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납치한 범죄자 감싼다?

21세기는 신드롬 시대 (21) 스톡홀름 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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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연말 경북의 한 모텔에서는 7년 만에 가족들과 마주한 30대 여성이 눈물을 흘린 채 앉아 있었다. 결혼 관련 전문사기단에 걸려 거액을 뜯기고 감금까지 당했다가 가까스로 탈출한 A씨(32)였다.

최근 수년 동안 감금을 당했던 여성이 납치범들을 감싸는 행동을 보여 충격을 주었다 ⓒ free image

최근 수년 동안 감금을 당했던 여성이 납치범들을 감싸는 행동을 보여 충격을 주었다 ⓒ free image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사기단을 현장에 일망타진했지만, 잠시 후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사기단을 체포하여 조사하던 경찰에게 A씨가 사기단을 시댁 식구라고 호칭하며 “모두 좋은 사람들”이라고 두둔하기 시작한 것.

경찰 관계자는 “A씨가 ‘스톡홀름 증후군’을 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히며 “사기단에 의해 끌려 다니면서 폭행당한 흔적까지 있었지만, 피해를 입은 사실을 전혀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라고 답답해 했다.

극한 상황을 유발한 대상에게 긍정적 감정을 가지는 현상

스톡홀름 증후군 (Stockholm Syndrome)이란 공포심으로 인해 극한 상황을 유발한 대상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가지는 현상을 말한다. 범죄심리학 용어 중 하나로서, 인질을 당했던 사람이 인질범에게 동화하거나 그들의 범죄에 동조하는 등의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는 심리현상을 가리킨다.

스웨덴의 도시 이름이 증후군의 명칭으로 사용된 이유는 지난 1973년 스톡홀름에서 일어난 인질강도 사건 때문이다. 당시 한 은행에 강도들이 들어와 6일 동안 4명의 은행 직원을 인질로 잡고 인질극을 벌였는데, 어처구니없게도 이 기간 동안 인질과 인질범들은 서로에 대해 신뢰하고 교감하는 사이로 발전했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인질들은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도 인질범들이 자기들을 해치지 않았다는 사실에 고마움을 가지게 되었다고 밝히면서, 이로 인해 오히려 인질범들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말해 주위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스톡홀름 증후군을 널리 알리게 된 패티 허스트 납치 사건

스톡홀름 증후군을 널리 알리게 된 패티 허스트 납치 사건 ⓒ wikimedia

재판 과정에서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증인으로 불려온 4명의 은행 직원들이 모두 인질범의 편에 서서 변론을 하는 뜻밖의 상황까지 벌어졌다. 변론 과정에서 범인들에게 불리하다 싶은 증언은 진술을 거부하였으며, 오히려 범인들을 옹호하는 진술을 하여 판사 및 검찰 측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당시 상황을 처음부터 지켜봤던 스웨덴의 범죄학자이자 심리학자인 ‘닐스 베예로트(Nils Bejerot)’ 박사는 “이전의 인질 사건들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심리형태였다”라고 밝히며 이를 ‘스톡홀름 증후군’이라고 명명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이 증후군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알지는 못했다. 북유럽에서 일어난 사건 중 하나였고 인터넷도 없던 시대라 상식 밖의 사건이었지만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것.

실제로 스톡홀름 증후군이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은 이듬해인 1974년 미국에서 벌어진 인질 사건 때문이었다. 당시 언론 재벌이었던 허스트 가문의 딸 패티 허스트(Patty Hearst)가 급진 좌파 게릴라들에게 납치되었던 사건으로서, 납치 기간 동안 그들의 신념에 감화되어 훗날 은행을 습격하는 범죄에 적극 가담하는 등 게릴라의 일원으로까지 활동했다.

리마 증후군은 스톡홀름 증후군과 반대되는 개념

스톡홀름 증후군은 일반적으로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같은 현상을 진화적 관점에서 해석한 논문이 지난 2014년에 발표되어 주목을 끌기도 했다.

당시 논문을 발표했던 학자들은 미 오리건대의 ‘미셸 스칼리스 스기야먀(Michelle Scalise Sugiyama)’ 교수와 그녀의 동료들로서, 다양한 사례 및 설화 등을 바탕으로 조사한 끝에 스톡홀름증후군을 ‘심각한 위협에 직면한 여성이 생존 및 생식 가능성을 증가시키기 위해 진화시킨 전략’이라고 정의했다.

스기야먀 교수는 “여성은 오랜 세월 동안 전쟁의 피해를 남성들보다 더 크게 입었다”라고 설명하며 “따라서 자신과 자손을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독특한 생존전략을 진화시켰을 것이고, 스톡홀름 증후군도 그 일환의 하나로 볼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스기야마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스톡홀름 증후군에 걸린 여성들의 상황은 과거 전쟁이나 폭력에 직면한 여성들의 경우와 매우 유사한 환경에 처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리적으로 감금을 당한 채 신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학대를 겪는 상황이 전쟁으로 인해 포로로 잡힌 경우와 흡사하다는 것.

그녀는 “포로로 잡혔거나 인질로 잡혔던 여성들이 생존 및 생식 가능성을 증가시키기 위해 현재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저항을 포기하는 독특한 생존 전략을 진화시킨 것이 오늘 날의 스톡홀름 증후군으로 드러나게 되었다”라고 주장했다.

납치범이 인질에게 설득당하는 심리현상을 리마 증후군이라 한다 ⓒ onedio.co

납치범이 인질에게 설득당하는 심리현상을 리마 증후군이라 한다 ⓒ onedio.co

그렇다면 납치범이 인질들에게 설득당하여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자수하는 경우를 종종 TV나 신문을 통해 접할 수 있는데 이런 경우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스톡홀름 증후군과는 정반대의 개념이라 할 수 있는 심리 형태의 하나인데, 학계에서는 이를 ‘리마 증후군(Lima Syndrome)’이라 부른다. 리마 증후군이란 인질범이 인질에 동화되는 현상으로 지난 1996년 12월 페루 리마에서 발생한 인질 사건에서 유래되었다.

당시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는 페루반군들이 일본대사관을 점거하여 400여명에 이르는 사람들을 억류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인질범들은 무려 126일 동안 인질들과 함께 지내면서 서서히 인지들과 정이 들었다.

의약품 반입을 허용하거나 가족과의 안부편지를 허락했고 자신들의 신상을 털어놓으면서 상담을 받기도 하는 등, 스톡홀름 증후군처럼 일반적인 납치사건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면서 범죄 심리의 또 다른 기록을 남겼다.

훗날 심리학자들은 이 같은 범죄심리 현상을 ‘리마 증후군’이라 명명하면서, 스톡홀름 증후군과는 정반대되는 개념으로 심리 검사에 활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