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음법문

행복하기 2013. 3. 1. 19:34

수행의 길에 있어 다섯 경계

칭하이 무상사 / 1996. 5. 14. (원문 영어)


크게 깨달은 스승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가 아주 희열에 잠겨 앉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스승이 통과했던 의식의 단계에 대해 물어보자 스승은 그것을 하나씩 하나씩 말해주었습니다. 신이 그를 의식의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데리고 갔다고 했습니다. 신은 처음에 그의 손을 잡고서 '행동의 경계' 갔습니다. 거기서 스승은 년간을 살았습니다. 신은 다시 돌아와서 스승을 '번뇌의 경계' 데려갔습니다. 스승은 거기서 지나치게 집착하는 마음이 깨끗이 씻겨질 때까지 살았습니다. 스승은 자신이 '사랑의 경계'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사랑의 경계의 타오르는 불꽃은 남아있던 그의 모든 자아를 태워버렸습니다. 이로써 그는 '침묵의 경계' 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생사의 신비를 놀란 눈으로 되돌아 보았습니다.

제자들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그것이 당신께서 탐구하셨던 신성의 마지막 단계입니까?"
스승은 말했습니다 "아니, 아니야, 그건 마지막 단계가 아니야
."
하루는 신이 스승( 당시 진리를 구하던)에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내가 너를 내면의 최고의 성역, 신의 심장부로 데려갈 것이다." 그래서 스승은 그때 '웃음의 경계' 갔습니다.

구경열반으로 가는 여정에 있는 우리는 마침내 완전한 진리를 이해하기 위해 많은 이해의 단계, 의식의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행동의 경계

그러면 신이 나중에 스승이 구도자를 데리고 갔던 곳을 봅시다. 처음에 신은 그를 행동의 경계로 데려가 년간 머물게 했습니다. 행동의 경계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아는 사람 있나요?

행동의 경계란 우리가 입문을 하거나 진리 또는 절대적인 힘과 접촉하고나서 내면으로부터 얻은 신의 , 불가사의한 에너지와 축복을 접했을 우리가 아주 흥분되고 열렬해지며 갖가지의 불가사의한 창조력을 지니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때 이러한 모든 생각은 일상생활 중에 행동으로 옮겨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하고 싶고, 저것을 하고 싶고, 보시를 하고 싶고, 홍법을 하고 싶고, 은둔자가 되고 싶고, 사람들을 구하고 싶고, 책을 발행하고 싶고, 많은 것을 하고 싶어합니다.

또한 우리는 많은 잠재적 능력을 분명하게 발견할 있습니다. 이전에는 없었는데 갑자기 아주 아름다운 시나 아름다운 에세이를 있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아니면 말을 유창하게 있게 된다든지 아마도 오랫동안 있게 것입니다. (웃음) 우리는 청중들을 따분하게 해서 졸게 만들 것입니다. (웃음) 그것도 좋습니다. 적어도 불면증이 있는 사람들에게는요. 그들은 우리의 가르침으로부터 이로움을 얻을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수공예를 있다든지, 아주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있다든지, 아주 많은 것들을 있게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거기에 머뭅니다. 우리는 우리의 , 재능, 능력이 여러 방식으로 인류를 이롭게 하고 자신을 이롭게 하는 것을 봅니다. 우리는 그것을 좋아하고 향유하며 아주 훌륭하다고 느낍니다. 우리는 삶이 행복하고 활기차고 창조적 에너지로 가득하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신은 우리의 흥분된 감정을 행동으로 표출시키고 우리의 가슴 속의 열기를 발산시키도록 년간 거기서 머물게 것입니다. 왜냐하면 너무 지나치게 끓어오르는 에너지가 우리에게 갑자기 밀려들어와 우리에게 에너지가 흘러넘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깨달음의 단계입니다. 그것이 아마 스승이 설명한 행동의 경계일 겁니다.

우리는 새로 입문한 사람들 중에 완전히 열광적인 사람들을 봅니다. 여러분은 그를 막을 없고 그녀가 견본책을 길가는 , 고양이, 등등 에게도 나눠주는 것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그는 만나는 중생마다 견본책을 나눠줍니다. (웃음) 혹은 길잃은 개나 아무한테나 사진을 줍니다. 이로 인해 결과적으로 우리는 많은 과잉행동을 하게 됩니다. 때로 이것은 아주 힘듭니다. 우리는 이것을 아주아주 자랑스럽게 여기고 스승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는 것을 대단하게 여기며 우리가 이것을 하고 저것을 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OK!

하는 것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여러분들 많은 사람이 지금도 여전히 똑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태도가 다릅니다. 여러분이 지금 하고 있는 방식이 이처럼 열광적이라거나 깨달은 바보 혹은 입문한 사람과 같다는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지금 여러분이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침착한 태도로 그것을 하고, 이것이 무난하니 이렇게 해야 한다고 좀더 자각하는 가운데 그것을 행합니다. 그러나 전에는 만약 누군가가 여러분이 하는 일을 이러저러한 이유로 막는다면 당장이라도 그를 죽이려 들었을 것입니다! (웃음) 여러분은 그에게 말했을 것입니다. "당신은 악마다. 당신은 스승님의 가르침을 막고 있다. 같은 성인이 하는 일을 막고 있다… !!!"

우리는 모든 중생을 우리의 신앙으로 개종시키려고 합니다. 그래서 때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 가족, 친구들과 충돌하며 심지어 , 고양이와도 부딪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강압적으로 그들을 우리의 체계로 끌어들이려 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 우리의 선의 우리 수행의 참뜻과 이로움을 이해시키고 인간의 심리를 다룰 아는 깊이있는 지혜도 갖추지 못한 말입니다. 우리는 단지 엄청난 에너지와 창의력을 지니고 있을 에너지를 다룰 정도의 충분한 지혜를 아직 갖추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수행 초기에, 여전히 행동의 경계에 있을 우리는 종종 많은 실수를 하고 친구보다 적을 많이 만들게 됩니다. 때로 운좋게 우리가 작은 물고기를 낚기도 하지만 초보자의 서투름 때문에 많은 미끼 또한 잃습니다. 그래서 나는 스승이 의미한 행동의 경계란 바로 이런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는 간단하게 행동의 경계를 말했지만 우리는 행동의 경계에 머무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상상할 있습니다. 생각에는 그런 같습니다.


번뇌의 경계: 인생의 무상함을 숙고하다

의식의 다음 단계는 번뇌의 경계입니다. 번뇌의 경계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우리가 많은 것을 성취한 , 혹은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실패를 거듭한 갑자기 깨닫는 것입니다. 아니면 수많은 배은 망덕한 사람들과 접촉하고 나서 우리가 원했던 많은 것들이 우리의 성급함과 서투름과 신의 힘에 대한 지나친 기대감, 그리고 신의 힘을 남용함으로 인해 실현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때로 우리는 신의 힘을 신통력이나 치료 목적으로 이용하기도 하고 물질적인 안락함이나 가족의 재결합, 유대관계의 조화로움 같은 단지 조그만 것을 얻는 사용합니다.

그리고 그런 후에 행동의 경계에서 년간을 최선을 다해 일을 하고 우리 방식대로 사람들에게 봉사하려고 노력한 후에 우리는 좋은 의도로 했지만 방법이 서툴러 여러 차례 실패를 하고 사람들로부터 인정도 받습니다. 때로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처럼 열정적이지도 협조적이지도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아주 실망하고 아주아주 외롭고 아주 고통스럽게 느낍니다. 우리는 우리가 기도했던 , 최상의 유대관계 같이 우리가 바랬던 것을 얻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했던 이러한 것들이 더욱더 우리를 부담스럽게 합니다. 즐겁기는 커녕 오히려 번뇌스럽습니다. 그때 우리는 많은 실망감과 불행, 불만족을 체험하기 시작합니다.

그때가 바로 우리가 생명의 무상함을 숙고하기 시작하는 때입니다. 우리는 ", 결국 모든 것은 '()'이구나. 우리가 무상한 인생에서 아무리 투쟁해 봐야 많은 것을 얻을 수도 없고 간직할 수도 없구나."라고 느끼기 시작합니다.

신이 우리를 번뇌의 경계에 데려갈 우리는 이런 모든 세속적인 욕망으로부터, 이런 모든 무상한 기대감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떼어놓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자유롭게 것입니다. 우리는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울 것이며 이처럼 물질적이고 오래 지속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우리의 욕망으로 인해 발생하는 이런 불행한 현상들로부터 자유로울 것입니다.


사랑의 경계로 들어가다

우리가 이러한 모든 지나친 욕망과 집착으로부터 벗어난 우리는 더욱 고요해지고 만족스러움을 느끼게 것입니다. 그때가 바로 우리가 소위 말하는 사랑의 경계에 들어간 때입니다. 사랑의 경계는 우리의 욕망, 집착, 기대감이 모두 사라짐을 느끼는 의식의 단계입니다. 우리는 아주 평화롭게 느끼기 시작하며 우리가 사랑할 있음을 느낍니다.

우리가 많은 실망감과 번뇌를 체험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내면으로 더욱 정착하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며 우리와 모든 중생을 분별하지 않는 사랑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아마 그때 우리는 어떤 것에 대해 기꺼이 희생할 것입니다. 그것은 이러한 사랑 때문이며 우리가 "당신과 내가 같다. 그리고 모든 중생이 같다."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단계에 대해서는 많은 스승들과 종교단체가 언급을 했습니다. 우리가 자아를 잃고 개개인의 에고를 버리고난 우리는 절대적인 고요함, 절대적인 침묵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상 말할 것이 없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이해했다고 느낄 것이며 모든 중생이 평화롭고 있는 그대로 좋다고 느낄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그들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그들을 도우려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내면에 있는 깊은 사랑을 이해한 더이상 우리가 해야 일은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느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고요해지고 더욱 내면으로 향하게 됩니다. 우리는 말을 많이 하고 싶지도, 더이상 토론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사람들을 비판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든 것이 이미 안배되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도교에서 말하는 "천하본무사(天下本無事)" 경계가 바로 이것입니다. 불교에서도 역시 "내가 중생을 제도하려고 해도 제도할 중생이 없다."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신의 뜻에 맡긴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단계를 깨달음의 마지막 단계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침묵의 경계 - 생사의 신비를 찾아서

구도자는 번뇌의 경계에서 사랑의 경계를 거쳐 침묵의 경계로 들어갔습니다. 침묵의 경계에서 그가 생사의 신비를 체험했을 그에게는 더이상 체험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는 삶과 죽음에 대해 알았습니다. 그는 더이상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삶에도 집착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그에게 그것이 깨달음의 마지막 단계인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스승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어느날 신이 그를 내적인 깨달음의 높은 성역으로 데려갔기 때문입니다. 그곳이 바로 '웃음의 경계'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그런지 의아해 합니다. 지긋한 수행을 후에 단지 웃음의 집에 이르다니? 여러분은 그것이 믿겨집니까? 책에 따르면 웃음의 경계가 내면의 최고의 성역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사실일까요?


웃음의 경계 - 유머로 인생을 살다

생사의 신비를 밝힌 차례 많은 노력과 신실함으로 수행을 하고 나면 신은 우리를 웃음의 경계로 데려갑니다. 거기에는 많은 농담이 있고 모든 것이 재미있습니다. 그곳에는 비참한 부처도 심각한 보살도 없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것을, 스승에게 헌신하고 있다는 것을 내보이려고 주위를 왔다 갔다 하거나, 스승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스승을 보기 위해 모든 사람을 제치고 앞으로 뛰어나오는 그런 보살도 없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스승들이 유머가 많고 모든 사람을 보고서 심지어 신이나 자신에 대해서도 웃을 있는 겁니다. 그것이 깨달은 스승의 표식입니다. 그들은 이미 웃음의 경계에 도달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든 것이 하나의 게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런 사람을 이해 못한다면 우리로서는 아주 힘듭니다. 우리가 이해 못한다면 우리는 아직 거리가 거지요. 그들과 함께 웃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런 스승 혹은 깨달은 성인이 심각한 부처나 비참한 관세음보살과(스승이 웃으심) 함께 섞여 있다면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번뇌의 경계로 다시 끌려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아주 숨막히는 겁니다.

나는 여러분 모두가 미래에 보살의 경지에 이르기를 희망합니다. 그때 우리는 모두 웃음의 경계로 가서 농담하고 아주 재미있고 가벼운 방식으로 인생을 것입니다. 실제로 인생은 우스꽝스러울 있으므로 우리는 모든 것을 함께 견뎌낼 있을 겁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하루종일 웃습니다. (스승 웃으심) 여러분은 그것을 이해할 없지요. 때로 몇몇 제자들이나 친구들이 와서 나와 한동안 지내거나 내가 그들을 방문하기도 하는데 그때 나는 항상 웃습니다. 그들과 농담을 하지요. 그들 모두가 웃습니다. 그들이 재미있으면 그들이 농담을 하고 우리는 웃고 웃습니다. 하루종일요. 어떤 때는 저녁식사를 내게 시간이 있으면 저녁 식사가 끝날 때까지 서너 시간을 웃습니다. 특별한 이유없이 말입니다. 그저 우리는 농담을 합니다. 그래서 아주 즐겁고, 항상 웃게 되는 거지요.

-뉴스잡지 63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