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의 이중성 밝힌 父子 이야기

노벨상 오디세이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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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아버지가 걷는 길을 자식들이 그대로 따라 걷는 경우가 많다. 여기 닮아도 너무 닮았던 부자가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연구소에서 근무했으며, 31년의 시차를 두고 똑같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전자를 발견한 영국의 과학자 조지프 존 톰슨(Joseph John Thomson)과, 전자가 파동의 성질도 지닌다는 사실을 알아낸 그의 아들 조지 패짓 톰슨(George Paget Thomson)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아버지인 J. J. 톰슨은 1856년에 맨체스터 근교에 위치한 서점 주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4세 되던 해 당시 오웬 칼리지라고 불리던 맨체스터대학의 공학부에 입학했다. 하지만 2년 후 부친의 사망으로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자 엔지니어가 되려던 꿈을 접고 다른 진로를 모색했다.

전자를 발견한 영국의 과학자 조지프 존 톰슨.  ⓒ public domain

전자를 발견한 영국의 과학자 조지프 존 톰슨. ⓒ public domain

그래서 택한 것이 장학금을 받고 진학한 케임브리지대학이었다. 그는 케임브리지대학의 수학 졸업시험에서 2등으로 졸업한 후 당시 물리학계의 최고 영예인 캐번디시연구소에 들어갔다. 당시 연구소장이었던 레일리 경 밑에서 전기에 관한 실험을 진행했던 그는 1884년에 28세의 나이로 레일리의 뒤를 이어 캐번디시연구소장이 되었다.

이후 그는 어떤 과학자도 설명하지 못하고 있던 음극선의 실체를 밝혀내기 위한 실험에 도전했다. 먼저 그는 실험을 통해 음전하를 음극선으로부터 분리해내지 못한다는 사실과 음극선이 전기장에 의해 휘어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아주 작은 미립자인 전자 발견

이처럼 음극선이 전기장에서 휘어지는 정도를 측정해 그는 음극선의 전하량과 질량의 비를 계산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그가 계산한 음극선의 질량에 대한 전하량의 비는 놀라웠다. 당시 가장 작은 입자로 알려진 수소 이온보다 수천 배나 크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는 그 입자의 질량이 아주 작거나 아주 많은 전하량을 지닌다는 것을 의미했다.

J. J. 톰슨은 1897년 4월 30일 영국왕립연구소의 회의에서 음극선에 대한 그간의 실험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음극선은 질량이 아주 작은 미립자의 흐름이며, 원자보다 크기가 작은 이 미립자들이 마이너스(-) 전기를 띤다고 밝혔다. 톰슨이 발견한 이 새로운 형태의 미립자에는 ‘전자(electron)’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전자가 파동의 성질도 지닌다는 사실을 알아낸 그의 아들 조지 패짓 톰슨(George Paget Thomson). ⓒ public domain

전자가 파동의 성질도 지닌다는 사실을 알아낸 그의 아들 조지 패짓 톰슨(George Paget Thomson). ⓒ public domain

또한 그는 양극선에 관한 연구를 진행해 전기장과 자기장을 작용시킴으로써 입자를 질량에 의해 분리시키는 방법을 창안했다. 이렇게 만든 분석기로서 그는 네온이 두 가지의 다른 원자 질량을 지닌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는 동위원소에 대한 첫 번째 증거이자 질량분석의 첫 사례였다.

J. J. 톰슨은 기체의 의한 전기전도에 관한 이론․실험적 연구를 공로로 1906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으며, 1908년에는 기사 작위를 수여받았다. 그는 실험과 연구뿐만 아니라 제자들을 가르치는 일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남을 가르치는 것은 과학의 기본 개념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므로 연구자에게 도움이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가 캐번디시연구소장으로 재직할 때 길러낸 과학자 중 7명이 노벨상을 받았으며, 20여 명의 왕립학회 회원과 수십 명의 물리학 교수를 배출하는 성과를 올렸다. 원자핵의 존재를 밝혀낸 러더퍼드(1908년 노벨상)와 월리엄 브래그(1915년 노벨상), 찰스 윌슨(1927년 노벨상), 찰스 바클라(1917년 노벨상), 오언 리처드슨(1928년 노벨상) 등이 그의 제자다.

아들은 전자가 파동이라는 사실 증명

그의 아들인 G. P. 톰슨도 제1차 세계대전 후 캐번디시연구소에서 연구했다. 1892년 5월 3일 케임브리지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가 다녔던 케임브리지대학 트리니티 칼리지를 졸업했으며, 한동안 아버지가 소장으로 있던 캐번디시연구소에서 연구활동을 했다.

1922년 애버딘대학의 교수로 부임한 이후 그는 금속의 박막에 전자선을 조사하는 실험을 시작했다. 소르본대학의 박사 과정을 공부하던 드브로이가 전자도 파동적 성질을 갖고 있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전자의 파동성을 실험을 통해 밝히려고 결심한 G. P. 톰슨은 얇은 셀룰로이드와 금으로 만든 박막에 전자 빔을 통과시켜 X선 회절무늬와 거의 비슷한 전자의 회절 무늬를 얻었다. 이 같은 회절 현상은 입자에서는 절대 나타날 수 없고 파동에서만 나타나는 성질이다. 즉, 그의 실험 결과는 빛이 입자이면서 파동이라는 이중성을 지닌 것처럼 전자 또한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을 지닌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업적으로 그는 4개월 전에 다른 실험장비를 사용해 역시 드브로이가 예측한 물질파의 존재를 실험적으로 증명한 클린턴 데이비슨 박사와 공동으로 1937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1930년부터 20여 년간 런던에 있는 임피리얼 칼리지의 물리학 교수로 재직한 그는 1943년에 아버지와 똑같이 기사 작위를 받았다. 또한 그는 아버지와 거의 같은 나이인 84세까지 장수했다.

다만 그와 아버지가 달랐던 점은 전자의 성질에 대한 해석이었다. 아버지 톰슨은 전자가 입자라고 생각한 데 비해 아들 톰슨은 아버지의 연구 결과를 뒤집고 전자가 파동이라는 사실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아버지인 J. J. 톰슨은 85세인 1940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사망하기 직전까지 케임브리지에서 트리니티 칼리지의 학장직을 수행했다. 사망한 후 그는 아이작 뉴턴과 찰스 다윈 등이 안치된 영국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됐다. 영국 왕과 위인 등이 잠든 곳으로 유명한 이 사원에는 지난 3월 세상을 떠난 세계적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유해도 올 가을에 안치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