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일상 속에서 흔히 일어날 만큼 작은 일이 계기였습니다. 친구가 듣던 CD플레이어를 잠깐 들었죠. 1분도 채 지나지 않았을 거에요. 그 짧은 시간에 제 마음은 그 음악에 꽂혀버린 것이지요. 그때 그 음악에 너무 심취해서 꼭 파일로 구하고 싶었어요. 지금으로부터 20년도 더 되는 때니까 일본 음악 듣는 사람은 그때 진짜 적었을 겁니다. 소수 마니아들 사이의 전유물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거 구하려고 PC통신 어딘가 들어가서 많이 찾다가 마니아들이 모여있는 작은 클럽에서 발견한 것 같네요. 그리고 몇 시간인지 몰라요, 지금이라면 수 초 걸릴 작은 건데 당시엔 수 시간이 걸렸어요. 꽤나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모뎀이어서 그 정도가 걸렸던 거죠. ADSL이 상용화 되기 전 단계에서 쓰이던 최고 사양 모뎀이었습니다. 그렇게 다운로드를 받아놓고 마음이 굉장히 뿌듯했던 걸로 기억하네요.

  제가 고등학교를 다닐 무렵은 일본 문화가 서서히 개방 되어지던 분위기였어요. 이와이 슈운지 감독의러브 레터아시는 분이라면 공감하시겠죠. 저는 학생 때라 극장엔 안 갔었고, 대신 OST를 많이 들었었죠. 아마 제 누나가 그 영화를 보러 갔던 것 같기도 하고, 그 시기에 일본을 자주 접해서 인지 대학 들어갈 땐 일본어 전공을 선택하더라구요. 저는 더 좋아하던 것이 음악이었고 조금씩 듣는 음악을 넓혀가며 다양한 음악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어요. 음악의 즐거움은 끝이 없었습니다. 아니 그렇게 느껴진 것이라고 해야겠죠음악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건 그런 저에게 있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고 봅니다. 제가 매력을 느꼈던 악기는 전자 기타인데요. 보면 볼수록 멋있고 기타리스트는 최고로 멋있는 사람이라는 확신까지 생겼죠. 그래서 저는 기타 연주자가 되고 싶어했습니다. 처음엔 멋있어 보여서 그리고 음악을 좋아했기에 시작했어요. 제가 음악에 소질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난 젊으니까 뭐든지 시도할 수 있고 노력해서 안 될 일은 세상에 없다 라고 믿었습니다.

  생애 첫 전자 기타를 손에 쥔 건 고등학교 2학년 초기였죠. 언제나 그랬듯이 학교 공부는 제 관심 밖이었고 내가 좋아하는 기타를 어떻게 하면 빨리 잘 연주할 수 있게 되나 하는 생각으로 가득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발전된 생각은 사람들에게 인정 받을 수 있는 최고의 기타리스트가 되자는 꿈이었습니다. 학창 시절 순수 내 욕심에서 불러 일으킨 욕망의 산물이 바로 뮤지션의 꿈이었던 것입니다. 꿈꾸기를 악한 것으로 몰아가려는 의도는 아닙니다만, 말이 좀 심하게 나온 것도 같네요. 일단 제 자신을 비판한 것이니 그렇게 이해해 주십시오.

  이번에는 꿈꾸기에 관해서 생각들을 풀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선 꿈을 가지는 건 좋은 현상일까, 혹시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제 이야기를 해보자면, 제가 꾼 꿈은 최고의 뮤지션이 되고 싶은 것이라고 아까 말씀 드렸는데요. 그것이 저에게 유익이 되었나 묻는다면 저는 아니오 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저는 음악에 재능을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더불어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자 하는 불순한 의도가 섞여 제 자신에게 과도하게 몰입하는 결과를 맺었습니다‘아니 최고가 되려는데 그게 왜 불순해요? 꿈도 야무지지 라는 말도 있는데!’ 그렇죠. 대략 꿈은 크게 가져야지 하는 인식이 우리 가운데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유는 뭘까요? 왜 최고가 되어야 하나, 혹시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최고가 되려는 건 아닐까요? 아닐 수도 있을 겁니다. 그냥 맹목적으로 목표치를 높게 잡아서 자신의 한계가 어디까지 인지 시험해 보고자 하는 이유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어느 쪽이든 마찬가지라고 하겠습니다. 어느 케이스라도 한 가지로 귀결됩니다. 그는 자신에게 매우 관심을 가지고 있죠. 결국 자기 만족을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꿈꾸기를 부정적으로 여기는 이유 한 가지가 되겠습니다.

  저는 아직도 제 자신이 자기 만족을 위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낍니다. 하나님의 뜻보다 내 뜻을 따라 행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왜 그런 생각을 가지냐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두 가지를 구분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행위와 자기 뜻대로 하는 행위 말입니다. 자기 만족을 위한 삶은 자기 뜻대로 하는 행위이기에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그 시절 제가 자기 만족을 위해 음악을 하던 삶은 하나님과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을 거스르는 삶이었기에 지금도 죄송할 따름입니다.   

  ‘자기 만족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해악이 크며 동시에 인간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만족을 추구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젊어서 고생해 가며 돈을 버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늙어서 여생을 행복하게 보내고 싶어서겠지요. 성공을 추구하는 이유도 비슷할 것입니다. 여생을 만족스럽게 살다가고 싶은 거에요. 곧 이런 식으로 귀결되겠군요. 불만족-만족-죽음. 

  그렇다면 불만족할 시기를 거의 거치지 않고 만족스러운 인생을 살고 있다면 나중은 어떤 식으로 귀결될까요? ‘계속 행복하다가 늙어서 죽겠죠, 사실 저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이런 케이스가 있다는 사실을 아십시오. 만족-불만족-비극적인 죽음.

  ‘아니 성공한 사람에게 불만족이라니! 말이 안 되잖아요!?’ 하하, 저도 잘은 모릅니다. 하지만 사람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다면 분명 불만족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예로 든다면, 이른 나이에 성공한 배우들이 있습니다. 노년까지 쭉 좋은 배우로 있어 주었으면 좋으련만 중간에 술과 약물에 빠져 재기하지 못하고 잊혀진 경우 죽는 경우가 가끔 있어요. 전세계를 열광시켰던 어느 유명 가수가 자기 관리에 실패해서 젊어서 요절하는 경우도 예가 되겠죠자기 만족도 욕망에 속하기 때문에 끝이 없답니다. 끝없이 우리 속에서 달라구 요구해 옵니다. 탁구공만하던 요구 사항이 야구공만하게, 그 다음 핸드볼만하게, 그 다음 배구공만하게, 축구공만하게, 농구공만하게 점점 큰 것들을 요구해 오죠. 왜냐, 만족이란 내가 경험했던 내가 누렸던 것보다 적으면 오지 않거든요. 그러니 더 큰 것이 필요해요. 그렇게 크기를 늘려나가면 나중에 감당할 수 없는 크기에 이릅니다.

  이것이 소수 극단적인 케이스라고만 여길 수는 없습니다. 많은 이들의 삶 가운데 역시 나타나고 있으니까요. 그 일을 감당하고 있는 존재들이 있습니다. 악한 영 곧 사탄의 수하들입니다. 그들이 하는 일들이 무엇인지 아시죠. 사람을 멸망으로 이끌어 갑니다. 가장 잘 쓰이는 미끼는 역시 쾌락이고요. 처음 그들이 다가와 내미는 선물은 딱히 거절할 필요가 없는 작은 것에 불과합니다. 만약 이를 좋아하고 받아들이면 조금씩 그들의 영향력 안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들이 주는 선물에 의존하면서 조금씩 자유를 박탈당하게 되는 것이죠. 점차 자극이 강해지는 동안 사람은 마치 족쇠에 걸린 노예처럼 그들에게 종속됩니다. 그들은 쾌락만이 아니라 두려움까지도 넣어주는 데요.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서 술과 약물에 손을 댑니다. 나중에는 몸과 마음이 전부 피폐해져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게 됩니다.

  결론을 내자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자기 꿈을 꾸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뜻에 집중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에게 사명을 알려주십니다. 사명은 하나님의 뜻이기에 꿈과는 다릅니다. 사람이 태어나기 전부터 예비된 것으로써 하나님의 크신 섭리 가운데 속한 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명은 꿈 이상으로 그 사람에게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명을 따라 사는 삶을 택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