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쇼트트랙 레전드 4김동성]

 

@ 커리어 하이라이트

   쇼트트랙 세계 최강국 대한민국의 역대 에이스 계보는 김기훈 -> 채지훈 -> 김동성 -> 안현수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 세계 쇼트트랙 황제의 계보는 김기훈 -> 마크 가뇽 -> 김동성 -> 안현수로 이어집니다. 김동성은 그 누구보다도 파란만장한 굴곡을 겪으며 인간승리 드라마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오늘날의 쇼트트랙 팬들은 김동성의 이름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분노의 질주를 떠올리게 됩니다. 김동성은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도둑맞으면서 비운의 스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2002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전종목 석권 6관왕의 신화를 달성하며 쇼트트랙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습니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서 과거 기사를 검색하다 보면 1995년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와 1996년 하얼빈 동계 아시안게임에서 채지훈이 한국 대표팀의 에이스였던 시절에 김동성도 한국 대표팀 멤버의 일원으로 참가해서 경험을 쌓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고교생이었던 김동성은 아직 주니어 신분이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김동성은 1997년 세계 주니어선수권에서 전종목 석권으로 개인종합 우승을 달성한 뒤 시니어 무대에서도 1997년 세계선수권 개인종합 우승을 차지하며 어린 나이에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뒀습니다. 1997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김동성은 1000m30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고 개인종합 1, 단체경기인 5000m 계주의 금메달까지 포함해서 4관왕에 올랐습니다.

 

   파죽지세로 정상 궤도를 구가하던 김동성은 199710월 챌린저컵 3, 11월 올림픽 예선 5, 세계랭킹대회 4위에 머무르며 상승세가 주춤해졌습니다.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대한민국 대표팀은 채지훈, 이준환, 김동성의 3인방에게 기대를 걸고 있었습니다. 대표팀 맏형 채지훈은 부상 후유증으로 한 시즌을 거의 통째로 쉬었지만 국내에서는 여전히 에이스로 인식되고 있었으며 대표팀 막내 김동성은 현 세계챔피언의 지위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올림픽이 임박한 시점에서는 세계랭킹 1위 이준환이 최고의 컨디션으로 상승세를 타며 기대를 모으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남자 1000m에서는 세계적인 강호들이 총출동하며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예선과 준준결승을 거치면서 채지훈 vs 데라오 사토루’, ‘이준환 vs 마크 가뇽같은 빅매치가 성사되기도 했습니다. 결승전에서 김동성은 선두를 달리던 리자준을 끈질기게 추격한 끝에 스케이트날 내밀기를 통해 극적인 막판뒤집기 역전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는 마치 4년 전 릴레함메르에서 채지훈이 빌레르민을 상대로 스케이트날 내밀기를 선보였던 장면을 연상케 했습니다.

 

   김동성은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의 메인이벤트 격인 남자 10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어린 나이에 세계선수권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는 타이틀을 모두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단체 종목인 5000m 계주(릴레이)에서는 은메달을 하나 더 추가했습니다. 당시 채지훈, 이준환, 김동성 3인방이 이끌던 한국 대표팀은 금메달이 유력해 보였지만 중국 선수들이 넘어질 때 같이 휩쓸려 넘어지는 불운으로 인해 캐나다에게 아쉽게 금메달을 내줬습니다.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1000m 결승전에서의 김동성 vs 리자준의 대결은 대회 최고의 명승부인 동시에 김동성과 리자준의 질긴 악연의 시작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시상식에서 리자준은 다소 불쾌한 표정을 지었고, 우리나라 중계방송 해설자가 이러한 내용을 언급하기도 했었습니다. 이후 김동성과 리자준은 최대의 라이벌이자 앙숙이 되었습니다.

 

   나가노 동계올림픽 직후 열린 1998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김동성은 3000m 금메달, 1500m 동메달, 5000m 계주(릴레이)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며 캐나다의 마크 가뇽과 이탈리아의 파비오 카르타에 이어 개인종합 3위에 올랐습니다. 이 대회를 끝으로 기존 대한민국 대표팀의 에이스였던 채지훈이 은퇴하면서 이제 김동성은 김기훈과 채지훈의 계보를 잇는 대한민국 남자 쇼트트랙 대표팀의 명실상부한 에이스로 떠올랐습니다.

 

   1998년 시즌부터는 쇼트트랙 선수의 세계랭킹을 매기는 대회인 쇼트트랙 월드컵 시리즈가 정식으로 출범했습니다. ‘월드컵 쇼트트랙 시리즈는 기존의 챌린저컵’, ‘세계랭킹대회등의 컵대회의 기능을 대체하기 시작했으며, 2000년대 이후부터는 올림픽, 세계선수권과 함께 3대 국제대회로 자리매김하게 됐습니다. 1998년 쇼트트랙 월드컵 시리즈에서 김동성은 라이벌 리자준에게 세계랭킹 1위를 내주며 세계랭킹 2위에 올랐습니다.

 

   1999년 강원 동계 아시안게임에서도 대한민국의 에이스 김동성과 중국의 에이스 리자준은 자존심 대결을 펼쳤는데 김동성은 1500m3000m 금메달로 2관왕에 오르며 판정승을 거뒀습니다. 김동성은 1999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1000m 은메달과 5000m 계주(릴레이) 은메달을 획득하며 라이벌 리자준에게 우승을 내주고 개인종합 5위에 머무르는 부진을 보였습니다. 1999년 쇼트트랙 월드컵 시리즈에서는 김동성이 세계랭킹 1, 리자준이 세계랭킹 2, 민룡이 세계랭킹 3위에 올랐습니다.

 

   김동성과 리자준은 나가노 동계올림픽 이후 매 대회마다 장군멍군을 주고받으며 치열한 경합을 벌였습니다. 김동성과 리자준의 라이벌 의식은 2000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절정에 이르렀고 급기야는 파국을 맞이했습니다. 대회 첫날 리자준은 김동성과 함께 빙판 위에 넘어진 상태에서 김동성을 향해 고의적으로 스케이트 날을 내밀고 돌진하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김동성은 심각한 부상을 당하며 시즌을 접어야 했고 몸과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가운데 재활치료를 하느라 1년을 흘려보내야 했습니다.

 

   김동성이 부상을 당한 기간 동안의 국제대회 결과를 살펴보면 2000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는 한국의 민룡이 개인종합 우승, 캐나다의 에릭 베다드가 개인종합 2, 중국의 리자준이 개인종합 3위에 올랐습니다. 2000년 쇼트트랙 월드컵 시리즈에서는 미국의 아폴로 안톤 오노가 세계랭킹 1, 중국의 리자준이 세계랭킹 2위에 올랐습니다. 2001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는 중국의 리자준이 개인종합 우승, 미국의 아폴로 안톤 오노가 개인종합 2, 캐나다의 마크 가뇽이 개인종합 3위에 올랐습니다.

 

[ 쇼트트랙 세계 최강을 자부하는 대한민국 남자 쇼트트랙이지만 정작 홈에서 개최된 세계선수권에서는 단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2001년 대회의 우승자가 리자준, 2008년 대회의 우승자가 아폴로 안톤 오노였기 때문에 더더욱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장면을 목격해야 했습니다. 2016년 세계선수권 대회도 한국에서 개최되었는데, 이때는 중국의 한티안유가 개인종합 우승을 차지한 바 있습니다. ]

 

   김동성은 약 1년여의 재활 기간을 거쳐서 대표팀에 다시 합류했고 2001년 쇼트트랙 월드컵 시리즈에서는 우리나라의 김동성이 세계랭킹 1, 이승재가 세계랭킹 2, 중국의 리자준이 세계랭킹 3위에 올랐습니다. 김동성은 부상 후유증을 딛고 재기에 성공하며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서 2회 연속 금메달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세계 최강자로서의 위용을 되찾은 김동성은 내심 3관왕 내지는 전관왕까지도 욕심을 낼 만큼 컨디션이 최고조에 올라와 있었습니다.

 

   그러나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은 더티플레이와 반칙, 편파판정이 난무하는 사상 최악의 추악한 올림픽이었습니다. 남자 5000m 계주에서는 한국 대표팀의 민룡이 미국의 러스티 스미스의 비열한 반칙으로 인해 부상을 당하며 탈락했습니다. 남자 1000m 준결승에서는 리자준이 김동성의 다리를 노골적으로 잡아채는 반칙을 범했습니다. 두 종목에서 억울하게 탈락한 김동성은 남자 1500m 결승에서 1위로 골인하면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듯했지만, 2위로 골인한 미국의 아폴로 안톤 오노의 할리우드 액션으로 인해 실격을 당하며 억울하게 금메달을 도둑맞았습니다.

 

   오노의 할리우드 액션으로 인해 김동성이 금메달을 도둑맞은 사건은 전국민적인 분노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이때 오노의 밉상 캐릭터가 워낙에 강렬한 임팩트를 남겨서 이전의 리자준의 악행이 모두 묻혀버릴 정도였습니다. 오노와 함께 제임스 휴이시라는 심판도 대한민국 대표팀과 악연을 맺었습니다. 제임스 휴이시는 나중에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도 대한민국 여자 대표팀을 상대로 또다시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2002년 여름에 개최된 한일 월드컵 축구 대회에서는 대한민국 대 미국의 경기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의 안정환 선수가 동점골을 넣은 후 쇼트트랙 세러모니를 선보이고 안정환의 뒤에서 이천수가 오노의 할리우드 액션을 패러디하며 국민들의 울분을 달래주기도 했습니다.

 

   김동성은 올림픽에서 억울하게 도둑맞은 금메달을 끝내 되찾지 못했습니다. 김동성은 분노를 억누른 가운데 올림픽 직후 열린 2002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웠습니다. 대회 첫날 1500m 결승에서는 시작하자마자 한 바퀴 반을 앞서나가며 압도적인 레이스를 펼쳐서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이 장면은 훗날 분노의 질주로 회자되었습니다.

 

   김동성은 2002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1500m, 500m, 1000m, 3000m 슈퍼파이널 금메달을 모두 석권하고 개인종합과 5000m 계주(릴레이) 금메달까지 거머쥐며 6관왕에 올랐습니다. 대회 마지막 날 5000m 계주(릴레이) 결승전에서는 막판에 극적인 역전우승으로 또한번 명승부를 선보였습니다. 김동성은 전종목 석권의 신화를 달성하며 세계선수권 통산 2회 세계챔피언에 올랐습니다.

 

   이후 김동성은 고질적인 무릎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수술대에 올랐고 더 이상 선수생활을 지속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김동성은 그 누구보다도 파란만장한 굴곡과 우여곡절을 겪었고, 그 누구보다도 억울한 일을 많이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가노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세계선수권 통산 2회 챔피언’, ‘통산 두 차례 세계랭킹 1’, ‘강원 동계 아시안게임 2관왕에 오르며 화려한 경력을 남겼습니다.

 

   특히 주니어 시절에도 세계 주니어선수권전종목 석권의 신화를 달성한 데 이어서 시니어 무대에서의 은퇴 경기에서도 세계선수권전종목 석권의 신화를 달성하며 피날레를 장식했습니다. 김동성은 나가노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다가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도둑맞으며 비운의 스타가 되었지만 세계선수권 전관왕 신화를 달성하며 인간승리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 세계선수권에서의 활약

   김동성은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1997년 개인종합 우승, 1998년 개인종합 3, 2002년 개인종합 우승으로 통산 2회의 개인종합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세계선수권 대회의 40년 역사를 통틀어서 통산 2회 이상 우승을 달성한 선수는 겨우 9명뿐이며, 이 중에서 통산 3회 이상 우승을 달성한 선수는 안현수와 마크 가뇽 두 명뿐이고, 나머지 7명이 통산 2회 우승으로 공동 3위 그룹을 형성했습니다.

 

   각 개별종목의 통산 금메달 개수 합계에서도 김동성은 통산 11개의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안현수(20), 마크 가뇽(14), 찰스 해멀린(13), 리자준(12)에 이어서 역대 5위를 마크하고 있습니다. 김동성이 시니어 무대에서 선수로 활동한 기간이 6년에 불과하고 세계선수권 대회에는 겨우 다섯 차례 출전했고, 이 중 한 차례는 대회 도중 부상으로 중도에 이탈했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김동성이 짧은 기간 동안 얼마나 대단한 활약을 펼쳤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특히 김동성은 단일시즌 커리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1997년 첫 우승 당시에도 4관왕에 오른 데 이어서 2002년 두 번째 우승은 6관왕으로 전관왕 신화를 달성했습니다.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전종목 석권을 달성한 사례는 남자부에서는 1992년 대한민국의 김기훈이 최초였고 2002년 대한민국의 김동성이 통산 두 번째로 달성했습니다. 남녀를 통틀어서도 1983년 캐나다의 실비 데이글에 이어서 1992년과 2002년의 대한민국의 김기훈과 김동성 이렇게 통산 세 차례밖에 나오지 않은 대기록입니다.

 

   실비 데이글과 김기훈이 전관왕을 차지하던 시절에는 계주(릴레이) 부문의 시상식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5관왕이었고 김동성은 계주(릴레이)의 금메달까지 포함해서 공식적으로 6관왕이 되었습니다. 시대상의 차이를 감안할 필요가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기록 자체에만 포커스를 맞추었을 때 김동성의 6관왕 기록은 역대 최다관왕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김동성은 1997년과 2002년에 5년의 시차를 두고 주니어 세계선수권시니어 세계선수권에서 모두 전종목 석권의 신화를 달성한 유일한 선수이기도 합니다.

 

 

@ 올림픽에서의 활약

   김동성은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남자 1000m 금메달, 남자 5000m 계주(릴레이) 은메달을 획득했습니다.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서는 1500m 금메달을 도둑맞았습니다. 김동성이 올림픽에서 달성한 공식 기록은 통산 두 차례의 올림픽에서 금메달 1, 은메달 1개를 획득했습니다.

 

   올림픽 쇼트트랙에서 개인종합의 개념이 공식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김동성이 거둔 금메달 1, 은메달 1개의 성적은 사실상의 개인종합 1위에 해당하는 성적이었습니다. 따라서 김동성이 나가노 동계올림픽을 제패하며 세계 최강자에 등극했다는 표현을 사용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역대 올림픽 1인자를 비교할 때 1992년 알베르빌의 김기훈, 2006년 토리노의 안현수, 2010년 밴쿠버의 이정수. 2014년 소치의 빅토르 안이 올림픽 금메달을 싹쓸이한 절대강자의 느낌이라면 1994년 릴레함메르의 채지훈과 1998년 나가노의 김동성은 참가선수 중 간신히 1위에 오른 선수로서의 느낌이 좀 더 강한 편입니다.

 

   똑같은 금메달 1, 은메달 1개의 기록이기는 하지만 나가노에서의 김동성의 성적은 단체경기인 계주(릴레이)에서의 은메달이 포함된 기록이고, 릴레함메르에서의 채지훈의 성적은 순수하게 개인종목에서만 획득한 메달이기 때문에 순도 면에서는 김동성의 기록이 채지훈의 기록보다는 순도가 다소 떨어지는 편입니다.

 

   역대 올림픽 1인자의 계보를 살펴보면 김기훈(알베르빌) -> 채지훈(릴레함메르) -> 김동성(나가노) -> 안현수(토리노) -> 이정수(밴쿠버) -> 빅토르 안(소치)로 이어졌습니다. 1992년 알베르빌 대회 때는 개인종목 금메달 1개와 계주 금메달 1개가 걸려 있었는데 김기훈이 완벽하게 금메달을 싹쓸이했습니다. 1994년 릴레함메르와 1998년 나가노 대회 때는 개인종목 금메달 2개와 계주 금메달 1개가 걸려 있던 상태에서 채지훈과 김동성이 각각 금메달 1, 은메달 1개씩을 획득하며 그 시절의 최강자임을 증명했던 대회였습니다.

 

   2000년대 이후부터는 개인종목 금메달 수가 3개로 늘어났는데 2006년 토리노의 안현수와 2010년 밴쿠버의 이정수, 2014년 소치의 빅토르 안은 모두 개인종목 세 종목 중 두 개의 금메달을 쓸어담으며 명실상부한 최강자임을 증명했습니다. 안현수(빅토르 안)은 계주 금메달까지 포함해서 3관왕에 올랐고 이정수는 계주 금메달 획득에는 실패하면서 2관왕이 되었습니다. 2002년 솔트레이크와 2018년 평창 대회 때는 개인종목 세 종목의 금메달리스트의 면면이 모두 달라지면서 절대강자가 없는 대혼전 양상이 펼쳐졌던 대회였습니다.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의 김동성은 굳이 역대 올림픽 1인자들끼리의 기록을 비교할 경우에는 그 1인자들 중에서는 가장 저조한 성적에 해당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메인이벤트 격인 1000m 결승에서의 리자준과의 명승부로 인해서 세계 최강자의 상징성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개인종목 성적만을 놓고 봤을 때는 두 종목 중 1개의 금메달을 획득한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의 개인종합 공동 1에 해당하는 성적이었고 여기에 계주(릴레이)에서의 은메달을 합치면 사실상의 개인종합 단독 1에 해당하는 성적이었습니다.

 

   4년 후인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서 김동성은 실제로는 1500m에서 1위를 차지하고도 금메달을 억울하게 도둑맞으면서 공식기록 상으로는 노메달이 되었지만, 이 사건은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역사상 최대의 스캔들로 이슈화가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김동성은 비운의 스타이미지를 얻어야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역대 대한민국 남자 쇼트트랙 대표팀의 에이스 계보는 역대 동계올림픽 남자 쇼트트랙 최강자의 계보와 절묘하게 일치하고 있습니다. 김기훈(알베르빌) -> 채지훈(릴레함메르) -> 김동성(나가노) -> 안현수(토리노)의 계보 중에서 김동성의 성적은 공식기록 상으로는 4대 전설 중 가장 낮은 순위에 해당되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대한민국 국민들의 마음속에서는 김동성이 나가노 대회뿐만이 아니라 솔트레이크 대회에서도 실질적인 세계 최강자의 면모를 보여줬다고 기억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김동성이 쇼트트랙의 역사에서 전설로 남게 된 데에는 올림픽보다는 세계선수권 대회에서의 업적이 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김동성은 올림픽에서의 활약만을 살펴보더라도, 이미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세계 정상에 오른 바가 있었습니다.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서는 공식기록 상으로는 노메달에 그치기는 했지만, 여전히 실질적인 세계 최강자의 이미지를 유지하며 비운의 스타라는 별명과 함께 진정한 금메달리스트의 이미지도 함께 얻으면서 국민적인 성원을 등에 업었습니다.

 

 

@ 기타 국제대회에서의 활약

   김동성은 1996년 하얼빈 동계 아시안게임에서는 5000m 계주(릴레이) 금메달을 획득했고 1999년 강원 동계 아시안게임에서는 개인종목 2관왕에 올랐습니다. 1996~1997년 사이에 개최된 챌린저컵, 세계랭킹대회 등의 컵대회에서도 몇 차례 상위권 순위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쇼트트랙 월드컵 시리즈가 공식적으로 출범한 1998년 이후에 김동성이 거둔 성적은 1998년 세계랭킹 2, 1999년 세계랭킹 1, 2001년 세계랭킹 1위입니다.

 

 

@ 순위 선정 근거

   우리나라의 쇼트트랙 팬들에게는 김동성 vs 오노의 대결구도가 마치 동시대의 라이벌 구도인 것처럼 인식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서의 할리우드 액션스캔들에 대한 잔상이 워낙에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애초에 아폴로 안톤 오노는 김동성의 적수가 못 되는 선수였습니다. 김동성의 전성기 시절 김동성과 박빙의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던 숙적은 중국의 리자준이었습니다.

 

   김동성과 리자준의 라이벌 구도는 거의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박빙이었고, 통산 커리어를 비교할 때 각 개별종목의 금메달 개수 총합계라든지 또는 금은동 메달 획득 총합계를 비교할 경우에는 오히려 김동성보다는 리자준이 따낸 메달이 더 많습니다. 세계선수권에서는 리자준이 통산 금메달 12, 김동성은 통산 금메달 11개를 획득했고, 금은동 메달 총합계에서도 리자준(12, 4, 7)이 김동성(11, 4, 3)보다 앞서고 있습니다.

 

   올림픽에서도 메달의 색깔과 관계없이 통산 메달 획득 개수 총합계로만 따지면 김동성(1, 1)보다는 리자준(2, 3)이 더 많은 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올림픽 출전 횟수도 김동성은 2, 리자준은 4회이며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이외의 각종 국제대회에서도 리자준이 1990년대 중반의 각종 국제대회에서부터 2000년대 초중반의 월드컵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더 오랜 기간 동안 선수로서 활동하며 더 많은 메달을 따냈습니다.

 

   하지만 단일시즌을 제패한 최강자로서의 위용과 기록의 순도와 같은 내용 면에서는 김동성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압도적인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김동성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세계선수권 전관왕 신화’, ‘통산 두 차례 세계랭킹 1라는 굵직한 업적을 세웠습니다. 동계 아시안게임에서도 김동성은 통산 두 차례 출전해서 3개의 금메달, 리자준은 통산 세 차례 출전해서 4개의 금메달을 획득했지만, 단일시즌의 맞대결구도에서는 1999년 강원 대회에서 김동성이 리자준에게 2 1로 승리한 바가 있기도 합니다.

 

   세계 남자 쇼트트랙의 양대산맥을 형성하고 있는 대한민국과 캐나다의 전설들은 그 특성에 있어서도 대조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전설 계보에 올라 있는 김기훈, 채지훈, 김동성은 선수 활동 기간이나 전성기가 길지는 않았지만 단일시즌 성적에서는 확실한 임팩트를 보여주면서 강렬하게 불꽃을 태웠습니다. 반면에 캐나다의 전설 계보에 올라 있는 마크 가뇽과 찰스 해멀린은 단일시즌 성적에서는 압도적인 면모를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10년 안팎의 기간 동안 꾸준히 세계 정상권의 실력을 유지하면서 통산 커리어를 빌드업해서 전설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만약 김동성이 2002년 세계선수권에서 전관왕 신화를 달성하지 못했다면, 오늘날 김동성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크게 하락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김동성의 선수 시절 커리어를 분석해볼 때 단일시즌의 압도적 최강자이지만 전성기가 짧아서 통산 커리어에서는 다소 불리하다는 측면에 있어서는 대표팀 선배 채지훈과 매우 유사한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2002년 이전까지의 커리어만을 놓고 본다면 오히려 동계올림픽, 동계 아시안게임 등에서의 통산 커리어는 채지훈보다 더 열세였습니다.

 

   하지만 김동성이 2002년에 달성한 세계선수권 전종목 석권 6관왕의 신화가 워낙에 위대한 업적인 데다가, 5년의 간격을 두고 주니어, 시니어 세계선수권 전종목 석권이라는 업적까지 남겼습니다. 비록 올림픽에서는 억울하게 금메달을 도둑맞았지만 세계선수권 전관왕이라는 더욱 위대한 업적을 남기면서 김동성은 역대 레전드 4위에 해당하는 전설로서 쇼트트랙 역사에 그 이름을 확실히 새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역대 레전드들의 통산 커리어를 비교했을 때는 김동성이 선수 활동 기간과 전성기가 짧았기 때문에 안현수(빅토르 안), 마크 가뇽, 김기훈보다는 순위가 밀려서 역대 레전드 4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단일시즌 최강자로서의 임팩트에 있어서만큼은 김동성은 안현수도 능가하고 김기훈과는 막상막하였습니다.

 

   단일시즌의 업적만을 놓고 봤을 때는 1992년의 김기훈과 2002년의 김동성이 첫손에 꼽히고 있습니다. 1992년 시즌의 김기훈은 올림픽을 제패하고 세계선수권 전관왕까지 달성하면서 한 시즌 전체를 놓고 봤을 때 가장 완벽한 단일시즌 최강자였습니다. 2002년 시즌의 김동성은 올림픽을 제패하지는 못했지만 세계선수권 6관왕이라는 기록을 달성했고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을 통틀어서 최대의 이슈메이커로 떠오르기도 했었습니다.

 

   김동성은 선수 경력에 있어서 그 누구보다도 파란만장한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고, 억울하게 금메달을 도둑맞기까지 했으며, 부상으로 인해서 전성기도 짧았고 선수생활을 오래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짧은 선수 활동 기간 동안에 이토록 화려한 전적을 기록하며 자신의 저력을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출처: 야후 위키피디아,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과거 신문, 방송 뉴스기사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