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종 : 스포츠카
가격 : 2,616만원 국내판매가격
연비 : 11.8km/ℓ
 

1996년 4월 27일 현대 티뷰론이 국내에 출시되고 불과 세 달이 되기 못 되어 또 다른 스포츠카가 등장했다. 현대의 강력한 라이벌 기아자동차가 엘란을 선보인 것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현대가 독자 개발로 티뷰론을 선보인 것과는 달리, 기아는 영국 로터스로부터 엘란을 들여와 국산화 했다. 단순히 독자 개발이냐 아니냐로 따지면 기아 엘란의 의미는 축소될 수 밖에 없지만, 스포츠카의 불모지였던 한국에 정통 스포츠카라 할 수 있는 엘란이 국산차의 형태로 등장한 것은 한국 자동차 산업에나 소비자에게나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고 하겠다.

기아 엘란 발표회

1996년 7월 17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기아 스포츠카 '엘란' 신차발표회 기사다.

『기아자동차는 16일 서울 리츠칼튼호텔에서 김선홍 그룹회장, 김영귀 사장 등 기아관계자와 각계 인사 400 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스포츠카 '엘란'의 발표회를 열었다.

'엘란'은 기아가 스포츠카 전문회사인 영국 로터스사로부터 '로터스 엘란'의 기술, 생산, 판매권을 인수해 3년 만에 개발한 2인승 '정통 스포츠카'. 지붕을 벗겼다 씌웠다 할 수 있는 컨버터블 형으로 차체 높이가 1,270mm로 낮다. 1,800cc DOHC 엔진을 달아 최고출력 151마력으로 최고시속 220km, 정지에서 100km/h 도달시간 7.4초를 자랑한다.

기아자동차는 강철보다 3배 이상 강한 엔진니어링 플라스틱 보디, 급커브 때 차체의 뒤틀림에 강한 고강성 프레임, 고속안정성을 높인 더블 위시본 서스펜션 등이 '정통 스포츠카'로서 '엘란'의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차 값은 2천7백50만원으로 기아는 월 100대 안팎을 판매해 2만대가 팔리면 단종할 계획이다. 』


당시 신문에 개제된 기아 엘란 광고

엘란의 등장이 있기 전 스포츠카 출시 경쟁이 가시화 되면서 현대와 기아 사이에 신경전이 상당했었는데, 지난 티뷰론 기사에서 언급했던 '정통 스포츠카 논란' 뿐 아니라 구체적인 법정 분쟁도 있었다. 바로 현대 '엘란트라'와 기아 '엘란 2'의 상표권 분쟁이다.

엘란을 다루고있는 신문기사1

엘란 출시 전인 6월 26일자 매일경제에는 '기아 스포츠카 '엘란2' 출시 앞두고 상표권 분쟁'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기아자동차가 7월 중순 판매예정인 스포츠카 엘란이 현대자동차와 상표권 분쟁에 휘말려 귀추가 주목된다.

기아자동차가 영국 로터스사로부터 관련특허와 판권일체를 사들여 생산하는 이 스포츠카에 대해 기아는 지난 1월 로터스사 명의로 '엘란'을 상표등록하고 시판할 차에는 '엘란2'라는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

이런 사실을 뒤늦게 확인한 현대자동차는 지난 10일 '엘란2(투)'가 '엘란트라'와 유사하다는 이유를 들어 특허청에 로터스사를 상대로 '엘란'에 대한 상표 등록 무효심판을 청구한 것.

또 기아 측에는 공문을 보내 '엘란트라'와 혼동을 일으킬 수 있는 유사상표를 사용하지 말 것을 요청. 기아는 이에 대해 국내 상표법상 출원공고 후 1개월 안에 이해 당사자에게 이의 제기토록 하는 제도가 있음에도 이의제기를 하지 않다가 신차발매가 임박한 시점에서 문제 삼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는 입장.

그러나 소송으로까지 이어지면 바람직하지 않다며 '엘란트라'와 발음이 유사한 '엘란2'는 포기하고 대신 '엘란'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하고 현대에 양해를 구하고 있는 실정.』

이렇게 해서 한국 땅에서 새롭게 탄생한 로터스의 경량 2인승 로드스터는 원작과 같은 엘란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엘란을 다루고있는 신문기사2

엘란의 출시 이후 여러 매체에 엘란에 대한 시승기가 실리기 시작했는데, 그 중 7월 22일자 동아일보는 엘란 시승기 아래 엘란의 플라스틱 소재에 대한 기사를 함께 실었다.

『자동차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다면 흔히 모형자동차를 연상할 수 있다. 그러나 엘란은 차체 부분이 모두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다. 어디를 두드려보아도 통통거리는 철판소리가 나지 않는다. 국내 최초인 것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드문 경우다.

물론 엘란에 채택된 플라스틱은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것과는 다르다. 일종의 유리섬유강화 플라스틱이다. 우주항공산업에도 사용되는 신소재로 불에 대한 내성이 강하다. 딘위 무게당 강도도 일반 강철보다 2, 3배 높다.

뿐만 아니라 웬만한 충격에 의한 변형은 일정시간이 지난 후 원래대로 복원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자동차에 사용된 경우 플라스틱이 찢어질 정도로 큰 사고가 아니면 접촉사고로 생기는 경미한 찌그러짐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더구나 무게가 철판보다 훨씬 가벼운 이점으로 차량을 경량화할 수 있어 연비에도 유리하다. 녹이 슬지 않는 것도 빼 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

현대 티뷰론은 천만 원대 초반의 가격으로 등장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는데, 그 2배에 가까운 가격인 2,750만 원의 기아 엘란은 얼마나 팔렸을까? 엘란이 등장하고 2개월 정도가 지난 8월 15일자 동아일보에 재미있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엘란을 다루고있는 신문기사3

『스포츠카 엘란 '저속 출고'

'국내 유일의 정통 스포츠카'임을 자처하는 기아자동차의 엘란이 워낙 적은 생산 능력 때문에 주문을 따라가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14일 기아자동차에 따르면 이달 초부터 시판되기 시작한 엘란은 이날까지 겨우 10대를 출고하는데 그쳤으며 현 상태로는 내주 들어서야 추가 출고가 가능할 전망이다. 이에 비해 주문량은 당초 예상했던 월 80대를 훨씬 뛰어넘는 180대에 이르러 현재의 '만만디 생산'이 계속될 경우 지금 주문하면 3, 4개월 후에야 인수할 수 있다.

이처럼 생산량이 적은 ?은 생산공정이 수작업인데다 생산이력이 충분히 숙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기아 측 설명. 여기다 자체 품질 기준도 까다로워 지금까지 판매용으로 제작된 20대 중 절반은 고객인도를 보류한 채 품질을 보완하고 있다는 것.

기아 관계자는 '한두 달 지나면 하루 5, 6대 정도 생산이 가능해 질것'이라며 '비록 적기 공급을 못하더라도 흠결 있는 제품을 공급하진 않겠다'고 말했다. 』

이미 단종된 지 오래됐지만 엘란을 사랑하는 이들이 모인 동호회는 아직까지도 활동을 계속하고 있을 정도로 엘란 동호회는 유명한데, 동호회와 관련된 기사도 눈에 띈다.

96년 8월 26일 매일경제 기사다.

『기아자동차는 스포츠카 엘란 동호회를 9월중 구성키로 했다.

기아자동차는 엘란 동호회를 통해 국내 스포츠카 문화를 활성화할 방침인데 1차적으로 엘란을 가지고 있거나 구입대기중인 고객들을 대상으로 하고 그 밖에 스포츠카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준회원으로 받아들일 예정이다. (중략)기아측은 동호회 활동이 단순히 즐기는 모임 수준에 그치지 않도록 사회의 그늘진 곳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봉사활동을 유도할 방침이다. 이를 통해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삶을 이끌어온 사람들이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데 필요한 차'라는 엘란의 이미지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엘란을 다루고있는 신문기사4

이틀 후 매일경제는 엘란 시승기와 함께 로터스 엘란과 기아 엘란이 어떻게 다른지를 잘 설명해 주는 기사를 함께 실었다.

『기아자동차가 부활시킨 엘란은 형상은 오리지널 엘란과 같지만 일부 부품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부품을 국내에서 생산된 것을 사용한다. 또 기아의 자회사인 기아모텍에서 금형제작부터 차 전체의 조립까지 전 공정을 일괄적으로 맡고 있기 때문에 부활된 엘란은 기아의 제품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기아의 엘란은 로터스의 오리저널 엘란과 디자인 면에서 몇 가지 사소한 차이가 있다. 뒷모습을 보면 가로로 평평한 형상이었던 것이 최신 스포츠카의 형식을 도입하면서 원형렌즈로 바뀌었다. 옆모습에서는 알루미늄 휠의 디자인이 독수리 발톱형으로 근육질의 생동감을 넣어 스포츠감각을 살리도록 변형됐다.

현재 수입되고 있는 주요 부품은 캔버스톱과 그것의 골격을 포함한 덮개부분이다. 기아가 아직 이 부분에는 경험이 없기 때문에 완전 수입에 의존하고 있지만 올해 안에 부분품형태로 도입해서 조립할 계획이다. 현재까지 부품의 국산화율은 85% 가량이나 된다.

스포츠카로서 로터스 엘란과 기아 엘란의 가장 큰 차이점은 역시 힘을 내는 부분이다. 로터스 엘란은 일본 이스즈사 제품인 터보 1.6L 급 엔진을 달았다. 기아 엘란은 대신 크레도스에 달린 것과 같은 독자적으로 설계한 1.8L급 DOHC 엔진을 튜닝해서 달았다. 이 엔진은 최대출력이 151마력으로 이스즈의 터보 엔진에 비하면 14마력이 낮다.

수동 5단 기어박스가 붙은 트랜스액슬도 기아 것이다. 이에 따라 클러치도 기아 것이 사용됐고 브레이크 디스크도 크레도스 것을 그대로 이식 받았다.

로터스 특유의 물고기 등뼈를 닮은 백본 프레임과 서스펜션은 기아의 엘란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영국의 설비를 그대로 옮겨다 생산만 국내에서 하고 있다. 』

대한민국에 정통 스포츠카의 존재를 알린 기아 엘란은 불행하게도 로터스에서 단종된 자신을 다시 살려 준 기아 자동차와 함께 그 생명을 다하는 운명에 처해진다.

엘란 등장 그 이듬해인 1997년부터는 경기 침체가 시작되었고, 판매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게 된 자동차업체들은 장기 무이자 할부판매를 계속해 출혈경쟁이 잇따랐다. 일부 차량은 18개월 혹은 24개월 무이자 할부, 또는 30만원, 50만원 할인 등의 혜택이 주어졌고, 기아 엘란은 300만원 할인된 가격으로 팔리기도 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강타한 경기 침체의 핵심으로 떠오른 기아차는 97년 7월 15일 부도 유예를 발표하였고, 10월 29일에는 김선홍 회장이 사퇴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해 12월 3일에는 IMF 구제금융 신청이 발표됐다.

그 후 잘 아는 것처럼 기아자동차는 현대자동차에 인수되어 지금의 현대?기아차 그룹의 일원이 된다. 그 때가 98년 12월이다. 현대차에 세 들어 살게 된 기아가 엘란을 돌볼 여력이 없었을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렇게 1999년 엘란은 생산이 중단되었다.

엘란의 공식 생산대수는 1,055대다. 그 중 독일과 일본에 각각 100대가 수출됐고 나머지는 한국에서 팔렸다. 그리고 300여 대의 엘란은 아직도 우리의 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