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으로 말미암은 죄
마태복음 10장 28~31절 ‘몸은 죽일 수 있으나 영혼은 죽일 수 없는 사람들을 두려워 마라. 영혼과 몸을 모두 지옥에 던져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참새 두 마리가 동전 한 개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가 아니고서는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질 수 없다. 심지어 너희 머리카락의 수까지도 하나님은 아신다. 그러므로 두려워 마라. 너희는 참새 여러 마리보다 훨씬 더 귀하다.’
잘 내색은 않지만 누구나 두려움이 있습니다. 게다가 하나만이 아니라 여러 개를 가지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개인만의 특수한 것도 있고 극소수만이 가지는 희귀한 것들도 있지요. 아마도 좀 부끄럽고 이상해 보이기 싫어서 말을 잘 안 하는 거겠죠. 혹시 그런 거 없어! 하실 분 계신가요? 없다면 다행이에요. 저도 가지고 있거든요. 어떤 사람은 바퀴벌레를 보고 소리를 지릅니다. 좀 오버다 싶기도 한데 그만큼 마음에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이 크다는 걸 보여주는 반증 같습니다.
두려움이 일상에 끼치는 영향은 어떻습니까? 약간 불편한 정도에서 시작해 나날이 지옥이 될 만큼 중증인 사람도 있을 듯 합니다. 정도가 심할 경우 병원을 찾아가겠지요. 행동 요법이니 하는 심리적인 치료법이 있는 줄로 압니다. 다만 온전히 치유가 될 것 같지는 않네요. 당사자들에겐 매우 절실한 문제인데 이를 해결해 줄 만한 사람이 별로 없는 줄로 압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지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사람이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그 외에는 아무 것도 두려워 말라 말씀하시지요. 세상에 있는 것들에 대해서 두려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이 아닙니다. 곧 두려움도 죄가 된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두려움의 시작도 죄입니다. 사람에게 죄가 들어오기 전에는 두려움이란 존재하지 않았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했습니다. 뱀의 꼬임에 넘어가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나서 사람에게 두려움이 임하게 되었죠. 그 두려움이란 죄로 말미암아 받게 될 심판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사람은 죄로 말미암아 두렵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죄의 문제를 해결 받아야 원초적인 두려움을 해방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두려움은 안 좋은 일을 경험하므로 내게 찾아옵니다. 내게 두려움이 임했던 때를 떠올려, 불안해 하며 두려워 떨었던 죄들을 회개해야 합니다. 모태에서 어머니가 겪으신 불안과 두려움도 내게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가능하면 기억하고 있는 모든 두려움들을 주님께 아뢰고 용서받으십시오. 두려움으로 말미암은 죄를 최대한 해결해야 두려움의 감정을 많이 떨쳐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치유는 주님께서 해주셔야 가능합니다. 치유는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두려움은 기억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 기억이 계속 남아 있어서 관련된 괴로움을 겪는 것이지요. 따라서 백 퍼센트 온전한 치유를 기대하기란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도망치거나 거기에 위축되어서도 안 됩니다. 치유가 덜 이루어진 부분에 대해선 하나님께 맡기고 믿음과 용기로 이겨내야 합니다. 더 이상 두려워 말고 당당히 맞서십시오.
두려움과 관련해서 죄로 드러나는 것들을 나열하면 이렇습니다. 사람을 두려워 함, 사람에게 거절당할 것을 두려워 함, 실패를 두려워 함, 좋은 평판을 잃을까 불안∙두려워 함, 경제적 어려움을 두려워 함, 하나님의 약속이 안 이루어질까 두려워 함, 내 약점∙잘못이 드러날까 두려워 함, 전에 섬기던 신∙어둠의 세력이 내게 해코지 할까 두려워 함, 공포 영화∙드라마∙게임 등에 노출되어 두려워 함, 내게 위험이 닥칠까 두려워 함,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까 두려워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