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적하는 죄
마태복음 5장 39~42절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왠지 간디 선생님과 비폭력 무저항주의가 떠오르는 말씀이네요. 상대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좀 다르겠지만, 쉽사리 그런 결정을 내놓는다는 건 쉽지 않죠. 특히 요즘 세상엔 악한 자는 물론이거니와 정신이상자도 부지기수로 많습니다. 약자이거나 얕보이면 무슨 험악한 일들을 당할지 모르는데 대적을 하지 말라니 심히 가혹한 말씀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무슨 의미로 이 말씀을 주셨는지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선 하나님께서 악한 자의 편에 서시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은 악인을 심히 미워하시며 약하고 억울한 일 당한 자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악한 일에는 반드시 보응이 따릅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행위대로 정확히 갚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시행되기에 거기에 사람이 개입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본인이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라면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고서는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함이 마땅한 처사겠지요. 또 다른 면에서 볼 때, 보복의 행위로 인해 죄가 발생할 여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보복은 다시 보복을 불러들여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기네요. 그렇다면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악한 자에게 대항하지 말아야 할까 하는 문제이지요. 매우 중요하니까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이때는 예외가 되겠습니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위급 상황에서는 물불 안 가리고 살 수단을 강구해야 합니다. 싸울 수 있다면 싸우고 도망칠 수 있다면 도망가야죠. 왜 이런 적용이 가능하냐 하면 생명은 하나님이 주셨고 살 권리도 주셨기 때문이죠. 하나님께서 내 목숨을 원수의 손에 붙이셨다면 죽을 수 밖에 없지만 그렇지 않고서야 살기 위해 수단방법 가리지 말아야 하는 것이죠.
이번 가르침은 적용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많은 예를 들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다만 사람 간의 보복 해코지 앙갚음 같은 문제들, 상대의 요구를 딱 잘라 거절하는 행동들은 대적하는 죄가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