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중국 축구의 공한증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사람들이 갖는 일종의 고정관념 같은 것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중국이 우리보다 수준이 한참 떨어져서 우리한테 맨날 지면서 공한증이라는 말이 생겼고, 중국이 축구에 투자를 열심히 하면서 중국 축구가 성장해서 공한증이 깨졌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실제로는 그 반대입니다. 오히려 예전에 우리가 중국 축구를 얕잡아보던 1980~90년대 그 시절이 오히려 지금보다는 훨씬 강했습니다.

 

   ‘공한증이라는 신조어가 처음 생겨나게 된 시점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과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이렇게 두 차례의 올림픽 최종예선을 치르던 시점입니다. 그리고 굳이 공한증이라는 표현이 생겨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저의 경우 1980년대에 중국이 아시안컵을 준우승했다거나 이런 건 검색으로만 알고 있는 거라서 피부로 확 와닿지는 않는 편이지만, 1990년 다이너스티컵 중국과의 결승전 때부터 축구를 제대로 보기 시작했고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최종예선을 시청했던 당시의 추억에 대해서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아시아 최종예선에는 한국, 중국, 일본, 쿠웨이트, 카타르, 바레인 이렇게 6개 팀이 진출해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르에서 풀리그로 순위를 가렸고 3장의 본선 티켓이 걸려 있었습니다. 당시 전문가들의 예상은 개막전에서 맞붙는 한국과 쿠웨이트의 전력을 50 50으로 예상했고, 한국과 쿠웨이트가 확실한 우승후보 2, 나머지는 다 고만고만한 수준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그 시절의 중국 축구도 물론 아시아 정상권과는 거리가 있었고 우리보다 한수 아래였기는 하지만 그래도 요즘처럼 동네북 수준까지는 아니었습니다. 한국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 신세였고 이란, 이라크에도 약한 편이었지만 일본, 사우디, 쿠웨이트, 북한 등에는 강한 면모를 보였습니다.

 

   특히 1990년대 초반에는 중국이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과 올림픽 아시아 최종예선에 연달아 진출하는 과정에서 모두 북한과 일본에게 승리하면서 아시아 6위권 이내에 진입했고 아시안컵에서 3개 대회 연속 4강에 진출했고, 1990년 제1회 다이너스티컵 축구 대회에서도 비록 홈의 이점이 있기는 했지만 북한과 일본을 모두 잡았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중국 축구계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어서 북한과 일본을 비교적 만만하게 보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을 꺾는 것을 일종의 숙원처럼 여기고 있던 분위기였습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아시아 최종예선 개막전에서 한국은 쿠웨이트와 고전 끝에 1:1로 비겼습니다. 이임생의 퇴장으로 숫적 열세 속에서 간신히 위기를 넘겼습니다. 카타르가 바레인을 1:0으로 이겼고 중국이 일본을 2:1로 이겼습니다. 한국의 맞수였던 쿠웨이트는 일본과도 1:1로 비긴 뒤 중국에 2:1로 졌습니다. 카타르는 바레인과 중국에 이어 한국까지 1:0으로 꺾고 3연승을 올리는 파란을 일으켰습니다. 당시 한국은 카타르전 패배로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초반 3경기를 치른 상태에서 카타르가 3연승으로 선두, 중국이 21패로 2, 한국과 일본이 111패로 동률인 상태에서 골득실차로 일본이 3, 한국은 4위로 처졌습니다. 쿠웨이트가 21, 바레인이 3연패로 처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쪽바리들이 갑자기 3차전에서 바레인을 6:1로 폭격해서 당시 우리나라가 화들짝 놀란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운명의 한일전이 벌어졌고 당시 TV 해설자들은 과거 선배들이 보여줬던 한국 축구의 일본 축구에 대한 우월감을 강조했습니다. 결과는 후반 43분 김병수의 극적인 골로 1:0으로 승리하면서 위기에서 탈출했습니다.

 

   그리고 중국은 4차전에서 바레인을 이기고 31패째를 기록했고 쿠웨이트가 카타르를 3:0으로 이겼습니다. 당시 카타르가 형제국가인 쿠웨이트한테 일부러 져줬다는 의심을 받았습니다. 5차전까지 치른 상태에서 중간 순위는 중국과 카타르가 31패 동률인 가운데 골득실차로 나란히 1, 2위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한국이 211패로 3, 쿠웨이트가 121패로 4, 일본이 112패로 5, 바레인이 4패로 6위였습니다.

 

   마지막 최종전인 6차전의 대진은 한국 vs 중국’, ‘쿠웨이트 vs 바레인’, ‘카타르 vs 일본이었습니다. 당시 한중전이 펼쳐지기 직전까지의 순위에서 중국이 1위를 달리고 있었고 한국은 간당간당하게 3위였기 때문에 중국 쪽에서는 자기네들 나름대로 충분히 기대감을 가질 만했던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승부는 이미 초반 10분만에 판가름이 났습니다. 전반 2, 4, 9분 이렇게 순식간에 한국이 3골을 넣었고 중국 애들은 뭔가에 홀린 것처럼 그냥 순식간에 무너졌습니다. 후반전에 하오하이동이 1골을 만회해서 최종 스코어는 3:1 한국의 승리였습니다.

 

   최종전에서 한국이 중국에 3:1로 승리, 쿠웨이트는 바레인에 3:0으로 승리, 카타르는 일본에 1:0으로 승리했습니다. 최종 순위에서 카타르, 한국, 쿠웨이트가 순위가 한 계단씩 올라서 1, 2, 3위로 올림픽 본선 진출 티켓을 획득했고 중국은 4위로 미끄러지면서 탈락했습니다. 최종 성적은 카타르 41, 한국 311, 쿠웨이트 221, 중국 32, 일본 113, 바레인 5패였습니다. (당시에는 승리팀의 승점이 3점이 아니라 2점이었습니다.)

 

   당시 중국은 일본, 쿠웨이트를 모두 꺾었고 한국이랑 맞대결을 벌이기 전까지 1위를 질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중전을 치르기 직전까지도 뭔가 기대감에 가득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한중전을 시작한 이후 초반 10분만에 순식간에 무너져 버렸습니다. 이건 그야말로 컴플렉스라고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습니다. 이때 중국 언론에서 공한증이라는 신조어가 처음으로 탄생한 것입니다.

 

   4년 후인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아시아 최종예선에서는 한국, 사우디, 중국, 카자흐스탄이 B조에 편성되었습니다. 2위까지 준결승에 진출할 수 있었는데 한국과 중국은 모두 카자흐스탄에는 승리하고 사우디와 비기며 11무 동률을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골득실에서 앞선 중국이 선두를 달리고 있는 상태에서 한중전이 열렸습니다. 이때도 중국은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품고 나섰지만 또다시 천적인 한국에게 처참하게 무너졌습니다. 한국은 전반전에 이기형의 중거리슛으로 선취골을 넣은 뒤 후반전에 2골을 추가하며 3:0으로 완승을 거뒀습니다.

 

   두 차례의 올림픽 예선에서 중국은 모두 한국 이외의 팀을 상대로 해서는 꽤 발전한 모습을 보였고 1위를 달리고 있다가 마지막 최종전에서 한국에게 완패를 당하는 패턴으로 무너졌습니다. 그래서 중계방송을 하던 우리나라의 해설진들도 이건 한국 콤플렉스라고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는 멘트를 했었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공한증이라는 표현이 한국의 언론에도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중국의 국가대표팀도 1990년대 후반에는 상당히 발전된 모습을 보였습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중국은 A조에서 이란, 사우디, 쿠웨이트, 카타르와 한 조에 편성됐습니다. 당시 중동에 유독 강한 면모를 보였던 중국은 이란에게는 두 경기 모두 4 2, 4 1로 개박살이 났지만 사우디에게 11, 쿠웨이트에게 2, 카타르와 11패를 기록하며 선전했습니다. 1998년 제4회 다이너스티컵 축구대회에서 한국은 일본에게 2 1로 패한 뒤 중국에게 2 1로 역전승을 거뒀는데 중국이 최종전에서 일본에게 2 0으로 이기면서 세 팀이 21패로 동률을 이뤘고 최종 순위에서 일본 1, 중국 2, 한국 3위를 기록했습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한국은 또다시 중국과 같은 조에 편성되었습니다. 이때는 중국에 절대로 져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점이었습니다. 당시 중국과의 홈경기에서 한국은 1 0으로 간신히 이겼는데 한중전 역사상 가장 피말리는 승부였습니다. 당시 신병호의 결승골은 골포스트를 맞고 골라인 안쪽에 살짝 걸쳤다가 튀어나왔습니다. 제대로 골망을 가르지도 못하고 골라인 안쪽을 살짝 찍고 튀어나온 그 순간을 포착해서 골로 인정이 되었고 그렇게 해서 1 0으로 승리했습니다. 역대 한중전에서 기록한 골 중 가장 아슬아슬하게 들어간 골이었습니다. 이후 원정경기에서는 1 1로 무승부를 기록했습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한국은 4회 연속으로 중국과 같은 조가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한국, 이란, 중국이 함께 같은 조에 편성됐습니다. 이때는 중국에 대한 경계심이 조금은 이완됐고 중국보다는 이란을 더 경계하던 시절이지만 그래도 중국을 만만히 볼 수는 없는 상대였습니다. 중국과의 홈경기에서는 최성국의 골로 1 0으로 간신히 이겼습니다. 당시 중국은 이란과의 맞대결에서는 홈에서는 3 1 역전승, 원정경기에서는 2 1 역전패로 11패를 기록하며 선전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게는 2전 전패로 여전히 약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홈에서 중국에게 고전했던 한국은 원정경기에서는 중국에게 2 0으로 완승을 거뒀습니다.

 

   이후 중국 축구의 상승세에서 이상징후가 포착된 건 2004년 아시안컵 대회에서였습니다. 당시 중국은 8강전에서 이라크를 3 0으로 대파하고 준결승에서는 이란에게 승부차기로 승리하며 결승에 진출했습니다. 결과만 놓고 보면 엄청난 성과를 올린 것 같지만 이상하게 중국이 별로 강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1990년대 후반 당시의 중국은 최종 결과물을 얻어내지는 못했지만 뭔가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팀이라는 느낌이 들었는데, 2004년 아시안컵에서 보여준 중국의 모습은 준우승팀인데도 전혀 강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냥 홈 이점과 편파판정으로 어거지로 결승에 올린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때 결승전에서 중국은 일본에게 3 1로 패배했습니다. 과거 1980~90년대까지만 해도 중국 축구는 한국만을 두려워했고 일본은 만만히 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상대전적에서도 중국이 일본한테 우위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 중국은 두 차례의 아시안컵에서 일본에게 연속으로 패배했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짱깨들은 쪽바리들하고 붙을 때마다 패배하면서 공일증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2006년 독일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중국은 최종예선 진출해도 실패했습니다. 한참 상승세를 타던 중국 축구가 어느 순간부터인가 조금씩 이상징후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그냥 한방에 훅 가버렸습니다. 이때부터 중국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고, 예전에 잘 잡았던 카타르나 아랍에미리트, 우즈베키스탄에게도 툭하면 지면서 완전히 동네북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한국 축구계에서 중국에 절대로 져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 같은 건 그냥 잊혀졌습니다. ‘공한증이라는 표현도 그냥 허접한 짱깨 축구를 얕잡아보는 말로 원래부터 있었던 말인 것처럼 그런 식으로 고정관념이 생겨버렸습니다. 2010년대 들어서 이제 중국 축구 따위는 한국에게는 안중에도 없었고 어쩌다가 중국이랑 라이벌로 거론이라도 되면 엄청난 치욕으로 받아들여질 정도가 되었습니다. 중국에게 진다는 건 그야말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공한증이라는 표현이 거의 잊혀져갈 무렵에 어느 날 갑자기 중국에게 3 0으로 깨지는 충격적인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이런 겁니다. 과거에 중국이 한창 위협적으로 떠오르던 시절에는 중국에게 절대 져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한중전에 임하는 정신자세가 남달랐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쪽바리들을 상대로 비슷한 과정을 거쳤던 교훈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쪽바리들에게 진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쪽바리한테 지는 게 그렇게까지 놀라운 일은 아닌 시대에 살게 되었습니다. 짱깨한테도 한 번이라도 자신감을 심어줄 경우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확고한 위기의식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중국 따위는 신경 쓸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그냥 지들이 알아서 자멸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짱깨 따위는 대충대충 설렁설렁 뛰어도 가볍게 이긴다는 자만심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정말 말도 안 되는 순간에 2패나 기록하게 됐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짱깨가 잘해서 우리가 진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짱깨가 축구를 잘하던 시절에는 우리는 절대 지지 않았습니다. 짱깨가 아시아에서 완전히 개허접이 돼서 카타르, 바레인 등을 상대로도 쩔쩔 매기 시작하던 그 시점에 상대를 얕잡아보다가 자만심때문에 허를 찔린 것입니다.

 

   사실 이번 아시안컵에서의 중국전도 사실 실력만 놓고 보면 중국 따위는 절대 두려워할 게 못 되고 중국한테 진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아시안컵 대회 직전에 평가전에서 중국이 보여줬던 꼬라지를 생각한다면 중국에 진다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일 것입니다. 네티즌들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선수들도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바로 그 자만심이 우리가 한중전을 치를 때 가장 두려운 점입니다.

 

   하필이면 타이밍이 참 거시기하게도 중국이랑 비기기만 해도 8강에서 이란을 만나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무조건 이겨야 되는 상황인데 이 부담감이 그냥 말 그대로 부담감으로 끝날 것인지, 아니면 위기의 순간에 번쩍 하는 특유의 정신력으로 승화될지 여부는 한번 지켜봐야 될 일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벼랑 끝에 몰렸을 때마다 저력을 발휘했던 그 특유의 정신력이 되살아날지가 이번 한중전의 관전 포인트일 듯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