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만성(大器晩成)
<1> 어떤 사람이 나이가 들어서 또는 생각보다 세월(歲月)이 많이 흐른 다음에 사업(事業)에 크게 성공(成功)을 하거나, 관직(官職)에 나아가거나 승진(昇進)을 하거나 하여 큰 人物이 되었을 때 사람들은 "대기만성(大器晩成)" 이란 말을 많이 하게 됩니다. 옛날 선비들은 너무 어린나이에 등과(登科)하여 관직(官職)에 나아가는 것을 꺼렸다고 합니다. 그것은 어린 나이의 登科는 自身의 재주 - 영리(怜悧)함 - 명철(明哲)함이 사람을 거만(倨慢 = 驕慢 = 傲慢)하게 만들어 안하무인(眼下無人)의 인간성(人間性)을 형성(形成) 시킬까 봐, 그래서 成人으로 자라면서 뭇 사람의 손가락질 받을까 걱정해서였습니다. 中國 宋나라 때의 철학자(哲學者)인 정이천<程伊川 : AD 1033 - 1107. 이름 - 이< 頤>. 字 - 정숙<正淑>. 號 - 伊川. 朱子와 함께 정주학(程朱學)이란 學文을 창시(創始)했을 정도로 뛰어난 학자(學者)요 철학자(哲學者)였다> 선생은 다음과 같이 "선비의 三不幸" 이란 말을 하면서 매우 경계(警戒)해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첫째 : 젊은 나이에 과거(科擧)에 급제(及第)하여 고관(高官)이 되는 것.
둘째 : 부모(父母)의 세도(勢道)를 등에 업고 고관(高官)이 되어 부귀(富貴)를 누리는 것.
셋째 : 재주가 남달리 비상(飛上)하여 문장(文章)을 함부로 써 갈기는 것.
이는 어려서 재주 있음을 믿고 또 父母의 위세(威勢)를 등에 업고 호가호위(狐假虎威)하면서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누린다면 당연히 교만(驕慢)한 성격(性格)을 가지게 될 것이고, 또 세상물정(世上物情)도 인간사(人間事)의 어려움도 모르면서 함부로 글을 쓴다면 이는 필화(筆禍)를 자초(自招)하여 自身은 물론 가문(家門)을 망치게 될 것이란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난도 겪어 보고 힘든 일도 해보고 과거(科擧)에 낙방(落榜)해 보고 산전수전(山戰水戰) 다 겪은 다음, 세상살이가 힘들다는 것을 알고 등과(登科)하여 관직(官職)에 나아가도 늦지 않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야 백성(百姓)의 고달픔과 아픔을 헤아려서 선정(善政)을 베풀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2> 대기만성(大器晩成)이란 ?
"위대(偉大)한 인물(人物)은 늦게 이뤄지기도 한다" 는 뜻으로 이 고사(古事 = 故事)는 삼국지(三國志) 최림 전(崔林 傳)에 나오는 말이다. 위(魏), 촉(蜀), 오(吳)의 세 나라가 서로 다투던 삼국시대(三國 時代)에 위(魏)나라에 최염(崔廉)이라는 장수(將師)가 있었다. 그는 훌륭한 외모(外貌)와 인격(人格)을 갖추고 있어서 조조(曹操)에게 큰 신임(信任)을 받았다. 그에게는 최림(崔林) 이라는 四寸 同生이 있었는데 일견(一見)해서 영리하지 못하여 친척(親戚)들로부터 항상 업신여김을 당했다. 그러나 최염(崔廉)만은 同生 崔林의 사람됨을 알아보고 "큰 종(鐘)이나 큰 솥(釜)은 쉽게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큰 人才도 쉽게 完成되는 것이 아니다. 崔林은 대기만성(大器晩成)하여 바드시 큰 人物이 될 것이다." 라고 말하였다. 훗날 최염의 말대로 최림은 산전수전(山戰水戰)온 갖 고생을 다한 끝에 마침내 삼공(三公)의 자리에까지 올라 天子( = 皇帝)를 보좌(補佐)하는 위대(偉大)한 人物이 되었다. 이 故事는 "위대(偉大)한 人物은 오랜 時間의 노력(努力) 끝에 이뤄진다" 는 뜻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