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여행담] 마지막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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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시리즈♣/ ▶몽골

2009. 5. 8.

마지막날 아침이 밝았다.

좀 늦게 밝았으면 했는데...

열흘째의 아침은 오히려 아주 일찍,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을만한 아름다운 일출을 선물하며 밝아왔다

  

  

이제는 게르에서 자는 것도 너무나 익숙한데,

2리터 페트병 하나만큼의 물만 있어도, 하루동안 씻고 먹고 다 할 수 있을만큼 물 없이도 살 수 있는데,

깨끗한 자연 속에서 내 마음이 비로소 맑게 정화되고 있는데,

오늘밤 이곳을 떠난다니....

그 어떤 마지막보다도 아쉬움이 크다.

 

비행기 시간은 밤 12시 20분!

공항엔 넉넉하게 9시쯤 도착하면 된다.

울란바토르에서 저녁 7시쯤 식사를 하고 공항으로 출발을 하면 될 것 같고,

몽골에 왔으니 수도인 울란바토르도 둘러봐야 하니 오후 2시쯤 도착할 걸 목표로

우리의 마지막 숙박지였던 바양고비 캠프를 출발했다.

 

도중에 드넓게 펼쳐진 초원을 만났다.

우리의 마지막 취사 장소로 너무나 환상적인....

열흘동안 2~3끼를 빼고는 거의 모든 식사를 취사로 해결했으니,

식비는 거의 안 들었다.

게다가 매일 밥과 김치를 먹었으니,

이렇게 오랫동안 해외여행을 하면서 한국음식이 이토록 그립지 않은 적도 처음이다.

 

밥을 먹고 초원을 조금 벗어나자,

아~~

매끄럽게 닦인 고속도로가 나온다.

비포장도로를 달리며 덜컹거리는 차에 익숙해져 있었는데

흔들림 없는 고속도로를 달리니 오히려 멀미가 날 것 같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도로에 차가 하나둘 늘어난다..

어느 시점에서부터는 차가 밀리기 시작한다.

수도인 울란바토르에 도착한거다.

저 멀리 빨간 글씨로 "울란바토르"라고 적힌 '톨게이트'가 보인다.

둘째날, 울란바토르를 출발할 때만 해도, 언제 열흘이 다 갈까 싶었는데

열흘째, 어느덧 우리는 울란바토르로 돌아와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차가 잠깐 섰을때 우리 차의 조장님(50대의 남자분)이

다른 차에 타고 있던 통역하는 분을 우리차에 태운다.

그리고 지금부터 당신이 하는 말씀을 통역해서 우리차의 기사에게 전해달라고 하신다.

 

"그동안, 너무 수고 많았어요.

말은 안 통했지만 늘 가족처럼 생각했는데,

그대 또한 우리에게 많은 감동을 줘서 너무 고마웠어요.

그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서,

지금 내가 갖고 있는것 중 가장 아끼는 걸 주고 싶은데,

보니, 17년동안 써온 스위스산 등산용 칼이 있네요.

이걸 선물로 주고 싶습니다."

 

운전하던 기사가 놀란다.

묵묵하고 말도 없던 그가 입을 열었고,

통역은 그의 말을 한국어로 우리에게 전달해준다.

 

"제 차에 타신 분들도 너무 좋았습니다.

아버지 같고, 누나들 같아서 좋았어요.

이 선물은 너무 감사합니다.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잘 간직할게요.

여러분들의 연락처를 저에게 적어주세요.

우리의 인연을 여기서 끝내지 말고 계속 연락을 하며 지냈으면 합니다."

 

열흘동안 몽골 남부를 일주하면서, 대부분 차를 타고 달리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같은 공간에서 함께 보낸 열흘은 "정"이라는 걸 쌓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밥도 조별로 나눠 해먹었으니,

한솥밥을 먹었다는 것만으로도 같은 조원들끼리 더욱 돈독한 정이 쌓였고,

밥을 먹을때면 우리 음식이 입에 안맞을 걸 알면서도 "기사"에게 같이 먹자고 숟가락을 건넸었다.

우리 음식이 입에 안 맞을텐데도, 그 기사는 늘 "최고"라고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이며 맛있게 먹어줬다.

그는 숙소에 도착하면 우리의 짐을 들어 우리가 잘 게르 안에 갖다놔주고,

몽골의 경치에 탄성이라도 지르면 차를 세워 사진을 찍도록 배려해주기도 했다.

말은 안 통했지만, 마음으로 통했다.

 

"연락을 하며 지내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도 동의하는데 우리는 서로 말이 안 통하잖아요."

 

우리가 조심스렇게 얘기하자 통역이 그말을 몽골말로 전한다.

그는 아주 짧게 대답한다.

 

"제가 한국어를 배울게요. 지금부터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눈물이 핑 돈다.

열흘동안 고용한 기사다.

그가 운전을 해주는 건 당연한거다.

하지만 그는 좀더 성심을 다했다.

누군가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자신이 가장 아끼는 걸 선물함으로써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동안 과묵한 모습에 무뚝뚝한줄말 알았던 기사가

우리와 진심으로 더 가까워지고 싶다고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우리와 전화통화라도 하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겠단다.

난 지금 참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 있구나....

난 참 아름다운 여행을 하고 있구나....

난 이 순간을 참으로 아름다운 순간으로 영원히 기억하겠구나..

눈물이 주루룩 흐른다.

너무 행복하니 정말 그렇게....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그가 수첩을 내밀었다.

우리는 이름과 전화번호, 그리고 메일 주소를 그의 수첩에 또박또박 남겨주었다.

 

울란바토르에 도착해, 백화점엘 들렀는데,

우리 조의 언니 두명과 함께 셋이서 모자를 하나 샀다.

그 모자를 우리도 기사에게 선물했다. 그동안 수고했다고, 고마웠다고...

한번도 웃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그가, 웃는다.

좋아하며 모자를 써본다.

허리춤엔 좀 전에 선물받은 17년된 그 스위스 칼을 이미 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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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마지막 코스는 울란바토르 시청광장이다.

정말 넓은 광장이다. 울란바토르 최고의 명소라고 할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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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는 징기스칸 동상도 있다.

그 앞에서 말탄 징기스칸과 똑같은 포즈로 사진도 여러장 찍었다.

동상 너머로 높게 올라간 건물이 괜히 옥의 티처럼 느껴졌다.

울란바토르도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몇년 후면 이곳도 고층빌딩숲을 이루는 건 아닐까...살짝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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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정이 끝나고....

징기스칸 국제공항에서는 통역&기사들과 작별!

인천국제공항에서는 여행동료들과 이별!

 

아~

정말 짧고도 긴 여행이었다.

그간의 일정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간다.

물론 힘든 일도 있었고, 불편한 것도 많았고,

낯선 이들과의 여행에 긴장도 많이 했다.

그런데

난 이번 몽골여행을 감히 "내 생애 최고의 여행"으로 꼽는다.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너무나 많은 것들을 내 안에 채울 수 있는 여행이었기에....

 

한국으로 돌아가면 시원한 물을 원없이 마시고 싶다.

차가운 얼음을 잔뜩 넣은 아이스커피도 마셔야지~

아~ 무엇보다 삼겹살이 그립다. 목에 낀 먼지도 씻을겸 당장 삼겹살부터 먹어야겠다.

매콤한 떡볶이? 얼큰한 김치찌개? 침이 꿀꺽 넘어간다.

 

나의 미각은 한국으로 가 있는데

마음은 자꾸만 몽골을 돌아본다.

 

세계는 넓고 갈곳은 많지만

난 조만간 또 다시 몽골로 뜨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시원한 물은 커녕, 마실 물도 제대로 없는 이곳,

아이스커피는 꿈도 꾸지 못하는 곳,

삼겹살은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는 곳!

.....

어쩌면....그래서 더 매력적인 곳!

 

"병"이라는 것은 미리 예견할 수 없지만

난 분명히 알고 있다.

이 여행의 끝 너머에서 "몽골병"을 앓고 있을 나 자신을...

몽골에 대한 향수에 젖어 당분간 힘들어할 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