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쇼트트랙 레전드 2위 – 양양 A]
@ 커리어 하이라이트
양양 A는 1990년대 중반에 대한민국의 전이경과 함께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고 전이경의 은퇴 이후인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걸쳐서 여자 쇼트트랙을 평정하며 중국 쇼트트랙 역사상 최고의 전설이자 국민적인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선수입니다.
양양과 전이경의 국제대회에서의 인연은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여자 1000m 결승전에는 캐나다의 나탈리 램버트, 한국의 김소희와 전이경, 중국의 장얀메이와 양양 이렇게 5명이 결승전에 진출했습니다. ‘디펜딩 챔피언’인 나탈리 램버트가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였고 한국의 김소희가 나탈리 램버트와 함께 역시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히고 있었습니다. 한국과 중국의 에이스는 각각 김소희와 장얀메이였고 전이경과 양양은 아직까지는 대표팀 내 2인자의 포지션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승전에서 전이경이 나탈리 램버트와 김소희를 제치고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깜짝스타로 떠올랐습니다.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이후 한국과 중국 대표팀에서는 각각 전이경과 양양이 새로운 에이스로 떠오르게 됩니다.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이후 중국 여자 쇼트트랙 대표팀에는 동명이인인 또 한 명의 양양이 등장했습니다. 두 선수의 구별을 위해서 기존의 양양은 ‘큰양양’, 새로운 양양은 ‘작은양양’으로 불렀습니다. 나중에 ‘큰양양’은 양양 A가 되었고 ‘작은양양’은 양양 S가 되었습니다.
[부연설명: 본래 ‘큰양양’은 양양 L, ‘작은양양’은 양양 S였는데 여기서 L은 large를 뜻하고 S는 small을 뜻합니다. 하지만 ‘큰양양’이 자신의 이니셜을 ‘L’ 대신에 ‘A’로 변경하기를 원했는데, 1976년 8월생인 ‘큰양양’이 8월을 뜻하는 August의 A를 자신의 이니셜로 삼게 된 것입니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전이경이 거의 대부분의 국제대회를 휩쓸고 있었고 양양 A는 전이경의 적수가 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국과 중국의 여자 쇼트트랙 대표팀은 국가 차원에서도 치열한 경합을 벌였는데 한국 대표팀은 전이경, 원혜경, 김윤미 등이 이끌고 있었고 중국 대표팀은 양양 A, 양양 S, 왕춘루 등이 이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부터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까지의 기간 동안에는 거의 대부분의 국제대회에서 한국 대표팀이 정상을 질주했고 중국이 추격하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양양 A는 1997년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포텐을 터뜨리기 시작했습니다. 양양 A는 1997년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2관왕에 올랐고 1997년 세계선수권에서는 전이경과 공동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당시 전이경은 3년 연속 우승을 달성했고, 양양 A는 첫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양양 A는 무서운 상승세를 타면서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도 한국 대표팀의 경계대상 1호로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양양 A는 처참한 실패를 맛보았습니다. 단체종목인 3000m 계주(릴레이)에서도 한국에게 금메달을 내줬고 개인종목인 1000m에서도 전이경에게 금메달을 내줬습니다. 특히 1000m 결승전에서는 막판에 전이경이 양양 A를 상대로 극적인 ‘스케이트날 뒤집기’ 역전극을 펼쳤습니다. 우리나라 팬들에게는 명승부였지만 중국 팬들에게는 악몽의 순간이었습니다. 게다가 양양 A는 결승전 직후 실격을 당하면서 은메달마저 놓쳤습니다. 양양 A는 라이벌인 전이경과의 가장 중요한 맞대결에서 완패를 당했습니다.
나가노 동계올림픽 직후 열린 1998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양양 A는 전이경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하며 설욕에 성공했습니다. 전이경의 은퇴 이후 양양 A에게는 더 이상 적수가 없었습니다. 양양 A는 2002년까지 세계선수권 대회를 연속으로 제패하면서 6년 연속 우승의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양양 A는 쇼트트랙 월드컵 시리즈에서도 1998년부터 2001년까지 네 시즌 연속으로 종합 세계랭킹 1위에 올랐습니다.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서는 500m와 10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2관왕에 올랐습니다.
결코 끝날 것 같지 않아 보였던 양양 A의 독주 시대는 2003년에 마침내 막을 내렸습니다. 한국의 최은경이 양양 A의 7년 연속 우승을 저지하며 새로운 챔피언으로 등극했고 이로써 여자 쇼트트랙 세계 최강국의 지위도 다시 한국으로 넘어왔습니다. 양양 A는 이후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도 출전해서 1000m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뒤 현역에서 은퇴했습니다.
@ 세계선수권에서의 활약
양양 A는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1997년부터 2002년까지 무려 6년 연속 우승을 달성한 뒤 2003년에 개인종합 2위에 올랐습니다. 통산 6회 우승의 기록은 통산 최다 우승 기록이며 개인종합 3위 이내에 통산 7차례 입상한 것은 실비 데이글에 이은 역대 2위 기록입니다. 그리고 ‘6년 연속 우승’의 기록은 남녀를 통틀어서 양양 A만이 유일하게 보유하고 있습니다.
연도별 성적으로는 1997년 3관왕, 1998년 4관왕, 1999년 5관왕, 2000년 4관왕, 2001년 5관왕, 2002년 4관왕, 2003년 2관왕, 2005년 금메달 1개를 추가해서 세계선수권에서 통산 28개의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 올림픽에서의 활약
양양 A는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에서부터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까지 통산 네 차례 올림픽에 출전했습니다. 릴레함메르에서는 노메달에 그쳤고 나가노에서는 단체종목인 3000m 계주(릴레이)에서 은메달을 획득했지만 개인종목에서는 노메달이었습니다. 라이벌인 전이경과의 올림픽 맞대결은 두 차례 모두 완패를 당했습니다.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서 양양 A는 500m와 1000m 금메달로 2관왕에 오르며 마침내 올림픽 징크스를 털어냈습니다. 당시의 양양 A의 기량이라면 전관왕도 노려볼 만한 상승세였지만, 한국 대표팀은 유독 올림픽에 강한 면모를 보인 바 있는데, 여자 1500m 부문과 여자 3000m 계주(릴레이)의 금메달을 한국이 가져오면서 양양 A의 전관왕을 저지한 것은 상당히 선방한 것이었습니다. 양양 A는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는 1000m 동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양양 A는 통산 네 차례 올림픽에 출전해서 개인종목에서는 금메달 2개, 동메달 1개를 획득했고 단체종목인 계주(릴레이)에서는 은메달 2개를 획득했습니다.
@ 기타 국제대회에서의 활약
양양 A는 1995~1997년 무렵의 ‘챌린저컵’ 또는 ‘세계랭킹대회’ 같은 컵대회에도 출전했었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전이경, 원혜경, 김윤미 등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의 벽에 막혀서 별로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전이경과의 국제대회 맞대결에서 수많은 패배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1998년에 ‘쇼트트랙 월드컵 시리즈’가 공식적으로 출범한 이후 양양 A는 1998년부터 2001년까지 4년 연속 종합 세계랭킹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 시절에는 한국 선수들은 양양 A의 적수가 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밖에 양양 A는 1997년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2관왕에 올랐고 1996년 하얼빈 동계 아시안게임 2관왕, 1999년 강원 동계 아시안게임 3관왕, 2003년 아오모리 동계 아시안게임 3관왕에 올랐습니다.
@ 순위 선정 근거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당시 해설자로 나섰던 김동성의 코멘트 중에서 양양 A가 남녀를 통틀어서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고 있다는 코멘트가 있었습니다. 이 코멘트와 함께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양양 A의 세계선수권 6년 연속 우승 기록도 널리 알려지면서 양양 A는 자국인 중국뿐만 아니라 라이벌 관계인 우리나라에서도 역대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양양 A의 비교대상으로 거론되는 선수로는 동시대의 라이벌인 전이경, 과거의 전설이었던 실비 데이글, 남자 쇼트트랙의 전설인 안현수(빅토르 안) 등이 있습니다. 동시대 라이벌인 전이경과는 1990년대 중반 국제대회에서 여러 차례 맞대결을 펼쳤는데 당시 양양 A는 전이경만 만나면 연전연패를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는 양양 A의 흑역사로 남아 있습니다.
전이경이 은퇴한 1990년대 후반 이후 한때 전이경과 양양 A 중에 누가 최고의 선수냐는 논쟁이 붙은 적이 있었습니다. 전이경과 양양 A가 동시에 선수생활을 하던 시절에는 전이경의 거의 대부분의 대회에서 양양 A를 압도적으로 누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양양 A는 1997년부터 포텐이 터지기 시작해서 세계선수권 공동우승을 하게 된 시점에는 이미 전이경과 실력으로 대등한 위치에 올라서기 시작했습니다.
양양 A는 1998년 시즌에 가장 임팩트가 큰 무대였던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전이경에게 완패를 당하기는 했지만, 1998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는 전이경에게 설욕을 하며 개인종합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따라서 양양 A가 실력으로 전이경을 능가하게 된 이후에 전이경은 은퇴를 했고, 양양 A는 이후 약 5년 동안 적수가 없는 세계 최강자로서 무적시대를 구가했습니다. 전이경이 양양 A와의 맞대결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보였던 천적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오늘날 역대 통산 성적을 놓고 비교했을 때는 양양 A가 전이경보다 월등히 앞서는 통산 성적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과거 전설인 실비 데이글과의 비교에서는 양양 A가 세계선수권 우승 횟수에서는 실비 데이글을 넘어섰지만 그래도 실비 데이글의 세계선수권 ‘전종목 석권’ 신화는 아무도 깨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양양 A는 5년이 넘게 세계 정상을 지켰지만 실비 데이글은 10년이 넘게 세계 정상을 지켰습니다. 따라서 실제 통산 성적으로 보더라도 실비 데이글이 양양 A보다는 더 앞서기 때문에 본 시리즈에서도 실비 데이글을 1위, 양양 A를 2위로 선정했습니다.
그렇기는 한데 국제빙상연맹(ISU)에서 과거의 역사 자료 관리에 소홀하고 언론매체에서도 1990년대 이전의 역사는 거의 언급을 안 하다 보니까 한국과 중국 양쪽 모두 전이경과 양양 A 이전의 역사는 거의 잊혀진 역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오늘날의 팬들에게는 과거 실비 데이글, 나탈리 램버트가 세계챔피언이던 시절은 거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고 양양 A와 전이경이 중국과 한국에서 모두 역대 1, 2위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편 남자 쇼트트랙과 여자 쇼트트랙은 전혀 다른 영역이지만 양양 A의 통산 6회 우승 기록에 도전해서 타이기록을 세운 인물이 빅토르 안(안현수)였기 때문에 양양 A와 안현수(빅토르 안)은 종종 비교대상에 오르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안현수가 세계선수권 우승횟수에서도 양양 A를 따라잡았고 올림픽에서도 두 차례나 3관왕에 올랐기 때문에 쇼트트랙 팬들의 뇌리에는 빅토르 안(안현수)의 존재감이 가장 강력하게 뇌리에 박혀 있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양양 A의 ‘세계선수권 6년 연속 우승’ 기록만큼은 여전히 양양 A의 독보적인 기록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에 실비 데이글이 활약하던 시절과 양양 A가 활약하던 시절을 비교할 때는 시대상을 감안해야 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런 걸 다 떠나서 올림픽, 세계선수권, 월드컵 시리즈, 기타 각종 국제대회에서 획득한 메달의 수를 단순 집계했을 경우 ‘기록’ 자체에만 포커스를 맞춰서 본다면 양양 A는 쇼트트랙 역사상 남녀를 통틀어서 가장 많은 메달을 획득한 선수이기도 합니다.
{출처: 야후 위키피디아,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과거 신문, 방송 뉴스기사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