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 다낭 영웅사 ▣▣▣

(청솔 작)

<사진작가;청솔선배>


1965년 베트남 전쟁 당시에는

 미국 파견군이 상륙하여 주둔하였고

한국의 청룡부대가 주둔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는 2세기 말엽부터 17세기에 이르기까지

인도네시아계인 참족이 세운 참파왕국의

중요한 거점 도시이기도 하다.



다낭은 1970년대 보트피플

 난민들의 탈출경로로 각인된 항구다

보트피플(boat people)은 베트남 전쟁이 시작되고

 나서부터 바다에 배를 띄워 해로를 통해

 탈출하는 사람들이다


 

베트남의 보트피플은 월남과

 월맹이 통일되기 전부터 속출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베트남이 월맹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면 남베트남의

 즉  부르주아 계층을 탄압하여 숙청을 당할게

 뻔하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1973년부터

 1988년 사이에 다낭 시와 후에시

주민들을 비롯하여 약 100만 명의 보트피플이

해로를 통해 보트를 타고 탈출을

 시도 하였다. .


  별도의 방법 없이

 2,000km를 떠돌면서 보트 안에서

생계를 유지해야만 했다. 도중에 해적을 만나 

죽은 난민의 수만 약 5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남중국해에 면한 다낭은

베트남 중부 최대의 무역항이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한강(Song Han)

유람선이 유유히 떠다니고 고급리조트가

속속 들어서는 휴양도시이기도 하다.




▲높이 67m에 달하는 해수관세음보살상.

보트피플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보트를 타고

 탈출에 성공하여 미국에서 큰 돈을 번 어느 독지가가

보트피풀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서 세웠다고한다













보트피플 월남전 패망시

다낭시에서만 20민명의 보트피플이 나가보지도 못하고

이곳 다낭앞바에 공중폭격으로 사망한 보트 피플이 20여만명에 달였다고한다

백마부대 보병 수색중대 소대장으로 참전한 본인은 전쟁의

 참상이 가끔 잠자리에서 떠오른다




▶  청솔선배과의 인연 ◀




청솔선배는

월남참전시 백마수색중대장으로

 참전하였으며 운봉은 전방 보병 소대장시절

월남지원을 한바 중도에 상부에서 획일적으로 전과시키는

 관계로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백마부대가 귀국후 백마사령부로

전속(OAC교육후)의무중대장으로 보직한 본인은 의무중대장으로 근무시

 선배는 인사처 방위담당자로 근무중 만나 교분을 가졌다가 계획인사로 혜여

진후 필자는 2훈련소 지구병원으로 전출한후 30여년간 소식몰라 하다가

전역후 2005년 2월 수원화성행궁 유여택에서 정조대왕 체험인증시

 선배가 필자사진을 찍어 모 카페에 올린사진을 보고 댓글을 통하여

확인 수원에서 재회하여 지금까지 인연으로 이어 온 인연 임

한 선배는 파병 전 평택 고덕면 율포리 중촌에서도 근무

하였고 필자에게 사진기술도 사사해준 연분으로

 지금도 절친하게 친목를 유지하고 있지요


◈ 아래↓ 그 당시 사진 ◈

<백마에서 혜여진후(30년) 선배/필자 전역후 화성행궁에서 운봉이 정조대왕 체험복색을

위하여 도우미 도움을 받으며 복장을 갖출때 청솔선배가 살짝찍은 사진>


<↓아래 사진들은 그날 현장에서 제안한 여인과 함께찍은 사진임/2005년도 2월경>

<정조대왕 체험>


<인증#1;서먹서먹형>


<인증#2;정면응시 현모양처형>


<인증#3.;여유만만형/가화만사성형>


<벌써 14년전인바 당시 이름도 나이도 차한잔도

 못하고 혜어지다보니 요즈음은 추억의

여인이 되었네요>

<지금쯤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랑뿐이 람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