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추로지향 2020. 3. 27. 05:32


일월산(日月山)

 

정기가 모인산, 일월산신 사는 산


산이 아푸면 그 산을 지행해 살아가는 민초 등 또한

아프지 않을 도리는 없다. 높이 1219m의 일월산은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 수비면 그리고 청기면 봉화군

재산면을 함께 아우르고 있었다. 그 아우름 속에는 들어도

싫증날리 없는 아름다운 이름들이 산자락 곳곳에 지천이다.


자연마을 어디 한번 불러나 볼까? 샘물내기,왕바우골,

그루모기, 칡밭모기, 쿵쿵모기 ... 그래 이 아름다운 이름에

정작 민초들은 얼마나 이름 값하는 아름다운 생활을 이어

왔을까? 곰삭은 젓갈보다 더 익은 아름다운 생활을 이어

왔을까? 천만에 이곳 산자락 아름다운 사람들에게 그

아름다움은 오히려 질곡이 있다 아픔이었다. 애환이었다.

 

유교적인 의식과 체제가 확립된 조선조 이곳으로 은밀히

밀려온 민초들에게 세상은 질곡이었다. 일제가 머뭇거림

없이 싸잡아 일월산을 베고 캔 후 다시 군화 발자국이

찍히자 그것은 또 다시 이곳 민초들에게 고스란히 아픔

마이카 붐과 함께 현대화 물결이 거칠게 요동치면서 거듭

민초들을 끝간데 없이 밀리는 삶의 애환을 곱씹어야 했다.

그래도 민초들은 여길 뜨지 못하고 있다. 여길 뜨면 마치

세상을 뜨는 것이나 진배없다고 여긴다. ? 그것은

가슴 속 깊이 묻어 둔 일월산의 신령스런 영험이 언젠가는

세상을 기어코 변하게 할 것이라는 야무진 신념 때문이다.

손바닥이 비좁아 손등까지 굳은 살로 뒤덮인 농투성이들이

꾸는 야무진 꿈, 세상을 변하게 할 것이라는 야무진 꿈

그 꿈은 아직도 유효한 채 오늘의 일월산 자락 군데군데

응어러진 채로 흙덩이와 뒹굴고 있다.


왜 하필 일월산인가? 해와 달의 떠오르는 모습을

가장 먼저 바라 볼 수 있다해서 붙여졌다.

늘 안개비를 주위에 깔고 있는 정상에는 일자봉

1219m과 월자봉 1205m이 서로 마주보며 이름 붙인

연유를 확인하고 있었다.


경북에서는 가장 높은 산이다. 고산자 김정호도 철종

12(1861)에 작성한 대동여지도에 일월산을 눈부시게

표기하고 있다. 그리고는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동쪽은

영동, 서쪽을 영서, 남쪽을 영남이라 일컬었다.

이 세 곳의 정기를 모은 곳이 일월산이라 했다.

 

민초들은 일월산을 뜨지 못한다.

그제서야 일월산이 대충 떠오른다. 그 곳에는 정기가

모아졌다고 했다. 겉보기에는 밋밋하고 볼폼 없지만 그

일월산에 정기가 모아졌으며 정기 어떤 정기? 우선

정상으로 흘쩍 뛰어 올라보자 일자봉에 오르면 한 눈에

동해가 펼쳐 보인다. 안개 비 때문에 일출 보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꼭두새벽을 열 번 올라 한번 성공하면

그야말로 성공이다. 1m가 넘는 고봉에서 동해 일출

보기가 쉬워도 결코 될성부른 일은 아니다. 운이 통해

일출을 볼 수가 있다면 그 맛 또한 예사로 울 수가 없다.

 

백두대간의 남쪽 끝자락 일월산의 일출, 대간의 기운을

받아 안고 홀로 감당치 못해 서쪽으로 소백을 이어내고

동쪽으로 백암, 수양, 울련산 등 수 많은 중봉과 소봉을

거느린 일월산의 일출을 두고 어떤 이는 이를 대붕의

기상이라 했다. 월자봉 하늘에 둥근 달이 떴다.

청량산을 비롯한 태백줄기의 작은 산들이 구름바다를

이루며 저마다 두둥실 떠다닌다. 한 폭의 동양화 좀

사치 스럽다. 차라리 거기에 담긴 자연의 섭리가

매섭고 차갑다. 달빛 교교한 이 모습을 민초들은

용들이 서로 틀임 하는 것이라 했다.

 

그래서 일월산을 쌍용악(雙龍岳)이라 부른다.

: 매일신문 일월산 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