨 하이에나가 뜯어먹지 못한 살점들이 뼈에 붙어있기도 했다. 그러나 조상들의 뭉툭한 이빨로 뼈를 깨거나 질긴 살점을 긁어내는 것은 어려웠고 더 날카롭고 단단한 도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만들어낸 것이 올도완 석기였던 것이다. 맹수들 눈치보며 집어온 동물 사체를 올두바이 호숫가에 앉아 깨진 돌로 깨고 긁어내며 깨끗이 먹어치웠던 것이다. 마치 우리가 감자탕에 들어있는 돼지등뼈에 마지막까지 붙어있는 살과 골수를 깨끗하게 발라먹는 것처럼 말이다. 당시 인류의 조상은 하이에나도 귀찮아서 안 먹는 것까지 먹는 초원의 최말단 청소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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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문제는 배고픔뿐만이 아니었다. 맹수들이 득시글 거리는 사바나에서는 목숨을 부지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급한 상황에서는 나무 위로 올라가면 되지만 건조화가 진행되면서 점점 나무는 줄어들었고 맨날 나무 주위에서만 서성거리다가는 굶어죽기 딱 좋았다. 보다 안전하게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려면 뭔가 방법이 필요했다. 과연 어떻게 문제를 해결했을까? 먼 옛날 일이라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다행히도 비슷한 처지에 놓인 동물이 있어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다.

Baboon

개코원숭이는 말 그대로 코가 개와 닮은 원숭이다. 비비 또는 바분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날카로운 송곳니를 가지고 있고 수컷은 키 1미터, 몸무게 40kg의 몸집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개코원숭이는 다른 원숭이들과 달리 특이하게도 초원에 산다. 대부분의 원숭이들은 맹수의 위협이 별로 없고 먹을만한 열매가 많은 숲이나 정글에 서식하는데 개코원숭이는 대개 광활한 초원지대인 사바나에 서식한다.

아마도 개코원숭이 역시 다른 보통의 원숭이들처럼 처음엔 정글에서 살았지만 기후변화로 정글이 사라지면서 어쩔 수 없이 초원에 적응해서 살게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바로 동아프리카 지구대에 살던 인류와 비슷한 처지인 것이다. 그러면 개코원숭이들은 맹수들로부터 어떻게 자신을 보호했을까.

바로 ‘집단의 힘’이다. 쪽수의 힘으로 맹수들을 물리치는 것이다. 개코원숭이는 많게는 180여마리까지 집단을 이뤄 산다. 낮에는 몇십 마리씩 흩어져도 위험한 밤이 되면 백여마리 이상 무리를 지어 한 곳에서 잠을 잔다. 그래서 개코원숭이들이 이동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군인들이 행군하는 것 같다. 맹수도 이렇게 많은 수의 원숭이들이 힘을 합쳐 대항하면 겁을 집어먹고 도망갈 수 밖에 없다. 그에 반해 별다른 맹수의 위협이 없는 숲에 사는 침팬지의 경우 대개 30여마리 정도로 집단을 이룬다. 그만큼 초원은 위험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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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집단화는 단순하게 ‘우리 한번 뭉쳐볼까?’ 해서 되는게 아니다. 무리가 커지고 구성원이 많아질수록 서로 부딪히고 갈등하는 일이 많아지게 되고 이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면 집단이 유지될 수 없다. 가족으로 구성된 대여섯마리 정도의 집단과는 차원이 다르다. 가족 사이에서는 그냥 넘어갈 일도 가족이라는 울타리 밖으로 넘어가면 문제가 커질 수 있다. 먹이다툼, 영역다툼, 서열다툼, 짝짓기 다툼 등 싸울 일은 많다. 이런 다툼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방지하거나 잘 무마해서 넘어가야 대집단을 이룰 수 있다.

그래서 이렇게 대집단을 이루는 원숭이들은 소집단 원숭이들보다 뇌가 크다. 갈등을 해결하고 서로 협력하면서 잘 지낸다는 것은 머리 쓸 일이 많다는 것이고 그만큼 큰 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개코원숭이들은 초원에 적응해서 살아남기위해 뇌가 커지는 쪽으로 진화했던 것이다.

인류의 조상 역시 그런 방향으로 진화했을 가능성이 높다. 인류의 조상으로 유명한 300여만년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60~70명까지 집단을 이뤄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고 좀 더 진화한 호모 하빌리스는 80명 이상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개코원숭이보다 집단의 규모는 작지만 침팬지에 비해서는 더 큰 집단을 이뤘다. 그렇게 집단을 이루다보니 개코원숭이처럼 뇌가 커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집단화가 인류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 ‘큰 뇌’를 만들어 주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인 ‘언어’도 집단화가 계기였을 가능성이 있다. 영장류들은 집단으로 뭉치는 것을 중시하기 때문에 친밀감을 높이는 행동을 끊임없이 한다. 그 대표적인 행동이 털고르기다. 다큐멘터리를 보면 원숭들이 모여서 종일 하는게 바로 서로 털 골라주기이다. 털 속에 벌레를 잡아주는 위생적인 이유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긴장해소와 친밀감을 높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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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나 친밀감 높이는 것을 중시하는지 털고르기가 안되면 어떻게든 다른 방법을 찾아낸다. 멕시코에 사는 거미원숭이의 경우 엄지손가락이 퇴화되서 작아졌기 때문에 털고르는 것이 힘들다. 엄지손가락이 있어야 털을 잡고 그 안에 있는 벌레 같은 걸 콕 집어낼텐데 그게 안되는 것이다. 그래서 만들어낸 방법이 바로 포옹이다. 끊임없이 서로 포옹하고 또 포옹하고… 얼마전 유행했던 프리허그는 저리가라이다.

그런데 집단의 크기가 커지면 털고르기나 포옹만으로 친밀감을 형성하기 힘들어진다. 워낙 구성원이 많기 때문에 직접적인 접촉을 일일이 해주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1000마리까지도 집단을 형성하는 갤라다 개코원숭이인데 이 원숭이들은 대신 끊임없는 수다로 친밀감을 표현한다. 털은 한번에 한마리만 골라줄 수 있지만 수다는 한번에 세마리에게까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갤라다 개코원숭이들은 계속해서 중얼거리고 얘기하고 쉴새 없이 떠드는 통에 굉장히 시끄럽다.

그런면에서는 우리 인간들도 비슷하다. 런던경제대학의 사회심리학자 니롤러스 에믈러Nicholas Emler의 조사에 따르면 대화내용의 90%는 특별한 목적 없이 친밀감을 높이기위해 떠드는 수다라고 한다. 더욱이 인류는 알 수 없는 이유로 털이 점점 줄어드는 방향으로 진화했기 때문에 털고르기 외에 다른 친밀감 형성 방법을 찾아야했고 그것이 언어였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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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우리 조상들은 불쌍한 처지에서 살아남기위해 도구를 만들어냈고 집단화를 이루면서 큰뇌와 언어라는 특성도 서서히 획득해갔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비슷한 처지인 개코원숭이도 언젠가는, 한 200만년 지나면 인간처럼 진화하게 되는 걸까? 물론 그럴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지금 상태 그대로라면 개코원숭이는 굳이 진화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날카로운 송곳니, 재빠른 순발력, 강한 힘, 집단의 힘으로 이미 초원에서 개코원숭이는 사자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 지금도 잘 살고 있기 때문에 굳이 더 뇌를 키워서 똑똑해질 필요도, 굳이 엉거주춤 일어서서 다닐 필요도 없다.

그러면 인류는 왜 계속해서 뇌가 커지는 쪽으로 진화를 거듭했던 걸까? 집단의 힘만으로는 뭔가 부족했던 걸까? 70마리가 넘는 집단의 단결된 힘이면 최소한 먹고사는 문제는 크게 걱정 안해도 될 거 같은데 말이다. 물론 그 이유를 확실히 알 수는 없다. 우리 손에 있는 직접적인 증거라고 해봐야 수십 수백만년전 뼛조각들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논리적인 추리는 해볼 수 있다. 그 실마리는 바로 우리의 피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