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이씨(廣州李氏) 문경공파(文景公派) 도유사후보 추천관계로 서울에 상경하였습니다
광주이씨대종회에는 열개의 종회가 있으며 우리는 광성군 문경공파 종회입니다.
文景公(諱克堪)行狀
충희공(忠僖公) 인손(仁孫)의 이자(二子)이며 극배(克培)의 제(第)로 자(字)를 덕흥(德興)이라 하고
호(號)가 이봉仁峯)이다.
세종世宗) 갑자년(甲子年)에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여 집현전정자(集賢殿正字)가 되고, 곧 한원(翰苑)
에 들어갔다
저작(著作) 우찬독(右贊讀), 응교(應敎), 예문관(藝文館), 시교(侍敎), 설서(設書), 봉교(奉敎),
겸사서(慊司書)를 하고 얼마 후, 박사(博士), 이조좌랑使曹佑郎)에 올랐다.
정묘년(丁卯年:1447)에는 중시(重試)에 합격하여 지제교(紙製敎)에 오르니 이때부터 항상 지제교(紙製敎)
를 겸직(兼職)하였다.
이조정랑(吏曹正郎), 부교리(副敎理)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검상(檢詳), 사헌부정언(司憲府正言) 등을
거치어 수찬(修撰), 교리(校理), 장령(掌令)에 올랐다
이어서 응교(應敎), 전한(典翰)으로 옮긴 후, 문종(文宗) 신미(辛未: 1451)에 호당(湖堂)에 뽑히어 독서
사가(賣書賜暇)를 받고 고려 절요(高麗節要)에 찬정(撰定)하고 사인(舍人), 상주목사(尙州牧使), 팔도순찰
(八道巡察使), 이조참의(吏曹參議),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이 되어 학풍(學風)을 일으키는데 힘썼다.
세조원년(1 illt 1455) 수중위사동덕㈲忠衛社同德), 좌익공신佐翼功臣)에 들어 광성군(廣城君)에 봉군
封君)되었다
동부승지(東副承旨), 우부승지佑副承旨), 좌부승지佐副承旨), 우승지佑承旨), 좌승지(左承旨)를 거치어
도승지(都承旨), 부제학(副提學)이 되었다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재배되어 홍문관(弘文館), 예문관제학(藝文館提學)을 겸(兼)하여 세자빈객(世子賓客)
이 되었으며 병술(丙戌 )에 호조참판 (戸曹參判)을 하고 겸(兼)하여 도진무(都鎭撫),사웅제조 (司饔提調),
목장제조(牧場提調)로 삼으니, 세조(世祖)의 지우(知友)가 대단하였다
임오(壬午)에 충훈부(忠勳府) 광성군(廣成君)이 되었고 세조8년(世祖8년) 형조판서(刑曹判勘에 올랐으니
형조판서(刑曹判書)가 되어서 옥이 빌 정도로 일 처리에 능하였다.
세조9년(世祖9) 7月이인손(李仁孫)이 졸(卒)하자, 기복(起復)할 것을 말하였으나, 이어 모친(母親)이 졸
(卒)하므로 득병(得病)하여 세조11년(世祖11年) 졸(卒)하니, 학문(學問)을 부지런히 하고 문기를 좋아하는 것 을 문(文)이라 하고 마음이 능히 의리를 제어하는 것을 경(景)이라 하여 문경(文景)이라 시호(諡號)하였다.
오랫동안 예종(睿宗)의 스승으로 있었다.
사관(史官)은 발하기를, “이 극감(李克堪)은 사람됨이 뜻이 크고, 기개(氣槪)가 있어서 남의 구속을 받거나
굽히지 않고 이치(吏治)에 달동하게 알며 중의(衆意)를 통쾌하게 하며, 문장을 함에 민첩(敏捷)하였다."
라고 하여 선초국사(鮮初國士)로 추앙받았다.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문종실록(文宗 實錄),능엄경(楞嚴經), 신찬국조보감(新撰國朝寶鑑),
훈사발(訓辭 發), 북정록(北廷錄)에 찬정(撰定 )하였다.
서울 남부 터미널
지하철 3호선
조선시대 북촌과 종로 사이라는 지리적 특징 덕에 역관, 기술자, 예술가 등 양반 계급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중인들이 주로 살던 지역이었다. 자연히 조선 초기부터 예술관련 업종이 번성했으며 조선 미술의
중심 지로 발전하게 되었다.
1930년대 인사동길 주변에 서적 및 고미술 관련 상가가 들어서기 시작해서 골동품 거리로 자리잡게 되었다 1950년 한국전쟁 이 후 지금의 낙원상가 아파트 자리에 낙원 시장이 형성되었고, 평양떡집이 개업한 후
현재와 같은 떡집 골목이 만들어졌다.
1970년대 대한민국 최초의 상업적 성격을 띤 현대 화랑이 문을 열었다. 차례 로 상설전시 및 판매장 형식의 화랑들이 늘어나면서 미술문화 거리로써의 성격이 강화되었다.
1980년대는 골동품, 화랑 고가구점, 화방, 민속공예품 등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상점들이 속속 들어선다.
고미술, 현대미술을 뛰어 넘는 대한민국 전통문화와 복합 예술의 중심지가 되었다.
2000년대 전국 최초로 문화지구로 선정된 인사동은 2011년부터는 차 없는 거리에 지
정되었다. 길이 0.7km, 너비 12m의 짧고 좁은 길임에도 불구하고 하루 3만 명에서 5만 명의 국내외 관광객이 찾는 전 세계가 사랑하는 거리로 성장하고 있다.
작품명 : 일획을 긋다, 작가명 : 윤석영
본 작품은 일획을 긋다는 2007년 서울시 도시갤러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인사동 상징물 지명
공모를 통해 선정되었습니다
인사동 청사초롱 광장
문전박대
해질 무렵 남의 집 문을 두드리니
주인놈은 손을 휘저으며 나를 쫒는구나
두견새도 야박한 인심을 알았음인지
돌아가라고 숲에서 울며 나를 달래네
김병연 (김삿갓)
광주이씨대종회관
광주이씨문경공파종회
둔촌 선생
문경공파종회 역대 도유사
양호당공종회에서 차기 도유사를 추대하자는 문중회의
맛있는 삽겹살
비빕밥까지 맛있게 식사하였습니다
천안 논산간 고속도로 정안 휴게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