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관의 고통과 객관의 행복/이유토

 

테레사 수녀의 삶은 고통스러웠지만 객관적으로 보는 눈은 노벨평화상이었다. 부자들이 호화롭게 사는 모습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면서 승리하는 모습은 무수한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엿장수의 삶을 보고 만종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시인이 있다. 엿장수의 주관적인 삶이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객관적으로 보는 시인의 눈에는 만종이 연상되었던 것이다.

 

호박엿 파는 젊은 부부

외진 길가에 손수레 세워놓고

열심히 호박엿 자른다

사는 사람 아무도 없는데

어쩌자고 자꾸 잘라내는 것일까

그을린 사내 얼굴

타다 만 저 들판 닮았다

한 솥 가득 끓어올랐을 엿빛으로

어린 아내의 불 달아오른다

잘려나간 엿처럼 지나간 세월

끈적거리며 달라붙는다

그들이 꿈꿔왔을

호박엿보다 단단한 삶의 조각들

삐걱이는 손수레 위 수북이 쌓인다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는데

그들이 잘라내는 적막한 꿈들

챙강대는 가위 소리

저녁 공기 틈새로 둥글게 퍼진다

 

고창환의 만종전문

 

<해설>

 

시인은 챙강대는 가위소리를 내면서 엿 파는 모습을 보고 밀레의 만종으로 표현했다. 그것은 엿장수의 얼굴은 햇빛에 그을려있다. 엿판위에는 엿이 수북이 쌓여있다. 팔리지 않아도 계속 엿을 잘라낸다. 엿장수는 가위소리를 끊어지지 않게 한다는 사명의식 때문이다. 가위소리가 끊어질 때 엿장수의 삶은 무너진다. 청중을 향해 계속 가위소리를 내는 엿장수의 삶은 고달플 것이다. 그러나 청중은 엿장수의 가위소리를 통해서 또 하나의 삶의 방식을 배울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