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컵이라는 대회가 아시아 대륙의 축구 최강자를 가리는 매우 중요한 대회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아시안컵 또는 아시안게임 대회가 열릴 때마다 네이버, 다음을 비롯한 수많은 인터넷 게시판 또는 커뮤니티의 댓글에서는 다음과 같은 ‘어그로’와 이로부터 촉발되는 논쟁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반세기가 넘게 아시안컵에서 우승을 못 한 한국은 아시아 맹주의 자격이 없다. 아시안컵에서 네 차례나 우승을 달성한 일본이야말로 진정한 아시아의 맹주다” -> “한국과 일본의 역대전적에서도 한국이 압도적으로 앞설뿐더러 한국은 월드컵 본선 진출 횟수도 최다이고 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월드컵 4강을 달성한 진정한 아시아의 맹주다” -> “세계에서는 다들 일본을 아시아 최강이라고 인정하는데 국뽕에 취한 조센징들만 갓본을 무시하고 자화자찬에 취해 있다” -> “꺼져라, 반쪽빠리 일뽕 방숭이 시끼야!”
사실 모범답안이 뭔지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범답안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시안컵과 월드컵은 모두 중요한 대회다. 굳이 중요도를 따지자면 월드컵이 더 중요하기는 하다. 하지만 아시아 맹주를 자처하는 한국으로서는 결코 아시안컵을 우습게 보지 말고 최선을 다해 임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게시판에 등장하는 수많은 어그로와 이로부터 비롯된 논쟁을 보다 보면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할 때가 많습니다. 특히 네이버에는 ‘갓본, 조센징’을 운운하는 ‘일베충인지 진짜 쪽바리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버러지’들 때문에 열받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인터넷 게시판에는 워낙 별의별 사람들이 다 몰려드는 곳이기 때문에 그 모든 댓글 코멘트 하나하나를 일일이 심각하게 반응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요즘은 옛날이랑 시대가 달라져서 그런지 몰라도, 헛소리라고 치부했던 몇몇 네티즌의 의견도 조금씩 그 수가 늘어나기 시작하면 하나의 여론을 형성하면서 기정사실화가 돼버리고 심지어는 인터넷 언론에서 활동하는 기자들이 아무런 여과 없이 그대로 기사로 내보내면서 여론을 호도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따라서 굳이 일일이 대꾸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어그로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반박해야 할 필요성이 생겨버린 것입니다.
일단은 아시안컵 대회 때마다 등장하는 어그로의 가장 큰 뼈대를 크게 셋으로 나눈 뒤 순서대로 반박을 해보려 합니다.
(1) 아시안컵 대회에서 반세기가 넘게 우승에 실패한 한국은
아시아 맹주라 칭할 자격이 없다.
(2) 아시안컵을 제쳐두고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만 열을 올린 한국은
바보 멍청이 같은 짓을 하면서 헛심만 썼다.
(3) 아시안컵에서 통산 4회 우승을 달성한 일본이야말로
진정한 아시아의 맹주다.
[ (1)번 어그로에 대한 반박 ]
아시아 맹주를 자처하는 한국이 유독 아시안컵에서는 번번이 우승 문턱에서 고배를 들면서 뭔가 잘 안 풀리고 꼬이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마치 세계 최강을 자처하는 브라질이 유독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맥을 못 추는 것과 비슷한 일종의 징크스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세계 축구의 양대산맥인 브라질과 독일을 비교했을 때 브라질은 각급 연령대의 거의 모든 대회를 다 잘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고 월드컵, 컨페더레이션스컵, 올림픽 축구, 19세 이하 청소년 축구, 16세 이하 청소년 축구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대회에서 최강자의 지위를 놓치지 않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에 브라질과 라이벌 관계에 있는 독일은 월드컵과 유럽선수권에만 역량을 집중하는 경향이 있으며 올림픽 축구나 청소년 축구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한 편입니다.
얼핏 보면 독일은 영리하게 메이저 대회에만 역량을 집중시켜서 효율적으로 성적을 끌어올리는 것처럼 보이고, 브라질은 세계 최강자라는 자존심에 집착해서 모든 대회를 잘하려고 하는 바람에 힘을 분산시켜서 헛심만 쓰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브라질을 향해서 어리석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각급 연령대의 모든 대회에 총력을 기울이는 브라질과 메이저 대회에만 효율적으로 역량을 집중시키는 독일의 월드컵 성적을 비교하면 브라질이 더 우위에 있습니다.
아시아 축구의 맹주를 자처하는 한국은 마치 브라질처럼 각급 연령대의 모든 대회를 잘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에 한국과 라이벌 관계에 있는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일본은 메이저 대회인 월드컵과 아시안컵에 역량을 집중시켜서 순식간에 아시안컵에서 3회 이상씩의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얼핏 보면 한국이 미련하게 힘을 분산시킨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월드컵에서의 성적도 한국이 가장 좋습니다. 각급 연령대의 모든 대회에서 아시아 최강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기 때문에 그러한 노력의 결실이 밑거름이 되어 월드컵 9회 연속 본선 진출과 4강 신화를 달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한국은 월드컵 이외에도 아시아 무대에서 열린 각급 연령대별 대표 선수권에서 독보적인 실적을 쌓아왔습니다. 올림픽 축구에서도 본선 진출 횟수에서 일본과 공동 1위, 본선 최고 성적으로는 동메달을 획득했고 아시안게임에서는 이란을 제치고 최다우승팀의 지위에 올랐으며 아시아 청소년 축구 대회에서도 무려 12회 우승을 달성하며 압도적인 최다 우승팀의 지위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아시안컵에서도 ‘우승 횟수’에서만 일본, 사우디, 이란에 밀리고 있을 뿐, ‘결승 진출 횟수’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와 공동 1위에 올라 있고 ‘4강 진출 횟수’ 또는 ‘통산 승점’에서는 이란과 선두를 다투고 있습니다. 아시안컵에서 초창기 2회 우승 이후 준우승만 네 차례를 추가하면서 유독 우승 문턱에서 고배를 마셨는데, 이는 아시안컵이라는 대회에서 유독 한국이 고전하는 일종의 징크스로 해석하는 쪽이 더 타당합니다. 마치 세계 최강자를 자처하는 브라질이 코파 아메리카 대회만 나가면 이상하게 맥을 못 추는 징크스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오늘날 새삼스럽게 아시안컵의 중요성이 부각된 요인 중에는 한국 축구의 ‘숙원’ 또는 ‘컴플렉스’가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오면서 변화한 것도 하나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지난 20세기까지만 해도 한국은 아시아 내에서는 최강자의 위용을 뽐내면서도 유독 세계 무대에서는 맥을 못 추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반면에 아시아 내에서는 우리보다 한수 아래로 여겼던 라이벌 팀들이 세계 무대인 월드컵 본선에서는 오히려 우리보다 더 선전하면서 자극이 되었습니다. 북한이 월드컵 8강에 진출했고 사우디아라비아가 16강에 진출했고 이란도 우리보다 먼저 1승을 올렸습니다. 그래서 한국 축구계는 우물 안 개구리 신세에서 벗어나서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1승 내지는 16강에 진출하는 것을 숙원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2002년 월드컵에서 4강신화를 달성한 이후 한국 축구는 비로소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서 세계 무대에서의 숙원을 달성했습니다. 그러나 이때부터 오히려 아시안컵이나 아시안게임에서는 우승이 더 힘들어지는 일종의 징크스 같은 것이 생겼습니다. 최근 들어서 아시안게임에서는 2회 연속 우승을 달성하면서 다시 상승세를 타고 있지만 아시안컵에서만큼은 아직 그 징크스를 깨지 못한 상태입니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서 한국 축구가 아시안컵 우승을 위해 분발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세기 동안 아시안컵 우승도 못 한 주제에 무슨 아시아 최강이냐?” 같은 어그로를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그것이 하나의 여론으로 형성돼서 기정사실화되는 것은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냥 “아시아 맹주의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서 이제 아시안컵 우승의 숙원을 풀자” 정도로만 얘기하면 딱 적당한 것입니다.
혹자는 아시안컵을 우승해서 컨페더레이션스컵 출전권을 얻어야 세계적인 강호들과 공짜로 평가전을 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에 월드컵 준비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이론상으로는 그럴싸해 보이기는 하는데, 실제로 여태까지 각 대륙별 선수권의 챔피언 자격으로 컨페더레이션스컵에 출전했거나 본선에서 우승 또는 준우승을 차지했던 팀들의 이듬해 월드컵 성적은 매우 처참했습니다. 일종의 징크스와도 같습니다.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브라질, 프랑스 독일의 이듬해 월드컵 성적이 어땠는지는 다들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만약 월드컵 본선에서의 성적만을 지상목표로 삼는다면 아시안컵에서 우승해서 컨페더레이션스컵 본선에 출전하는 것이 오히려 두려워질 지경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시안컵에서는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대륙의 최강자를 자처하기 위해서는 대륙의 챔피언쉽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자세이며, 이후에 대륙 선수권 또는 컨페더레이션스컵 성적과 월드컵 본선 성적이 반비례하는 징크스는 그 나름대로 극복해 나갈 필요성이 있는 것입니다. ‘아시안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딱 이 정도 선에서 정리하는 것이 가장 적당하며, 그 이상으로 오버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 (2)번 어그로에 대한 반박 ]
전통적으로 한국은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을 아시안컵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참으로 이상하고 어리석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가 오늘날의 시각이나 관점을 그대로 적용해서 지난 20세기의 역사를 어리석다고 비난하고 비웃는 것이 과연 온당한 태도일까요?
과거에는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축구에 연령제한이 없었고 모두 성인 국가대표팀이 출전해서 경합을 벌였습니다. 월드컵이 출범하기 전인 20세기 초반에는 올림픽 축구에서 금메달을 따면 세계 최강자로 인정받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축구 종주국인 영국은 올림픽 축구에서 금메달을 무려 3개나 획득했습니다.
월드컵 대회가 출범한 이후에도 아직 완벽하게 자리를 잡지 못했던 초창기 시절에는 여전히 올림픽 축구의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1920~30년대에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던 우루과이나 이탈리아는 그 시절의 세계 최강자로 인정받았고, 푸스카스가 현역으로 뛰던 전성기 시절의 헝가리도 올림픽 축구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세계 최강자로 인정받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월드컵 대회가 정착되고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하면서 올림픽 축구는 점차 열기가 시들해지기 시작했고, 설상가상으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대회부터는 연령제한이 생기면서 더 이상 A매치로 인정조차 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21세기에 접어든 오늘날에는 월드컵과 올림픽의 중요성은 하늘과 땅 차이로 벌어지기에 이르렀습니다.
결과적으로 볼 때 과거 올림픽 축구를 주름잡았던 영국, 우루과이, 이탈리아, 헝가리 등은 어찌 보면 헛심만 써버린 셈이 돼버렸습니다. 오늘날 세계 축구의 역사를 다루면서 세계 최강국을 언급할 때는 대체로 월드컵 우승 횟수만 언급하는 경향이 있으며, 올림픽 우승 횟수는 거의 언급조차 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 올림픽 축구 금메달 획득을 위해 최선을 다했던 우루과이, 이탈리아, 헝가리를 어리석다고 비웃어야 할까요? 그 시절의 축구 선수들과 팬들이 70년 후의 미래에 올림픽 축구의 권위가 갑자기 땅에 떨어질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그냥 그 시절에는 그 시대의 상황에 맞게 최선을 다했을 뿐이고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박수받아야 마땅한 것입니다.
아시안게임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시안게임은 ‘아시아의 올림픽’과도 마찬가지인 대회이며 아시안컵보다도 먼저 출범했습니다. 아시안컵이 확고히 자리잡지 못했던 초창기에는 아시안게임 우승팀이 진정한 아시아의 최강자로 인정받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아시안컵 대회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게 된 1970~90년대까지도 아시안게임은 여전히 비중 있는 대회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1986년 아시안게임 우승팀인 한국과 1998년 아시안게임 우승팀 이란은 당대의 아시아 맹주로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2002년 아시안게임에서 연령제한이 생기면서 아시안게임은 더 이상 A매치로 인정조차 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올림픽 축구의 권위가 어느 순간 갑자기 땅으로 떨어진 것과 비슷한 상황입니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아시안컵과 아시안게임의 권위는 하늘과 땅 차이로 벌어지기 시작했고 결과적으로는 20세기에 아시안게임의 최다우승팀 지위를 놓고 각축을 벌였던 아시아의 전통 강호 한국과 이란은 헛심만 써버린 셈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오늘날의 시각에서 과거 아시안게임 우승을 위해 열을 올렸던 것을 어리석다며 비웃어도 되는 것일까요? 그 시절의 축구 선수나 팬들이 50년 후에 아시안게임의 권위가 어느 날 갑자기 땅에 떨어지리라고 과연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그냥 그 시절 아시아 축구의 맹주를 자처했던 한국과 이란 같은 전통의 강호들이 아시안게임 우승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던 것은 그 자체로 박수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오늘날에 와서는 아시안게임의 권위나 가치가 크게 하락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축구는 여전히 아시안게임 축구 우승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만 하는 절실한 이유가 있는데, 이는 명분과 실리라는 두 가지 측면 모두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우선 ‘명분’에 해당하는 것으로서는 아시아 맹주를 자처하는 한국이 아시안게임 우승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바람직한 자세입니다. 그리고 ‘실리’에 해당하는 것으로서는 아시안게임에 우승해야 실제로 선수들의 ‘병역 혜택’이라는 실질적인 이득도 함께 챙길 수 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세계 축구의 최강자를 자처하는 브라질이 월드컵과 컨페더레이션스컵, 세계 청소년 축구 우승을 밥먹듯이 하면서도 유독 올림픽에서는 재미를 못 보는 경향이 있었는데, 그래도 우승을 향한 끊임없는 집념을 보인 끝에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마침내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세계 최강을 자처하는 브라질이 올림픽 금메달이 없다는 것이 브라질의 자존심을 자극했고, 라이벌인 아르헨티나가 올림픽 2회 연속 금메달을 획득한 것 역시 브라질에게 자극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그 유명한 브라질이 올림픽을 하찮게 보지 않고 우승을 향한 끝없는 집념을 보이며 결국은 홈에서 네이마르까지 투입하는 초강수를 둔 끝에 금메달을 획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한국 축구도 월드컵과는 달리 올림픽 본선에서는 라이벌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재미를 보지 못하며 자존심의 상처를 입었었지만,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마침내 일본을 직접 제물로 삼으며 동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따라서 한국 축구가 올림픽 축구와 아시안게임 축구에 열을 올리며 최선을 다하는 것은 비난이 아닌 박수를 받아 마땅한 태도이며, 아시안컵에서의 징크스를 극복하는 문제는 아시안게임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로 접근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편 예전 1970~80년대에는 한국 축구가 ‘메르데카컵’이라는 대회에 열을 올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차범근 전 감독이 “현역 시절 아시안컵보다 메르데카컵을 더 권위 있는 대회로 여겼다”고 발언한 내용은 문자 그대로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어느 정도는 진담이 바탕이 된 상태에서 약간의 과장이 보태졌다는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알맞을 것입니다.
그 시절 메르데카컵 대회에는 아시아의 내로라하는 축구 강국인 한국, 버마, 태국, 말레이시아 등이 참가해서 자웅을 겨뤘고 가끔씩은 일본이나 이라크가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이 대회를 우승하는 팀은 아시아의 최강자로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시절에 아시안컵이 중요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그 시절에도 이란과 이스라엘은 메르데카컵에서는 만날 수 없었고 아시안컵에서만 만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란, 이스라엘과 진검승부를 벌일 수 있는 아시안컵 또는 아시안게임이 당시에도 더 중요한 대회이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한국 축구는 버마, 태국, 말레이시아 등과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피부로 체감하기에는 라이벌 팀들과 격돌하는 ‘메르데카컵’ 대회가 더 뜨겁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게다가 메르데카컵에는 일본도 종종 출전했는데 그때마다 우리는 일본을 사뿐히 즈려밟아주면서 짜릿한 쾌감을 느껴왔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한국 축구계의 선수들이나 팬들은 아시안컵보다도 메르데카컵에 더 열을 올리며 달려드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볼 때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는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2018년 현재 스즈키컵에 열광하는 베트남 축구 팬들을 생각해본다면 어느 정도 그 정서를 이해해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베트남 축구 팬들도 스즈키컵보다는 아시안컵이 더 중요하고 권위 있는 대회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스즈키컵에 그토록 열광하는 이유는 그들과 라이벌 관계에 있는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과의 진검승부가 펼쳐지는 무대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한 30년쯤 후 베트남이 아시아 무대를 주름잡는 강호로 떠오르고 월드컵이나 올림픽의 단골손님이 된다면 어떤 현상이 발생할까요? 그때쯤 되면 예전에 스즈키컵 우승을 위해 열을 올리던 30년 전의 분위기를 한심하다며 비웃는 사람들이 생겨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이게 과연 온당한 일일까요? 베트남이 스즈키컵 우승을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인 2018년의 노력이야말로 훗날 베트남 축구의 성장을 위한 초석이 아닐까요?
오늘날의 팬들에게는 20세기에 아시안컵을 제쳐두고 아시안게임, 메르데카컵 같은 대회에 열을 올렸던 시절의 이야기가 웃음거리로 치부될 수도 있겠지만 과거 1970~80년대 당시의 시대상으로는 결코 웃음거리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과거의 그러한 시절이 밑거름이 되어서 오늘날의 한국 축구도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 (3)번 어그로에 대한 반박 ]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대목입니다. 아시안컵 우승팀이야말로 아시아 대륙의 진정한 챔피언이라는 칭호를 얻을 자격이 있습니다. 얼핏 그럴듯해 보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번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 20세기에 한국 축구가 아시아 맹주를 자처하던 시절인 1970~90년대 당시에도 한국은 아시안컵 우승과는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시절 이란은 아시안컵에서 3회 연속 우승을 달성했고 사우디아라비아는 5회 연속 결승에 진출해서 역시 3회 우승 타이기록을 달성했습니다. 하지만 이란과 사우디가 진정한 아시아의 최강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언론 매체에서는 이란이나 사우디의 아시안컵 우승을 별로 비중 있게 다루지도 않았고 일반 축구팬들은 아시안컵 대회에서 이란과 사우디가 얼마나 눈부신 성적을 달성했는지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조차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21세기 들어서 새삼스럽게 아시안컵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일본이야말로 진정한 아시아의 맹주라는 언론의 보도와 네티즌들의 댓글이 넘쳐나기 시작했습니다. 과연 아시안컵이라는 대회가 20세기에는 별로 중요한 대회가 아니었다가 21세기 들어서 갑자기 중요해진 것일까요?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미 이쯤 되면 눈치 빠른 사람들은 답을 찾았을 것입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아시안컵’ 자체보다는 그냥 ‘일본’의 존재입니다. 더 정확히 표현한다면 ‘일본 콤플렉스’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릴 것입니다.
지난 20세기에는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도 아시안컵에는 별로 신경을 안 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한국이나 일본 모두 월드컵과 올림픽에만 열을 올렸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월드컵과 올림픽의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필연적으로 맞붙을 수밖에 없는 숙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일본은 항상 한국의 벽에 가로막혀서 월드컵 본선 무대는 꿈조차 꿀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월드컵과는 달리 올림픽에서는 일본이 상당한 재미를 봤고 이미 1960년대까지 일본은 올림픽 본선 진출 4회째를 달성했고 1968년에는 동메달까지 획득했습니다.
이때 일본놈들은 주제넘게도 ‘축구의 탈아시아’를 선언하면서 아시아 무대는 우습게 보고 오직 세계 무대만 바라보겠다며 월드컵과 올림픽에만 열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월드컵 지역예선에서는 언제나 한국의 벽에 막혔고, 자신들이 강세를 보였던 올림픽에서조차도 일이 제대로 안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1970~80년대 들어서 일본 축구는 아시아 무대에서는 완전히 2류 수준으로 전락해서 쿠웨이트, 카타르, 중국에게도 번번이 깨지는 동네북 신세가 되었습니다. 오늘날의 중국 축구와 거의 비슷한 처지가 된 것이었습니다.
반면에 한국 축구는 월드컵과 올림픽 본선 진출을 위한 노력에 비해 아시아 내의 대회에서는 상대적으로 설렁설렁 임하는 경향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지난 20세기에 아시안게임에서는 우승 3회, 준우승 3회를 달성했고 아시안컵에서는 우승 2회, 준우승 3회를 달성했습니다. 1970년대에 이란에게 아시안컵 3회 연속 우승을 허용했고, 1980~90년대에 사우디아라비아에게 아시안컵 통산 3회 우승과 5회 연속 결승 진출을 허용했지만 당시 한국 사람들 중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그저 일본만 철저하게 짓밟아주면 포만감을 느끼고, 일본에 지면 분해서 잠을 못 이루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일본 따위는 상대도 안 됐던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아시안컵에서 우승을 못 하는 것은 전혀 걱정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다가 1992년 아시안컵 대회에서 우리나라는 평소 하던 대로 설렁설렁 임하다가 개판을 쳤는데, 이 대회에서 일본이 우승을 차지하면서 큰 충격을 받게 되고 이때부터 비로소 아시안컵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1992년 다이너스티컵 축구 대회 결승에서 한국은 일본에게 10년 만에 첫 패배를 당하며 큰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1994년 미국 월드컵의 아시아 최종예선이 열렸던 1993년에도 한국은 일본에 패배하며 또다시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사실 당시에도 결과만을 놓고 보면 한국은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했고 일본은 본선 진출에 실패했기 때문에 여전히 한국이 일본보다는 한수 위였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이 일본과의 맞대결에서 패배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한국 국민들은 자존심에 커다란 상처를 입었습니다.
이후 한국 축구계에서도 아시안컵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대두되기 시작했고, 1996년 아시안컵 대회 때는 꽤 많은 사람들이 TV 중계방송을 시청하면서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이때 한국 축구는 이란에게 6대2로 참패를 당하면서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억하는 부분은 딱 여기까지입니다. 이후 사우디아라비아가 8강전부터 준결승, 결승에 이르기까지 중국, 이란, UAE를 모두 차례로 승부차기로 꺾고 우승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아시아 맹주를 자처하는 한국이 사우디아라비아에게 추월당했고 라이벌 사우디아라비아가 승승장구하고 있는데 아무도 충격받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충격을 받기는커녕 당시 사우디아라비아가 어떤 성적을 거뒀는지 언론에서 제대로 다뤄주지도 않았고 축구 팬들도 그 당시의 상황을 제대로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한국을 제치고 아시아 1위로 본선에 진출해서 16강에 진출한 뒤 1996년 아시안컵에서 통산 3회 우승을 달성하며 명실상부한 아시아의 맹주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 축구 팬들은 충격을 받기는커녕 사우디가 우승을 했다는 사실조차도 제대로 기억하거나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어째서 이런 불가사의한 현상이 벌어졌을까요?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1996년 아시안컵 대회에서는 일본도 우리랑 똑같이 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조별리그에서 한국 대표팀이 1승 1무 1패 조 3위에 그치는 졸전을 펼쳤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일본은 조별리그에서 유일하게 3전 전승을 기록하며 당당하게 조 1위로 8강에 진출했고 당시 국내 언론에서는 잘나가는 일본과 졸전을 거듭하는 한국 대표팀의 상황을 비교하며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8강전에서 일본은 쿠웨이트에게 패배하며 한방에 훅 가버렸습니다. 이후 우리나라가 이란에게 대참패를 당하며 엄청난 비난여론이 쏟아지기는 했지만, 그 이후 사우디아라비아가 준준결승, 준결승, 결승에서 3연속 승부차기로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하기까지의 과정은 국내 언론에서 전혀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이 대회에서 우리나라가 개판을 쳐서 충격을 받기는 했지만 일본도 같이 망했기 때문에 그나마 충격이 덜했던 것입니다.
1996년 당시 국내 축구팬들은 애틀랜타 올림픽 아시아 최종예선 결승전에서 한국이 일본에게 2대1로 짜릿한 승리를 거두고 우승을 차지했던 당시의 상황은 매우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1996년 아시안컵에서 한국과 일본이 똑같이 8강에서 탈락하며 쫄딱 망하고 중동 팀들끼리만 4강에 진출해서 사우디아라비아가 최후의 승자로 떠올랐던 과정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아시안컵의 중요성을 그렇게나 강조하는 사람들의 태도라기에는 참으로 불가사의하지 않습니까? 애초에 사람들의 진짜 관심사는 아시안컵 자체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저 “일본! 일본! 일본! 일본! 일본!”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이후 1999년~2001년에 이르는 3년의 시간 동안 한국 축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참담한 굴욕을 맛봐야만 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일본 축구가 한국 축구를 추월해서 멀찌감치 앞서나가기 시작했고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1999년 세계청소년축구 대회에서 일본이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한국 축구 팬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시아 무대에서는 항상 한국이 일본과의 맞대결에서 연전연승을 거두며 우승을 독차지했지만 세계 무대에만 나가면 일본이 더 앞서가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사실 세계청소년축구 대회에서도 이미 1981년에 카타르가 먼저 준우승을 차지한 역사가 있지만 이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고 설사 나중에 알았다고 치더라도 거기에 별다른 감흥을 받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오직 1999년 일본의 준우승만이 한국 팬들에게 엄청난 충격과 감흥으로 다가왔을 뿐입니다.
그밖에도 1989년 16세 이하 세계청소년축구 대회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우승을 차지했다거나 1950년대에 인도가 올림픽 축구 4강에 진출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고 설사 나중에 그 사실을 알았다 해도 한국 축구팬들은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저 한국 축구팬들은 1968년 올림픽에서 일본이 동메달을 획득한 사실만을 기억하고 있을 뿐이고, 오로지 일본 축구계의 성과에 대해서만 감탄하고 찬사를 늘어놓기 바쁠 뿐입니다.
이후 2000년 아시안컵 대회에서 일본이 통산 2회째 우승을 차지하면서 성인 국가대표팀마저도 한국을 추월해서 명실상부한 아시아 최강자의 지위에 올라섰습니다. 이때 한국 축구팬들은 또다시 충격과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아시안컵 대회를 휩쓸던 시절에는 그런 대회가 존재하는지조차도 제대로 몰랐던 사람들이 일본이 아시안컵에서 우승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이때부터 아시안컵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대두되기 시작했습니다.
2001년에 컨페더레이션스컵 대회에서 일본이 준우승을 할 때 한국 축구팬들은 단순한 부러움이나 위기감을 넘어서 엄청난 굴욕감과 열등감마저 맛봐야 했습니다. 사실 컨페더레이션스컵 대회에서도 사우디아라비아는 1992년 준우승, 1999년 4위를 차지한 역사가 있고 호주는 1997년 준우승, 2001년 3위를 차지한 역사가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축구팬들 중 이러한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고 설사 나중에 검색을 통해서 정보를 접한다 한들 전혀 감흥을 못 느낍니다. 그저 2001년 일본이 준우승을 차지했다는 사실만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감탄하고 찬사를 늘어놓기에 바쁠 뿐입니다.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당시 한국 축구계가 1승 내지는 16강 진출이라는 소박한 목표를 세우고 있을 때 일본 축구계는 16강 정도는 당연히 가는 걸로 생각하는 분위기였고 8강 진출을 호언장담하고 있었습니다. 과거 월드컵에서 북한이 8강에 진출하고 사우디아라비아가 16강에 진출하고 이란이 1승을 거뒀을 때 한국 축구팬들의 반응은 그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일본이 8강 진출을 호언장담하기 시작하자 한국 축구팬들은 한편으로는 엄청난 위기감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앞서가는 일본의 체계적인 투자와 치밀함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기에 바빴습니다.
하지만 한국 축구는 전통적으로 개판을 치다가도 궁지에 몰리면 “일본에게만큼은 절대 질 수 없다”는 위기의식으로 인해서 본래 실력의 200% 내지는 300%까지 끌어올리는 불가사의한 힘을 발휘하곤 했습니다. 2002년 월드컵의 4강 신화와 2012년 올림픽의 동메달 신화는 그러한 위기의식이 바탕이 되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저력을 발휘하면서 아시아 맹주의 지위를 가까스로 지켜내기는 했지만, 여전히 아시안컵에서는 고비 때마다 무너지는 징크스를 극복하지 못했고 그 사이 라이벌 일본은 좀 더 내실을 탄탄히 다져오면서 어느덧 아시안컵 최다 우승팀이 된 것입니다.
일본의 발전에 경각심을 느끼고 우리도 분발하자는 원론적인 차원의 문제제기는 분명 한국 축구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분위기를 보면 단순히 그런 자극을 주는 차원을 넘어서서 아예 댓글 게시판에서 ‘갓본, 조센징’ 같은 망발을 일삼는 관심종자들이 창궐하면서 분노를 유발시키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특히 2018년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한국이 일본을 꺾고 금메달을 획득했을 때 일본의 패배를 진심으로 아쉬워하는 무리들이 생각보다 꽤 많이 창궐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본이 조금이라도 부진하거나 기대 이하의 모습이 비춰질 때마다 “전설의 1군 드립”은 단골 메뉴가 되고, 어떤 때는 앞뒤 맥락도 없이 “인정할 건 인정하자”, “배울 건 배우자”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면서 일본 찬양에만 열을 올리는 관심종자들이 튀어나오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아시안컵의 중요성을 그토록 강조하면서 일본이야말로 아시아의 맹주라며 찬양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정작 아시안컵 3회 우승, 3회 준우승의 금자탑을 이룩한 사우디아라비아를 발뒤꿈치 때만도 못한 취급을 하면서 개무시하는 것도 말이 안 되는 태도입니다. 애초에 그들에게는 아시안컵 자체가 중요했던 것이 아니라 그냥 일본을 찬양하기 위한 구실로 아시안컵을 이용하는 게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2019년 아시안컵에서 실제로 한국이 우승을 할지 또는 이란이나 일본이 우승을 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혹시라도 이란이 우승했을 경우와 일본이 우승했을 경우에 네티즌 댓글이 어떻게 달릴지 그 분위기가 왠지 훤히 예상이 됩니다.
아마도 이란이 우승할 경우에는 “이란의 침대축구는 아시아의 수치다”, “이란의 더티한 침대축구는 아시아에서나 통할 뿐 세계 무대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이란은 더티한 축구를 해서 세계 무대에서는 발전할 수 없다”는 댓글이 달릴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혹시라도 일본이 우승할 경우에는 “역시 갓본”, “일본은 역시 체계적이고 치밀하다”, “일본이 부럽다”, “역시 일본은 대단하다.”, “일본을 배우자, 인정할 건 인정하자” 같은 댓글이 줄줄이 달릴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분명 아시안컵이라는 대회는 매우 중요한 대회가 맞고, 일본에 대한 라이벌 의식을 통해서 적절한 자극을 받는 것도 한국 축구의 발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만한 요소일 수는 있습니다. 아시아 맹주를 자처하는 한국이야말로 아시안컵 우승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아시안컵이나 아시안게임 같은 대회가 개최될 때마다 인터넷 게시판에서 일부 네티즌들이 어그로 끄는 내용들을 보면 그 속셈이 훤히 들여다보일 때가 종종 있습니다. 아시안컵의 중요성 자체보다는 그저 일본을 찬양할 구실이 필요하다고 느껴질 때가 더 많습니다. 게다가 이런 걸 제대로 분별하고 걸러내야 하는 것이 언론사 기자들의 역할인데, 요즘 스포츠 기사 쓰는 기자들의 수준은 그냥 네티즌 댓글 베껴쓰기 수준밖에 안 되는 것 같아서 한국 축구 발전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역효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때가 더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