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의 역사 - 3부>
@ 여자 쇼트트랙의 역사 - 1980년대
1976년에 개최된 최초의 세계선수권 대회에서는 미국의 Celeste Chlapaty 선수가 개인종합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선수권 대회 초대 챔피언에 등극했습니다. 1977년 제2회 대회에서는 캐나다의 Brenda Webster 선수가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남자 쇼트트랙과 마찬가지로 여자 쇼트트랙에서도 1980년대까지는 종주국인 캐나다가 최강국으로 군림하는 가운데 미국과 일본 등이 캐나다와 함께 세계 최강의 자리를 놓고 경합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일본 쇼트트랙은 우리나라보다 몇 수 아래로 여겨지고 있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이 아시아 최강인 동시에 세계 최강을 다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일본의 미요시 카토는 1980년과 1981년에 2년 연속으로 개인종합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선수권 최초의 2회 우승자에 등극했습니다. 일본의 Eiko Shishii는 1985년과 1987년 대회에서 개인종합 우승을 차지하며 역시 세계선수권 통산 2회 우승자에 등극했습니다.
한편 1986년 대회 우승자로 ‘보니 블레어’의 이름을 볼 수 있는데, 빙상 종목에 관심이 있는 팬들 중에서는 익숙한 이름일 수도 있습니다. 보니 블레어는 본래 (롱트랙) 스피드스케이팅의 전설적인 선수이며 우리나라의 올드팬들에게도 꽤 유명한 인물입니다. 예전에 우리나라의 유선희 선수가 스피드스케이팅 세계선수권과 올림픽 금메달에 도전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 당시에도 ‘보니 블레어’라는 절대강자의 벽을 넘어야 한다는 뉴스 기사를 빈번하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1980년대까지는 ‘롱트랙 스피드스케이팅’과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간혹 (롱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선수가 (쇼트트랙) 대회에 참가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보니 블레어 역시 (롱트랙) 스피드스케이팅의 세계선수권과 올림픽에서 수없이 많은 금메달을 획득한 선수였는데 쇼트트랙의 세계선수권에도 출전해서 개인종합 우승으로 금메달을 가져간 것입니다. 오늘날의 팬들이 이해하기 쉽게 비유를 하자면, (롱트랙) 스피드스케이팅의 전설인 이상화 선수 또는 고다이라 선수가 쇼트트랙 세계선수권 대회에 출전해서 우승하고 갔다고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1980년대를 빛낸 최강자는 캐나다의 실비 데이글 선수였습니다. 실비 데이글은 본래 ‘롱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출신으로 1980년대 초~중반까지는 ‘롱트랙’과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활동을 병행했습니다. 실비데이글은 ‘롱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로 1980년과 1984년 두 차례 동계올림픽에 출전했고,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로 1979년과 1983년에 세계선수권 개인종합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특히 1983년 대회에서는 남녀를 통틀어서 세계선수권 역사상 최초의 전종목 석권 신화를 달성했습니다.
실비 데이글은 1980년대 중반부터는 ‘쇼트트랙’ 선수로 완전히 전념하게 되었고 1988년부터 1990년까지 세계선수권에서 3년 연속으로 개인종합 우승을 차지하며 통산 5회 우승자로 등극했습니다. 실비 데이글의 통산 5회 우승 기록은 나중에 중국의 양양 A에 의해서 깨지게 되지만, 전종목 석권의 기록은 여자 쇼트트랙에서는 실비 데이글만이 유일하게 이룩한 위업으로 남아 있습니다. 실비 데이글은 세계선수권 개인종합에서 우승 5회, 준우승 2회, 3위 1회를 기록하며 통산 8차례나 시상대에 올랐습니다.
실비 데이글의 전성기 시절에는 쇼트트랙이 올림픽 정식종목이 아니었기 때문에 올림픽 금메달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올림픽의 초창기 역사에서도 실비 데이글은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19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에서는 쇼트트랙이 시범종목으로 채택되었는데 실비 데이글은 1500m 금메달, 1000m와 3000m 은메달, 500m와 3000m 계주(릴레이) 동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이후 쇼트트랙이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이후에는 이미 실비 데이글의 전성기가 지난 이후라서 개인종목의 메달을 획득하지는 못했지만, 당시 실비 데이글과 나탈리 램버트가 주축으로 이끌던 캐나다 여자 대표팀은 1992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에서 여자 3000m 계주(릴레이) 금메달을 획득했고,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에서 여자 3000m 계주(릴레이) 은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사실 빙상종목에서 과거 역사 자료에 대한 기록물 관리가 엉망진창이고, 협회나 연맹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도 못하고 있고, 언론 매체에서도 과거 1980년대의 역사를 거의 외면하다시피 하다 보니까 오늘날에는 실비 데이글의 이름은 언급조차 되지 않고 사실상 잊혀진 이름이 되었습니다. 다른 종목과는 달리 쇼트트랙에서는 과거 역사 자료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과거 전설에 대한 대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데 이는 명백한 잘못입니다.
비록 과거 역사에 대한 제대로 된 관리가 안 되고 있기는 하지만 실비 데이글이야 말로 1980년대의 최강자였음은 물론이고 여자 쇼트트랙의 역사를 통틀어서도 불멸의 전설적인 선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여자 쇼트트랙의 역사 - 1990년대
남자 쇼트트랙과 마찬가지로 여자 쇼트트랙도 1992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면서 대중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남자 쇼트트랙에서는 1000m 부문이 최초의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반면에 여자 쇼트트랙에서는 500m 부문이 최초의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습니다.
여자 쇼트트랙 최초의 올림픽 (정식종목) 개인종목 금메달리스트는 미국의 케이시 터너였습니다. 케이시 터너는 1992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과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여자 500m 부문에서 2회 연속으로 금메달을 획득하며 사상 최초의 올림픽 2회 연속 금메달리스트에 등극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케이시 터너가 여자 쇼트트랙의 엄청난 전설인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실상을 살펴보면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남자 쇼트트랙과 마찬가지로 여자 쇼트트랙에서도 세계 정상급 선수들은 대부분 중장거리 종목인 1000m와 1500m에서 강세를 보이는 경향이 있으며, 500m에서는 단거리 전문 선수가 따로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거리 전문 선수인 케이시 터너는 올림픽에서는 500m 부문에서만 두 차례의 금메달을 획득했지만, 세계선수권에서는 개인종합 3위 이내에 단 한 차례도 진입한 적이 없는 거의 무명에 가까운 선수였습니다.
어쨌든 케이시 터너는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통산 2관왕으로 기록이 된 만큼, 역사의 한 페이지를 쓰기는 했지만,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역시 잡음이 있었습니다.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여자 500m 결승에서 미국의 케이시 터너는 중국의 장얀메이를 밀치는 더티플레이로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은메달리스트였던 중국의 장얀메이는 시상식에서 은메달을 집어던지며 울분을 표출했습니다. 케이시 터너는 그야말로 쇼트트랙의 ‘원조 반칙왕’으로서, 이 분야에서는 ‘리자준, 아폴로 안톤 오노, 왕멍, 판커신’ 같은 더티 플레이어들의 대선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1990년대 초반 여자 쇼트트랙의 세계 최강자는 캐나다의 나탈리 램버트였습니다. 나탈리 램버트는 세계선수권에서 1991년과 1993년, 1994년에 걸쳐서 통산 3회의 개인종합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이 기록은 전이경, 진선유, 왕멍과 함께 역대 공동 3위에 해당하는 기록입니다. 나탈리 램버트는 1980년대 중반에도 이미 세계선수권 개인종합에서 준우승 두 차례, 3위 두 차례를 차지한 바 있었습니다. 나탈리 램버트는 세계선수권에서 통산 7차례나 개인종합 3위 이내에 진입하며 시상대에 올랐습니다.
나탈리 램버트는 올림픽 초창기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쇼트트랙의 최강국이자 종주국인 캐나다 여자 쇼트트랙 대표팀은 실비 데이글과 나탈리 램버트가 이끌고 있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은 실비 데이글의 시대에서 나탈리 램버트의 시대로 바톤 터치가 이루어지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나탈리 램버트는 실비 데이글과 함께 캐나다 대표팀을 이끌며 여자 3000m 계주(릴레이)에서 1992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에서는 금메달,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에서는 은메달을 획득했습니다. 나탈리 램버트는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에서 개인종목인 여자 1000m에서는 은메달을 획득했습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남녀를 통틀어서 쇼트트랙의 세계 최강국은 종주국인 캐나다였고 아시아 최강은 일본이었습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일본이 쇠퇴하고 한국과 중국이 차례로 아시아 최강국에 오른 데 이어서 캐나다와도 세계 정상을 다투게 됐습니다. 남자 쇼트트랙의 경우에는 한국의 정상 등극이 좀 더 빨리 이루어졌고, 캐나다가 더 오랫동안 건재했고 중국의 대두는 좀 늦게 이루어졌지만, 여자 쇼트트랙에서는 그 양상이 조금 달랐습니다. 한국과 중국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세계 정상급으로 떠올랐고 1990년대 이후에는 아예 종주국 캐나다를 밀어내면서 세계 최강국의 자리도 한국과 중국이 번갈아가면서 차지하기 시작했습니다.
1990년대 초반 한국과 중국이 쇼트트랙에 눈을 뜰 무렵, 당시 한국의 에이스는 김소희였고 중국의 에이스는 장얀메이였습니다. 1990년 제2회 삿포로 동계 아시안게임에서 중국의 장얀메이는 3000m 금메달과 3000m 계주(릴레이) 금메달을 획득하며 2관왕에 올랐고 한국의 김소희는 1500m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중국의 장얀메이는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1991년과 1993년, 통산 두 차례 개인종합 3위를 차지했고 한국의 김소희는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1992년 개인종합 우승, 1994년 개인종합 2위를 차지했습니다.
대한민국의 김소희는 한국 여자 쇼트트랙 역사상 최초의 개인종합 세계챔피언에 등극하며 한국 여자 쇼트트랙의 선구자 역할을 했습니다.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당시에도 본래 한국 대표팀의 에이스는 김소희였고, 당시까지만 해도 전이경은 2인자의 위치였습니다. 중국 대표팀에서는 장얀메이가 에이스였고 양양이 2인자였습니다. 전이경과 양양은 훗날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세계 최강자의 자리를 놓고 다투게 됩니다. 한편 나중에 중국 대표팀에서는 또 한 명의 양양이 등장하면서 기존의 양양은 ‘큰양양’, 동명이인 양양은 ‘작은양양’으로 불리게 되고 그러다가 ‘큰양양’은 ‘양양 A’가 되었고 ‘작은양양’은 ‘양양 S’가 되었습니다.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여자 3000m 계주(릴레이)에서는 한국 대표팀의 에이스 김소희가 마지막 주자로 활약하며 금메달을 이끌었습니다. 개인종목인 여자 1000m에서는 당시 세계 최강자였던 캐나다의 나탈리 램버트가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히고 있었고 한국의 김소희, 중국의 장얀메이가 나탈리 램버트와 함께 유력한 금메달 후보였습니다. 여자 1000m 결승전에는 캐나다의 나탈리 램버트, 한국의 김소희와 전이경, 중국의 장얀메이와 양양 이렇게 5명이 진출했습니다. 결승전에서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전이경이 금메달을 획득하며 깜짝스타로 떠올랐습니다. 캐나다의 나탈리 램버트가 은메달, 한국의 김소희가 동메달을 획득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전이경은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에서 개인종목인 여자 1000m와 단체종목인 여자 3000m 계주(릴레이)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2관왕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김소희와 전이경의 운명은 180도 뒤바뀌게 되었습니다. 종전까지 2인자의 설움을 겪었던 전이경은 이때부터 한국 여자 쇼트트랙의 간판스타로 떠오르며 1990년대 중반 세계 최강자로 떠오른 반면에, 김소희는 이후 내리막길을 걸으며 대표팀에서 사실상의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수행해야 했습니다.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이후 한국 대표팀의 에이스는 김소희에서 전이경으로 바톤 터치가 되었고 중국 대표팀의 에이스는 장얀메이에서 양양으로 바톤 터치가 되었습니다. 이후 한국 대표팀은 전이경, 원혜경, 김윤미 등이 주축이 되었고 중국 대표팀에서는 양양 A, 양양 S, 왕춘루 등이 주축이 되었습니다. 1990년대 중반까지는 전이경이 세계 최강자로 군림하다가 1990년대 후반 이후부터는 양양 A가 새로운 세계 최강자로 떠오르게 됩니다.
전이경은 세계선수권에서 1993년에 개인종합 2위에 오른 뒤, 1995년 대회에서 처음으로 개인종합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전이경은 1995년부터 1997년까지 3년 연속으로 세계선수권 개인종합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당시 전이경은 세계선수권 이외에도 아시아컵, 아시아 선수권, 동계 아시안게임, 동계 유니버시아드, 챌린저컵, 세계랭킹대회 등의 거의 모든 국제대회를 휩쓸며 여자 쇼트트랙의 절대강자로 군림했습니다.
중국의 양양 A는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아시아권과 세계 무대의 거의 대부분의 국제대회에서 전이경의 적수가 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양양 A의 포텐이 터지기 시작한 시점은 1997년 시즌부터였습니다. 양양 A는 1997년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2관왕에 오르며 전이경과의 맞대결에서 처음으로 승자가 되었습니다. 1997년 세계선수권에서는 전이경과 양양 A가 공동우승을 차지했었는데, 당시 전이경에게는 세계선수권 3년 연속 우승의 위업을 달성한 영광스러운 순간이었지만, 양양 A에게도 첫 우승의 감격적인 순간이었습니다.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는 한국과 중국 여자 쇼트트랙의 간판스타이자 라이벌인 전이경과 양양 A가 진검승부를 벌였고 전이경이 완승을 거뒀습니다. 우선 단체종목인 여자 3000m 계주(릴레이)에서 한국은 중국을 제치고 2회 연속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4년 전인 1994년 릴레함메르 대회에서는 김소희가 마지막 주자로 나서며 에이스 역할을 했지만, 1998년 나가노 대회에서는 전이경이 마지막 주자로 나서며 명실상부한 에이스로 활약했습니다. 개인종목인 여자 1000m 결승전은 이 대회 최고의 하이라이트이자 명승부였습니다. 전이경은 골인 지점에서 회심의 스케이트날 내밀기로 중국의 양양 A를 상대로 대역전극을 펼치며 2회 연속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나중에 양양 A가 실격을 당하면서 양양 S가 은메달, 원혜경이 동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스케이트날 내밀기’는 남자부의 김기훈, 채지훈, 김동성과 함께 여자부의 전이경도 역시 비슷한 장면을 재연하며 국민들에게 감격을 선사했습니다. 이로써 전이경은 동계올림픽 여자 쇼트트랙에서 개인종목과 단체종목에서 모두 2회 연속 금메달을 획득하며 2회 연속 2관왕으로 통산 4관왕에 오르는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한편 전이경은 여자 500m에서도 행운의 동메달을 획득했습니다.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전이경은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고, 양양 A는 영원히 전이경의 적수가 되지 못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올림픽 이후 개최된 1998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양양 A는 개인종합 우승을 차지하며 전이경의 그늘에서 벗어났습니다. 한국의 전이경과 중국의 왕춘루는 개인종합 공동 2위에 올랐습니다. 전이경과 양양 A가 동시에 선수생활을 하던 시절의 맞대결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국제대회에서 전이경이 승자였습니다. 하지만 1997년 이후 양양 A의 포텐이 터지기 시작하면서 전이경의 1인자 수성에도 그만큼 부담이 가중되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올림픽 맞대결에서 전이경이 완승을 거두기는 했지만, 올림픽 직후의 세계선수권을 통해서 이제 세계 최강자의 지위는 대한민국의 전이경에게서 중국의 양양 A에게로 바톤 터치가 이루어졌습니다.
중국의 양양 A는 2002년까지 거의 모든 국제대회를 휩쓸며 더 이상 적수가 없는 절대강자로 군림했습니다. 세계선수권 대회에서는 1997년부터 2002년까지 6년 연속으로 개인종합 우승의 위업을 달성했고, 쇼트트랙 월드컵 시리즈를 비롯한 각종 국제대회를 휩쓸었습니다. 전이경이 은퇴한 이후의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은 양양 A를 견제할 수 있는 힘을 잃어버렸습니다.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서 양양 A는 여자 500m와 1000m 금메달을 획득하며 2관왕에 올랐습니다. 한국 대표팀은 여자 1500m와 여자 3000m 계주(릴레이)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중국 양양 A의 전관왕을 가까스로 저지했는데, 당시 중국에 비해서 엄청난 전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선방한 것이었습니다.
양양 A는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동메달 1개를 획득한 것을 마지막으로 선수에서 은퇴했습니다. 오늘날 양양 A는 남녀를 통틀어서 쇼트트랙 역사상 최고의 전설로 꼽히고 있습니다. 물론 깊이 분석에 들어가면 다소의 이견은 있을 수 있습니다. 우선은 1980년대의 여자 쇼트트랙의 레전드였던 실비 데이글의 어마어마한 성적이 있었고, 최근에는 남자 쇼트트랙의 빅토르 안(안현수)의 대활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여자 쇼트트랙의 1980년대까지의 역사가 언론 매체에서 거의 외면을 받다시피 하고 있고, 남자 쇼트트랙의 빅토르 안(안현수)이 극적으로 부활한 시점인 2014년이 되기 이전까지, 양양 A는 남녀를 통틀어서 세계선수권 통산 6회의 최다 우승자의 지위를 단독으로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상당수의 언론매체에서도 양양 A를 ‘남녀 통합 역사상 최고의 전설’이라고 소개하는 경우가 꽤 빈번했습니다.
이때까지의 역사를 정리한다면, 1980년대와 1990년대까지 여자 쇼트트랙 세계 최강자의 계보는 ‘실비 데이글 -> 나탈리 램버트 -> 전이경 -> 양양 A’의 계보로 이어졌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ISU(국제빙상연맹)에서 1990년대 이전의 역사 자료에 대해서는 거의 관리를 안 하고 있고, 언론매체에서도 1980년대까지의 역사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대다수의 쇼트트랙 팬들은 1990년대 이후의 역사에만 친숙한 경향이 있는데, 오늘날의 팬들에게 친숙한 1990년대와 2000년대 이후의 역사만을 놓고 볼 경우, 가장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는 선수들의 이름은 ‘전이경 -> 양양 A -> 진선유 -> 왕멍 -> 심석희, 최민정’의 계보로 이어지게 됩니다.
@ 여자 쇼트트랙의 역사 - 2000년대 이후
끝없이 이어질 것처럼 보였던 양양 A의 철옹성과 같은 1인 독주 시대도 마침내 막을 내렸습니다. 한국의 최은경은 2003년과 2004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2년 연속으로 개인종합 우승을 차지하면서 여자 쇼트트랙의 패권을 중국에서 한국으로 다시 가져오는 전환점을 마련했습니다.
2000년대 중~후반에는 대한민국의 진선유와 중국의 왕멍의 라이벌 시대가 펼쳐졌습니다. ‘진선유 vs 왕멍’의 라이벌 구도는 앞선 시대의 ‘전이경 vs 양양 A’의 라이벌 구도와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전이경이 양양 A와 동시대의 라이벌로 활약하던 시절 맞대결에서는 전이경이 절대 우위를 보였지만, 전이경의 은퇴 이후 양양 A가 전이경의 거의 대부분의 기록들을 갈아치우면서 독보적인 최강자로 군림하게 되었는데 이는 ‘진선유 vs 왕멍’의 라이벌 구도에서도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진선유는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세계선수권에서 3년 연속 개인종합 우승의 위업을 달성했으며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는 여자 1000m와 1500m, 3000m 계주(릴레이) 금메달을 획득하며 3관왕에 올랐습니다. 공교롭게도 남자부의 안현수와 여자부의 진선유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전성기를 구가하다가 부상을 당한 시기까지 거의 일치했습니다. 남자부의 안현수는 나중에 러시아에 귀화해서 빅토르 안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재기에 성공하게 되지만 여자부의 진선유는 끝내 부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은퇴하게 되었습니다.
진선유가 은퇴한 이후 여자 쇼트트랙의 세계 최강자 지위는 중국의 왕멍에게 돌아갔습니다. 왕멍은 2008년과 2009년 세계선수권에서 2년 연속으로 개인종합 우승을 차지했고,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는 3관왕에 올랐습니다. 왕멍은 양양 A처럼 압도적인 독주를 하지는 못했지만, 통산 성적에서 라이벌 진선유를 추월하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왕멍은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세계 정상에서 멀어지는 듯 보였으나 2013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한국의 박승희와 심석희를 제치고 개인종합 우승을 차지하며 결국에는 통산 3회 우승의 고지를 밟았습니다. 하지만 이때 왕멍은 비열한 반칙을 사용하면서 우리나라 팬들의 공분을 자아냈습니다.
이후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해서 한국 여자 쇼트트랙 대표팀은 중국을 제치고 다시 최강국의 지위를 되찾았습니다. 여자 3000m 계주(릴레이)에서는 한국 대표팀의 에이스 심석희가 마지막 주자로 대활약을 펼치면서 금메달을 안겼습니다. 한편 한국 대표팀의 맏언니 박승희는 여자 500m에서는 넘어졌는데도 포기하지 않는 투혼을 보이며 동메달을 획득하면서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박승희는 여자 1000m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하며 올림픽 2관왕에 올랐습니다. 4년 후인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박승희 선수는 ‘쇼트트랙’이 아닌 ‘롱트랙’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로 출전하면서 새로운 도전을 펼치게 됩니다.
심석희는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비록 개인종목 금메달은 놓쳤지만, 단체종목인 3000m 계주(릴레이)에서 금메달 1개를 획득했고, 개인종목에서는 1500m에서 은메달, 1000m에서 동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심석희는 2014년 세계선수권에서 개인종합 우승을 차지하며 마침내 세계챔피언에 등극했습니다.
심석희가 절정의 기량을 뽐내던 무렵 한국 여자 쇼트트랙에는 최민정이라는 또 한 명의 천재 선수가 등장했습니다. 최민정은 2015년과 2016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2년 연속으로 세계챔피언에 올랐습니다. 쇼트트랙 월드컵 시리즈에서는 심석희가 2013년부터 2015년까지 3년 연속 세계랭킹 1위에 올랐고 2016년에는 최민정이 세계랭킹 1위에 올랐습니다. 2017년 삿포로 동계 아시안게임에서도 심석희와 최민정은 사이좋게 나란히 2관왕에 올랐습니다.
2017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는 한국 여자 쇼트트랙 대표팀에게 불운과 악재가 겹쳤습니다. 여자 3000m 계주(릴레이)에서는 석연치 않은 실격 판정을 받았고 개인 종목에서도 넘어지거나 외국 선수들의 더티플레이로 인해 억울하게 탈락하는 등의 악재가 겹쳤습니다. 이 대회에서는 심석희가 3000m 슈퍼파이널 금메달을 획득하며 개인종합 3위에 올랐습니다. 심석희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국가대표 출전권을 가장 먼저 획득했고, 이후 최민정은 국가대표 선발전 1위로 평창 동계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했습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둔 현재, 대한민국의 쇼트트랙 팬들은 심석희와 최민정 두 선수 중에서 누구를 응원해야 할지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습니다.
{출처: 야후 위키피디아,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과거 신문, 방송 뉴스기사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