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625~26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지구상에서 염려하고 살아가는 피조물은 사람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참 아이러니한 부분이에요. 우리 사람이 다른 동식물들보다 뭐가 부족해서 이런 나약해 보이는 특징을 가지고 있냐는 것이죠. 염려를 좋아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을 겁니다. 사사건건 우리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어 놓잖아요. 대단히 불편한 존재입니다. 그러면서도 염려를 내다버리고 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죠. 나막신 장수와 짚신 장수 아들을 둔 어머니 이야기 잘 아실 겁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짚신 장수 아들이 힘들어 할까 염려하고 날이 맑으면 나막신 장수 아들이 장사 안되니까 염려하지요. 그러니 하루도 염려하지 않는 날이 없습니다. 이쯤 되면 병이라고 해야겠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분명합니다. 우리가 염려하지 않고 사는 것이지요. 그래서 염려하지 말라 말씀하고 계세요. 그리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자 하시는 내용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귀히 여기시며 돌보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을 믿고 염려를 그쳐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염려를 그치지 않고 계속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반드시 죄가 됩니다.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부정할 때 하나님께서도 부정당하십니다. 우리가 말씀을 신뢰하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도 신뢰받지 못하시고 우리 마음 밖으로 밀려나시게 되는 것이죠. 신뢰가 상호 관계의 기초를 마련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상대에 대한 불신이 관계에 어떤 악영향을 미칠지 충분히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불신하는 태도는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죄가 됨을 아시기 바랍니다.

  염려로 말미암은 죄를 나열하면 이렇습니다. 자신을 의지하고 내 힘으로 살려고 걱정근심, 하나님의 약속과 공급하심을 믿지 못해 의심하고 염려함, 하나님을 믿지 못해서 사람을 의지함, 밥 굶을 걱정, 입을 옷 걱정, 재산이나 내 물건을 잃을까 걱정, 지나치게 소유해서 불안염려, 미래에 닥치게 될 고난에 대해 염려,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사람의 수단과 방법대로 하려고 함, 주어진 책임을 스스로 감당하려 고생함, 죽을까봐 염려, 질병에 걸릴까 염려, 아플까봐 염려, 고난 당할까 염려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