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24

조성택, 미산스님, 김홍근

21세기북스 출판



부처_마음을 깨닫는 자가 곧 부처다



p.238

[잡보장경]에는 중도적 삶의 태도에 대한 실질적 지침을 다음과 같은 시로 정리하고 있다.


유리하다고 교만하지 말고

불리하다고 비굴하지 말라.

자기가 아는 대로 진실만을 말하여

주고받는 말마다 악을 막아

듣는 이에게 편안함과 기쁨을 주어라.

무엇을 들었다고 쉽게 행동하지 말고

그것이 사실인지 깊이 생각하여

이치가 명확할 때 과감히 행동하라.

제 몸 위해 턱없이 악행하지 말고

핑계 대어 정법을 어기지 말며

지나치게 인색하지 말고

성내거나 질투하지 말라.

이기심을 채우고자 정의를 등지지 말고

원망을 원망으로 갚지 말라.

위험에 직면하여 두려워 말고

이익을 위해 남을 모함하지 말라.

객기 부려 만용하지 말고

허약하여 비겁하지 말며

지혜롭게 중도의 길을 가라.

이것이 지혜로운 이의 모습이니

사나우면 남들이 꺼려하고

나약하면 남이 업신여기나니

사나움과 나약함을 버리고

중도를 지켜라.

벙어리처럼 침묵하고 임금처럼 말하며

눈처럼 냉정하고 불처럼 뜨거워라.

태산 같은 자부심을 갖고

누운 풀처럼 자기를 낮추어라.

임금처럼 위엄을 갖추고

구름처럼 한가로워라.

역경을 참아 이겨내고

형편이 잘 풀릴 때를 조심하라.

재물을 오물처럼 볼 줄도 알고

터지는 분노를 잘 다스려라.

때로는 마음껏 풍류를 즐기고

사슴처럼 두려워할 줄 알고

호랑이처럼 무섭고 사나워라.

때와 처지를 살필 줄 알고

부귀와 쇠망이 교차함을 알라.

이것이 지혜로운 불자의 삶이니라.



p.310

 참회는 잘못된 행위에 대하여 뉘우치고 다시는 반복해서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이다.

 참회의 방법은 구체적인 행법으로 전승되어 오는데 몸으로 한 잘못은 큰 절을 반복하거나 육체적으로 남을 돕는 일을 통해서 정화된다. 말로 한 잘못은 참회진언을 외우거나 참회한다는 말을 직접 상대방에게 함으로써 말의 습관을 개선하고 언어생활을 정화한다.

 뜻으로 지은 잘못은 생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내려놓음으로써 정화가 이루어진다. 이때 마음으로 하는 참회 가운데 중요한 점은 죄의 본성이 원인 조건들에 의해 연기적으로 생성된 것이므로 실체가 없음을 철견하면 죄책감이 있을 수 없다.

 마음으로 참회를 하고도 아직 개운하지 않고 죄책감에 시달린다면 온전한 참회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붓다는 개인들의 죄를 용서해주고 없애주는 자가 아니라 이런 원리를 알려주고 잘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력자이자 안내자이다.



p.344

 그럼 가장 먼저 자애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청정도론]에 의하면,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남에게 물질적인 두움을 주려고 할 때 자신에게 물질이 있어야만 가능하듯, 남에게 정신적인 자애를 주려고 할 때도 동일한 원리가 적용된다. 그래서 자애관을 시작할 때 먼저 자신을 향해 자애를 거듭해서 닦아야 하고, 자신을 자애로 가득 채우고 난 뒤 다음 사람에게 나아가야 한다고 한다.

 자애를 닦아나가야 할 대상으로 다음과 같은 순서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자기 자신, 둘째는 존경하는 스승이나 좋아하는 친구, 셋째는 무관한 사람, 넷째는 원한 맺힌 사람이다.


 자애관 수행은 어떻게 하는가

타인을 자애의 대상으로 삼기 전에 맨 먼저 자기 자신을 자애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가르침은 매우 실제적이고 합리적이다. 그럼 자기 자신에 대한 자애는 어떻게 닦는 것일까? 그 수행 방법은 무엇인가? 자애관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수행자가 사용하는 자애관의 자애구는 다음과 같다.


 부디 내가 행복하기를, 고통이 없기를,

 부디 내가 원한이 없기를,

 부디 내가 악의가 없기를,

 부디 내가 근심이 없기를,


전통적으로 위와 같은 네 가지 자애구를 사용하지만 때에 따라 자신에게 적합한 자애구를 만들어 쓰면 된다. 예를 들면 "내가 행복하기를, 평화롭기를, 안전하기를, 건강하기를" 등이 적합하다.


 먼저 자기 자신을 자애로 가득 채우고 나면, 그다음은 좋아하거나 존경하는 사람에게 자애를 닦으라고 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자애를 닦을 때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네 가지 자애구를 반복해서 사용한다. 그다음에는 무관한 사람에 대해서, 또 그다음에는 원한 맺힌 사람에 대해서 자애를 닦아야 한다. 하지만 자애명상을 한다고 해서 한 번에 원한 맺힌 사람을 용서하고 자애와 사랑을 보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