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의 일본문학기행①]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설국(雪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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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그곳 설국, 에치코유자와 겨울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래도 이틀이면 금방 여섯 자는 쌓여요. 계속 쏟아지면 저 전봇대 전등이 눈 속에 파묻혀 버리죠. 당신 생각을 하며 걷다간 전깃줄에 목이 걸려 다치기 십상이에요."

 겨울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도쿄에 연구원 자격으로 머물기 시작한 3월부터 나는 겨울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雪國)' 때문이었다. 내가 머물던 대학의 캠퍼스는 도쿄 남부의 타마치(田町) 지역에 있었다. 설국이기는커녕 한겨울에도 해양성 기후 덕에 좀처럼 영하로 내려가는 법이 없는 곳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봄 여름 가을을 보냈다. 연구실 창밖에 흐드러지게 피어나기 시작한 꽃을 볼 때도, 퍼붓는 한여름 장대비를 볼 때도, 떨어지는 낙엽을 볼 때도 나는 '설국' 생각을 했다.

 소설 속 등장인물인 코마코가 주인공 시마무라에게 속삭인 그 여섯 자의 눈을 보고 싶었다. 그리운 사람을 생각하면서 걷다가 전깃줄에 목이 걸린다는 그 폭설을 보고 싶었다.

 물론 매일 매일 머릿속에는 근현대 소설 중 최고의 첫 문장이라는 '설국'의 첫 구절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까지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췄다."

 이 짧은 문장의 번역은 국내에 나와 있는 책마다 조금씩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 '국경'을 '현의 경계'라고 한 책이 있는가 하면, '설국'을 '눈의 고장' '눈의 나라' '눈의 마을'이라고 번역한 책들도 있다. 하지만 난 이 모든 번역에 동의할 수 없다. 내가 그들보다 일본어를 잘해서가 아니다. 단지 그 첫 문장의 신비스러움이 침해받는 게 싫어서다.

 사실 일본에서 '국(國)'은 우리와는 좀 다른 무게를 지닌 말이다. 섬으로 이루어진 데다 막부 권한이 막강했던 일본은 우리와는 달리 확실한 지역분권식 정치체계를 지니고 있었다. 근대 이전 일본에서 각 지역은 하나의 나라처럼 분리되어 있었다. 지금도 난코쿠(南國)니 시코쿠(四國)니 하는 지역명이 많이 남아 있는 걸 봐도 알 수 있다. 이 지역명을 번역할 때 '남쪽 고장' '4개의 고장'이라고 하면 큰 오류다.

 나는 그래서 이 첫 문장의 '국경'이라는 단어와 '설국'이라는 단어를 절대 양보할 수 없다. 소설 '설국'의 구체적인 무대는 니가타(新潟)현 에치코유자와(越後湯沢)다. 마음만 먹으면 쉽게 갈 수 있는 곳이다. 도쿄역에서 신칸센을 타면 불과 1시간 반이면 도착할 수 있다. 그 1시간 반 거리를 나는 1년이 가까워지도록 참고 또 참으며 아껴두었다. 여섯 자가 넘는 눈, 바로 그 눈을 보기 위해서였다.

 에치코유자와를 겨울에 가야 하는 이유는 소설 '설국' 여기저기에 치명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나는 겨울이 아닌 에치코유자와는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주인공 시마무라가 에치코유자와를 두 번째 방문했을 때 그는 정지한 기차 안에서 요코라는 새로운 여인을 발견한다. 그녀에게 마음이 흔들린 시마무라는 이렇게 적는다.

"인물은 투명한 허무로, 풍경은 땅거미의 어슴푸레한 흐름으로, 이 두 가지가 서로 어우러지면서 이 세상이 아닌 상징의 세계를 그려내고 있었다. 특히 처녀의 얼굴 한가운데 야산의 등불이 켜졌을 때, 시마무라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가슴이 떨릴 정도였다."

 어느 겨울 저녁, 가까이 있는 산과 멀리 있는 산이 한꺼번에 성에 낀 기차 유리창에 비친 풍경이 눈앞에 있지 않는가.

기차 안과 기차 밖, 속계와 선계의 경계에 비친 여인의 얼굴. 그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허무. 그것이 야스나리 문학의 출발점 아니었을까.

나는 에치코유자와를 그리워하며 '설국'을 읽고 또 읽었다. 묘한 느낌이 들었다.

 읽을 때마다, 조금씩 나이가 들어가는 여인의 옆 얼굴을 보는 듯 하기도 했고, 때로는 바쇼의 하이쿠 한 구절에서 보여주는 소멸의 미학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또 어떨 때는 전철역에서 펄럭이던 주간지의 속됨이 느껴지다가도, 어떨 때는 일본에 처음 봤던 칠흑 같이 엄숙한 장례식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출처] : 허연 매일경제 문화전문기자·시인 :<허연의 일본문학기행>/ 매일경제 프리미엄



2. 니가타현에 눈이 내렸다 설국행 차편을 끊었다



 에치코 산맥에서 내려다 본 에치코유자와 전경. /사진출처=허연 기자



 내게 '설국'은 깨달음 같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또 다른 문이 눈앞에 등장하는. 문을 열 때마다 이 문이 끝일 거라고 기대하지만 결국 또 하나의 새로운 문 앞에서 고개를 떨구게 되는 거대한 미로 같았다.

 야스나리의 개인사에 환희는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는 환희를 배우기 훨씬 전에 허무를 배웠고, 시간이 지나 환희를 만났을 때조차 그는 허무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야스나리는 가족이라는 것을, 그 첫 공감의 따뜻함과 튼튼함을, 그래서 온몸으로 배우게 되는 생에 대한 일말의 본능적 안온함을 만나보지 못한 사람이었다.

 두 살 때 아버지가 죽었고, 세 살 때 어머니가 죽었으며 일곱 살 때는 자신을 키워주던 할머니를 잃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야스나리는 시력을 거의 잃어서 집에 불도 켜지 않는 할아버지와 함께 지냈다고 한다. 어두컴컴한 방에 혼자 앉아 있는 왜소한 소년. 그가 바로 야스나리 아니었을까. 그 할아버지마저도 야스나리가 열다섯 살 때 세상을 등진다.

 야스나리에게 죽음은 너무나 가까운 일이었다. 가을이면 아침마다 죽은 채 마당에 쌓여가는 매미들처럼 건조하고 매정한 순환의 한 과정일 뿐이었다.

 우연인지 숙명인지 알 수 없지만, 그가 자신 스스로와 주변에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처음 선보인 것도 죽음이 계기가 됐다. 이바리키 제일고등학교 재학시절 존경하는 스승 한 분이 사망하는데 그 스승의 장례식에서 야스나리가 조사를 낭독하게 된 것이다. 그날 한 소년이 썼던 비감 어린 조사가 야스나리 문학의 첫 여정일지도 모른다.

 "때문에 시마무라는 슬픔을 느끼는 고통은 없었고, 꿈을 꾸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상한 거울 속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대목을 읽으며 야스나리를 찾아가는 모든 여정은 당연히 '설국'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야스나리는 '설국'을 통해 우리를 '이상한 거울' 속으로 안내한다. 그 이상한 거울 속으로 가는 길. 그 길에는 눈이 있어야 한다.

 그해 1월 초. 나는 텔레비전 뉴스에서 '니가타현 강설(降雪)'이라는 자막을 보고 부랴부랴 기차표와 숙소 등을 예매하기 시작했다. 집 근처 전철역에 있는 관광안내소로 달려가 에치코유자와 관련 팸플릿을 전부 훑어와서 비좁은 방에 늘어놓고 장고에 들어갔다.

 기차시간은 어떻게 할까? 소설에서처럼 어두워질 무렵 도착하는 게 좋을까. 그러면 눈이 잘 보이지 않을 텐데. 신칸센으로 가면 야스나리가 통과했던 옛날 그 터널을 통과할 수 없다는데, 그렇다면 국철이나 지철이 따로 있을까? 숙소는 어떻게 할까? 1930년대 야스나리가 묵었던 다카한(高半) 여관에는 방이 남아 있을까? 있으면 얼마나 할까?

 나는 난수표같이 복잡한 여행 팸플릿을 몇 번이나 들여다보았다. 일본 특유의 작은 글씨와 작은 사진, 숫자와 한자, 히라가나와 가타카나가 어지럽게 뒤섞인 팸플릿을 들여다보다 나는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어나 내린 결론은 의외로 쉬웠다. 도쿄에서 에치코유자와로 가는 길은 신칸센 이외에는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물론 신칸센이 지나가는 터널은 예전의 그 시미즈(淸水) 터널은 아니다. 신칸센이 통과하는 터널은 1979년 완공된 다이시미즈(大淸水) 터널이다. 그래도 어차피 에치코유자와로 가는 터널들은 모두 에치코산맥을 관통하기 때문에 터널이 끝나는 순간 설국은 만나는 건 마찬가지일 것 같았다.

 야스나리가 1935년 한 달간 실제로 머물면서 '설국'의 초안을 작성했다는 다카한 여관은 방이 없을뿐더러 근처 다른 여관에 비해 비싼 편이었다. 결국 풍광이 좋아 보이는 근처 다른 여관을 예약했다. 도착 시간은 오전으로 정했다. 밝을 때 설국을 보고 싶었다. 대신 돌아오는 시간을 저녁 무렵으로 했다. 예약을 끝내니 이제 드디어 '설국'으로 가는 첫 관문을 연 기분이었다.

 집을 나와 전철 갈아타는 시간까지 계산해봐야 기껏 2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길을 나는 왜 이렇게 주술사가 택일을 하듯 전전긍긍하고 있는지 내 자신이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몇 번이고 읽어서 이제는 너덜너덜해진 책 '설국'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문득 야스나리가 왜 수많은 암시로 이루어진 난해한 문장 속에 '설국'을 감추어 놓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출처] : 허연 매일경제 문화전문기자·시인 :<허연의 일본문학기행>/ 매일경제 프리미엄



3. 난 열차를 기다리며 도겐의 詩를 중얼거렸다



▲ 1968년 스웨덴 스톡홀롬에서 열린 노벨문학상 시상식. 시상식에 참석한 가와바타 야스나리(오른쪽 첫째)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설국기념관



에치코 유자와로 떠나는 날 아침. 나는 마음이 급했다.

 혹시 내가 가기 전에 폭설이 모두 녹아버리지 않을까? 너무나 어이없는 걱정까지 머릿속에 들어서고 있었다. 내가 살고 있던 도쿄 북부 아라카와구(荒川) 니시오구(西尾久)에서 신간센을 타려면 오구역에 가서 전철을 타고 도쿄역이나 우에노역까지 가야 했다. 나는 그 과정마저도 마뜩치 않았다. 이미 마음은 그곳에 가 있는데 전철을 몇 번 갈아타야 하는 게 불필요한 사족처럼 느껴졌다. 나는 집에서 나와 황급히 택시를 잡아 탔다. 일본의 살인적인 택시비는 개의치 않았다.

 내 자기장 안에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자리잡기 시작한 것은 몇 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나는 소설 '설국'을 읽어보기도 전에 그 몇 장의 사진에 빠졌다. 대학 시절 도서관에서 이런 저런 책을 들춰보다 발견한 사진이었다. 사진에는 1968년 스웨덴 스톡홀롬에서 열린 노벨문학상 시상식 장면이 담겨 있었다.

 빛 바랜 사진에는 일본 전통의상을 차려 입은 왜소한 노인이 서 있었다. 바람만 불어도 날아갈 것처럼 뼈와 가죽만 남은 노인이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였다. 눈빛만 살아있어서 일까. 그는 유난히 더 왜소해 보였다.

 하지만 왜소한 그에게서는 도(道)를 깨친 듯한 묘한 경지가 느껴졌다. 덩치 큰 서양인들 사이에서 그의 도력(道力)은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주변에 충성스러운 수제자들을 거느리고 서 있는 무림의 고수 같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도력과 더불어 천진함도 느껴졌다. 어느 겨울날, 혼자 들판에 서서 종주먹을 쥐고 있는 어린 아이. 왜 그러는지, 사연은 알 수 없지만 뭔가 세상을 향해 천진하면서도 도전적인 눈빛을 던지고 있는 아이.

 그랬다. 시상식장에는 도를 깨친 노인과 천진한 어린 아이가 합성된 한 인간이 서 있었다. 소름이 끼치도록 강렬했다. 사진 한 장에서 읽어낼 수 있는 신비...어쨌든 그날 시상식장에서는 야스나리라는 아우라가 모든 것을 제압하고 있었다.

 스웨덴 한림원이 밝힌 야스나리의 수상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정도로 요약 할 수 있다.

 "자연과 인간의 운명이 가진 유한한 아름다움을 우수 어린 회화적 언어로 묘사했다"는 것과 "동양과 서양의 정신적인 가교를 만드는 게 기여했다"는 것이었다.

 나름 적절한 선정 이유였다. 적어도 노벨상 심사위원들이 번역된 '설국'을 오독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물론 번역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뉘앙스나 세밀한 묘사는 어쩔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은 적어도 '설국'을 도시 한량 한 명이 시골에 가서 여자들과 노닥거린 이야기 정도로 치부하지 않은 것 만은 분명했다. 즉, 스토리에 감추어진 이면과 선문답 같은 장치들을 제대로 읽어낸 것이다.

 야스나리는 시상식장에서 '아름다운 일본의 나'(美しい日本の私)라는 제목의 수상 소감문을 읽는다. 이 소감문에서 야스나리는 일본의 전통 단시 와카(和歌)를 인용하면서 일본인의 정서와 일본의 선불교 사상을 이야기 한다.

 이를 접한 서양인들은 큰 감회에 젖는다. 기쁨이나 영광, 고마움이나 감격과는 거리가 먼 차갑고도 차분한 소감은 서구인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 갔을 것이 분명하다.

 "봄은 꽃, 여름엔 두견새, 가을은 달, 겨울엔 눈(雪). 해맑고 차가워라."

 야스나리는 소감 첫머리에 도겐(道元)의 시를 인용한다. 너무나 선(禪)적인 이 문장은 소설 '설국'이 어떤 출발점에서 쓰여진 소설인지를 웅변해 준다. '설국'은 스토리 위주의 서구 소설 작법을 무시한 채 흡사 점선을 찍듯 분절(分節)적 기법으로 써내려 갔다. 그 하나하나의 점에는 자연과 계절의 일부가 되어버린 인간사가 인과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채 담겨있음은 물론이다. 이 때문에 줄거리를 따라가는 독서법으로는 '설국'의 참맛을 도저히 느낄 수 없다.

 소설 '설국'을 통해 야스나리는 일본적 아름다움의 생산자가 된다. 죽었다가 소생하는 자연의 윤회와 그 안에서 벌어지는 부박하고 허무한 인생. 이 묘한 슬픔 앞에서 서구인들은 자신들이 한 번도 접해 본 적 없는 '세상에 없던 아름다움' 하나를 새로 만난 건 아니었을까.

 나는 도쿄역 어두운 승차장에서 신간센 열차를 기다리며, 도겐의 시를 몇 번이나 중얼거렸다.
    

[출처] : 허연 매일경제 문화전문기자·시인 :<허연의 일본문학기행>/ 매일경제 프리미엄


4.초속 5센티미터로 다가온 '섬세한 허무' 일본문학



 나는 애당초 일본이나 일본 문학에 큰 관심이 없었다. 일본 문학 전공자도 아니었고, 평소에 일본 소설이나 시를 많이 읽어보지도 못했다. 일본에 대한 좋은 감정도 없었다. 90년대 이후 많은 사람이 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 한 일본 문화에 열광할 때도 나는 무덤덤했다. 일본에 대해 알고 싶지 않았다.

 그런 내게 일본은 뜻밖의 방식으로 다가왔다. 21세기가 시작되고 몇 해가 지났을 무렵 나는 매우 지쳐 있었다. 뭔가 꽉 막혀 있는 듯한 답답함과 내가 가진 모든 것이 고갈된 듯한 건조함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쉼표가 필요했다. 때마침 내가 근무하는 언론사에서 해외연수생을 선발하고 있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연수의 기회는 있었다. 하지만 나는 연수에 큰 관심이 없었다. 나는 연수나 유학보다 여행을 통한 외국 경험을 더 선호했다. 나는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하곤 했다.

 "가서 아주 살 것이라면 모를까. 몇 년 있다가 어차피 올거 여행만 하는 게 더 나아."

 그런 내가 난생 처음 장시간의 해외체류를 시도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외국'보다는 '휴식'에 방점을 찍었기 때문이었다.

 얼마 후 나는 운좋게 연수 대상자로 선정이 됐다. 남은 절차는 어느 나라 어느 학교에 가서 뭘 하겠다는 계획을 정하는 일이었다. 연수자로 선발된 사람은 대부분 영어권 국가를 원했다. 하지만 내 기준은 '영어'가 아니었다. 이왕 정해진 거 빨리 떠나고 싶었다. 내게는 출국 날짜가 가장 중요했다. 어디가 됐든 빨리 떠날 수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내가 갈 곳이었다. 답은 일본이었다. 일본은 우리와 비슷하게 3월에 학기를 시작한다. 하지만 미국이나 유럽 대학은 주로 여름이나 가을에 시작하는 곳이 많았다.

 그때 나의 일본행을 놓고 지인들은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웬 일본?'이냐는 지인들에게 난 이렇게 말했다.

 "빨리 떠날 수 있다면 북극이라도 갈 거야."

 이제, 남은 건 일본을 공부하는 일이었다. 그때 우연히 접한 사람이 애니메이션의 장인 신카이 마코토(新海誠)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이야 신카이 마코토를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15년 전만 해도 신카이 마코토는 마니아들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숨겨진 인물이었다.

 나 역시 그 무렵 누군가의 추천으로 일본어 공부도 할 겸 그의 애니메이션을 봤다. '초속 5센티미터(秒速 5センチメ-トル)'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雲のむこう, 約束の場所)' 등이었다. 난 짜릿함으로 충만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순수하다 못해 투명한 그림체, 신비스럽고 정교한 스토리, 간접화법으로 그려낸 아련한 첫사랑의 추억.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은 나를 묘한 세계로 이끌었다. 봄날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 초속 5㎝를 가지고 뭔가를 만들어내는 그들의 섬세함은 놀라웠다. 도대체 격정과 흥분을 제거한 듯한 저 차분함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건지. 일본은 우리와 왜 그렇게 다른건지. 강렬한 궁금증이 밀려왔다.

 나는 그동안 미뤄 두었던 일본 소설들을 읽기 시작했다. 남들은 이미 다 읽었을 책들이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나쓰메 소세키, 미시마 유키오, 다자이 오사무 등이었다. 이들의 소설은 무라카미 하루키에 멈추어 있었던 나의 독서를 다른 지점으로 확장시켜 주었다.

 각기 다른 세계를 그렸지만 일본 근현대 소설에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첫 번째는 전율이 오는 것 같은 세밀함이고 두 번째는 짙게 깔린 허무였다. 커다란 산맥 같은 유럽의 소설들과 극적요소가 강한 드라마 같은 한국 소설에 비해 일본 소설들이 보여주는 세계는 내가 처음 맛본 '이상한 과일' 같은 느낌이었다.

 그중에서 특히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내 눈길을 잡아 끌었다. 노벨상 시상식 장면을 사진으로 만난 이후 '설국'을 읽기는 했지만 그 깊은 맛을 처음 알게 된 건 연수가 결정된 이후 전향적인 자세로 일본 문학을 접하기 시작했을 때가 아닌가 싶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에는 유난히 '헛수고'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주인공 시마무라가 게이샤인 코마코가 오래전부터 일기를 쓰고 있다는 말을 듣고 '헛수고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이 '헛수고'라는 말은 소설 속에서 매우 깊은 의미를 담은 상징어로 사용된다. 이런 식이다.

 "그것이(코마코의 일기 쓰기) 헛수고만이 아니라는 것은 시마무라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헛수고라고 외치면 어쩐지 그녀의 존재가 더 순수하게 느껴졌다."

 참 많은 것을 숨겨놓고 있는 문장이다. 이 섬세함과 허무가 나는 좋았다. '헛수고'라고 외치면 그녀가 더 순수하게 느껴진다는 이 묘사는 정말 놀랍도록 아름답고 허무하다.

 에치코 산맥을 관통하는 국경의 긴 터널을 지난다는 건, 바로 이 놀랍도록 섬세한 허무의 나라로 내가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했다.

 흰색 우주선처럼 생긴 신칸센 열차가 미끄러지듯 도쿄역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헛수고'라도 좋았다.
   

[출처] : 허연 매일경제 문화전문기자·시인 :<허연의 일본문학기행>/ 매일경제 프리미엄

5. 生에 대한 기억은 이미지로 남는다…소설 설국 읽는 법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직접 쓴 '설국'의 첫 문장. 에치코 유자와 설국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다. /사진 = 허연 기자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은 1968년 일본에는 첫 번째이자 아시아에는 두 번째로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작품이다. 소설은 온천마을인 니가타현 에치코 유자와를 배경으로 도쿄에서 온 시마무라(島村)와 그곳에서 만난 여인 코마코(駒子)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여기에 요코(葉子)라는 또 다른 상징적인 여인의 이미지가 중첩되면서 소설은 묘한 분위기를 풍기며 전개된다.

 '설국'을 읽고 실망했다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재미가 없다'는 반응에서부터 '너무 밋밋하다' '이해하기 어렵다' 등의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필자 생각에 이런 반응은 '설국'에 대한 잘못된 접근 방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소설 '설국'은 인과관계가 분명한 여타 소설들과는 좀 다른 독법으로 읽어야 한다. 우리가 소설에 접근하는 익숙한 방식인 줄거리 위주 독법이나 기승전결을 염두에 둔 흔한 독법으로 읽다보면 '설국'에 내재되어 있는 여러 가지 암시적 장치들을 놓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결론부터 말하면 '설국'은 일종의 '암시소설'이다. '설국'에는 사건과 그 사건들이 결합해 결말로 향해가는 뚜렷한 줄거리가 없다. 게다가 주인공들의 캐릭터와 감정표현도 애매하기 짝이 없다.

 '설국'은 줄거리의 소설이 아니라 이미지의 소설이다. '설국'에 나오는 모든 배경은 일종의 논리가 아닌 이미지다. 시마무라가 살고 있는 도쿄라는 현실세계가 아닌 터널 밖의 세계, 즉 에치코 유자와라는 이미지의 세계에 관한 이야기다. 소설은 시작 지점부터 우리가 이미지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음을 암시해준다. 에치코 유자와에 도착한 순간을 묘사하는 부분에 드러나는 이미지, 어둠 속 기차 차창에 비친 신비스러운 이미지, 바로 그 이미지에서 소설은 시작한다.

 "거울 속에는 저녁풍경이 흘렀다. 비쳐지는 것과 비추는 거울이 마치 영화의 이중노출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등장 인물과 배경은 아무 상관이 없었다."

 실재의 세계와 암시의 세계를 구분하는 시미즈터널은 군마현과 니가타현을 연결해주는 길이 9702미터의 터널이다. 1922년 착공해 '설국'이 쓰여지기 5년 전인 1931년 9월에 완성된 터널이다. 건설 당시 시미즈터널은 아시아에서 가장 긴 터널이었다. 이 터널 개통과 함께 도쿄와 니가타를 잇는 조에쓰선(上越線)이 개통됐고, 에치코 유자와의 온천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여행을 좋아했던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조에쓰선을 타고 에치코 유자와를 찾아가 소설 '설국'을 구상하고 집필한다.

 '설국'의 집필에는 꽤 긴 시간이 걸렸다. 1935년부터 1947년까지 문예춘추에 분재했던 것에 새로 쓴 내용을 더해 1948년 소겐사(創元社)에서 출간했다. 야스나리는 실제로 에치코 유자와를 자주 방문했고 오랜 시간 머물기도 하면서 작품을 구상하고 고쳐 썼다.

 야스나리 자신도 터널을 사이에 두고 끊임없이 현실세계와 환상의 세계를 넘나들며 '설국'과 만나고 헤어지고 했던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 시마무라는 부모의 재산으로 무위도식하면서 유럽 무용을 비평하는 평론가다. 그는 거의 실재로 본 적 없는 유럽 무용을 비평한다. 이 또한 재미있다. 주인공의 직업이 실제로 보지도 않은 유럽 무용을 평론하는 일이라는 게 매우 상징적이다.

 시마무라는 소설 속에서 실재하는 어떤 상황에 뛰어들지 않는다. 그는 늘 한 발 물러서서 관찰하는 견자(見者)의 입장을 지킨다. 때로는 비겁해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무심해보이기도 하다. 어떤 경우 초월의 의미로도 읽힌다.

 소설 속에서 시마무라의 무용 평론에 대해 언급하는 구절이 있다. 이 의미심장한 구절을 꼼꼼히 보면 견자의 시각으로 쓰여진 소설 '설국'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보지 못한 무용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이보다 더한 탁상공론이 어디 있겠는가. 거의 천국의 시(詩)에 가깝다. 연구도 마찬가지다. 무용가의 살아 움직이는 육체가 춤추는 예술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나름의 상상으로 서양 언어나 사진에서 떠오르는 자기 자신의 공상을, 그 춤추는 환영을 감상하는 것이다. 흡사 겪어보지 못한 사랑에 동경을 품는 것과 비슷하다."

 바로 이 견자의 입장을 가지고 '설국'을 읽으면 우리는 '설국'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시마무라에 빙의가 되어 코마코를 만나고, 그녀와 사랑을 나누고,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소설이 주는 참맛과 쾌감을 느낄 수 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좋아했다는 료칸의 절명시 한 구절처럼 어차피 모든 생에 대한 기억은 결국 이미지로 남는 것 아닌가.

 "내 삶의 기념으로서/무엇을 남길 건가/봄에 피는 꽃/산에 우는 뻐꾸기/가을은 단풍 잎새."
   

[출처] : 허연 매일경제 문화전문기자·시인 :<허연의 일본문학기행>/ 매일경제 프리미엄

6. '터널을 지나니 설국이었다' 첫 문장 속으로 들어가다



▲ '설국'이 영화로 만들어질 무렵 에치코 유자와를 방문한 가와바타 야스나리


 너무나 유명한 소설의 첫문장을 다시 떠올려보자.

 "국경의 긴 터널을 지나니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까지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췄다."

 이 문장에는 주어가 없다. 독자들은 이 문장을 읽으며 자기도 모르게 자신이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을 얻는다. 흡사 자기가 터널을 지나 설국을 마주한 것 같은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내가 기차에 타고 있는 듯한 착각. 이것이 소설의 시작 부분이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묘한 매력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내가 탄 기차는 군마현을 내달리고 있었다. 일본 시골 특유의 가지런한 기와집과 가지런한 농경지가 보이고 멀리로는 꽤 높아보이는 산등성이들이 보였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눈은 보이지 않았다. 설국이 불과 20여 분 거리밖에 남지 않았는데 아직 눈은 없었다.

 에치코 산맥의 동쪽인 군마현은 도쿄와 기후대가 비슷했다. 섬나라 일본에서는 아주 드물게 바다와 접하지 않은 현이었다. 따뜻하고 평화로운 농촌 풍경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아직 기차는 현실 속을 달리고 있음이 분명했다.

 소설에서 주인공 시마무라는 에치코 유자와를 세 번 방문한다.

 첫 번째 방문에서 시마무라는 코마코를 처음 만난다. 그는 에치코 유자와 인근의 산을 등반한다. 도쿄라는 대도시 생활에 지친 그가 "자연과 자신에 대한 진지함마저 곧잘 잃어버리기 때문에, 그것을 회복하는 데는 산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시마무라에게 에치코 유자와는 '치유'의 상징이기도 한 곳이다. 산업화의 상징인 도쿄와 대비되는 치유의 공간이었던 셈이다.

 그해 푸르른 5월 어느 날 일주일 만에 산에서 내려온 그는 온천장에 도착해 게이샤를 불렀다. 그때 나타난 여인이 코마코였다.

 "여자의 인상은 이상하리만큼 청결했다. 발가락 사이의 오목한 부분까지도 깨끗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여름의 산을 보고 온 자신의 시각 탓인가 생각할 정도였다."

 코마코의 첫 인상을 묘사하는 부분은 흥미롭다. 소설의 흐름으로 보면 시마무라가 처음 코마코를 만났을 당시 그녀는 아직 게이샤가 아니었다. 샤미센 연주와 춤을 배우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견습생 정도에 불과했다.

 코마코는 에치코 유자와 태생으로 도쿄에서 일을 한 적이 있는 여인으로 약혼자 유키오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온천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 비련의 주인공이다.

 누군가를 적극적으로 사랑할 생각이라곤 없는 허무한 한량 시마무라와 남편도 아닌 약혼자를 위해 게이샤의 길을 걷는 이상한 숙명에 처한 여인 코마코. 이 두 사람은 에치코 유자와라는 환상의 공간에서 흡사 '산문시'와 같은 대화를 주고 받으며 서로에 끌리기 시작한다.

 시마무라가 설국을 두 번째 방문한 것은 12월이었다. 소설의 시작되는 첫 부분에 나오는 묘사들이 모두 두 번째 방문 때 이야기들이다. 다다미 방에 다시 마주 앉은 시마무라와 코마코는 이런 대화를 주고 받는다.

 시마무라가 쳐다보는 앞에서 여자는 고다쓰 위에서 손을 꼽기 시작했다. 그것은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무슨 셈을 하고 있지?" 하고 물어도 대답도 없이 한동안 그렇게 손을 꼽고 있었다.

 "5월 23일이었죠."

 "그렇군 날짜를 세고 있었군. 7월 8월은 둘 다 큰 달이야."

 "보세요. 199일 만이네요. 꼭 199일 만이에요."

 코마코는 처음 만났다 헤어진 날 이후 다시 만나게 된 이날까지 하루 하루 시마무라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시마무라는 자신에 대한 코마코의 열정이 애틋하고 좋으면서도 이내 부질없는 '헛수고'라고 생각을 해버린다. 그에게 설국에서의 일은 어차피 환상이니까.

 둘의 관계는 꼭 뭘 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다. 그래서 부질없고 한심해보이기까지 한다. 섹스도 약속도 의미가 없다. 꼭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그 무미함에 압도되어 버린다. 뭐지. 도대체 이들은 무얼 하는 거지. 도무지 정의를 내릴 수 없는 주인공들의 행태를 보면서 눈치 빠른 독자들은 '어떤 낯설음의 세계'를 알아가기 시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출처] : 허연 매일경제 문화전문기자·시인 :<허연의 일본문학기행>/ 매일경제 프리미엄

7. 차창에 중첩된 여인과 풍경, 설국에 담긴 비현실의 힘



▲ 에치코 유자와 마을에서 내려다 본 겨울 풍경

 이 두 번째 방문에서 시마무라는 요코를 만난다. 기차가 국경의 긴 터널을 지나갈 무렵 요코라는 여인이 시마무라의 눈에 들어온다. 기차 유리창에 비친 요코의 모습을 묘사하는 부분은 소설 설국에서도 가장 유명한 장면 중 하나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높은 울림 그대로 어두운 밤의 눈에 부딪쳐서 메아리가 되어 돌아올 것만 같았다."

 시마무라는 군데군데 불이 켜진 역의 저녁 풍경과 유리창에 비친 요코의 모습을 영화의 이중촬영 장면처럼 묘사한다. 그리고 이 모습에서 '이 세상이 아닌 상징의 세계'를 발견한다. 특히 차창에 비친 요코의 얼굴 한가운데 차창 밖 야산의 등불이 비춰지는 순간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가슴 떨리는 체험을 하게 된다.

 "그녀의 얼굴 한가운데 등불이 켜진 것이다. 이 유리창의 영상은 창밖의 불빛을 막을 만한 힘이 없었다. 불빛 역시 영상을 지우지는 않았다. 그리고 불빛은 그녀의 얼굴 속을 흘러서 지나갔다. 차갑고도 먼 빛이었다. 불빛이 조그마한 눈동자의 언저리를 어슴푸레 밝히면서 그녀의 눈과 불빛이 겹쳐지는 순간, 그녀의 눈은 저녁 어둠의 물결 위에 뜬, 요염하고도 아름다운 야광충이었다."

 안과 밖의 온도 차이 때문에 김이 서려 있는 유리창에 두 개의 모습이 겹쳐 있는 것이다. 밖에서 들어온 불빛들과 열차 차창에 비친 그녀의 모습이 유리창이라는 접경지대에서 부딪히고 있는 것이다. 그 접경지대의 풍경은 기차가 서서히 움직일 때마다 풍경을 바꿨다.

 이 광경을 몰입해서 묘사하고 있는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이미 자신이 환상의 세계에 들어왔음을 자인하듯 길고 미학적으로 그 순간이 가져다 준 '아름다운 허무'를 밀도 있게 표현하고 있다.

 시마무라가 기차 안에서 무례할 만큼 그녀를 오래 훔쳐본 것은 바로 이 '비현실적인 힘'에 이끌렸기 때문이다.

 다시 가을이 올 무렵 시마무라는 에치코 유자와를 세 번째로 방문한다.

 두 번째 방문 이후 시마무라에 대한 코마코의 연정은 더욱 깊어져 있었고, 코마코는 북극소녀 같은 붉은 뺨의 기운이 남아 있는 아가씨에서 점차 성숙한 여인으로 성장해간다.

 "코마코는 시마무라를 만나기 위해 사람들 눈을 피해 아침이슬에 젖은 대밭을 가로질러 걸어왔다. 언덕을 오르는 코마코가 애가 타는 것인지, 혹은 그녀가 무엇인가에 씌운 것이 아닌지."

 코마코의 연정을 묘사하면서 야스나리는 '무엇인가에 씌운 것'이라는 표현을 쓴다. 코마코의 연정이 이성보다는 본능에 가깝다는 의미로 쓴 표현일 것이다. 이런 표현들 때문에 소설 '설국'은 에로틱한 장면 하나 없이 농염한 어떤 분위기를 지속적으로 부여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세 번째 방문이 끝나면서 소설은 끝을 맺는다. 요코가 '떨어지는 잎'을 뜻하는 그녀의 이름처럼 불이 난 창고에서 떨어져 코마코의 품에서 죽어가는 것이 소설의 결말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설국'에서 벌어진 모든 일들은 '아름다운 허무'로 종결한 채 소설을 끝내는 것이다.

 뒤에서 길게 다루겠지만 세 번째 방문은 생(生)을 상징하는 여인 코마코와 사(死)를 상징하는 여인 요코의 엇갈린 운명이 만들어내는 미학이 압권이다.

 이런저런 궁리를 하는 사이 어느새 내가 탄 기차는 터널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술렁거리기 시작했고, 나는 연신 창밖을 내다보면서 이제나 저제나 설국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간센을 타고 지나는 새로운 터널이었지만 생각보다 신터널의 길이는 짧지 않았다.

 나는 조금 부지런을 떨어 기차의 앞쪽 칸 앞쪽 자리를 잡지 못한 걸 후회하면서 약간 어두운 조명이 켜져 있는 기차 안에서 판결을 기다리는 미결수처럼 앉아 있었다. 도대체 어떤 풍경이 날 기다리고 있을까.

 그리고 몇 초 후 터널이 끝났다. 말 그대로 설국이었다. 밤 시간은 아니었지만 터널 반대편에 비해서 습하고 흐렸으며 눈은 역의 구내에까지 높이 쌓여 있었다. 온통 흰색으로 된 세상. 설국이었다. 온도와 습도, 색깔이 터널 저쪽과는 너무나 다른 세상이었다. 말 그대로 딴 나라였다.

 나는 천천히 속도를 줄이는 기차 차창 밖으로 플랫폼에까지 날아와 쌓인 눈더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청소나 정리를 잘 하는 일본인들의 기질로 미루어 봤을 때 역 구내에 이만큼 눈이 쌓인 건 몇 시간 만의 일일 것이 분명했다.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나의 방문에 맞춰 폭설을 내려준 조물주에게 감사했고, 이제 내가 기차에서 내려 걸어가게 될 저 멀리 보이는 시골길의 풍경이 내 마음을 설레게 했다.

 기차가 에치고 유자와 역에 3분간 정차한다는 안내방송을 들으며 나는 천천히 짐을 챙겼다. 아직도 차창 밖 마을의 풍경은 현실이 아닌 듯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출처] : 허연 매일경제 문화전문기자·시인 :<허연의 일본문학기행>/ 매일경제 프리미엄

8. 사위는 흐렸고 눅눅했다 기후가 만든 설국의 숙명



기후대가 바뀌었다는 걸 느끼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에치코 유자와 역은 놀랍도록 습(濕)했다. 맑은 날이 얼마나 될까 궁금할 정도로 사위는 흐렸고 공기는 눅눅했다. 낮인데도 해거름이라는 착각이 될 정도로 어두웠고 음침했다.

 소설 '설국'의 공간적 배경인 에치코는 서북쪽은 한반도의 동해를 마주하고 동남쪽으로는 일본의 등뼈라고 할 수 있는 1500m에서 3000m에 이르는 봉우리가 줄지어 서 있는 중부산악지대를 끼고 있다. 겨울철에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는 계절풍이 이 산맥에 부딪혀 상승하면서 호설(豪雪·일본에서는 겨울 내내 내리는 많은 양의 눈을 이렇게 표현한다)을 내리게 한다. 적설량은 2m를 넘는 경우도 흔하고 산악지역은 1년의 절반 정도가 눈에 덮여 있는 곳도 있다.

 에치코 유자와의 음습함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설명하기 힘들다. 그만큼 지배적이면서 숙명적이다. 특히 이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게 이 땅의 기후는 매우 특별한 지배력을 행사한다.

 에치코 출신인 에도시대 문인 스즈키 보쿠시(鈴木牧之)는 '북월설보(北越雪譜)'라는 유명한 책을 남겼다.

 예로부터 일본 혼슈 북쪽 지역은 중앙정부의 행정력이 거의 미치지 않는 오지(奧地)였다. 오지 중 오지였던 이 지역의 생활상을 세상에 널리 알린 계기가 된 것이 '북월설보'다. 이 책은 일상생활에서 방언까지 설국의 전모를 기록한 설국백과사전이라고 할 만하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에치코행에도 이 책이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 분명하다.

 이 책에서 보쿠시는 이런 한탄을 한다.

 "눈을 보고 즐기는 사람이라도 꽃이 피는 따뜻한 고장에서 태어난 천행을 부러워하지 않으랴."

 눈을 가끔 보는 사람이야 눈 구경이 새롭고 신기하겠지만, 겨우내 눈이 몇 m씩 쌓여 있는 음습한 곳에서 평생을 산 사람은 꽃이 일찍 피는 따뜻한 곳을 부러워 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첫눈이 내린 날 보쿠시가 쓴 한탄 섞인 글도 전해진다.

 "올해도 또, 이 눈 속에 있어야 하나. 눈을 슬퍼하는 것은 변향의 설국에서 태어난 자의 불행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보쿠시는 설국에서 태어난 숙명에 대해 이런 말로 묘한 여운을 남긴다.

 "번화한 에도에 봉공(奉公)했던 자도 나이가 들어 고향 설국으로 돌아오는 자 7할이 넘는다."

 설국에는 벗어나고 싶어도 결국 벗어나지 못하는, 돌아오지 않고는 못 배겨나는 묵직한 자기장이 존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필자가 처음으로 에치코 유자와에 도착한 날 역 풍경도 예사롭지 않았다. '쓸쓸하다'는 표현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습도가 이제 막 설국에 입국한 나를 사로잡았다.

 소설 '설국'에서는 막 눈이 내리기 시작할 무렵의 온천장 마을을 이렇게 묘사한다. 

 "이 지방은 나뭇잎이 떨어지고 바람이 차가워질 무렵, 쌀쌀하고 찌푸린 날이 계속된다. 멀고 가까운 높은 산들이 하얗게 변한다. 이를 '산돌림'이라고 한다. 또 바다가 있는 곳은 바다가 울고, 산이 깊은 곳에서는 산이 운다. 먼 우레 같다. 이를 '몸울림'이라고 한다. 산돌림이 보이고 몸울림이 들리면 눈이 가까웠음을 안다. 옛 책에 그렇게 적혀 있었던 것을 시마무라는 떠올렸다." 

 나는 역 대합실에서 돌아갈 열차시간이 적혀 있는 대형 간판을 맥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1935년 이 역에 서 있었을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생각했다. 36살의 작가는 이제 막 '설국'이라는 소설의 초고를 가방에 넣고 있었을 것이다. 훗날 자신의 문학을 증거할 작품 하나를 이 습한 환상의 세계에서 쓰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무렵 야스나리는 이른바 신감각파의 주도자로 기성문학과는 다른 새로운 문학적 가치를 추구하고 있을 때였다. 그가 쓴 글 '신문장론'에는 소설 '설국'에서 애타게 시도한 그의 문학적 실험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 있다.  

 "작품의 형태를 정비하고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현실적인 필연을 희생한 것이다. 주관적인 필요를 위해 현실성을 죽인 것이다." 

 소설 '설국'은 끊임없이 현실을 이야기하면서도 비현실적이다. 분명 현실 속에서 충분히 존재할 만한 인물들을 등장시켜 현실 속에서 벌어질 법한 일들을 그리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사실주의 소설에서나 발견될 법한 치밀한 묘사들도 소설 '설국'에서는 읽는 순간 이미 비현실의 세계로 자리를 옮겨 앉는다. 나는 이것이 야스나리가 실행하고자 했던 '현실성의 희생'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스나리는 이를 두고 '정신주의 문학'이라는 말을 썼다. 단순히 주관적인 현상을 묘사하는 것에서 벗어나 현실을 넘어선 직감과 정신성을 문학에 부여하겠다는 의미다.

 "고독과 비애와 소극적 성격 때문에 문학을 했다"는 그의 회고를 보면, 그에게 현실을 뛰어넘는 시각을 가져다 준 힘은 바로 이 지긋지긋한 '고독과 비애'가 아니었을까 싶다. 야스나리는 이미 허무해서 아무것도 아닌 세상을 현실적으로 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출처] : 허연 매일경제 문화전문기자·시인 :<허연의 일본문학기행>/ 매일경제 프리미엄

9. 日 니가타 알린 일등공신은 소설 설국과 '준마이' 사케



▲ 에치코 유자와역에 있는 사케 전시장인 폰슈칸에 설치되어 있는 술 취한 남자들의 조각상


 에치코 유자와역 개찰구를 지나 대합실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사케 전시장이다. 사케라는 단어는 한자로 '酒'라고 쓰는데 일본에서는 원래 모든 술을 '사케'라고 부른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위스키, 맥주, 소주처럼 술의 한 종류를 의미하는 말로 쓰인다. 쌀로 빚은 일본식 청주를 '사케'라고 부르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청주를 예전에는 정종(正宗)이라고 불렀는데, 일본인들이 마사무네(正宗)라고 발음하는 '정종'은 일본식 청주의 한 브랜드 이름일 뿐이다. 일제강점기 때 부산에 최초로 세워진 청주 공장에서 만든 사케 브랜드가 정종(正宗)이었는데, 훗날 이것이 일본 청주를 총칭하는 이름이 된 것이다.

 일본의 청주는 그 맛이 일품이다. 가장 큰 이유는 일본의 쌀 때문이다. 일본 사람 중에는 '한국은 해가 많아 과일이 맛있고, 일본은 비가 많아 쌀이 맛있다'는 말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일본에 처음 거주하게 된 한국인들은 마트에 있는 쌀코너에 가보고 깜짝 놀란다. 우선 쌀의 종류가 너무나 많다.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가장 싼 쌀과 가장 비싼 쌀의 가격차가 5배 이상 되는 것도 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유학생들은 보통 중하급 정도 쌀을 사먹는데 이것도 밥맛이 일품이다.  

 일본에서 최고로 치는 쌀은 고시히카리(越光)다. 니가타현은 바로 이 고시히카리의 고향이다. 고시히카리는 반찬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맛있다는 쌀이다. 이 고시히카리 중에서도 에치코 유자와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우오누마(魚沼)의 고시히카리를 첫손가락에 꼽는다.

 고시히카리로 지은 밥은 찰기와 윤기는 물론 특유의 구수한 쌀 향기가 짙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은 고시히카리를 가지고는 덮밥이나 볶음밥을 만들지 않는다. 고시히카리 자체의 맛을 즐기기 위해서다. 니가타 사케는 이 고시히카리로 만든 술이니 얼마나 감미롭겠는가.

 일본 최고의 물이라고 하는 스가나다케(菅名岳) 설산에서 흘러내린 물에 고시히카리로 담은 사케는 소설 '설국'과 더불어 니가타현을 세상에 알린 일등공신이었다. 

 니가타에서 생산되는 사케 브랜드는 200개가 넘는다고 한다. 니가타 사케는 매우 엄밀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으로 유명하다.

 보통 사케는 쌀을 30~50% 정도 깎아낸 정미로 만든다. 쌀의 외피에 있는 영양분이 술에 들어가면 특유의 감칠맛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이런 쌀을 발효시키기 위해서는 사전 준비가 필요한데, 세척하는 세미(洗米), 물에 담가 놓는 침지(浸漬) 과정을 거친 다음 쌀을 찌게 된다.


여기에 누룩을 번식시켜 배양해서 주모를 만들고 다시 찐 쌀과 누룩과 물을 배합하는 반복 과정을 거쳐 모로미(諸味)를 만들고, 이것을 한 달 동안 발효시킨다. 발효된 모로미를 천으로 만든 주머니에 넣어서 압축시키는 과정을 거쳐 다시 거대한 솥에 넣고 열을 가한 다음 걸러내면 사케가 만들어진다. 

 제조 과정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별도의 알코올을 절대 첨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쌀과 물로만 만든 사케를 '준마이(純米)'라고 한다.

 에치코 유자와 역에 있는 사케 전시장 폰슈칸(ぽんしゅ館)에서는 니가타 지역에서 나는 각종 사케를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맛볼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사케와 더불어 니가타 지역에서 나는 특산물로 만든 각종 안주류도 다양하고 맛있다. 전시장 입구에 있는 술 취한 남자들의 조각상은 이곳의 명물이다. 술병을 들고 웃는 남자, 벽에 손을 집고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남자, 심지어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남자까지 조각상으로 만들어 놓았는데, 볼수록 웃음이 절로 난다.

 소설 '설국'에도 간간이 사케를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고주망태가 될 때까지 마시지는 않는 일본인들의 주법 때문인지 잔잔하게 스쳐가는 정도다.

 사케를 마시는 장면은 소설 후반부에 주로 나온다. 코마코가 게이샤 일에 본격적으로 몸을 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코마코는 가끔 여관에 있는 술을 들고 시마무라의 방을 찾아오곤 한다. 살짝 취기에 젖은 코마코는 가벼운 듯하면서도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하지만 캄캄한 데서 들이켜면 술이 싱거워요."

 무슨 의미였을까. 물론 현실적으로는 술을 가져오기 전에 이미 어두컴컴한 술 창고에서 한 잔 마셔봤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치부하기에는 이 문장이 다분히 상징적이다.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가끔 설국에 불현 듯 찾아드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삶. 그것이 '캄캄한 곳에서 마시는 술' 같지 않았을까. 그 남자가 보여주는 무미하고 허무한 행태가 더욱 그를 어둠으로 몰아가지는 않았을까.
  

[출처] : 허연 매일경제 문화전문기자·시인 :<허연의 일본문학기행>/ 매일경제 프리미엄

10. 운명과 욕망의 치열한 충돌 소설 '설국'의 그 역에 서다



▲ 눈발이 날리는 에치고 유자와 역.


플랫홈을 빠져나와 지금은 현대적으로 변모한 에치코 유자와 역 구내에 서서 나는 소설속의 한 장면을 생각한다.

 시마무라와 고마코와 요코. 이렇게 세 사람이 함께 있는 장면이다. 시마무라가 두 번째 설국을 찾았다가 다시 도쿄로 떠나는 날 모습이다. 떠나는 시마무라와 그를 배웅하는 고마코는 감정을 숨기기 위해 눈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시마무라가 밖을 내다보며 "내가 온 뒤로 눈이 꽤 녹았군"이라고 말하자 고마코는 녹았다가도 이틀만 더 내리면 전봇대도 눈에 파묻힌다며 겨울이 아직 가려면 멀었음을 말한다. 흡사 자신의 감정은 녹지 않았다는 듯이.

 "마을 앞 중학교에선 눈 온 날 아침에 기숙사 2층 창문에서 알몸으로 뛰어든대요. 몸이 눈 속에 파묻혀 보이지 않게 되죠. 그래서 수영하듯 눈 속을 헤엄치며 돌아다닌대요."

 이런 대화가 잠시 오고 간 후 갑자기 고마코는 까마귀 이야기를 꺼낸다.

 "기분 나쁜 까마귀가 울고 있어요. 어디서 우는 걸까? 추워요."

 이때 온천 마을에서 역으로 통한 도로를 뛰어오는 요코의 눈바지가 보인다. 유키오가 임종을 맞고 있음을 알려주러 온 것이었다. 죽어가는 유키오가 애타게 고마코를 찾고 있다는 전갈이었다. 하지만 고마코는 가기를 거부한다.


상징적으로 보자면 도쿄로 떠나는 시마무라를 배웅하기 위해 영원히 다른 세상으로 떠나는 유키오를 배웅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상징적인 장면에서 고마코는 순간 두세 걸음 비틀거린다. 이것을 본 시마무라는 고마코를 유키오의 임종을 볼 수 있도록 돌려보내야 한다고 마음먹는다.

 "빨리 돌아가, 바보 같기는."

 시마무라 입장에서는 자신의 운명을 비틀어지게 한 유키오의 임종을 보지 않겠다는 고마코의 고집이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게이샤가 되어서까지 유키오의 병수발을 도왔던 고마코가 그의 마지막을 보지 않겠다고 한 건 과거와 현재, 혹은 숙명과 욕망 사이에 선 고마코의 간절한 선택일 수도 있다. 적어도 필자의 생각은 그렇다.

 여기서 유키오는 과거이자 숙명이고 시마무라는 현재이자 욕망이다. 바로 이 에치코 유자와 역 대합실에서 고마코는 현재이자 욕망인 시마무라를 선택한 것이다.

 이때 또 다른 여인 요코는 식물처럼 서서 이 과정을 지켜본다. 바로 이 부분이다.

 "요코는 멍하니 굳어진 채로 고마코를 응시했다. 그러나 표정은 너무나 진지해서 화가 난 건지, 놀란 건지, 슬픈 건지 알 수가 없고 왠지 가면처럼 무척 단순해 보였다."

 이런 두 사람을 지켜보는 시마무라의 시선은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절실한 이야기 장치이자 모티프다. 시마무라는 요코라는 여인에게서는 수동적이고 정적이고 식물적인 매력을 느끼고 고마코에게서는 능동적이고 동적이고 동물적인 매력을 느낀다.

 시마무라가 두 여인을 동시에 한 장소에서 마주치는 역 대합실을 묘사한 짧은 장면에서 조차 그 이중적 시선은 낱낱이 드러난다.

 요코를 달래서 돌려보내며 시마무라는 "요코의 슬프도록 아름다운 목소리"가 눈 쌓인 산에 부딪혀 자기 귀에 남아 있을 것이네 뭐네 하면서 그녀에 대한 동경을 표시한다.

 하지만 불과 몇 문장 뒤에서는 고마코에게 "육체적인 증오를 느꼈다"고까지 표현한다. 그러나 곧이어 고마코가 "일기를 태워버리겠다"고 말하자 그녀를 유키오 임종에 보내는 것을 포기한다.

 결국 시마무라는 교집합이라고는 없는 두 여인의 사이, 그 둘의 자기장이 팽팽하게 부딪히는 어떤 지점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 지점이 바로 에치코 유자와 역 대합실이다.

 물론 지금 에치코 유자와 역 대합실에는 세 사람이 서 있던 장소에 있던 석탄난로는 사라진 지 오래다.

 시마무라가 일기를 태워버리겠다는 고마코를 뒤로한 채 기차에 오르던 그날엔 기껏해야 마을 사람 서너 명이 기차에 타고 내렸겠지만, 지금 기차는 하루 수천 명을 싣고 현실과 환상의 공간을 왕복하고 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엽서 한 장까지 보존하고 있는 니가타현이 왜 에치고 유자와 역 구(舊)역사는 보존하지 않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석탄 난로가 피어오르던 그 역사의 풍경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출처] : 허연 매일경제 문화전문기자·시인 :<허연의 일본문학기행>/ 매일경제 프리미엄

11. 설국을 가로지르는 그 길, 현실의 코마코를 만났다

 에치고 유자와 역 서쪽 출입구를 걸어나오면 작은 역 광장을 지나자마자 곧바로 왕복 2차선 도로를 만난다. 이 도로는 소설 '설국'에서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야스나리가 묵었던 다카한(高半) 여관에서 역을 연결해주는 유일한 길이자, 마을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큰 길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야스나리는 글을 쓰기 위해 마을에 묵는 동안 수없이 이 길을 산책했을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이 길 위에서 고마코의 실제 모델인 게이샤 마쓰에(松榮)를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고마코가 새침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재촉하곤 하던 모습도, 시마무라가 '도쿄'라는 현실로 돌아가기 위해 쓸쓸한 걸음을 내디뎠던 장면도 모두 이 길 위에 추억으로 새겨져 있었다.

 도로에 접어들어 상점 몇 개를 지나면 '설국관(雪國館)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는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설국'이 쓰인 다카한 여관에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는데 웬 설국관인가 의아했다. 들어가 보니 3개 층으로 되어 있는 건물에 '설국' 관련 전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지역의 향토문화전시장도 겸하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전시장의 정식 명칭도 '유자와 마치 역사민속자료관, 설국관'이라는 긴 이름이었다.

 민속자료관에는 이 지역 가옥을 재현해 놓은 방이 있고 화로 주전자 등 생활용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옆에는 농사와 채집, 사냥 등에 사용했던 도구들과 오래된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의 오래전 생활상을 한 눈에 볼 수 있는데 일본 스키의 발상지 답게 스키 관련 자료들이 눈길을 끈다.

 야스나리의 흔적을 찾기 위해 그곳에 간 나는 1층 설국 관련 전시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는데, 설국을 주제로 그린 일본화 14점이 어두컴컴한 전시실에 유물처럼 걸려 있었다. 그중 한 쪽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50호짜리 그림이 있었다. 후나미즈 노리오라는 화가가 그린 '고 마코(駒子)'라는 작품이었는데 채색이나 분위기가 너무도 생생했다. 또, 야스나리가 입었던 옷가지, 사용했던 찻그릇, 회중시계, 글씨 등도 전시되어 있었다.

 특별히 눈에 들어온 건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작은 방이었다. 방의 이름은 '고마코의 방'. 고마코가 창가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습이 모형으로 제작되어 있었다. 왜 하필 이곳에 '고마코의 방'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설명서를 읽으니 곧 풀렸다.  



▲ 소설 "설국"의 주인공인 코마코의 실제 모델인 마쓰에의 젊은 시절 모습 



'설국관'이 있는 이 자리가 바로 고마코의 실제모델인 마쓰에가 살던 숙소였던 것이다. 1920~1930년대 온천 붐과 스키 붐이 불고 시미즈 터널이 완성되면서 이곳에 관광객들이 많이 몰려들었는데 그 무렵 게이샤들은 이곳에 있던 대기소에서 지내다 호출이 오면 손님들을 맞으러 나가곤 했다. 야스나리는 1934년 처음 유자와를 방문해 19세의 마쓰에를 만난다. 가와바타 35세 때의 일이다.

 설국관에 있는 자료에 보면 마쓰에의 본명은 고다카 기쿠(小高きく)다. '기쿠'는 국화라는 뜻이니 본명이 참 분위기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쓰에는 1915년에 태어나 1999년까지 살았으니 꽤나 장수한 셈이다.


 마쓰에는 23세 때 유자와를 떠나 도쿄로 이사했고 27세에 결혼해 평범하게 살았다고 한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학교를 중퇴하고 10대 후반 게이샤가 된 그는 야스나리를 처음 만났던 날을 이렇게 술회한다.

 "큰 눈으로 무엇인가를 가만히 응시하는 말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내가 사미센을 타면 가만히 듣고 있었어요. 가와바타 씨는 술을 많이 안 했고 주로 제가 마셨어요."

 물론 소설 '설국'에 나오는 것처럼 둘 사이에 어떤 사연들이 있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야스나리가 이 앳되고 예쁜 게이샤를 보고 어떤 캐릭터를 떠올린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실제로 1957년 '설국'이 영화로 만들어졌을 때 이곳을 떠나 있던 마쓰에는 영화사 초청으로 촬영 현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1968년 '설국'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후 야스나리와 마쓰에는 이곳에서 오랜만에 대면을 하기도 했다. 수상을 기념한 의례적인 행사였겠지만 이 자리에서 야스나리는 마쓰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고 전해진다.

 소설 속에서 고마코는 깨끗함과 당돌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고마코의 실제 모습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다행스럽게도 그 궁금증은 쉽게 풀린다. 마쓰에의 사진 몇 장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전시장에 걸려 있는 오래된 흑백사진이지만 그는 충분히 깨끗하다. 야스나리가 어떤 느낌을 받았을지 눈치 채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요코는 실존인물이었을까? 실존인물이 아니었다는 게 정설이다. 요코는 설국이라는 환상의 공간을 위해 새롭게 창조된 인물이 아닐까

[출처] : 허연 매일경제 문화전문기자·시인 :<허연의 일본문학기행>/ 매일경제 프리미엄

12. 설국의 스키장과 삼나무숲 하얀 풍경 속 묵직한 허무



▲ 유자와역에서 다카한 여관으로 가는 길에 만난 한적한 스키장


설국관을 나와 야스나리가 소설 '설국'을 집필했던 실제 장소 다카한(高半) 여관으로 가는 길 위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이미 겨우내 폭설이 내려 온통 눈으로 덮여 있는 마을에 또 눈이 내리는 모습은 묵직한 허무로 다가왔다. 흐린 하늘 아래 숨어 있는 조용한 마을, 그 마을을 뒤덮을 것처럼 하염없이 내리는 눈. 그 위를 걷고 있는 몇 안되는 사람들.

 야스나리가 머물던 시절에는 도로 위에도 눈이 쌓여 통행에 지장이 있었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중앙선에 설치된 스프링클러에서 끊임없이 물이 쏟아져나와 눈을 녹이고 있었다. 도로 양편에는 하얀 성벽처럼 사람 키를 넘는 눈이 쌓여 있었지만 도로 위는 놀라울 만큼 말끔했다.


눈에 뒤덮인 마을과 눈이 전혀 없는 검은색 아스팔트 도로는 묘한 대비로 다가왔다. 도로에 눈이 없으니 차들이 빠르게 달릴수 있었는데, 달려가는 차들이 코너를 도는 순간 시야에서 사라지는 바람에 흡사 눈 속으로 차들이 돌진하는 것처럼 보였다.

 역에서 다카한 여관에 이르는 2.5㎞쯤 되는 길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곳이 스키숍이다. 혼슈섬에서 눈이 가장 많이 내리는 지역답게 이곳은 일본 스키의 성지다. 야스나리가 머물던 1930년대에도 이곳에는 많은 스키장이 있었다.

 "일고여덟 집 건너에 있는 스키 제작소에서 대패질 소리가 들려온다. 그 반대편 처마 그늘에 게이샤 대여섯 명이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오늘 아침 여관 하녀한테서 그 예명(藝名)을 들어 알게 된 코마코도 거기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처럼 유자와마치를 묘사할 때 스키장은 여러 번 등장한다.

 현재 유자와에는 10여 개의 스키장이 있다. 마을 인구나 규모로 보면 엄청난 숫자다. 슬로프가 50개가 넘는 초대형 스키장도 있다.

 에치고 유자와역을 지나면 얼마 안 가서 갈라유자와역이 있다. 이 역에는 겨울철에만 기차가 서는데 역 대합실이 곧바로 스키 리프트로 연결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도쿄의 직장인들이 정장 차림으로 퇴근해 이곳에서 옷을 갈아입고 곧바로 리프트에 오를 수 있게 돼 있다.

 근처에서 가장 유명한 스키장인 나에바는 1789m에 이르는 나에바(苗場)산에 설치된 코스가 세계적이다. 나에바산에서 아시아 최장(5.4㎞)이라는 곤돌라를 이용하면 가쿠라산에 조성된 스키장으로 연결되는데 이들 스키장은 정설을 안 하기로 유명하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눈 위를 내리닫는 것은 많은 스키어들의 로망이리라.

 스키장들은 어둑어둑해질 무렵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소설에도 이런 풍경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있다. 시마무라가 숙소에서 창 밖 풍경을 그린 부분이다.

 "제각기 선의 원근이나 높낮이에 따라 다양하게 주름진 그늘이 깊어가고, 봉우리에만 엷은 볕을 남길 무렵이 되자, 꼭대기의 눈 위에는 붉은 노을이 졌다. 마을 냇가, 스키장, 신사 등 군데군데 흩어져 있는 삼나무 숲이 거뭇거뭇 눈에 띄기 시작했다. 시마무라가 허무한 애수에 젖어 있을 때, 따스한 불빛이 켜지듯 코마코가 들어왔다."

 삼나무는 일본의 숲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표적인 나무다. 곧게 자라는 데다 겨울에도 짙은 색깔의 잎을 유지하고 있어 보기가 매우 좋다. 나무의 실루엣이 좋아서 어두울 때 보면 신령스러운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최근 이 삼나무가 일본의 골칫거리로 전락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사실 일본의 삼나무는 자연스럽게 자란 것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일본 정부가 전쟁으로 황폐해진 산림을 복원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인공 식재를 한 것들이다. 빠른 속도로 똑바로 자라기 때문에 목재로서의 활용 가치가 높았던 게 일본 정부가 삼나무를 조림수로 선택한 이유다.


하지만 문제는 꽃가루다. 삼나무는 봄이 되면 엄청난 양의 꽃가루를 날리는데 이것이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것이다. 봄에 일본을 방문하면 마스크를 한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띄는 것도 이 꽃가루 때문이다. 땔감이나 건축자재로 목재를 사용하는 비중이 크게 줄면서 삼나무는 점점 더 번창하고 있어 삼나무 꽃가루는 일본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그래도 어쨌든 겨울 눈 속에 서 있는 삼나무는 근사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소설 속 한두 문장만으로도 충분히 상상이 된다.

 삼나무 몇 그루만이 우뚝 서 있는 풍경. 사위는 점점 어두워가고 시마무라는 방에 불을 켤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멍하니 앉아 있다. 어두워지는 속도에 따라 창 밖을 내다보는 시마무라의 마음도 함께 가라앉는다.

 그 순간 "따스한 불이 켜지듯" 코마코가 방문을 열고 들어서는 것이다.
   

[출처] : 허연 매일경제 문화전문기자·시인 :<허연의 일본문학기행>/ 매일경제 프리미엄

13. 철로변 신사가 간직한 소설 설국의 탐미주의



▲ 스와신사


다카한 여관이 있는 마을 못 미쳐 철로변에는 소설에 등장하는 스와사(諏訪社)라는 이름의 신사가 있다. 신칸센 열차 길이 뚫리고 마을의 형태가 변화하면서 주변 풍광은 많이 달라졌지만 소설에 나오는 돌사자상과 평평한 바위, 커다란 삼나무는 여전히 건재하다. 특히 수령이 400년이나 된 삼나무는 시마무라와 코마코의 사연을 다 내려다본 듯 신령스럽게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사실 이 신사는 소설의 생성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장소다. 야스나리가 마을 산책 중 이곳에서 소설 '설국'을 구상했다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사에는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가 풍겼다.

 "여자는 고개를 돌려 삼나무 숲 속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그도 말 없이 따라 들어갔다. 신사였다. 이끼 낀 돌사자상 옆 평평한 바위에 여자가 걸터 앉았다.(중략)
 삼나무는 손을 뒤로 해서 바위를 짚고 가슴을 젖히지 않고서는 눈에 다 들어오지 않을 만큼 키가 컸고, 게다가 너무나 일직선으로 줄기가 뻗어 있고 짙은 잎이 하늘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막막한 정적이 울릴 듯했다. 시마무라가 등을 기댄 줄기는 그중 가장 수명이 오래된 것이었는데 어찌된 셈인지 북쪽의 가지만이 끝까지 완전히 말라 있었다. 잎이 다 떨어지고 남은 나뭇가지의 밑동은 마치 뾰죽한 말뚝을 줄기에 꽂아 세워놓은 듯 보였다. 어쩐지 무서운 신(神)의 무기 같았다."

 내 눈 앞에 있는 이 삼나무가 시마무라가 등을 기댔던 삼나무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세월이 한참 지난 지금도 여전히 '신의 무기'같은 분위기로 주변을 압도하고 있었다. 스와신사는 아주 오래된 신사다. 1200년경 건립됐다고 하니까 무려 800년이 넘은 역사를 지난 신사다. 아마 에치고 유자와 마을과 역사를 거의 같이 하지 않았을까 싶다.

 주인공 시마무라가 이곳 신사에서 코마코와 오랜 시간을 보낸 것은 시마무라가 유자와 마을을 첫 번째 방문했을 때다. 이제 막 서로를 알아가게 된 두 사람은 떨리고 설레이는 감정으로 이 신사를 찾았을 것이다. 소설에는 이런 상황이 충분히 그려져 있다. 소설에서 시마무라가 말하는 코마코의 이미지는 시종일관 '깨끗함'인데 그 깨끗함의 정점을 이루는 묘사가 스와신사를 배경으로 나온다.

 등산로에서 내려와 우연히 코마코를 만난 시마무라가 며칠 후 코마코의 모습을 관찰하며 이렇게 독백하는 장면이다.

 "시마무라는 자신이 싫어지는 한편 여자가 더없이 아름답게 보였다. 삼나무숲 그늘에서 그를 부른 이후, 여자는 어딘가 탁 트인 듯 서늘한 모습이었다.
 가늘고 높은 코가 약간 쓸쓸해 보이긴 해도 그 아래 조그맣게 오무린 입술은 실로 아름다운 거머리가 움직이듯 매끄럽게 펴졌다 줄었다 했다. (중략) 다소 콧날이 오똑한 둥근 얼굴은 그저 평범한 윤곽이지만 마치 순백의 도자기에 엷은 분홍빛 붓을 살짝 갖다 댄 듯한 살결에다, 목덜미도 아직 가냘퍼 미인이라기보다는 우선 깨끗했다."

 야스나리는 무려 반쪽 분량의 지면에 코마코의 외모를 묘사한다. 흡사 서로 어울리지 않을 수 있는 사조인 극사실주의와 추상표현주의를 섞어놓은 듯한 느낌이 든다. 소설 곳곳에서 만나는 야스나리의 이런 탐미적 접근 태도는 사실 야스나리 문학의 중요한 구성 요소다.


그의 소설은 이른바 '신문예'라는 이름으로 주로 거명되는데, 실제로 야스나리 문학은 흔히 말하는 신문예니 신감각이니 하는 유파하고 꼭 들어맞지 않는 유별난 개성을 지니고 있다.

 야스나리의 제자이자 동시대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는 "어떤 시대관념도 가와바타 씨를 기만하지는 못했다. 근대, 신감각파, 지성, 국가주의, 실존철학, 정신분석 등등 온갖 관념이 우리 시대를 백귀야행처럼 나돌고 있으나, 가와바타 씨는 그 어느 것에도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고 말한 바 있다.

 야스나리는 대학을 졸업하고 '신사조'라는 문예지를 재창간하면서 신감각파의 일원으로 활동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세계는 점차 자신만의 세계로 나아간다. 청년시절엔 허무와 우수가 넘치는 서정적인 작품을 주로 썼지만 점차 '미(美)' 그 자체를 추구하는 세계로 천착해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 완결판이 바로 '설국'이다.

 바로 이런 장면에서 야스나리가 도달하고자 했던 '절대미'의 세계를 맛볼 수 있다.

 "적당히 피로해졌을 무렵, 문득 방향을 바꾸고는 유카타 자락을 걷어 올려 한달음에 뛰어 내려오자, 발밑에서 노랑나비가 두 마리 날아올랐다. 나비는 서로 뒤엉키면서 마침내 국경의 산들보다 더 높이 노란빛이 희게 보일 때까지 아득해졌다."
   

[출처] : 허연 매일경제 문화전문기자·시인 :<허연의 일본문학기행>/ 매일경제 프리미엄

14.소설 설국 읽다 빠지는 미궁 이유는 비단선적 진행 때문



▲ 설국관에 전시되어 있는 코마코의 모습을 그린 작품


독자들은 '설국'을 읽으면서 자주 미궁에 빠진다. 스토리가 단선적으로 진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큰 이유는 소설이 시간 순서대로 정주행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설의 구성은 시마무라가 유자와 마을을 방문했을 때 사건들을 중심으로 흘러가는데 그 부분에서 혼돈이 생기기 쉽다. 방문 순서대로 소설이 진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 방문 회차에서 다른 방문 회차로 이야기가 넘어갈 때 은근슬쩍 구렁이 담 넘듯이 전개되므로 그 분기점을 놓치기가 쉽다. 방문 횟수를 미리 염두에 두고 읽으면 이런 혼란을 줄일 수 있다.

 소설에서 시마무라는 설국을 세 번 방문한다.

 세 번의 방문이 스토리 전개상 매우 절실한 역할을 하지만, 각각의 방문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또 있다. 세 번 모두 다른 계절에 방문을 했기 때문에 유자와의 계절적 풍광과 코마코의 감정상태를 묘사하는 부분이 각기 다르게 그려지는 것이다. 이 묘사 부분이 소설 '설국'의 또 다른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시마무라의 첫 번째 방문은 5월에 있었다. 막 신록이 물들기 시작하는 계절이다. 이때 시마무라는 아직 게이샤로 입문하지 않은 코마코를 처음 만난다. 둘이 함께 커다란 삼나무가 있는 스와신사에 갔던 장면이 첫 번째 방문 때 있었던 일이다. 다른 게이샤에게 실망한 시마무라는 신사에서 아직 게이샤가 아닌 코마코에게 말을 건다. 코마코의 차가운 답변을 들으며 시마무라는 이런 느낌을 받는다.

 "머리를 숙이고 쌀쌀 맞게 대답하는 그녀의 목덜미에 삼나무숲의 어두운 푸른빛이 감도는 것 같았다."

 두 번째 방문은 같은 해 12월이었다. 소설의 첫 부분에 나오는 기차 속 장면이 시마무라의 두 번째 유자와 방문이다. 소설의 전반부는 유자와를 두 번째 찾은 시마무라가 첫 번째 방문 때 있었던 일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꾸며져 있다.

 이 두 번째 방문에서 시마무라는 게이사가 된 코마코와 재회한다. 반 년 만에 다시 만난 코마코에게서 시마무라는 첫 번째에서 보지 못했던 관능미를 느끼게 된다.

 "시마무라가 다가온 것을 알고 여자는 난간에 가슴을 대고 푹 엎드렸다. 그것은 연약하다기보다 이런 밤을 배경으로 이보다 더 완고한 것은 없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시마무라는 또 시작인가 싶었다. 산들은 검은데도 불구하고 어찌된 셈인지 온통 영롱한 흰 눈으로 덮여 있는 듯 보였다. 그러자 산들이 투명하고 쓸쓸하게 느껴졌다."

 두 번째 방문이 끝나고 시마무라가 도쿄로 돌아가는 날 유키오가 죽는다. 코마코는 유키오가 임종을 맞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도 유키오에게 가지 않고 시마무라를 배웅한다. 그녀의 순정은 이미 시마무라에게 돌아서 있었던 것이다.

 아다시피 유키오는 코마코의 옛 약혼자이며, 요코의 새 애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세 번째 방문은 그로부터 1년 후 가을이 짙게 물드는 계절이다. 세 번째 방문 때 그려지는 풍경 묘사는 압권이다. 시미즈터널을 지나면서 만나는 눈 풍경을 묘사한 두 번째 방문이 소설의 대표적인 장면으로 자리잡고 있지만 사실 가장 독특하고 시적인 묘사는 세 번째 방문 때 많이 나온다.


 내 생각에는 소설 제목이 '설국'만 아니었다면 아마 세 번째 방문에 나오는 묘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더 많지 않았을까 싶다. 그만큼 소설 전체에 물들어 있는 '허무'를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부분이 세 번째 방문이다.

 "살아 있나 싶어 몸을 일으켜 철망 안쪽을 손가락으로 퉁겨봐도 나방은 움직이지 않았다. 주먹으로 세게 치자 나방은 나뭇잎처럼 툭 떨어지면서 가볍게 날아올랐다. 자세히 보니 반대쪽 삼나무 숲 앞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잠자리떼가 흐르고 있었다. 민들레 솜털이 떠다니는 듯했다."

 세 번째 방문에서 시마무라는 유키오의 무덤을 찾은 요코를 목격한다. 코마코와는 또 다른 매력을 지난 요코가 시마무라의 뇌리에 깊이 각인된다. 그리고 며칠 후 영화 상영을 하던 창고에서 불이 났고, 시마무라는 창고 2층에서 은하수 속을 낙하하듯 추락하는 요코를 본다. 소설의 결말이다.

 한 계절이 지나면 숙명처럼 죽음을 받아들이는 나방처럼 생은 그렇게 부질없이 헛수고처럼 끝이 난다. 너무나 허무해서 오히려 순수하게 느껴지는 야스나리 문학의 절정을 바로 이 화재 장면에서 만날 수 있다.
 

[출처] : 허연 매일경제 문화전문기자·시인 :<허연의 일본문학기행>/ 매일경제 프리미엄.

15. 소설 '설국'이 그린 세상은 모자이크같은 환상의 나라


 재미있는 건, 소설 어디에도 설국의 실제 무대가 니가타현 에치고 유자와라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야스나리가 자신의 출세작인 '이즈의 무희(伊豆の踊子)'에서 '이즈'라는 지명을 명확하게 밝혔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가 '설국'에서 구체적인 지명을 감춘 이유는 다분히 의도적이다. 앞에서 거론했지만 '설국'은 환상의 세계다. 주인공 시마무라는 시미즈 터널을 지나는 순간 환상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물론 독자들도 시마무라의 시선을 따라 환상계로 함께 들어가게 된다.

 야스나리는 생전에 소설 속에 지명을 굳이 밝히지 않은 이유에 대해 "구체적인 지명은 작가 및 독자의 자유를 구속하게 되는 것 같고, 지명을 밝히는 순간 그곳에 대해 사실적으로 묘사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즉 특정 지명을 밝히는 순간 다가오게 될 '사실(fact)'에 대한 중압감을 떨치기 위해 지명 공개를 피해 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지명이 드러날 경우 소설 '설국'은 조금 다른 느낌으로 진행됐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제자였던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
훗날 두 사람은 문학적으로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야스나리의 제자이자 문학적 도반이었던 미시마 유키오가 '설국'에 대해 한 말을 떠올려 보면 야스나리가 그리고자 했던 세계가 무엇인지 감을 잡을 수 있다.

 "이 소설의 주제는 어떤 특정한 순간이 아니라 항상 움직이고 있는 인간생명의 각 순간을 이어주는 순수지속(純粹持續)이다. 따라서 그것은 변화의 기록이고, 순간의 집성이다. 고마코라는 여성도 요코라는 여성도 일관된 하나의 인물이나 성격이라기보다는 생명의 각 단면과 순간으로만 그려진다. 독자는 그런 세부를 연결해서 하나의 전체상을 포착하려고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애당초 정념이라는 것은 전체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터널 밖 세상은 환상에 기반한 모자이크 같은 세상이다. 그렇다보니 소설은 독자들을 힘들게 만든다. 독자들은 습관적으로 인과관계를 통해 하나의 전체상을 포착하는 습관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설국'을 가장 잘 읽는 방법은 한 행, 한 행, 시를 읽듯 이미지로 읽어나가는 것이다.


 읽으면서 소설 전체의 인과관계를 찾거나 그것을 논리적으로 분석하기 보다는 그냥 나열된 이미지 하나하나를 감상하듯 읽어야 한다. 그렇게 읽어가다보면 독자 스스로 어떤 '종합'에 이르게 된다.

 미시마가 말한 '순수지속'은 베르그송 철학의 핵심인데 쉽게 말해 실제 시간은 시계 바늘이 움직이는 일정하고 기계적인 시간과는 달리 흘러간다는 개념이다. 무엇에 빠져 있을 때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게 흘러가는 것처럼, 진정한 시간은 양적 관계가 아니라 질적 관계로 구성된다고 보는 것이다.

 야스나리가 의도한 환상의 세계를 여행하는 시마무라의 캐릭터를 봐도 그가 환상계의 주연배우임이 여실하게 드러난다.

 그는 일정한 직업이 없는 사람이다. 사실세계에 발을 들여 놓지 못하고 사는 사람인 것이다. 그나마 그가 하는 일은 서양 무용에 대한 비평을 가끔 쓰는 것인데 이것 역시 사실계가 아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무용 공연을 보고 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상징으로 사용된다. 실제로 본 무용이 아닌 것을 평하는 시마무라의 시선이 곧 설국을 보는 야스나리의 시선이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어보면 단박에 알 수 있지만, 시마무라는 뭔가 현실에 깊이 개입하지 않는 자세를 지속적으로 보여준다. 흡사 거울에 비친 풍경을 감상하듯 한 발 물러서서, 마치 공연장에서 무용을 보는 것이 아니라, 책에서 무용을 보듯 무대라는 현장에 빠져들지 않는 자세를 유지한다.

 그 간접적인 자세가 독자들로 하여금 에치고 유자와를 세상에 실재하지 않는 마을처럼 느끼게 만든다. 마치 거울 속에나 존재하는 마을처럼.

 "손가락으로 기억하는 여자와 눈에 등불이 켜진 여자 사이에 무슨일이 있는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쩐지 시마무라의 마음속 어딘가에는 그것이 보이는 듯했다. 아직 저녁풍경이 비치던 거울에서 덜 깨어난 탓일까. 그 저녁 풍경의 흐름은, 그렇다면 흐르는 시간의 상징이었나 하고 그는 문득 중얼거렸다." 

 유심히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여기서 '손가락으로 기억하는 여자'는 고마코고, '눈에 등불이 켜진 여자'는 요코다. 야스나리는 이런 이중노출 같은 몽환적인 분위기로 시종 소설을 이끌어간다. '흐르는 시간의 상징'이라는 표현은 미시마가 말한 베르그송의 '순수지속'과 너무나 잘 맞아 떨어진다.

 또 한 가지. 소설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상징물이 있다. 시마무라의 직업이라고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서양 무용 평론이다. 왜 하필 일본 무용이 아니라 서양 무용이었을까.

 직접 무대를 보지 않고 인쇄물에 의지해 무용평을 쓰는 시마무라는 당연히 자기 나름의 상상력에 의지해 글을 쓸 수밖에 없다.

 에치고 유자와에서도 그렇다. 그는 현실(실제 무대)에 뛰어들기보다는 제멋대로 관찰과 상상으로 고마코와 요코의 머릿속을 그려낸다. 소설 어디에도 직접적으로 고마코와 요코의 내면을 묘사하는 부분은 없다. 그저 시마무라의 추측을 통해 만날 뿐이다. 시마무라는 고마코와 요코의 내면을 탐구하려고도 안 한다. 마치 무용 공연을 보지 않고 무용평을 쓰듯 말이다.

 이제 단서가 잡힌다. 소설 설국은 시마무라의 행동을 따라가는 소설이 아니라 시마무라의 생각을 따라가는 작품인 것이다. 당연히 생각에는 순차적인 시간도 공간도 필요 없다. 떠오르는 것이 곧 이야기일 뿐이다.

 주인공 시마무라의 모습에 작가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투영됐느냐는 물음에 야스나리는 "시마무라는 내가 아닙니다. 남자인지도 불분명합니다. 단지 고마코를 비추는 거울 같다고나 할까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하지만 필자 생각에 시마무라는 곧 야스나리였다. 야스나리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시마무라에게는 야스나리가 투사되어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야스나리의 인생을 다루는 부분에서 자세히 들여다보겠지만 그의 소설에 나오는 어떤 주인공도 야스나리가 아닌 적이 없었다. 
[출처] : 허연 매일경제 문화전문기자·시인 :<허연의 일본문학기행>/ 매일경제 프리미엄

16. "조촐한 죽음의 장소로서 다다미 여덟 장은 넓어 보였다."


▲ 개축하기 전 다카한 료칸의 모습. 돌출된 2층 방이 야스나리가 머물렀던 방이다


작품의 배경이자 야스나리가 실제로 묵으며 소설을 집필한 다카한(高半) 여관은 에치고 유자와 역에서 메인 도로를 따라 천천히 30분 정도를 걸으면 눈앞에 나타난다.

 다카한 여관은 설국 여행에서 가장 아쉬운 장소다. 예전의 모습이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특색 있었던 예전의 3층 건물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새롭게 건축한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 있다. 물론 현대식 건물 2층에 야스나리의 방이 재현되어 있기는 하지만 뭔가 아쉽다.


기록과 보존을 잘하기로 유명한 일본인들이 왜 여관 건물을 원래 모습과 판이하게 다르게 개축해 놓았는지 궁금하다. 본래 모습을 유지하면서 리모델링 정도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다.

 어쨌든 다카한은 고만고만한 현대식 건물들 사이에 별 특색 없이 서 있다. 현관의 간판과 설국산책로를 알려주는 '雪國 文學散步道'라는 약도가 그려져 있는 입간판이 없다면 이곳이 소설 '설국'의 현장인지 알기는 쉽지 않다.

 옛 모습은 잃어버렸지만 다카한의 2층 방은 소설의 중심무대이며 상징적인 공간이다. 시마무라와 고마코의 만남은 다카한 료칸의 다다미 여덟 장 위에서 가장 친밀하게 묘사된다. 그 방은 설국의 세계, 즉 환상계의 핵심이다.

 "가을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그의 방 다다미 위에는 거의 날마다 죽어가는 벌레들이 있었다. 날개가 단단한 벌레는 한번 뒤집히면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벌은 조금 걷다가 넘어지고 다시 걷다가 쓰러졌다. 계절이 바뀌듯 자연도 스러지고 마는 조용한 죽음이었으나, 다가가보면 다리나 촉각을 떨며 몸부림치고 있었다. 이들의 조촐한 죽음의 장소로서 다다미 여덟 장 크기의 방은 지나치게 넓었다."

 얼마나 압축적으로 소설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문장인가. 몇 번을 읽어도 감탄스럽다. 시마무라가 유자와를 세 번째 방문했을 때 나오는 문장인데 '다다미 여덟 장'으로 소설 전체의 지향을 완벽하게 보여주고 있다.

 소설 속에서 유자와 마치는 '조촐한 죽음의 장소'로서 손색이 없는 곳으로 그려진다. 한 번 뒤집히면 일어나지 못하는 곳 그곳이 에치고 유자와, 즉 '눈의 나라'였다.

 다카한 여관은 900년의 역사를 가진 온천여관이다.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말기 이곳에서 온천을 발견한 다카하시 한자에몬(高橋半左衛門)으로부터 현재의 36대 주인 다카하시 하루미 여사에게까지 가업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야스나리가 다카한에 머물게 된 계기는 35대 주인인 다카하시 하루미 여사의 부친과 도쿄대 문학부 선후배라는 친분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온천은 42도 정도의 물이 샘솟는데 지금도 1분에 100ℓ의 물이 나온다고 한다. 일반적인 유황온천인데 수질이 좋아서 인기가 높다고 한다.

 현재 다카한은 동관과 남관으로 구성된 전체 6층 건물이다. 동관(본관) 2층에 야스나리가 묵었던 방인 가스미노아(안개의 방·かすみの間)를 복원해 놓았다. 다행스럽게 예전 건물을 해체할 때 당시 내부 기물들을 그대로 모아 놓았다가 재현해 놓고 있다. 가스미노아는 소설 속에서는 '동백실'이라고 불리는 방이다.

 이 방은 매우 신경 써서 꾸며져 있다. 2층 전시장에서 방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작은 다리를 건너야 한다. 다리를 건너면 아주 작고 고운 흰 자갈이 깔려 있는 일본식 정원을 통과해 방을 구경하게 되어 있다.

 방에는 앉은뱅이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다. 체구가 작은 야스나리가 이 의자에 앉아 책상에 턱을 괴고 있는 모습이 상상이 됐다. 방 한쪽 구석에는 경대가 있었는데 이 경대는 소설에도 등장하는 주요 오브제다.

 "시마무라는 작년 세밑의 그 아침, 눈(雪)이 비치던 거울을 떠올리며 경대 쪽을 보았다. 거울 속에는 차가운 꽃잎 같은 함박눈이 한층 크게 나타나, 옷깃을 들추고 목덜미를 닦는 고마코의 주위에서 하얀 선으로 감돌았다. 고마코의 살결은 금방 헹궈낸 듯 깨끗해서 시마무라가 어쩌다 내뱉은 말 한마디조차 오해할 여자로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거역할 수 없는 슬픔이 있는 것 같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설경과 경대에 비친 고마코의 모습을 대비시켜 묘사한 이 대목은 소설 '설국'의 백미 중 하나로 꼽힌다.

 안개의 방에서 유자와 마치 쪽을 내려다보면 가까이는 여관의 마당이 보이고 멀리는 눈 쌓인 높다란 산을 배경으로 뻗어 있는 신칸센 철로가 보인다. 이 창틀에서 야스니라는 마츠에를 기다렸을 것이고 그녀가 마당을 가로질러 여관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훔쳐봤을 것이다.
 

[출처] : 허연 매일경제 문화전문기자·시인 :<허연의 일본문학기행>/ 매일경제 프리미엄

17."딱 한 번 하나가 되는 기적···귓속을 맴돌던 주제가"


▲ 1957년 만들어진 영화 '설국' 포스터


다카한 여관 2층은 야스나리만을 위한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제법 그럴듯한 에스컬레이터까지 있어서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 2층에는 안개의 방 이외에 책이나 사진 등 각종 관련 자료들이 전시된 공간이 있고, 한쪽에는 작은 영화상영실도 마련되어 있다.

 이 영화상영실에서는 흑백영화 '설국'을 하루 두 차례 상영한다. 1957년에 시로 도요다 감독이 만든 영화인데 2시간이 좀 넘는 영화다. 1958년 칸 영화제에까지 출품됐었으나 수상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영화는 원작과 좀 다르다. 우선 너무나 유명한 소설의 첫 장면이 생략되어 있다. 시마무라가 기차에서 요코를 만나 유리창에 반사된 그녀의 모습을 훔쳐보는 장면 등이 없고, 열차가 터널을 막 통과하는 부분도 생략되어 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는 부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 아쉽게도 영화에는 없는 것이다. 영화는 기차가 플랫홈에 도착한 이후부터 시작되는데 주인공들과 관련된 이야기도 조금씩 다르게 각색이 되어 있다.

 하지만 이 영화만의 감흥도 있다. 유자와 마치가 현대화되기 이전 1950년대의 모습을 영상으로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은 볼 수 없는 당시 유자와의 풍경은 소설의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져 내 눈앞에서 신비스럽게 합성되는 듯했다.

 다카한 여관을 평일에 방문할 경우 영화상영실에는 아무도 없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혼자, 혹은 동행들과 어두컴컴한 상영실에 앉아 흑백영화를 감상하는 것도 크게 나쁘지는 않다.

 사실 소설 '설국'은 여러 차례 영화로 만들어졌다. 다카한 여관에서 틀어주는 영화가 가장 오래된 것이다.

 영화 '설국' 중 그나마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은 1965년 일본미의 거장이라 불리는 오바 히데오(大庭秀雄) 감독이 컬러로 만든 '설국'이다. 이 영화는 지금도 DVD 등을 통해 한국에서 유통되고 있다.

 이 영화 역시 소설을 많이 각색했다. 가장 큰 차이는 영화는 소설과 달리 시간 순서대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또 하나. 화재 장면에서 원작은 요코가 자살을 한 듯한 분위기를 묘사하는 반면, 영화는 요코가 사람들을 구하려다 죽는 걸로 그려진다.

 '설국'의 영화화는 한국에서도 시도되었다. 1977년 고영남 감독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당대 톱스타였던 박근형 김영애가 주연을 맡았다. 난 이 영화를 보지 못했는데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가장 최근에는 2004년 '신설국'이라는 제목으로 일본에서 다시 영화가 만들어졌는데 이 작품은 원작과의 유사성이 더 떨어진다. 당연한 것이 '신설국'은 야스나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사사쿠라 아키라가 새롭게 쓴 소설 '신설국'을 원작으로 했기 때문이다. 야스나리 탄생을 기념해 쓴 오마주를 영화화한 셈이다.

 영화 '신설국'은 3대째 가업으로 이어오던 섬유회사가 망하면서 갈 곳을 잃은 50대의 중년 남자가 설국에 와서 게이샤 모에코를 만난다는 줄거리다. 둘이 사랑에 빠지고 거부할 수 없는 이별을 받아들이기까지 과정이 그려진다.

 이 영화가 한국에서 화제가 된 건 영화 자체보다 '유민'이라는 이름으로 한국 방송에도 자주 나와 인기를 끌었던 일본 배우 후에키 유코(笛木優子)가 전라로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이런저런 화제는 불러일으켰지만 영화 자체는 흥행에 실패했다.

 사실 영화 '신설국'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주제가 '유키노하나(雪の花·눈의 꽃)'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나카시마 미카의 '유키노하나'와는 다른 곡으로 영화 '신설국'을 위해 만들어진 노래다.

 주제가 '유키노하나'는 사카모토 후유미가 불렀는데 영화에서는 유민이 직접 부르는 장면도 나온다. 가사가 너무 '설국'다워서 오래 기억에 남는 노래다.

"생명의 꽃잎은 당신
또 다른 꽃잎은 나
이 세상에서 한 번만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기적

안으면 지옥 그렇지 않으면 꿈
불에 다 타고 어디로 가나요

(중략)

슬픈 이유를 말하지 말아요
지금은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아요

아 돌고 도는 바람에 춤추며
올라가는 눈의 꽃
돌고 도는 꿈에 춤추며
올라가는 눈의 꽃"
 
  

[출처] : 허연 매일경제 문화전문기자·시인 :<허연의 일본문학기행>/ 매일경제 프리미엄

18."눈(雪) 속에 새빨간 볼이 떠있다"…설국은 거울이 쓴 소설이다



▲ 설국관에 전시된 코마코를 모델로 만든 작품.


영화 '설국'에서도 '거울'은 작품 전체의 주제와 분위기를 드러내 보여주는 상징물로 쓰인다.

 사실 거울 없이 '설국'은 존재할 수 없었다. 장편소설 '설국'이 탄생하게 된 과정을 살펴보면 이 소설이 창작 초기부터 거울을 염두에 두고 쓰인 것임을 알 수 있다.

 야스나리는 애초 장편을 쓰려고 했던 게 아니었다. 소설 '설국'은 한 번에 완성된 소설이 아니라 각기 다른 시기에 쓰인 여러 중단편들이 합쳐진 소설이다. '설국'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장편에는 야스나리가 1935년부터 1947년 사이에 써서 각기 다른 제목으로 발표했던 작품들이 한데 모여 있다.


이렇게 장편 '설국'의 일부가 된 작품들 중에는 처음 발표했을 때 제목이 '거울'이라는 단어로 끝나는 소설이 있었다. '저녁 풍경의 겨울(夕景色の鏡)'과 '하얀 아침의 거울(白い朝の鏡)' 등이 대표적이다.


이 두 작품은 훗날 장편 '설국'의 가장 중요한 뼈대가 된다. 이 두 작품의 제목만 봐도 야스나리가 얼마나 거울이라는 상징물을 의식한 채 작품을 쓰기 시작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거울은 소설 설국의 전부였던 것이다.

 소설에서 보여주는 비현실의 아름다움은 거울이라고 하는 신비한 도구를 통해 '상(像)'으로 완성된다.

 두 여자 주인공 요코와 코마코는 거울에 의해 독자들 앞에 나타나고, 또 거울을 통해 독자들의 눈에서 사라진다. 정향재의 논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론'은 거울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설국'의 내면을 상세하게 분석하고 있다. 이 논문은 두 여자 주인공 요코와 코마코라는 캐릭터가 어떻게 거울이라는 상징물을 통해 완성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소설에서 처음 거울에 비치는 인물은 요코다. 시마무라는 기차 안에서 코마코를 떠올리며 손가락으로 유리창을 닦다가 창에 비친 요코를 발견한다. 야스나리는 친절하게도 왜 기차 유리창이 거울이 되는지를 설명까지 하면서 '거울의 소설'을 이끌어 나가기 시작한다.

 "바깥은 저녁 어스름이 내려져 있었고, 기차 안은 불이 켜져 있다. 그래서 창문이 거울이 되는 것이다."

 곧이어 책의 앞부분에서 인용한 '이중노출' 운운하는 장면이 나오고, 이중노출 장면은 요코의 비현실적인 매력을 완성시키는 역할을 한다.

 "두 사람의 모습은 끝없이 먼 데로 가는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기에 시마무라는 슬픔을 보고 있다는 괴로움은 거의 느끼지 못했다. 그저 꿈의 편린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마음이었다. 신기한 거울 속의 일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이 구절로 충분히 설명이 된다. 현실로 봤다면 '슬픔'이었을 일이 거울을 통해 봤기 때문에 '꿈'처럼 다가왔다는 말이다. 요코는 유리창에 비친 첫 순간부터 화재로 죽는 순간까지 시종일관 이 같은 신비함을 바탕에 깔고 등장한다.

 코마코는 좀 다르다. 코마코가 처음 거울에 등장한 이미지는 요코와는 확연히 다르다.

 "시마무라는 그쪽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움츠렸다. 거울 속에서 새하얗게 빛나고 있는 것은 눈(雪)이었다. 그 눈 속에 여자의 새빨간 볼이 떠 있다.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청결한 아름다움이었다."

 거울 속에서 코마코는 '빨간 볼'로 다가온다. 요코보다 훨씬 선명하고 생명력이 드러나보이는 이미지를 만들어 넣은 것이다. 시마무라가 두 번째 방문을 끝내고 도쿄로 돌아가려고 할 때 그를 배웅하는 코마코를 묘사하는 장면에서도 거울은 등장한다. 유키오가 죽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가지고 달려온 요코의 재촉을 거부하고 끝까지 시마무라를 배웅했던 그 장면이다.

 "'플랫폼에는 들어가지 않을래요. 안녕히 가세요'라며 코마코는 대합실 창 안에 서 있었다. 유리창문은 닫혀 있었다. 기차 안에서 바라보니 초라한 시골가게의 뿌연 진열장 속에 이상한 과일 하나가 달랑 잊혀진 채 남겨져 있는 것 같았다. 기차가 움직이자 대합실 유리가 빛나고 코마코의 얼굴은 그 빛 속에서 확 타오르는가 싶더니 금세 사라지고 말았다. 그것은 눈 온 아침 거울 속에서 봤던 것과 같은 새빨간 볼이었다. 또 한 번 현실과의 이별을 알리는 색이었다."

 이 상황은 머릿속에서 그림이 그려지는 듯 선명하다.

 약혼자는 임종을 맞고 있고, 시마무라는 도쿄로 떠난다. 그 순간 대합실에 남겨진 코마코는 시골 가게 진열장에 남겨진 이상한 과일 같다. 코마코의 슬픈 운명을 달랑 한 개만 남은 과일로 묘사한 부분은 너무 적절한 비유여서 오히려 냉혹하게 느껴진다.

 늦가을 시마무라의 세 번째 유자와 방문 때도 거울은 어김없이 코마코를 비춘다.

 "창가로 꺼낸 경대에는 단풍 든 산이 비춰지고 있었다. 거울 속에도 가을 햇살이 환했다."

 야스나리는 거울을 통해 주인공의 성격을 말하고, 거울을 통해 계절과 배경을 말하며, 거울을 통해 두 여주인공을 바라보는 자신의 입장을 말한다. 거울 없이 설국은 없다.
 

[출처] : 허연 매일경제 문화전문기자·시인 :<허연의 일본문학기행>/ 매일경제 프리미엄



19. "저것 봐, 은하수가 예쁘네!"···그날 밤 소설 '설국'은 미학이 됐다



▲ 다카한 료칸이 올려다 보이는 유자와 마치의 30년대 모습.

이곳 어디쯤 화재 장면에 나오는 고치 창고가 있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설국을 논할 때 '은하수(銀河水)'를 빼놓으면 결례다. 그만큼 소설 '설국'의 이미지를 결정하는 마지막 마침표가 은하수다. 밤하늘에 우유를 뿌려놓은 듯하다 해서 영어로 'Milky Way'라 불리는 은하수. 순우리말로는 '미리내'라고 하는 그 은하수 말이다.

우리 전래동화에서는 견우와 직녀를 갈라놓은 은하수가 야스나리 소설에서는 생과 사를, 천상과 지상을 연결하는 합일의 도구로 쓰인다.

"아아, 은하수, 하고 시마무라도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순간, 은하수 속으로 몸이 둥실 떠오르는 것 같았다. 은하수의 환한 빛이 시마무라를 끌어올릴 듯 가까웠다. 방랑 중이던 바쇼가 거친 바다 위에서 본 것도 이처럼 선명하고 거대한 은하수였을까. 은하수는 밤의 대지를 알몸으로 감싸 안으려는 양, 바로 지척에 내려와 있었다. 두렵도록 요염하다. 시마무라는 자신의 작은 그림자가 지상에서 거꾸로 은하수에 비춰지는 느낌이었다. 은하수에 가득한 별 하나하나가 또렷이 보일 뿐 아니라, 군데군데 광운(光雲)의 은가루조차 알알이 눈에 띌 만큼 청명한 하늘이었다. 끝을 알 수 없는 은하수의 깊이가 시선을 빨아들였다."

소설의 후반부 화재 장면에 등장하는 묘사다. 시마무라와 코마코는 "불, 불이야"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 화재 현장으로 달려간다. 화재 현장으로 가면서 코마코가 갑자기 "은하수 예쁘네"라고 혼잣말을 하자 시마무라도 하늘을 올려다본다. 하늘에는 두 사람을 빨아들일 듯 끝을 알 수 없는 은하수가 펼쳐져 있었다.

이 장면은 소설의 탐미주의적 대미를 장식하는 역할을 한다. 흰 눈이 쌓인 설국에 붉은빚을 내며 활활 타오르는 창고, 지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 사건을 운명처럼 내려다보고 있는 은하수.

여기에는 감정을 완전히 배제한 어떤 '절대미'의 완성이 느껴진다.

인용한 부분에 나오는 바쇼라는 인물은 일본 하이쿠(俳句)의 아버지로 불리는 에도시대 시인 마쓰오 바쇼(松尾芭蕉 1644~1694)다. 말놀이쯤으로 여겨졌던 하이쿠를 문학의 경지로 올려놓은 주인공이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바쇼만큼 경지에 오른 하이쿠를 쓴 사람은 없었다. 실제로 바쇼 사후에 쓰인 하이쿠들은 모두 하이쿠의 새로운 변형 정도로 보일 정도다.

야스나리가 인용문에서 살짝 언급한 바쇼의 하이쿠 중 은하수를 노래한 작품은 이것이다.

"거친 바다여 사도섬에 가로 놓인 은하수(荒海や 佐渡に橫とう 天の川)."

사도(佐渡)는 에치코 유자와가 위치해 있는 니가타현 북쪽에 있는 섬으로 주변 바다는 파도가 거칠기로 유명하다. 그 바다가 바로 우리 동해바다 동쪽 끝이다. 사도 섬은 오랫동안 유배지로 쓰였는데 수많은 사람들의 한이 서렸던 곳이다.

야스나리는 은하수를 올려다보면서 바쇼가 노래했던 한 많은 사도섬 위를 가로지르는 은하수를 상상한다.

야스나리가 화재 장면을 완결판 소설의 대미를 장식하기 위해 별도로 쓴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원래 소설 '설국'은 1937년 소겐사(創元社)에서 처음 출간된다. 이 소겐사판에는 화재 장면이 없었다. '설중 화재' 부분이 새로 쓰여 소설의 마지막에 연결된 것은 1947년이었다. 뭔가 미완성 같았던 소설의 대단원을 만들기 위해 야스나리는 이 장면을 심혈을 기울여 쓴다.

야스나리가 은하수를 합일의 도구로 끌어들인 것은 소설에 그대로 드러나 보인다. 다음 문장을 보면 야스나리가 어떻게 은하수를 통해 거대한 허무를 완성했는지 알 수 있다.

"올려다보고 있으니 은하수는 다시 이 대지를 끌어안으려 내려오는 듯했다. 거대한 오로라처럼 은하수는 시마무라의 몸을 적시며 흘러 마치 땅끝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고요하고도 차가운 쓸쓸함과 뭔지 알 수 없는 요염한 경이로움을 띄고 있었다. (중략) 비현실적인 세계의 환영 같았다. 경직된 몸이 공중에 떠올라 유연해지고 동시에 인형 같은 무저항, 생명이 사라진 자유로움 때문에 삶도 죽음도 정지한 듯한 모습이었다."

이미 은하수는 시마무라의 몸을 흘러 땅으로 도달해 있다. 반면 추락하던 요코의 몸은 공중으로 떠올라 은하수가 된다. 필자가 설국에서 가장 위대하다고 느끼는 부분이다. 소설 곳곳에 포진된 이런 화룡점정으로 인해 소설 '설국'은 한량 한 명이 게이샤들과 노닥거린 이야기를 뛰어넘어 하나의 '미학'으로 진전될 수 있었다.

그것을 다시 한 번 확인시키듯 야스나리는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새겨 넣는다.

발에 힘을 주며 올려다본 순간, 쏴아 하고 은하수가 시마무라 안으로 흘러드는 듯했다.
 

[출처] : 허연 매일경제 문화전문기자·시인 :<허연의 일본문학기행>/ 매일경제 프리미엄




20. 흰 설국과 검은 여인의 머리카락···소설에서 두 색깔은 하나가 됐다



▲ 설국관에 전시되어 있는 코마코를 모델로 그린 그림.

어두운 전시장과 밝은 그림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소설 '설국'은 대립과 합일의 연속이다. 야스나리는 상반된 주제나 이미지를 동시에 등장시켜 소설을 자신이 가고 싶은 곳으로 이끌어간다. 동시에 등장한 대립된 이미지들은 흡사 음양의 조화처럼 하나로 합치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대단원으로 흘러간다. '설국'을 읽으면 읽을수록 '짧지만 깊다'는 감흥이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소설을 읽고 유자와 마치를 여행하면서 이런 생각은 점점 더 완성되어 갔다.

모든 것이 그랬다. 눈이 많이 내리는 이곳 한촌까지 나를 실어다 준 것은 첨단 교통 수단인 고속열차 신칸센이었다. 고속열차와 한촌은 매우 다른 느낌이지만 이곳에서는 잘 어울린다.

이것은 사실 동양과 서양의 만남이기도 하다. 일본의 전통이 살아 숨쉬는 에치고 유자와와 이제 서구문명의 현장인 된 도쿄. 두 장소가 소설에서 만나는 것이다.

설국을 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야기하는 분석. 즉 터널을 사이에 둔 현실과 비현실의 구성도 결국 이곳에 오면 하나로 어우러진다.

작품 속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대립하는 것들을 가지고 이미지를 발현시키는 부분은 너무나 많다.

소설에 등장하는 남성 두 명을 보자. 시마무라와 유키오, 이 두 사람은 대립되는 인물이다.

시마무라는 적극적으로 삶의 방향을 정한 사람이다. 무용 평론을 쓰면서 도시에서 살다가 자기 필요에 의해서 유자와를 찾고, 그곳에서 로맨스까지 주도하는 인물이다. 소설 전체를 자기 시각으로, 자기 필요에 의해 직조해낸다.

하지만 유키오는 다르다. 그는 분명 등장인물이지만 대사 한 줄이 없다. 그는 적극적이거나 역동적이지 않다. 소설 초반에 비스듬히 누워 간호를 받는 모습으로 등장해서 소설 말미에는 묘지로 등장한다. 하지만 그 역시 소설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시마무라만 있고 유키오가 없는 '설국'을 상상해보라. 그랬다면 아마도 '설국'은 매우 표피적인 작품에 그쳤을 것이다.

생(生)을 상징하는 시마무라와 사(死)를 상징하는 유키오는 하나로 합일되면서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한다.

소설을 들여다보면 대립 장치는 무수하게 많이 발견된다. 권해주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에 나타난 일본적 문화 특성에 관한 연구'에서 소설 '설국'을 양면지향성, 유현(幽玄)지향성, 합일지향성, 감각지향성 등으로 나누어 분석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양면지향성은 대립되는 이미지를 등장시켜 묘사를 극대화하는 것을 지칭한다.

"벌써 해가 뜨는지, 거울 속의 눈은 차갑게 불타는 듯한 광채를 더해갔다. 그에 따라 눈 속에 떠오르는 여자의 머리카락도 선명한 보랏빛을 띤 검은색으로 짙어졌다."

이 짧고 평범해보이는 문장에서도 대립되는 이미지가 사용된다. '차갑게'와 '불타는 듯한'이라는 상반된 두 가지 상황을 통해 거울 속에 비친 풍경을 설명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흰색의 눈(雪)과 여자의 검은 머리카락을 대비시키는 것도 의도된 장치다.

스쳐 지나가기 쉬운 대화체 장면에서도 대립되는 이미지는 아주 중요하게 활용된다. 다음과 같은 경우다.

"아는 사람도 있죠, 모르는 사람도 있고요. 손님은 꽤 지체 높은 신분인지 몸이 아주 부드럽습니다."

안마사와의 대화를 묘사하면서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을 한 문장에 놓은 것을 봐도 야스나리는 대비를 통해 합일을 만드는 고수였음을 알 수 있다. 같은 대화에서 나오는 다음 문장도 마찬가지다.

"이즈쓰야의 후미짱인가? 가장 훌륭한 애와 가장 서툰 애가 제일 알기 쉬워요."

여기서도 '훌륭한 애'와 '서툰 애'를 나란히 나열함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그려낸다. 풍경 묘사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구름이 끼어 그늘이 진 산과 아직 햇살을 받고 있는 산이 서로 중첩되어 음지와 양지가 시시각각 변해가는 모습은 왠지 싸늘해지는 풍경이었다."


"얇게 눈을 이고 있는 삼나무 숲은 삼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또렷이 드러나 찌를 듯 하늘을 가리키면서 땅의 눈 위에 서 있었다."

그늘이 진 산과 아직 해가 비치는 산을 대비시켜 스키장 풍경을 묘사한 것도, 삼나무가 뿌리는 '땅'에 딛고 서서 끝은 '하늘'을 찌른다는 표현도 야스나리가 얼마나 습관적으로 대비되는 이미지를 소설에 깔아 놓았는지를 알 수 있다.

이것은 흡사 일본인들의 의식을 규정하는 용어인 '혼네(本音)와 다테마에(建前)'를 확인하는 것 같다. 속내를 직설적으로 드러내 놓기를 꺼리는 일본인들의 심성에는 두 개의 상반된 코드가 공존한다. 하나가 '혼네', 즉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속마음이고, 나머지 하나가 보호막 혹은 외투라고 할 수 있는 '다테마에'다.

대립되는 것들을 통한 소설의 묘사는 야스나리가 일본적 특성을 그대로 살린 채 신감각을 추구했음을 확인시켜 준다.

야스나리가 일본적 특성을 포기하지 않은 것이 결국 그를 세계적인 작가로 만들었다고 말하는 평자들이 많다. 맞는 말이다. 노벨위원회가 선정 이유에서 '동양과 서양의 조화'를 거론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출처] : 허연 매일경제 문화전문기자·시인 :<허연의 일본문학기행>/ 매일경제 프리미엄

21. 그는 절대美를 위해 시간과 공간을 감추었을지도 모른다



▲ 서재에서 글을 쓰고 있는 가와바타 야스나리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에는 장소나 시대적 배경에 대한 주체적인 언급이 등장하지 않는다.

물론 작품을 발표하고 나서는 에치고 유자와가 소설의 모티프가 됐고 그곳에 실제로 체류하면서 창작을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소설 속에는 에치고 유자와를 지칭하는 어떤 행정구역 명칭도 등장하지 않는다.

시대적 배경도 그렇다. 소설이 쓰여진 1930, 1940년대 일본은 한창 군국주의를 외치며 아시아에 대한 식민지배를 확대하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소설에서 시대에 대한 단서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최초로 단행본 설국이 출간된 것은 중일전쟁이 발발하기 1년 전인 1937년이었다. 줄거리를 보강한 결정판 설국이 출간된 건 1941년으로 태평양전쟁이 일어나기 8개월 전이었다. 결국 '설국'의 핵심이 된 두 개의 단편 '설중화재'와 '은하수'는 중일전쟁이 태평양전쟁으로 확대되어 가는 매우 민감하고 충격적인 시기에 쓰인 것이었다. 그러나 소설에서는 이런 시대적 상황에 대해서 그 어떤 묘사도 등장하지 않는다.

물론 작가의 의도였을 것인데 왜 그랬는지에 대해서는 몇 가지 추측이 가능하다.

설국이라는 소설의 미학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였을 가능성이 높다. 야스나리가 추구했던 절대미의 세계를 구현하는 데 구체적인 현실묘사는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이 무렵 야스나리는 적어도 문학에 있어서만큼은 서구의 자기장을 벗어나고 싶어했다.

우리는 그가 노벨문학상 시상식에서 한 연설을 기억한다. 그때 야스나리가 발표한 수상 소감문의 제목이 '아름다운 일본의 나'였다.

그는 진짜 일본의 미가 전쟁 이전에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서구문학으로부터 자유로웠던 고전의 미학을 '설국'에 적용시키고 싶어 했다. 소설에 하이쿠가 등장하고, 노벨상 시상식장에서 13세기 승려시인인 도겐의 시를 읊은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설국'이 쓰이던 무렵의 복잡한 일본의 상황을 묘사할 경우 자기가 추구하고자 했던 절대미가 침해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야스나리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것을 놓고 일본의 과오를 의도적으로 숨겼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역사는 야스나리가 소설에 등장시키지 않는다고 해서 왜곡되거나 알려지지 않을 역사가 아니다. 인류역사에 큰 상처를 남긴 너무나 엄청난 과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야스나리가 시대를 감춘 것은 그저 문학적 성취를 위해서라고 보는 편이 합당해 보인다.

야스나리는 불교적 무상(無常)에서 비롯된 허무를 가지고 절대미를 완성하고 싶어했다. 그는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나는 진실이나 현실이라는 단어를, 비평을 쓸 경우에 사용하긴 했어도 그럴 때마다 낯간지러웠다. 스스로 그걸 알아내려 가까이 다가가고자 마음먹은 적이 없으며, 그저 거짓 꿈에 노닐다 죽어가는 거라 생각한다 … 나는 동방의 고전, 특히 불전(佛典)을 세계 최대의 문학이라 믿는다."

이 발언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짐작가는 게 있다.

야스나리는 우리가 '진실'이나 '현실'이라고 믿는 것들의 허구를 익히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도대체 무엇이 진실이고, 도대체 무엇이 현실인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에 빠져 있었다.

이때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불교적 무상은 야스나리에게 훌륭한 해답이 되었을 수 있다.

야스나리는 '설국'에서 그 어떤 현실적 좌표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는 누구의 편도 들지 않으며, 선과 악을 구별하지도 않고, 만남과 헤어짐이나 삶과 죽음도 구별하지 않고 그저 평등한 무게로 바라볼 뿐이다.

뒷부분에서 자세하게 다루겠지만 야스나리는 자신과 함께 신감각파 문학을 주도했던 미시마 유키오를 비롯한 일군의 작가들이 급진적 민족주의로 빠져드는 것을 경계했다. 야스나리 역시 일본의 아름다움을 소설에 구현하고자 했지만, 그 아름다움을 천황이나 군국주의를 미화하는 데 쓰지 않았다.

그에게 아름다움이란 그저 아름다움 자체였으니까. 아름다움에 목적이 생기는 순간 아름다움은 사라진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출처] : 허연 매일경제 문화전문기자·시인 :<허연의 일본문학기행>/ 매일경제 프리미엄



22. '설국'을 세계문학으로 끌어올린 번역자 사이덴스티커


▲ 1968년 노벨문학상 시상식장에서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나란히 서 있는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

1921년 미국의 가난한 오지 마을인 콜로라도주 더글러스 카운티에서 태어난 남자가 있었다. 모험을 하기보다 책읽기를 좋아했던 이 남자는 '남자다움'을 최고 가치로 치는 시골마을에서 외톨이로 자란다.

콜로라도 대학을 졸업한 그는 군에 입대하게 된다. 당시 미국은 모병제가 아니라 징병제였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시기였다. 소심한 남자는 군 생활을 덜 위험하게 하려는 속셈으로 일본어를 배운다. 해군 일본어 강습소를 거쳐 해병대 통역요원으로 근무한 그는 전쟁이 끝난 뒤 배워 놓은 일본어가 아깝다는 생각에 외교관에 지원한다. 외교관이 되어 도쿄에 부임했지만 내향적이었던 그의 기질은 공직과 맞지 않았다. 그 무렵 남자는 일본문학의 매력에 깊이 빠져 든다. 결국 외교관을 그만 둔 그는 프리랜서 번역가로 활동을 시작한다.

이 남자가 바로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Edward George Seidensticker)다.

1968년 노벨문학상 시상식장에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옆에 서 있던 인물이다. '설국'을 영어로 번역한 장본인이다. 이 자리에서 야스나리는 "이 노벨문학상의 절반은 사이덴스티커의 몫"이라며 그의 역할에 경의를 표한다. 실제로 상금의 절반을 사이덴스티커에게 주었다는 이야기도 후일담으로 남아 있다.

사이덴스티커는 일본어 전문번역가가 된 이후 당시 일본문학의 3대 거장이었던 가와바타 야스나리, 다니자키 준이치로,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을 번역한다. 야스나리의 '설국'을 영역한 건 1956년이었다. 일본 정부가 나서서 일을 성사시킨 것이 아니라 미국 출판사가 나선 결과였다. 사이덴스티커가 연결고리가 됐음은 물론이다.

사이덴스티커는 야스나리의 소설 미학이 서양인들에게 신비스러운 체험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는 예감을 했던 것같다. 그는 의역까지 서슴치 않으면서 '설국'의 미학을 서양인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그의 예상은 맞아 떨어졌다.

사실 당시 일본 내에서는 코스모폴리탄적 매력을 지니고 있었던 미시마 유키오나 실험정신이 강했던 다니자키 준이치로, 역사소설의 대가인 이노우에 야스시가 훨씬 인기가 있었다. 이들에 비해 야스나리는 뭔가 고답적이고 재미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대중적으로 많이 팔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노벨상에 근접한 작품이라는 평도 별로 듣지 못했다. 그런 야스나리의 숨겨진 가치를 찾아낸 것이 바로 사이덴스티커였다. 그는 가장 일본적인 작품인 '설국'이야말로 서양인들의 빈 곳을 채울 수 있는 문학작품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 직감은 현실이 됐다.

사이덴스티커는 노벨상 이후 삶도 일본문학을 번역하고 연구하는 데 바쳤다. 야스나리가 노벨상을 받은 이후 미국으로 돌아간 그는 스탠퍼드·미시간·컬럼비아대학 등에서 일본문학을 강의했고 10년이 넘는 작업 끝에 일본 최고 고전인 '겐지이야기'를 영역한다. 그는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 2007년 86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한다.

일본문학의 세계화에 끼친 그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그는 단순한 번역가가 아니라 일본의 역사와 문화, 습성을 뼛속까지 이해하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가 없었다면 야스나리의 노벨상 수상은 힘들었을 수도 있다.

그가 말년에 쓴 책 '나는 어떻게 번역가가 되었는가'에는 번역이라는 업에 대한 그의 애증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이 책은 2004년 국내에서도 출간됐다.

일종의 자서전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이 책에서 그는 "번역이란 뭔가를 끊임없이 내다 버려야 하는 가차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가 역사와 문화, 그리고 언어구조가 완전히 다른 언어를 영어로 번역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에 빠졌었는지를 드러내 보여주는 고백이다.

흥미로운 건 사이덴스티커가 일본의 바로 옆 나라인 한국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어떻게 번역가가 되었는가'에 보면 곳곳에 한국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일본 도자기보다 한국 도자기를 더 좋아해서 밀반출까지 무릅쓰고 평생을 소장했다고 고백하는 부분이나 '사상계' 발행인인 장준하 선생을 가리켜 '군자(君子)의 전형'이라고 상찬하는 부분만 봐도 그가 한국에 대해 깊은 이해를 지니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야스나리의 노벨문학상 소식이 전해진 1968년 10월 18일 그가 지리산 노고단을 등반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가 일본어가 아닌 한국어를 배웠다면 어땠을까? 괜한 상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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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허연 매일경제 문화전문기자·시인 :<허연의 일본문학기행>/ 매일경제 프리미엄




23. 함축과 생략의 아름다움, 설국의 문장을 번역하기란


'설국'은 언뜻 생각해 보아도 외국어로 번역하기에 매우 까다로운 작품이다. 상징적이고 시적인 이미지, 중의적인 내용, 감추어져 있는 비유, 과감한 생략, 복선적인 시간 진행 등 외국어로 번역되기 쉽지 않은 요소들을 모두 지닌 작품이다. 흡사 하이쿠(俳句)를 연상시키는 엄청난 함축과 생략과 비약의 아름다움을 외국어로 옮긴다는 건 그 행위 자체로 왜곡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언어적 유사성이 거의 없고, 문화적 배경까지 다른 영어로 설국을 번역한다는 건 엄두를 내기조차 어려운 일이지 않았을까.

번역자 사이덴스티커가 바로 이 일을 해낸다. 사실 사이덴스티커의 번역이 없었다면 야스나리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불가능했다고 단언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의 번역이 없었다면 작품이 서구에 알려질 수 없었을 것이 분명하고, 설령 다른 번역본이 있었다 할지라도 사이덴스티커의 번역만큼 서구인들에게 감흥을 주는 번역을 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사이덴스티커의 번역은 많은 부분 의역에 비중을 두고 있다. 앞서 말한 특유의 난점들 때문이다. 직역을 했을 경우 본문의 뜻과 너무 다른 의미가 되거나 구조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의역 때문에 사이덴스티커는 종종 비난을 받기도 한다. 의역을 하다 보니 몇몇 부분이 원작과 달리 변형됐다는 비판이다.

사실 이 문제는 번역을 두고 벌어지는 오랜 논쟁거리다. 필자 생각은 이렇다. 직역이 좋다거나 아니면 의역이 좋다고 단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단지 결과적으로 봤을 때 좋은 번역과 나쁜 번역이 있을 뿐이다.

사이덴스티커도 이런 문제에 대해서 몰랐을 리가 없다. 그는 당시 유네스코와 공동으로 일본 문학작품을 번역하고자 하는 뉴욕의 크노프 출판사에 '설국'을 추천하면서 "너무나 많은 것들이 몇 안 되는 것에 의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얼마나 상징적인 말인가. 우주와 자연과 사랑과 이별과 생과 사라는 엄청난 주제가 '설국' 속에서는 너무나 작은 것들을 통해 상징적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이야기 아닌가.

사이덴스티커는 번역의 난점을 해소해 보고자 수차례 야스나리를 찾아가기도 했다. 그때 이야기가 그의 책 '나는 어떻게 번역가가 되었는가?'에 나온다.

"설국에는 알 수 없는 부분들이 많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가와바타 씨와 의논을 했다. 그는 친절하게 응해주기는 했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내가 "선생님 이 부분은 좀 난해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그러면 그는 성실하게 읽은 후 "그렇군요"라고 대답했다. 그게 전부였다. 그러니 더 이상 묻지 않는 것이 현명한 일이었다."

벽안의 번역자와 야스나리가 나눈 선문답이 참 재미있으면서도 답답하다. 달리 서로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뼛속에 들어 있는 동양 정신과 가치관 그리고 자신의 문학적 주술이 만들어낸 미학에 대해 야스나리는 달리 무슨 설명을 할 수 있었겠는가.

서구의 합리적 사고와 기독교적 가치관으로 무장한 사이덴스티커 역시 더 이상 무슨 해답을 찾을 수 있었겠는가. 한 가지 중요한 건, 사이덴스티커는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동양적인 '그 무엇'을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느낌에 대해 그는 성실하고 진지하게 고민을 했을 것이다.

사이덴스티커는 어느 기념강연에서 이렇게 고충을 털어 놓기도 했다.

"사람들은 '설국'이 번역 불가능한 작품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 역시 이 작품을 번역 불가능한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어의 사용이 너무 미묘하고, 너무도 모호합니다. 일부러 모호한 표현을 많이 사용하는 소설은 번역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모순되는 말이지만, 번역 불가능한 것도 번역해야 합니다. 번역하는 것은 번역하지 않는 것보다 낫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사이덴스티커가 '설국'의 주요 부분을 어떻게 번역했는지를 살펴보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출처] : 허연 매일경제 문화전문기자·시인 :<허연의 일본문학기행>/ 매일경제 프리미엄



24. 사이덴스티커의 고뇌··· "그래도 나는 설국을 번역할 수밖에 없었다"



▲ 노벨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후 언론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의 첫 문장은 모두 알다시피 "国境の長いトンネルを抜けると雪國であった."로 시작한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라는 문장이다. 이 문장에는 독특한 점이 하나 있다. 주어가 생략되어 있는 것이다.


주어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이 문장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내가 주체가 되어 터널을 통과해 나온 듯한 착각에 빠진다. 기막힌 소설적 장치인 셈이다. 하지만 이 문장을 주어 없이 영어로 옮기는 것은 힘들다. 사이덴스티커는 이렇게 영역한다.

"The train came out of the long border tunnel into the snow country."
(열차는 국경의 긴 터널을 나와 설국으로 들어섰다.)

주어로 'The train'을 내세워 객관적인 사실을 강조한 번역이다. 이렇다 보니 책을 읽는 사람이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기는 힘들다. 그저 기차가 터널을 나와 설국에 도착하는 상황 묘사에 가깝다. 그 다음 문장은 "夜の底が白くなった(밤의 밑바닥까지 하얘졌다)"이다. 이것을 사이덴스티커는 이렇게 바꾸었다.

"The earth lay white under the night sky."
(땅은 밤하늘 밑으로 하얗게 펼쳐져 있다.)

이 역시 아름다운 정경 묘사에 불과하다. 원문에서는 '밤'이라는 시간적 개념이 '밑바닥'이라는 공간적 개념으로 변환되는 기막힌 표현이겠지만 영어 번역은 이를 표현해내는 데 한계가 있다.

반면 영어 번역의 매력도 있다. 땅을 의인화했다는 점이다. 이런 '신의 한 수'를 통해 사이덴스티커는 영어판의 문학성을 구현해냈다.

영어판 전체의 분위기를 놓고 보면 사이덴스티커는 '설국'의 미학을 전달하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다. 하지만 한 문장씩 개별적으로 살펴보면 이처럼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사이덴스티커가 언어와 문화의 차이 때문에 고심을 한 부분은 여러 군데서 발견된다. 그중 눈길을 끄는 경우가 이런 부분이다.

"시마무라는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왼쪽 집게손가락을 이리 저리 움직이며 들여다보았다. 결국 이 손가락만이 지금 만나러 가는 여자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중략) 불확실한 기억 속에 이 손가락만은 여자의 감촉으로 지금도 젖어 있어서 자기를 끌어들이는 것 같았다. 신기하다고 생각하면서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아보기도 하다가 문득 손가락으로 유리창에 선을 긋자 거기에 여자의 한 쪽 눈이 또렷이 떠오르는 것이다."

시마무라가 코마코를 떠올리며 손가락으로 유리창을 만지작거리던 중 반대편에 있는 요코의 눈이 비치는 걸 묘사한 장면인데 이 부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닌 듯 하면서도 매우 에로틱하다. 선정적일 수도 있는 장면을 동양적인 간접 묘사로 감추고 있는 것이 압권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특유의 화법이 절묘하다.

사실 이 부분은 영어로 옮기는 것은 쉽지 않을 듯하다. 직역을 할 경우 지나치게 도색적으로 비춰질 수 있고, 의역을 할 경우 그 맛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번역하면서 사이덴스티커는 '손가락'을 'hand'로 묘사한다. 손가락을 강조할 경우 직접적인 포르노그래피로 흐르는 것을 우려한 듯 보인다. 손가락을 코에 대고 냄새를 맡는 부분도 "손을 얼굴 쪽으로 가져갔다(He brought the hand to his face)" 정도로 표현하고 끝을 낸다.

사이덴스티커의 이런 선택을 놓고는 오랫동안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서양인들이 사이덴스티커의 번역을 읽으며 어떤 느낌을 얻었는지도 우리는 정밀하게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건, 사이덴스티커가 이 번역을 해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번역은 '설국'이 세계인들에게 다가가는 첫 번째 길이 되었다.

필자 생각에는 결과적으로 사이덴스티커의 번역이 서양인들에게 본래의 미학과 다른 오독(誤讀)을 제공하지는 않은 듯하다.

"자연과 인간의 운명이 가진 유한한 아름다움을 우수 어린 회화적 언어로 묘사했다"는 스웨덴 한림원의 노벨상 선정 이유를 떠올리면 알 수 있듯이 말이다.  

[출처] : 허연 매일경제 문화전문기자·시인 :<허연의 일본문학기행>/ 매일경제 프리미엄



25. 너무 일찍 고독을 깨우친 소년···그를 만나러 오사카로 간다



▲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토요카와 중학교(현 이바라키고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사진. 뒤에서 두번째 줄, 오른쪽부터 세번째 소년이 야스나리다


한 소년을 생각해 본다.

학교에서 돌아와 굳게 잠겨 있는 대문을 열고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집으로 들어서는 왜소한 소년. 시력을 거의 상실한 빈사의 노인만이 지키고 있는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혼자 밥을 차려먹는 소년.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이런 일상을 반복했을 소년.

소년에게 꿈은 무엇이었을까? 소년에게 삶은 무엇이었을까?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생각하면 나는 자꾸만 한 소년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소년의 모습은 이상하게 지워지지 않고, 끊임없이 떠오른다. 그의 책을 읽을 때도, 그와 관련된 어떤 장소를 마주할 때도 자꾸만 검은 옷을 입은 그 소년이 떠오른다.< 설국>의 고장 에치고 유자와를 떠나 나는 그 소년을 만나러 간사이 지방으로 간다. 소년이 너무나 일찍 세상의 고독을 깨우친 그 곳을 찾아간다.

야스나리가 태어나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살았던 곳, 오사카와 오사카부(大阪府)에 속한 이바라키시 인근 지역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오사카시 기타구 고노하나초(此花町)에서 태어나 세 살 때 고아가 되면서 오사카부(大阪府) 미시마군(三島郡) 도요카와(豊川)로 옮겨가 자란다. 도요카와는 지금의 이바라키시다. 이바라키(茨木)시는 도쿄 동북부에 있는 이바라키(茨城)현과는 다른 곳이다.

이곳은 오사카에서 교토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곳으로 활동적이고 시끌벅적한 오사카와 고즈넉한 교토의 지역 특성이 절묘하게 섞여 있는 곳이다.

야스나리가 어른이 되기 전 생을 보낸 곳을 찾아가기 전 해야 할 일이 있다. 너무 기구해서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야스나리의 어린시절을 들여다 보는 일이다.

야스나리는 1899년 의사인 아버지 에키치와 어머니 겐 사이에서 태어난다. 7개월 만에 태어난 조숙아였다. 태어난 순간부터 평범한 운명은 이미 아니었던 셈이다.

가와바타 가문은 대대로 지방 영주의 토지를 관리하던 지역 명문가였다. 하지만 야스나리가 태어날 무렵에는 근대화의 물결에 적응하지 못해 몰락해 가고 있는 상태였다. 외가인 구로다(黑田) 가문도 지방의 대지주였다.

야스나리는 아버지 어머니를 거의 경험하지 못한 채 자라난다. 두 살 때 아버지가, 세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사망한 후 이바라키에 있는 조부모 집에서 살았지만 일곱 살에 할머니가, 열 살 때는 누나가 죽는다. 그리고 결국 마지막 보호자였던 할아버지마저 열다섯 살 때 세상을 떠나면서 야스나리는 세상에 홀로 남겨진다. '장례의 명인'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그의 초반생은 죽음과 이별로 점철되었다.

친척들의 도움으로 학업을 지속하기는 했지만 야스나리 스스로 말하는 '고아근성'은 바로 이때 만들어져서 평생에 걸쳐 그를 지배하게 된다.

야스나리는 도요카와초등학교와 도요카와중학교(현 이바라키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할아버지와 보내는데, 야스나리는 훗날 "할아버지는 아침에 일어나 방안에 앉아 동쪽 하늘을 보는 것이 유일한 일과였다"고 술회한다.

참 막막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집이라고 해봐야 하루종일 먼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할아버지와 집안 일을 도와주는 일자무식의 식모 밖에 없었으니 그에게 인생을 가르쳐 줄 만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의 유소년기가 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그래도 다행인 건 친척들과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성장한 후에 야스나리는 "나는 어렸을 때부터 고아였지만 다른 사람들의 정을 많이 받아왔다. 그때문에 결코 타인들을 미워하거나 증오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라고 <문학적 자서전>이라는 글에서 털어놓기도 했다.

작가들의 문학적 취향과 개성은 대부분 어린시절에 만들어진다. 그가 태어나고 자랐던 환경이 그의 정신적 상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가장 예민하고 집요한 형태로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어린시절 원체험이 결국 그 작가가 써내려갈 문학의 밑그림이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야스나리의 경우는 더 했을 것이다. 그의 어린시절은 치명적이라고 할 만큼 잔인했기 때문에 그 기억이 야스나리를 지배한 건 일종의 숙명 아니었을까.

그의 어린시절을 찾아가는 발걸음은 그래서 더욱 무거웠다.

[출처] : 허연 매일경제 문화전문기자·시인 :<허연의 일본문학기행>/ 매일경제 프리미엄



26. 그가 할아버지의 유골을 들고 코피를 흘리던 언덕···그곳으로 간다



▲ 야스나리 기념우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자전적 소설 '열여섯 살의 일기'에는 이런 섬뜩하면서도 미학적인 구절이 나온다.

"정오의 햇살이 내리쬐는 언덕에서 소년은 할아버지의 뼛가루가 든 항아리를 들고 코피를 흘리고 있었다."

오사카부 이바라키는 바로 이 열 여섯 고아 소년이 종주먹을 쥔 채 살아야 했던 곳이다.

서울에서 이곳을 가는 길은 크게 보면 한 코스밖에 없다. 어차피 오사카 시내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경로로든 오사카를 기점으로 그 인근에 흩어져 있는 야스나리의 흔적을 찾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오사카의 관문인 간사이 국제공항을 통해 일본으로 들어가 공항버스를 타고 우메다(梅田)역까지 이동해 인근에서 하룻밤을 보낸 다음 야스나리의 흔적을 찾아가기로 했다.

오사카를 몇 차례 가봤지만 그날 따라 간사이 공항은 혼란 그 자체였다. 왜 하필 늦은 시간대에 이런 난리가 벌어졌는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간사이 공항은 중국인 관광객들로 가득 차 있었다. 공항의 모든 공간에 중국인들이 구불구불 줄을 서 있었다. 일본에 입국하면서 입국 수속을 밟는 데 2시간 넘게 줄을 서서 기다린 것은 처음이었다.

결국 오사카 시내로 가는 공항버스는 끊겼고 나는 황량한 공항 건물 앞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사람이 빠져나간 늦은 시간 공항은 을씨년스러웠다. 먼 나라를 온 것도 아니었는데 이상하리만큼 단절감이 크게 다가왔다. 어디론가 움직이기도 싫었고 한참을 아무것도 먹지 않았지만 배도 별로 고프지 않았다. 체념 같은 게 몰려왔다.

사실 '체념'이라는 단어는 야스나리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내내 나를 따라다닌 '화두'였다. 체념한다는 것, 그리고 그 체념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 그것이 야스나리였다.

사실 체념에는 체념이 주는 힘이 있다. 깊은 체념을 경험해본 사람들은 안다. 체념이 힘이 된다는 걸. 야스나리는 스스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내가 원고의 첫 행을 쓰는 것은 절체절명의 체념을 하고 난 다음이다."

희망보다 체념을 먼저 배운 자는 잔치가 끝난 다음의 미학이 무엇인지를 안다. 시끌벅적하던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그 흔적들만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공간에서 몸을 일으켜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은 분명 색다른 미학이다.

모두 다 끝났다고 더 이상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 순간 '코피를 흘리는 일'. 그것은 체념의 도를 깨우친 자만이 찾아낼 수 있는 표현이다.

나는 그렇게 한 시간쯤을 텅 빈 벤치에 앉아 있다가 택시를 잡아타고 오사카 시내로 들어갔다.

오사카는 도쿄와는 다르다. 거센 말투의 간사이벤(關西弁 간사이 방언)이 웅변하듯 오사카는 언제나 활기가 넘친다. 오랜 역사와 상인들의 전통이 잘 조화된 곳이 오사카다. 오사카 사람들은 인정이 많지만 고집이 세다. 그들은 다른 일본인들보다 먹고 마시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도쿄 사람들에 비해 한국인과 잘 통한다. 실제로 한국인들이 가장 오랫동안 많이 정착해 살아온 도시가 오사카다.

흥미로운 건 이 시끌벅적한 도시에서 불과 기차로 40분 정도 거리에 고즈넉하고 우아한 교토를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는 사람들의 기질도 다르다. 간사이 지방에는 두 지역 사람들의 특징을 비교한 재미있는 속담이 있다.

"오사카는 먹다가 망하고, 교토는 입다가 망한다."

이 얼마나 상징적인가. 두 도시의 개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실리와 욕망에 솔직한 오사카와 격식과 품위를 중시하는 교토는 같은 간사이 지방에 속한 대표 도시이면서도 너무나 다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야스나리가 자란 이바라키시는 오사카와 교토의 특징이 절묘하게 반씩 섞인 곳이다. 지리적으로도 그렇고 문화적으로도 그렇고 역사적으로도 그렇다.

교토의 전통이 살아 있는 곳이면서도 오사카항을 통해 들어온 개방적인 문물이 혼합된 곳이 이바라키다. 일상생활에서 지역 풍습을 중시하면서도 간사이 지방에서 가장 일찍 기독교를 받아들여 기독교인 마을이 만들어진 곳이 이바라키다.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 비즈니스 호텔에 여장을 풀고 오사카부 전철 노선도를 탐구하듯 들여다 보았다. 호텔에서 야스나리 탄생지까지 몇 차례 전철을 갈아타야 했고, 다시 탄생지에서 이바라키까지도 지하철과 전철은 몇 차례 갈아타야 했기 때문이다. 가본 사람들은 알지만 오사카나 도쿄 같은 일본 대도시의 전철은 그야말로 난수표다.


전철과 지하철을 잘 구분해야 함은 물론이고 갈아타는 역의 구조도 알아야 한다. 같은 열차도 쾌속이니 급행이니 해서 몇 개 역을 건너뛰는 경우도 있으니 이것도 주의해야 한다. 게다가 노선을 운영하는 회사들이 각기 달라서 갈아탈 때 티켓이나 패스가 호환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이 복잡한 노선도 어디쯤 110여 년 전의 흔적들이 얼마나 남아 있을지 나는 사뭇 궁금했다.
  

[출처] : 허연 매일경제 문화전문기자·시인 :<허연의 일본문학기행>/ 매일경제 프리미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