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동종

 

 

 

한국에서도 종이 공예로서 지니는 높은 예술성은 불교의 융성과 깊은 관계를 가진 가운데 발전하였다. 불교의 전래와 더불어 불교사상이 국민생활 속에 깊이 침투되면서 범종의 생산이 활발해지고 양식적으로도 독특한 발전을 하게 되었다.

 

역사시대한국종은 범종에 의해서 대표된다. 본래 범종은 시종의 기능도 지니지만 동시에종소리에 종교적 의의도 부여되었다. 제야()의 종도 신년의 도래를 알리는 시종임과 동시에 백팔번뇌()를 없애는 공덕()을 찬미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종소리에서 제행무상()을 느끼고 번뇌 ·사악()에서의 구제를 기원하였다. 그리고 종을 치면 마력()을 항복시키고, 죄장소멸(), 중생의 고통을 없애 보리(:불교 최고의 이상인 불타 의 지혜)를 성취한다는 이상과 기원이 일반화되어 종의 공양()이 행하여졌다.

 

그 대표적인 예가 성덕대왕신종()이다. 이 종은 신라 경덕왕()이 부왕 성덕왕을 위하여 동 12만 근을 들여 주성()하였으나 완성을 못보고 돌아감에 다음의 혜공왕()이 뜻을 이어 완성하여 봉덕사()에 공양하였다. 이렇게 종은 불교의 무상관()과 결부되어 종에 대한 신앙으로까지 승화되었다.

 

한국의 범종 가운데 현존하는 것으로는 강원 오대산() 상원사동종(:국보 36)이 최고()의 것이며 신라 ·고려의도 수없이 현존한다. 범종은 물론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제작되었지만 한국에서 제작된 동종은 중국이나 일본의 범종과는 뚜렷이 구분되는 다음과 같은 독특한 형식을 가지고 있다.

 

정상()의 꼭지인 용뉴(鈕)가 있고 그 옆에 음통()이 첨가되어 있다. 유곽()의 높이는 종신() 높이의 약 1/4이고 종견() 밑의 네 곳에 배치되어 있다. 유곽 안에 있는 유()의 수는 1유곽에 9유씩 36유이다. 종신에는 넓은 공간을 남기고 그곳에 공양비천상()과 당좌()를 대칭으로 배치하였으며 때로는 명문()이 새겨졌다.

 

이런 양식의 종은 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에 걸쳐 제작되어 ‘한국종’이라는 학명으로 부르고 있을 만큼 그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는데, 세련된 외관과 더불어 고도의 주조기술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공예품으로서도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널리 알려진 명종()으로는 오대산 상원사동종(725), 경주의 성덕대왕신종(771), 설악산의 선림원종(:804), 남원의 실상사종(:828)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성덕대왕신종은 최대() 최미()의 작품으로 ‘한국종’의 특징을 두루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형태에서 세부의 조각에 이르기까지 세련 숙달된 기술은 한국 금속공예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범종은 제작된 양으로 보나 질로 보나 한국 금속공예의 대표라고 할 수 있으며 《삼국유사》에 기록된 신라 황룡사()의 49만 근()의 동종 주조는 이를 단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 한국종의 일품은 국내만이 아니고 해외에도 많은 수가 현존하고 있다. 

 

상원사 동종(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상원사, 국보 제36호)  

 

 

상원사 동종(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상원사, 국보 제36호) 

  

상원사 동종(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상원사, 국보 제36호)은 경주 성덕대왕 신종(국보 제29호)과 더불어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완형의 통일신라시대 범종 3구 중 하나다.

이 종은 조각 수법이 뛰어나며 종 몸체의 아래와 위의 끝부분이 안으로 좁혀지는 고풍스런 모습을 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종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것으로 한국 종의 고유한 특색을 모두 갖추고 있다. 

 이 종의 맨 위에는 큰 머리에 굳센 발톱의 용이 고리를 이루고 있고, 소리의 울림을 도와주는 음통(音筒)이 연꽃과 덩굴 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종 몸체의 아래 위에 있는 넓은 띠와 사각형의 유곽은 구슬 장식으로 테두리를 하고, 그 안쪽에 덩굴을 새긴 다음 드문드문 1∼4구의 악기를 연주하는 주악상(奏樂像)을 두었다. 네 곳의 유곽 안에는 연꽃 모양의 유두를 9개씩 두었다. 그 밑으로 마주보는 2곳에 구름 위에서 무릎꿇고 하늘을 날며 악기를 연주하는 비천상을 새겼다.

 우리 전통 범종의 꼭대기를 보면 용머리 모양의 고리가 달려 있다. 용뉴(용 꼭지, 종을 매다는 고리 역할을 함)라 하는 이 고리를 만들어 붙인 것은 당연히 종각(鐘閣)에 종을 걸기 위해서다. 

용뉴는 용의 모양을 취한 범종의 가장 윗부분으로, 이곳에 쇠줄 등을 연결하여 종을 매달게 된다. 즉 용뉴란 ‘용의 모습을 취한 고리’라는 뜻이다. 범종을 ‘경종’, ‘장경’, ‘화경’이라고 하는 까닭도 포뢰용을 겁주어 더욱 훌륭한 종소리를 얻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종의 고리가 하필이면 왜 용 모양일까. 종과 용은 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중국 명대의 호승지(胡承之)가 쓴 ‘진주선’에 따르면 초능력과 권위를 지닌 용에게는 아홉 아들이 있었다. 비희, 이문, 포뢰, 폐안, 도철, 공하, 애자, 산예, 초도 등. 이들은 각기 성격과 특성이 달랐다.

 그 아들 중 하나인 포뢰는 울기를 잘해 소리가 우렁찼다고 한다. 이 포뢰야말로 소리를 내야 하는 종에 안성맞춤이었다. 범종 꼭대기에 용이 올라앉게 된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문화재 이야기 보는 즐거움, 아는 즐거움’)

 바닷가에 살던 이 포뢰는 또 고래를 무척이나 무서워했다. 고래가 다가오기만 하면 놀라서 큰 소리를 질렀을 정도였다고 한다.

 종을 치는 막대기(당목)도 원래는 고래 모양으로 만든 나무였거나 고래뼈로 만든 것이었다. 이는 고래로 종을 두드려야만 종 꼭대기에 앉아 있는 용(뱀의 몸매에 잉어 비늘, 시슴의 뿔, 토끼의 눈, 소의 귀, 뱀의 이마, 배 발톱, 범 발바닥을 취한, 하늘과 땅을 마음대로 날아 다닐 수 있는 용의 모양)이 무서워 종소리가 크게 울기를 바라는 뜻에서다.

 종 머리에 포뢰를 조각하는 것은 고래를 만난 용이 크게 울듯, 종소리가 크고 우렁차게 울려야 중생을 구제하고자 하는 부처의 뜻이 만방 구석구석까지 전달되지 않겠는가.

 절에 가면 기념품처럼 범종 하나씩은 있는데 종의 윗부분에는 용두라는 게 조각되어 있다. 그 녀석이 바로 포뢰다.

성덕대왕 신종(경북 경주시  인왕동 76 국립경주박물관, 국보 제29호)은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큰 종으로, 높이 3.75m, 입지름 2.27m, 두께 11∼25㎝이며, 무게는 18.9톤으로 확인됐다.

 통일신라 예술이 각 분야에 걸쳐 전성기를 이룰 때 만들어진 종으로 화려한 문양과 조각수법은 시대를 대표할 만하다. 또한, 몸통에 남아있는 1,000여자의 명문은 문장뿐 아니라 새긴 수법도 뛰어나, 1천 3백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손상되지 않고 전해오고 있는 문화재다.

 신라 경덕왕이 아버지인 성덕왕의 공덕을 널리 알리기 위해 종을 만들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 뒤를 이어 혜공왕이 771년에 완성하여 성덕대왕 신종이라고 불렀다.

 이 종은 처음에 봉덕사에 달았다고 해서 봉덕사종이라고도 하며, 아기를 시주하여 넣었다는 전설로 아기의 울음소리를 본따 에밀레종이라고도 한다. 종의 맨 위에는 소리의 울림을 도와주는 음통(音筒)이 있는데, 이것은 우리나라 동종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구조이다.

 용뉴는 용머리 모양으로 조각되어 있다. 종 몸체에는 상하에 넓은 띠를 둘러 그 안에 꽃무늬를 새겨 넣었고, 종의 어깨 밑으로는 4곳에 연꽃 모양으로 돌출된 9개의 유두를 사각형의 유곽이 둘러싸고 있다.

 용주사 범종(경기도 화성시 태안면 송산리 용주사, 국보 제120호)은 신라 종 양식을 보이는 고려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거대한 종이다.

 종 맨 위에는 소리의 울림을 도와 주는 용통이 있고, 고리 역할을 하는 용뉴는 용이 여의주를 물고 두 발로 힘차게 몸을 들어 올리는 형상을 하고 있다.

 어깨는 구슬무늬로 테두리를 하고 있다. 아래 위 서로 어긋나게 반원을 그리고 그 안에 꽃과 구슬무늬을 새긴 넓은 띠를 두르고 있다. 이 띠는 사각형 모양의 유곽과 한 면이 붙어 있다.

 전등사 범종(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전등사, 보물 제393호)은 일제시대 말기 금속류의 강제수탈로 빼앗겼다가 광복 후 부평군기창에서 발견하여 전등사로 옮겨 현재까지 보존하고 있다.

 종 꼭대기에는 두마리의 용이 서로 등지고 웅크려서 종의 고리를 이루고 있으나 소리의 울림을 돕는 음통은 없다. 몸통 위 부분에는 8괘를 돌려가며 나열하고, 그 밑으로 종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각각 8개의 정사각형을 돌렸다.

 의왕 청계사 동종(경기도 의왕시 청계동 청계사, 보물 제11-7호)은 조선 숙종 때 경기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인 사인비구에 의해서 만들어진 조선시대 종이다.

 사인비구는 18세기 뛰어난 승려이자 장인으로 전통적인 신라 종의 제조 기법에 독창성을 합친 종을 만들었다.

 종의 꼭대기에는 두마리의 용이 종을 매다는 고리 역할을 하고 있고, 어깨와 종 입구부분에는 꽃과 덩굴을 새긴 넓은 띠가 있다. 어깨 띠 아래로는 연꽃 모양의 9개의 돌기가 사각형의 유곽 안에 있고, 그 사이사이에는 보살상들이 서있다.

 서울 보신각종(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동 6가 국립중앙박물관, 보물 제2호)은 조선시대 만들어진 종으로, 1985년까지 보신각에서 제야의 종을 칠 때 사용됐다.

  이 종은 2번의 화재를 겪으면서 원형에 손상을 입고, 음향도 다소 변했으나 명문(銘文)이 남아 있어 주조 연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다. 음통이 없고 2마리 용이 종의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금산사 방등계단(전북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금산사, 보물 제26호, 수계의식을 집전하던 것이 방등계단(方等戒壇)이다)은 경내의 송대(松臺)에 5층 석탑과 나란히 위치한 석종으로, 종 모양의 석탑이다.

 석종형 탑은 인도의 불탑에서 유래한 것으로 통일신라 후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외형이 범종과 비슷해서 석종으로 불리운다.

 기단의 각 면에는 불상과 수호신인 사천왕상이 새겨져 있다. 특히 아래 기단 네 면에는 인물상이 새겨진 돌기둥이 남아 돌난간이 있었던 자리임을 추측하게 한다. 난간 네 귀퉁이마다 사천왕상이 세워져 있다. 탑신을 받치고 있는 넓적한 돌 네 귀에는 사자머리를 새기고 중앙에는 연꽃무늬를 둘렀다.

 판석 위에는 종 모양의 탑신이 서 있다. 꼭대기에는 아홉 마리의 용이 머리를 밖으로 향한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고 그 위로 연꽃 모양을 새긴 2매의 돌과 둥근 석재를 올려 장식했다. 이 탑은 가장 오래된 석종으로, 조형이 단정하고 조각이 화려한 고려 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성덕대왕 신종(경북 경주시 국립경주박물관) (국보 제29호) 

 


 성덕대왕 신종(경북 경주시 국립경주박물관) (국보 제29호)

 

 통일신라 예술이 각 분야에 걸쳐 전성기를 이룰 때 만들어진 종으로 화려한 문양과 조각 수법은 시대를 대표할 만하다. 또한, 몸통에 남아있는 1,000여 자의 명문은 문장뿐 아니라 새긴 수법도 뛰어나, 1천 3백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손상되지 않고 전해오고 있다.


 성덕대왕 신종(경북 경주시 국립경주박물관)은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큰 종으로 높이 3.75m, 입지름 2.27m, 두께 11∼25㎝이며, 무게는 1997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정밀측정한 결과 18.9톤으로 확인됐다.

 

신라 경덕왕이 아버지인 성덕왕의 공덕을 널리 알리기 위해 종을 만들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 뒤를 이어 혜공왕이 771년에 완성하여 성덕대왕신종으로 불렀다. 이 종은 처음에 봉덕사에 달았다고 해서 봉덕사종이라고도 하며, 아기를 시주하여 넣었다는 전설로 아기의 울음소리를 본따 에밀레종이라고도 한다. 


 종의 맨 위에는 소리의 울림을 도와주는 음통(音筒)이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 동종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구조이다. 종을 매다는 고리 역할을 하는 용뉴는 용머리 모양으로 조각되어 있다. 종 몸체에는 상하에 넓은 띠를 둘러 그 안에 꽃무늬를 새겨 넣었고, 종의 어깨 밑으로는 4곳에 연꽃 모양으로 돌출된 9개의 유두를 사각형의 유곽이 둘러싸고 있다.

 

유곽 아래로 2쌍의 비천상이 있고, 그 사이에는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가 연꽃 모양으로 마련되어 있으며, 몸체 2곳에는 종에 대한 내력이 새겨져 있다. 특히 종 입구 부분이 마름모의 모서리처럼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어 이 종의 특징이 되고 있다. 
 

 

상원사 동종(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상원사, 국보 제36호)

 

상원사 동종은 오대산 상원사에 있는 동종으로 신라 성덕왕 24년(725)에 만들어졌다. 경주 성덕대왕신종(국보 제29호)과 더불어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완형의 통일신라시대 범종 3구 중 하나로, 크기는 높이 167cm, 입지름 91cm이다.

 

이 종은 조각 수법이 뛰어나며 종 몸체의 아래와 위의 끝부분이 안으로 좁혀지는 고풍스런 모습을 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종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것으로 한국 종의 고유한 특색을 모두 갖추고 있다. 


  이 종의 맨 위에는 큰 머리에 굳센 발톱의 용이 고리를 이루고 있고, 소리의 울림을 도와주는 음통(音筒)이 연꽃과 덩굴 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종 몸체의 아래 위에 있는 넓은 띠와 사각형의 유곽은 구슬 장식으로 테두리를 하고 그 안쪽에 덩굴을 새긴 다음 드문드문 1∼4구의 악기를 연주하는 주악상(奏樂像)을 두었다.

 

네 곳의 유곽 안에는 연꽃 모양의 유두를 9개씩 두었다. 그 밑으로 마주보는 2곳에 구름 위에서 무릎꿇고 하늘을 날며 악기를 연주하는 비천상(飛天像)을 새겼다. 비천상 사이에는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撞座)를 구슬과 연꽃 무늬로 장식했다
 

용주사 동종(경기도 화성시 송산동)

 

 

용주사 동종(경기도 화성시 송산동)

 

용주사 동종(경기도 화성시 송산동)은 신라 종 양식을 보이는 고려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거대한 범종으로, 높이1.44m, 입지름 0.87m, 무게 1.5톤이다. 종 몸체에 통일신라 문성왕 16년(854)에 조성된 것이라는 후대에 새긴 글이 있으나, 종의 형태와 문양이 그 시대와 일치되지 않아 학계에서는 고려 전기의 종으로 추정하고 있다.

 

용통에 약간 금이 가고 유두가 부서진 것 외에는 보존 상태가 좋으며, 조각한 수법이 뛰어나 고려 종의 걸작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종 맨 위에는 소리의 울림을 도와 주는 용통이 있고, 고리 역할을 하는 용뉴는 용이 여의주를 물고 두 발로 힘차게 몸을 들어 올리는 형상을 하고 있다. 어깨는 구슬무늬로 테두리를 하고 있는데, 아래 위 서로 어긋나게 반원을 그리고 그 안에 꽃과 구슬무늬을 새긴 넓은 띠를 두르고 있다.

 

이 띠는 사각형 모양의 유곽과 한 면이 붙어 있다. 4곳의 유곽 안에는 9개의 돌출된 연꽃 모양의 유두가 있는데, 남아 있는 것은 1곳 뿐이다. 종의 몸체 앞뒤에는 비천상을, 좌우에는 삼존상(三尊像)을 두었고, 4곳에는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를 두었다.

 

비천상과 삼존상은 모두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나는 모습으로 옷자락이 가볍게 날리고 있으며, 종 입구 부분의 넓은 띠는 구슬무늬로 테두리를 하고 어깨띠와는 다르게 덩굴무늬를 두고 있어 이 종의 특징이 되고 있다. 

 

원래 안동 안동루문에 결려 있던 것을 후에 상원사로 옮겨 온 것이라 한다. 종의 정상에는 용을 형상해 놓았는데, 머리 부분이 크고 몸체가 용통에 붙어 있다. 종의 몸통은 원추형을 이루고 있고, 몸의 하부 3분의 2쯤 되는 곳이 가장 넓고 그 밑은 약간 좁아져 안정된 형태를 보여 주고 있다.

 

 의 몸체 위쪽에는 상대가 있고, 아래쪽에는 하대가 있는데, 상대에는 네모 형태의 유곽을 4군데에 같은 간격으로 배치하였다. 각 유곽 속에는 젖꼭지 모양의 유두가 3열로 9개가 있는데, 모두 36개의 돌기이다. 범종 중간의 배 부분에는 2개의 당좌와 대칭되게 2쌍의 비천상이 놓여 있다.  현재는 종의 아랫부분 일부가 금이 가 모조품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성거산 천흥사명 동종(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국립중앙박물관) (국보 제280호)

 

 

성거산 천흥사명 동종(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국립중앙박물관) (국보 제280호)

 

성거산 천흥사명 동종(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국립중앙박물관)은 국내에 남아있는 고려시대 종 가운데 가장 커다란 종으로 크기는 종 높이 1.33m, 종 입구 0.96m이다. 종 위에는 종의 고리 역할을 하는 용뉴가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의 모습으로 표현, 신라 종의 용보다 고개를 쳐 들어 올리고 있다.

 

소리 울림을 도와 준다는 용통은 대나무 모양이며, 편평한 부분인 천판 가장자리에는 연꽃무늬를 돌렸다.  몸체의 아래와 위에는 구슬무늬로 테두리를 한 너비 10㎝ 정도의 띠를 두르고, 꽃과 덩굴로 안을 채워 넣었다. 


 위에 두른 띠 바로 아래로는 4곳에 사각형의 유곽을 만들고 그 안에 가운데가 도드라진 9개의 연꽃을 새겼다. 유곽 아래에는 종치는 부분인 당좌를 원형으로 2곳에 두었고, 구슬로 테두리하고 연꽃으로 장식했다.

 

당좌 사이에는 2구의 비천상을 두었는데, 1구씩 대각선상에 배치, 신라종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현재 국내에 남아있는 신라 상원사 동종, 성덕대왕 신종 다음으로 큰 종으로 제작기법이나 양식이 고려 범종을 대표하는 종이라 할 수 있다.
 

옛 보신각 동종(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국립중앙박물관)

 

 

옛 보신각 동종(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국립중앙박물관)

 

옛 보신각 동종(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국립중앙박물관)은 조선시대 만들어진 종으로, 1985년까지 서울 종로 보신각에서 제야(除夜)의 종을 칠 때 사용됐다. 조선 세조 14년(1468) 만들어 신덕왕후정릉 안에 있는 정릉사에 있었으나, 그 절이 없어지면서 원각사로 옮겨졌고 임진왜란 이후 종루에 보관했으며, 고종 32년(1895) 종루에 보신각이라는 현판을 걸게 되면서 보신각종이라고 불렀다.


 총 높이 3.18m, 입 지름 2.28m, 무게 19.66톤의 큰 종이며, 전형적인 조선 초기의 종 형태를 하고 있다. 음통이 없고 2마리 용이 종의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어깨 부분에서 중간까지 완만한 곡선을 이루다가 중간 지점부터 입구 부분까지 직선으로 되어 있다.

 

몸통에는 3줄의 굵은 띠를, 종 입구 위로는 일정한 간격으로 2줄의 띠를 두르고 있고, 종의 연대를 알 수 있는 긴 문장의 글이 있다. 이 종은 2번의 화재를 겪으면서 원형에 손상을 입고, 음향도 다소 변했으나 명문(銘文)이 남아있어 주조 연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다. [전민일보 이종근기자]

 

서울 보신각종

 

서울 용산구  용산동 6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보물 제2호, 옛 보신각 동종(舊普信閣 銅鍾)은

 조선시대 만들어진 종으로, 1985년까지 서울 종로 보신각에서 제야(除夜)의 종을 칠 때 사용되었다. 조선 세조 14년(1468년) 만들어 신덕왕후정릉 안에 있는 정릉사에 있었으나, 그 절이 없어지면서 원각사로 옮겨졌고 임진왜란 이후 1619년 종루에 보관했다. 고종 32년(1895년)에 종루에 '보신각'이라는 고종의 사액(賜額)이 내려진 이후에 보신각종이라고 불렀다.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경내에서 보관 중이다. 총 높이 3.18m, 입 지름 2.28m, 무게 19.66톤의 큰 종이며, 전형적인 조선 초기의 종 형태를 하고 있다. 음통이 없고 2마리 용이 종의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어깨부분에서 중간까지 완만한 곡선을 이루다가 중간 지점부터 입구 부분까지 직선으로 되어 있다. 몸통에는 3줄의 굵은 띠를, 종 입구 위로는 일정한 간격으로 2줄의 띠를 두르고 있고, 종의 연대를 알 수 있는 긴 문장의 글이 있다.

 

보신각종은 2번의 화재를 겪으면서 원형에 손상을 입고, 음향도 다소 변했으나 명문(銘文)이 남아있어 주조 연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다. 이 종은 조선 세조(世祖) 14년(1468년)에 주조되어 원각사(圓覺寺)에 있다가 절이 폐사된 후 숭례문(崇禮門)에 옮겨지고 다시 선조(宣祖) 30년(1597년) 명례동현(明禮洞峴)(현 명동성당 부근)에 옮겨진 뒤, 광해군(光海君) 11년(1619년) 현재의 자리에 옮겨져 파루(罷漏:오전 4시에 33번)와 인정(人定:오후 10시에 28번)에 울려 도성(都城)의 문을 여닫고 하루의 시간을 알리는 데 쓰였다.

 

높이 3.18m, 지름 2.28m, 무게 19.66톤이며, 이 종의 양식은 쌍두(雙頭) 용뉴(龍紐)로 되어 있고 종신복(鍾身腹)에는 3조의 굵은 띠를 돌리고 있다. 또한 종구(鍾口)에는 윗쪽으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2조의 띠를 돌리고 있어 이것이 하대(下帶) 역할을 하는 문양대로 되어 있다.

 

그리고 종의 몸체에는 “성화 4년 월 일…”이라는 장문의 명문이 새겨 있어 주조년대가 확실한 임진왜란 이전의 범종임을 알 수 있다. 종루(鍾樓)은 태조(太祖) 4년(1395년)에 창건된 이래 네 차례의 소실과 여덟 차례에 걸쳐 중건이 있었고, 고종(高宗) 32년(1895년)에 ‘보신각’이란 현판을 걸게 됨에 따라 이때부터 보신각이라 불리어졌다. 현재의 건물은 서울특별시가 1979년 8월에 동서 5칸, 남북 4칸의 중층누각(重層樓閣)으로 세운 것이다.(출처 : 문화재청)

 

 

 갑사동종(충남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52)

 

 

 갑사동종(충남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52)

 

 갑사동종(충남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52)동종은 조선 초기의 종으로 국왕의 만수무강을 축원하며, 갑사에 매달 목적으로 선조 17년(1584)에 만들어졌다.
 이 종은 일제시대 때 헌납이라는 명목으로 공출되었다가 광복 후 갑사로 옮겨온 민족과 수난을 같이 한 종이다. 


 높이 131㎝, 입지름 91㎝로 전체적으로 어깨부터 중간까지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으며, 중간 지점부터 입 부분까지 직선으로 되어 있다. 종 꼭대기에는 음통이 없고, 2마리 용이 고리를 이루고 있다.
 종의 어깨에는 물결 모양으로 꽃무늬를 둘렀고, 바로 밑에는 위 아래로 나누어 위에는 연꽃무늬를, 아래에는 범자를 촘촘히 새겼다. 


 그 아래 4곳에는 사각형모양의 유곽을 만들고, 그 안에는 가운데가 볼록한 연꽃모양의 유두를 9개씩 두었다. 종의 몸통 4곳에는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를 따로 두었고, 그 사이에는 구름위에 지팡이를 들고 있는 지장보살이 서 있다. 종 입구 부분에는 덩굴무늬 띠를 둘렀다. 

 

충남 공주시 계룡면  갑사(甲寺) 입구의 종각에 있는 조선시대 동종(銅鐘)이다.  갑사 동종(甲寺 萬曆銘銅鐘)은 국왕의 만수무강을 축원하며, 갑사에 매달 목적으로 1584년(선조 17년)에 주조되었으며 보물 제478호. 높이 131cm, 입지름 91cm이다. 

 

전체적인 형태는 어깨부분에서 몸통부분까지는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몸통부분부터 하단까지는 직선으로 되어 있다. 종의 윗부분에 음통(音筒)이 없으며, 사실적으로 조각된 두 마리의 용이 머리를 서로 반대 방향으로 향한 채 용뉴(龍紐 : 종을 매는 고리)를 이루고 있다.

 

어깨 위에는 입상(立狀)의 물결모양 꽃무늬가 돌려졌고 그 아래 상대(上帶)에는 복련(伏蓮)의 연화무늬와 둥근 원 안에 새겨진 범자(梵字) 31자가 차례로 돌려져 있다. 유곽(乳廓)은 일정한 간격으로 상대와 분리된 사다리꼴이며, 그 안에는 각각 9개의 유두가 3열로 배열되었고, 가장자리는 복잡한 당초무늬로 장식했다.

 

각 유곽 밑에는 꽃 모양의 당좌(撞座)가 있고 그 밑을 구름무늬가 받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당좌 사이로는 비천상(飛天像) 대신 석장(錫杖)과 보주(寶珠)를 든 지장보살상(地藏菩薩像)이 구름 위에 서 있다. 구연부(鐘口)에서 조금 올라온 곳에 두 줄의 선으로 구획된 하대(下帶)에는 반쯤 핀 보상화문과 활짝 핀 보상화문이 교대로 당초무늬 띠를 이루면서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유곽과 보살상 사이에 양각된 명문에는 종을 만들게 된 동기나 주조연대, 사용된 쇠의 무게, 시주자의 이름 등이 자세히 적혀 있어 당시 사회상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며,  "갑사사(甲士寺)"라는 명문 표기가 있어 절의 이름이 지금과 달랐던 것도 알 수 있다. 이 동종은 신라와 고려종의 기본적인 형태와 양식을 충실히 따른 것으로 조선 초기의 동종양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자료출처 ; 브리태니커)

 

 

여주 출토 동종(국립중앙박물관)

 

여주 출토 동종(국립중앙박물관)

 

여주 출토 동종(국립중앙박물관)은 고려시대 만들어진 종으로 1967년 경기도 여주군 금사면 상품리에서 고철 수집 때 우연히 발견된 것으로, 크기는 길이 84㎝, 입지름 55㎝이다.  종 몸통 아랫부분에는 제작 연대와 중량을 알 수 있는 글이 새겨 있어, 고려 문종 12년(1058)에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종을 매다는 고리인 용뉴는 한마리의 용이 고개를 들고 있는 모습이며, 소리의 울림을 돕는 용통은 6단으로 구분되어 있다. 


 용통의 각 부분마다 덩굴 무늬를 양각했다. 종의 상단과 하단, 9개의 돌출된 모양의 유두를 둘러싼 사각형의 유곽에는 가늘게 연이은 구슬 모양의 띠를 돌리고, 그 내부에 모란 덩굴 무늬를 장식하고 있다. 
 

유곽 내의 유두는 꽃으로 도드라지게 표현하였다. 종 몸통에 있는 비천상은 천흥사종(국보 제280호)과는 달리 4곳에 있으며, 특히 대칭대는 곳에 보관을 쓴 2구의 보살상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 역시 종 몸통에 보살상과 교대로 4곳에 있다. 
 

 

청주 운천동 출토 동종(국립청주박물관)

 

 

청주 운천동 출토 동종(국립청주박물관)

 

청주 운천동 출토 동종(국립청주박물관)은 청주시 운천동에서 금동불상과 징 모양의 금고(金鼓)와 함께 출토된 동종이다. 


 현재 용통은 일부 없어졌으나, 종의 고리부분인 용뉴는 한 마리 용이 입을 벌리고 목을 구부리고 있는 형태가 완전히 남아 있어, 통일신라시대 말기(8∼9세기 경)의 종임을 짐작하게 한다.


총 길이가 78㎝, 종 몸체 높이 64㎝, 입지름 47.4㎝인 중간 크기의 종으로 위, 아래 단에 어떠한 문양도 없이 단순하게 처리된 것이, 오히려 이 종의 특징이다.   사각형의 유곽 너비 부분에는 3구의 비천상과 당초문, 3보 문양으로 꾸몄고, 그 안에 9개의 돌출된 유두가 있다. 


 종 몸통에는 2구의 비천상이 조각되어 있다. 연꽃으로 장식한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를 2개 가지고 있고, 그 사이사이에는 덩굴 무늬가 새겨 있다. 

 

 

해인사 동종(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10)

 

 

해인사 동종(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10)

 

해인사 동종(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10)은 대적광전 안에 있는 높이 85㎝, 입지름 58㎝, 두께 6㎝의 종이다.


유곽 아래에는 조선 성종 22년(1491)에 만들었다는 글이 있다. 이 종은 시대적 변천과정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불교 공예품으로도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꼭대기에는 사실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두마리의 용이 종을 매다는 고리인 용뉴 역할을 하고 있고, 어깨 부분에는 연꽃을 새겼다. 


 밑으로는 돌출된 9개의 유두가 사각형 모양의 유곽안에 있으며, 유곽 사이사이에는 보살상이 있다. 종 중앙에는 3줄의 굵은 가로줄을 돌리고 그 위쪽에는 꽃무늬를, 아래로는 용무늬를 새겨 종 전체가 무늬로 가득 차 매우 화사한 느낌을 주고 있다.  아랫 부분에는 다시 2줄의 가로줄을 돌리고, 윗쪽에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8괘를, 아랫쪽에는 아무런 무늬를 새기지 않았다. 
 

 

포항 오어사 동종(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항사리 34)

 

 

포항 오어사 동종(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항사리 34)

 

포항 오어사(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항사리 34)동종은 신라시대 종의 형태를 하고 있는 고려 범종으로, 종의 꼭대기 부분에 종을 매다는 역할을 하는 용뉴와 소리의 울림을 도와주는 용통이 있다. 


 고려 고종 3년(1216) 주조되었고, 무게가 300근이나 되고 오어사에 달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종의 변천과정을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몸통 부분의 위와 아래에는 횡선의 띠를 두르고, 같은 무늬를 새겨 넣었다. 3분의 1되는 곳 위쪽으로는 사각형의 유곽을 만들고, 그 안에 9개의 돌출된 모양의 유두가 있다. 


 또한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볼 수 없는, 종을 치는 곳인 당좌를 따로 둔 것도 특징의 하나다. 이 종 몸통의 문양을 보면 서로 마주보고 꽃방석 자리에 무릎을 꿇고 합장하는 보살을 새겼고, 다른 두 면에는 범자가 들어간 위패형 명문으로 장식했다. [이종근기자]

 

 

보물 제 1557호 고흥 능가사 동종(高興 楞伽寺 銅鍾)

 

 

보물 제 1557호 고흥 능가사 동종(高興 楞伽寺 銅鍾)

 

고흥 능가사 동종(高興 楞伽寺 銅鍾)은 전라남도 고흥군 능가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동종이다. 대한민국의 보물 제1557호로 지정되어 있다.

 

종신에 ‘康熙三十七年戊寅三月日 興陽八影山楞伽寺…’라는 문구가 있어 1698년(조선 숙종 24년)에 만들어진 범종임을 알 수 있다.[1]만든 사람은 김애립으로 그의 남아있는 작품 중 가장 후기에 속하며, 가장 뛰어난 수법을 보여 대표작이라 할 만하다.

 

높이는 157㎝, 입술 지름은 101㎝(1구)이다. 쌍용으로 정상에 여의주를 물고 있으며, 음관(용통)을 두지 않고 조그마한 운형 구멍으로 대신하고 있다. 천판은 이중의 연꽃무늬를 조각하였는데, 상단은 16엽이고 하단은 활짝핀 무늬이다.

 

그 밑으로 보이는 상대에는 범자문을 돌렸으며, 4면이 장방형인 유곽 안에 9개의 유두를 뚜렷하게 조각했다. 양 옆에는 천의를 걸친 보살입상과 문짝 모양을 장식하였는데, 그 안에 ‘주상전하수만세’라는 문구가 양각되었다.

 

또 종신 중앙부에는 주역에서 나타나는 전양인 건에서 전음인 곤에 이르기까지의 팔괘를 양각으로 둘렀는데, 이는 조선 범종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점이라 할 수 있다. 팔괘 밑으로 음각의 명문대가 있는데, 여기에 능가사 창건주인 정현대사의 이름이 보인다. 하대로 내려와서는 두 줄의 띠를 둘렀고 그 안에 꽃잎과 당초문대를 돌렸다

 

 

연지사동종 [ 蓮池寺銅鍾 ]

 

 

연지사동종 [ 蓮池寺銅鍾 ]

일본 후쿠이현(福井縣) 쓰네미야신사(常宮神社)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동종.

 

높이 111㎝, 입지름 66㎝. 일본의 국보. 용뉴(龍鈕)는 수직으로 향하여 종정(鐘頂)에 붙이고 여의주를 입에 물고 있는 모습이다. 용통(甬筒)은 3단으로 구성되어 유좌형식(乳座形式)의 연화장식이 둘러지고 연판(蓮瓣)도 다소 형식적으로 둘러지고 있다.

 

상하대에는 같은 크기의 방곽(方廓)을 구획하여 그 내부에 파도무늬를 조밀하게 새겨 두른 해파문(海波文)이 장식되어 있고, 그 위아래에는 삼각형상의 무늬대가 있다. 유곽대(乳廓帶)도 역시 같은 크기의 방곽 안에 격자무늬형식으로 구성되어 보상화문(寶相花文)을 배치함으로써 연속무늬를 이루고 있다.

 

유곽 안에는 9개의 유두(乳頭)가 연화좌(蓮花座) 위에 연봉형으로 표현되었다. 종신 하단에는 2개의 당좌(撞座)와 2구의 비천상(飛天像)이 유곽과 엇갈리게 배치되고 있다. 당좌는 자방(子房) 중심에 성광상(星光狀)의 8판중엽화문을 배치하고 그 화문 둘레에 8개의 연자(蓮子)를 표현하였다.

 

그 둘레에는 역시 끝이 뾰족한 모양의 8엽중판연화가 형성되었다. 비천상은 신라종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유려하게 조식되었는데 보화형(寶花形) 구름 위에 천의자락을 날리며 무릎을 꿇고 주악하는 모습이다.

 

명문은 유곽 사이의 상대에 가깝게 가로 15.6㎝, 세로 8.3㎝의 자리를 설치하여서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 그 내용으로 보아 833년(흥덕왕 8)에 제작된 종임을 알 수 있으나 연지사의 소재지는 미상이다. 이 종은 일본에 전해진 종 가운데 가장 오래된 범종이다.

 

 

강릉 관음사 소장 동종 [江陵 觀音寺 所藏 銅鍾 ] 강원유형문화재 제150호

 

 

강릉 관음사 소장 동종 [江陵 觀音寺 所藏 銅鍾 ] 강원유형문화재 제150호

 

강원도 강릉시 금학동 29번지의 관음사 내에 있는 조선시대의 범종이다.

 

조선 후기 1794년(정조 18) 8월에 제작된 것으로 강릉 보현사에 있었으나 관음사가 건립되면서 옮겨 왔다. 관음사 법당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전체 높이 90㎝, 윗지름 37㎝, 밑지름 56㎝이다. 용뉴(鈕:종 꼭대기 부분의 장식)와 음관, 종신으로 구성되어 있다. 용뉴의 용 얼굴은 사실적이고 눈, 눈썹, 코, 두 개의 귀가 있으며 용 비늘은 매우 정교하다. 용은 4개의 발을 가지고 있으며 각각은 발가락이 3조이다. 용 꼬리는 음관을 둘러싸고 있고 뒷발을 수평으로 벌리고 있다. 

 

종 몸체에는 보살입상이 조각되어 있고 아랫부분에는 시주자 명단이 보인다. 주 재료는 동(구리)이다. 조각이 섬세하다고 할 수는 없으며 외래 요소가 반영되어 있다. 종신의 명문을 통해 제작시기와 주종장이 권동삼()임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 후기 범종의 양식과 주종장의 계보 등에 관한 범종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2007년 11월 23일 강원도유형문화재 제150호로 지정되었다.

 

 

남해 용문사 동종 

 

 

남해 용문사 동종 

 

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의  용문사(龍門寺) 대웅전 내에 보관된 "남해 용문사 동종(南海 龍門寺 銅鐘)"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77호이며, 음통과 용뉴가 있으며, 편평한 천판은 12개 연꽃잎으로 구성되어 있고, 견부(肩部)에서 종구(鐘口)로 내려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용뉴(龍紐 : 종 꼭대기 부분의 장식으로 종을 메달기 위한 고리 부분)입을 벌리고 있는 용의 머리와 3개의 발가락을 가진 두 발이 모두 천판과 맞닿아 있고, 꼬리 부분은 음통을 2번 휘감고 있다. 용의 두부(頭部)는 큰 눈과 날카로운 이빨, 크게 벌린 입, 뿔 표현이 생동감 넘치고 비늘 표현도 비교적 사실적이다.

 

음통의 구연부분(입구 가장자리)은 4개의 연잎이 만개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 그 아래쪽은 사선문으로 처리하고 있다. 상대(上帶)는 돋을새김의 원권(圓圈)에 梵字文을 삽입하여 배열하였으며, 신부(身部)에는 4개의 유곽을 배치하고 유곽과 유곽 사이에는 합장한 보살입상 4구를 배치하고 있으며, 당좌는 별도로 두고 있지 않다.

 

유곽은 사다리꼴 형태로 그 안에 총 9개의 볼록한 유두(乳頭)와 유좌(乳座)가 위치하며, 유곽대에는 연속 당초문을 나타내고 있다.

 

보살상은 사다리꼴의 틀 안에 돋을새김 기법으로 표현 하였는데, 두부(頭部)에는 2조의 선으로 구성된 원형 두광(頭光)을 구비하고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다. 상호는 코와 입 표현이 비교적 사실적이며, 군의 위에 천의를 걸쳤으며 의습 표현이 매우 자연스럽다.

 

하대(下帶)는 종구에서 약 5cm 떨어진 위치에 연화당초문(蓮花唐草紋)이 새겨져 있다. 종신(鐘身)에 명문이 없어 확실한 주조시기는 알 수 없으며, 그 표현기법 등으로 볼 때 17∼18세기 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문경 김룡사 동종

 

 

문경 김룡사 동종

 

"문경 김룡사 동종(聞慶 金龍寺 銅鍾)"은 현재 경북 김천시 직지사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으며, 김룡사에 전래하던 조선시대 동종으로 2000년 보물 제11-2호로 지정되었다. 이 동종은 조선 숙종 때 경기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한 사인(思仁) 비구에 의해서 만들어진 조선시대 종이다. 사인 비구는 18세기의 뛰어난 승려이자 장인으로 전통적인 신라 종의 제조기법에 독창성을 합친 종을 만들었다. 현재 그의 작품 8구가 서로 다른 특징을 보이며 전해지고 있다.

 

이 종은 조선 후기의 종 형태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같은 해 만들어진 보물 제11-3호 홍천 수타사 동종과 함께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撞座)를 독특하게 표현하여 주목된다. 김룡사 동종은 수타사 종보다 먼저 만들어진 것으로, 사인 비구의 작품세계와 조선 종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신라 범종의 전통 양식을 잘 계승하고 있는 한편, 조선 후기 범종의 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는 동종이다.

 

포항 보경사 서운암 동종

 

 

포항 보경사 서운암 동종

 

 "포항 보경사 서운암 동종(浦項寶鏡寺瑞雲庵銅鍾)보물 제11-1호,"은 경북 포항시  북구  보경사의 산내암자 서운암에 있는 동종인데, 조선 숙종 때 경기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인 사인비구에 의해서 만들어진 조선시대 종이다.

 

이 종은 사인비구가 만든 종 중에서 가장 앞선 것으로, 꼭대기에는 종을 매달기 위한 둥근 고리가 있다. 어깨 부분에는 인물상이 새겨진 40개의 연꽃잎을 세워 두어 넓은 띠를 형성하였다.

 

이 띠 아래로는 일반적으로 9개의 돌기가 있는 것에 반해 5개의 돌기를 가지고 있는 사각형 모양의 유곽이 4곳에 있고, 그 사이사이에는 부처의 말씀인 진언(眞言)을 새겨 이 종의 특징이 되고 있다. 비록 크기는 작지만 사인비구의 초기 제작기법을 볼 수 있으며, 아울러 조선 종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출처 : 문화재청〉

 

곡성 태안사 천순명 동종


 

 

곡성 태안사 천순명 동종

 

2002년 10월 19일 보물 제1349호로 지정되어 있는 "태안사 천순명 동종(泰安寺 天順銘 銅鐘)"은 태안사 대웅전 안에 봉안하고 있는 종이다. 종 몸체에 새겨진 명문에 의하면 天順 元年 3월(세조3년, 1457년)에 처음 주조되었으며, 이후 만력(萬曆) 9년 4월(선조14년, 1581년)에 파손되어 다시 만들어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조선시대 초기 억불정책으로 불교가 많은 탄압을 받던 시기에 왕실의 도움 없이 사찰 자체적인 불사로 조성된 범종으로서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

 

천판 위에는 용뉴와 음통이 있다. 이전의 종에서 뚜렷하게 만들어져 있던 음통은 이종의 경우 많이 축소되어 그 크기가 작게 표현되어 있어 과도기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또한 용의 조각은 매우 역동적인 모습이고 각 부분이 모두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어 매우 화려하다. 상대의 조각은 매우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다.

 

최상부에는 1단의 연꽃무늬를 돌출되게 만들어 놓았으며, 바로 아래 단에는 커다란 2겹의 연꽃무늬를 종 전체에 돌려 장식했다. 또한 그 아래에는 또 하나의 띠를 두르고 원형의 무늬와 더불어 원안에 범자를 새겨 넣었다.

 

총 4군데의 유곽을 만들었으며, 그 안에는 연꽃무늬를 새겨 놓은 다음, 그 상부에 유두를 솟아오르게 만들어 놓았다. 몸체 중앙으로 내려와 보통 비천상이 새겨졌으나 이 종에서는 생략되었으며 그냥 네군데 원형안에 꽃잎을 조각한 당좌를 두었다. 하대 부분은 다른 종들과 다르게 종의 끝이 아닌 높은 위치에 만들어져 있고, 그 조각에 있어서 매우 화려한 당초무늬로 조각했다. 조선시대 만들어진 종으로서는 드물게  매우 화려한 조각을 갖추고 있고, 그 형태에 있어서도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또한 종 외부에 명문를 남기고 있어 정확한 주조연대, 주조자, 시주자 등 많은 것을 알려주고 있는데, 명문의 내용을 보면「천순 원년 3월에 큰 종을 만들었으나 망가졌고, 또 만력 9년 4월에 큰 종을 다시 주조하니 금 400여근이 주조하는데 들어갔다」(天順元年六月日大鐘鑄爲破 又萬曆九年四月日大鐘改鑄次金四百餘斤入鑄)라 기록되어 있다.

 

이 명문은 해서체로 되었는 바 여기 내용에 의하면 천순 원년(세조 3년, 1457년)에 주조한 것이 깨져 다시 금 사백근을 넣어 만력 9년(선조 14년, 1581년)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서기 1581년은 갑사 동종 주조 연대보다 3년을 앞선 연대인데 그 당시 조선시대의 한국종 양식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동종으로서 그 가치가 매우 주목되고 있는 것이다.

 

 '옥천사 대종(玉泉寺 大鐘)'   

 

 

'옥천사 대종(玉泉寺 大鐘)'  

 

경남 고성군  개천면 북평리 408  옥천사에 있는 '옥천사 대종(玉泉寺 大鐘)'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6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조선시대 청동으로 만든 높이 110㎝, 입 지름 82.5㎝의 종이다. 종을 매는 용뉴에는 두 마리의 용이 서로 등지고 앉아, 여의주를 물고 하늘로 오를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종의 윗쪽 띠에는 2자씩으로 연결된 80여자의 범자가 새겨 있으며, 아래쪽 띠에는 연꽃 덩굴무늬가 새겨져 있다. 범자무늬 아래에는 4곳에 정사각형의 유곽이 배치되었는데, 유곽은 덩굴무늬를 그려 만들었다. 유곽 안에는 9개의 도드라진 유두가 있으며, 유곽과 유곽 사이에는 삼존불이 양각되어 있다. 아래쪽 띠 위편에는 ‘건륭 41년’으로 시작되는 글이 있어,  조선 숙종 27년(1701년)에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종은 진주 민란 때에 파열된 것을 수리하였다.

 

 

고창 선운사 범종

 

 

고창 선운사 범종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31호. 고창 선운사 천왕문 2층에 걸려 있는 선운사 범종(禪雲寺梵鍾)은 조선 후기의 범종으로 종신(鍾身)의 높이 103㎝, 구경(口徑) 93㎝이고, 견경(肩徑) 56㎝이며, 종을 매다는 고리인 용뉴를 포함한 전체 높이는 129㎝이다.

용뉴는 2마리 용(쌍두용,雙頭龍)으로 만들었다. 이 범종은 한국 범종의 특징인 소리의 울림을 도와주는 용통이 없는 대신, 종 윗면에 1개의 구멍을 뚫었고, 어깨부분에는 2줄의 선을 돌렸다. 선 안쪽으로 글씨를 새겼는데, 이 범종에는 음각된 ‘茂長縣禪雲寺大鍾重六百五十斤 嘉慶二十三年戊寅九月日 改鑄 都片手 嶺南 權東三 副 李命還…이라는 명문이 있다. 이를 살펴보면 순조 18년(1818년)에 도편수 권동삼과 부편수 이명환에 의해 개주(改鑄)되었으며, 이때 선운사 주지인 처영(處英) 스님이 도감으로서 주조를 감독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몸체 중앙에는 3개의 돌출된 선을 둘러 위와 아래로 구분해 놓았다. 윗부분에는 꽃과 덩굴(연화당초문대,蓮花唐草紋帶)로 장식한 4개의 사각형 유곽대를 만들었고, 그 안에 가운데가 돌출된 모양의 유두를 9개씩 두었다. 유곽과 유곽 사이에는 두 손을 마주 잡은 채 서 있는 보살을 양각하고, 머리위로 8개의 작은 원을 만들어 원안에 범자(梵字)를 하나씩 새겨 넣었다.

 

3줄의 선 아래에는 42인의 이름으로 보이는 기록이 있고, 그 아래로 2줄의 선을 둘렀다. 이 종은 신라와 고려 종에서 보이는 유곽과 유두를 가지고 있지만, 용통이 없고 2마리 용으로 만든 용뉴, 몸체 가운데와 종 입구 위에 두른 횡선이 있는 조선 종의 모습을 하고 있다.

 

 천 수타사 범종

 

 

홍천 수타사 범종

 

이 종은 흥회루에 있으며 1m의 높이 무게 2,500근이 넘는다. 종의 머리부분에는거칠 게 새겨진 용과 함께 음관이 갖추어져 있고 상대에는 "옴마니반메훔"의 여섯 글자가 범어로 새겨져 있다. 또한 유곽과 유두는 우리나라 범종의 특징을 나타낸다.

 

사인비구 작품으로  문경 김룡사동종(보물 제11-2호)과 함께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를 독특하게 표현하여 완숙미와 독창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수타사 범종.  1670년 사인스님 주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