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양평<楊平> Section

메주 2011. 3. 3. 05:07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한 娛賓驛

 

6번 국도 쪽에서 본 오빈역의 모습-2010년 4월 촬영, 당시 오빈역은 공사 중이었음

 

 

관동대로<關東大路:대관령 以東' 地方큰길. 곧 江原道 >'에

설치된 기둥 50개'의 거대한 驛

 

     아름다운 풍경으로 많은 이'들의 발길을 사로잡아....

 

 

오빈역<梧濱驛>은 경기도 양평군 양평읍 오빈리에 위치한

수도권 전철 중앙선의 전철역이다. 오빈리의 교통편의 증진을 위해 양평군에서 요청하여 추가로 건설되었다.

양평군에서 아신역 - 양평역간의 긴 역간거리로 오빈역의 신설을 한국철도시설공단에 요구하여

 예비타당성 조사를 진행한 결과 2009年부터 연간 약2억원의 적자가 예상되며

손익분기점까지는 30年이 걸릴것이라고 발표되어

시설공단에서는 지자체인 양평군에서 오빈역 건설 사업비 130억원을 제공하면 역을 짓겠다는 의견에

양평군에서 역 건설비와 운영비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건설이 완료 되었으며, 2010年 12月에 개통되었다.

 

 

지금과는 조금 다른 개념이지만,

양평지역에 처음으로 역<驛>'이 설치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활자본. 1454년/종 2'年 완성>'에

나오는 오빈역에 관한 내용으로

오빈역을 옛 양근<楊根>'땅의 유일한 역이었다고 전한다.

 

 

楊根 : 경기도 양평군 양평읍·강상면·강하면·옥천면·양서면·서종면 일대에 있었던 옛 고을.

삼국시대 초기에는 백제의 영역이었다가

고구려의 남하로 고구려에, 後에는 신라의 영역에 속했다.

삼국시대에는 거사참현(去斯站縣) 또는 항양현(恒陽縣)·양근현(楊斤縣)이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後 757年(경덕왕 16)에 빈양현(濱陽縣)으로 개칭,

기천군(沂川郡 : 여주)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고려초인 940年(태조 23)에 양근(楊根)으로 고쳤으며,

 1018年(현종 9)에는 광주(廣州)의 속현으로 병합되었다가,

1175年(명종 5)에 감무를 둠으로써 독립했다.

1257年(고종 44)에 다시 영화(永化)로 개칭한 後,1269年(원종 10)에 익화현(益和縣)으로,

1356年(공민왕 5)익화군으로 승격되었다가 다시 양근으로 개칭되었다.

조선시대 1466年(세조 12)에 양근군이 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지방제도 개정에 의해 1895年에 춘천부 양근군,

1896年에 경기도 양근군이 되었다가,

1908年에 지평군과 통합, 양평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오빈역은 조선시대 제 3路'인 관동대로에 설치된 驛'로,

기둥이 50'개에 달하는 큰 驛'었다.

나아가 용문산'과 그 아래로 펼쳐진 너른 들판을 등지고

앞으로는 남한강

<南漢江:375km 태백산맥에서 발원하여 강원도 정선군을 지나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합류하는 한강의 2대지류'>

 마주하고 있었던

아름다운 풍경 탓에 국내는 물론이고,

일본 등 국외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사로 잡았고,

오랜 기간 위정자'나 시인 묵객들이 머물며

남긴 행적의 몇몇은 역사와 문화로 남아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남한강-

 

 

목민<牧:,:백성 '>'의 이치를 일깨우다.

 

 

조선의 개국공신'이자 당대의 대학자로 이름이 높았던

양촌 권근<權近  1352-1409 /공민왕1~태종9>'이 양평지역을 여행 할 때의 일이다.

양수리<兩水里 : 두 갈래의 물이 만나는 마을이다 : 양수리 마을의 옛 이름은 “골용진”>'의

용진<龍淨:용-,못이름-진', 마을 앞 용늪'에  龍이 못 된 이무기가  돌이 되어 물 속에 잠겨있다는 전설이 어려있다>'을

건너 온 권근은 오빈역'에 머무르게 됐는데

오빈역의 누대에 올라 바라본 양평의 풍경이 자못 의미 심장하여

詩'를 한 수 지어 남겼다.

 

 

누각 앞은 큰 江이요, 들 바깥은 山이라

좋은 풍경은 언제나 이 사이에 있다.

누각에 오르면 뼈 속까지 시원하겠지만

거기서 땀 흘리는 농부들을 차마 볼 수 있겠는가

 

 

-우리의 자랑스런 기록문화-

 

 

 

때는 한 여름이라 용문산을 등지고

남한강을 마주하는 오빈역루'의 풍경은 매우 아름다웠고,

역루는 시원하여 더위에 지친 몸을 씻겨 주기에

더없이 좋았다.

그러나 그 순간 자연의 풍취 사이로 권근의 눈에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뙤약볕 아래서 김을 매던 농부들의 모습이었다.

이에 권근은 저 농부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정사를 돌보겠노라고

다시 한 번 다짐을 하게 된다.

 

 

잊혀진 의로운 개무덤<義:옳을 ,狗:개 ,塚:무덤 '> 이야기

 

 

병자호란<丙子胡亂:仁祖 14(1636)年-丙子年'에 淸'나라가 우리나라를 침노侵擄'한 난리亂離>이 일어나자

실학<實地'에 所用'되는 學問 : 17~18世紀'의 朝鮮 時代'에서 융성隆盛'했음 >의 대가인 반계 유형원<磻溪-柳馨遠1622-1673>'은

난리를 피해 가족들과 함께

지평 화곡리<砥平花谷里 : 지금의 양동면 쌍학리>'로 이사를 온다.

 

 

-磻溪-柳馨遠 墓碑-

1768년 홍계희/洪啓禧'가 지었고, 죽산부사 유언지/兪彦摯'가 세웠다.

 

 

천성이 청렴결백하였으며,

 벼슬에 추천하였으나 사양하고 농촌에서 농민을 지도하는 한편

기근을 구제하기 위하여 양곡을 예비케 하고 큰 배 4~5척과 마필을 바닷가에 비치하여

 구급의 책을 준비하였으며 이웃 사람과 노복에 이르기까지 극진히 사랑한

중농적 실학자·경세치용<經世致用>의 실학자'인

유형원은 以後, 전국을 답사하면서

개인이 편찬<사찬私撰>한 최초의 지리지'인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 편찬 年代는 현종代(1660~74)인 것으로 보인다>'를 완성하였는데,

 

 

 

-반계수록/磻溪隨錄 - 국가체제의 개혁에 관한 책-

 

 

이 동국여지지'는 유형원 자신의 역사지리에 대한 해박함과

실용적이고 실증적 학풍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특히 자신이 직접 답사한 경험을 토대로 작성했기에

각 지역의 이채로운 이야기들이 담겨있는데,

양근군 고적면'에 의로운 개무덤 이야기'가 나온다.

 

 

 

 

 

 

東國輿地志- 전국 지리지- 사회 개혁안의 기초자료 정리

9권 10책. 필사본. 편찬 연대가 명시되어 있지 않으나 효종조까지의 내용이 있고,

1662년에 허목이 편찬한 〈척주지 陟州誌〉가 참고도서 목록에 있어 현종대 반계 유형원의 저작으로 추정된다.

 

 

 

오빈역 남쪽 길가에 의로운 개무덤이 있다.

세상에 전해오기를,

옛날에 한 노파가 개를 기르고 있었는데

어느날 산불이 나서 불길이 노파에게까지 번져 위험한 지경에 이르자

개가 강물에 달려가 몸을 물을 묻혀와

노파를 구하고는 기진멕진해 죽었다.

사람들이 이를 義'로운 개'라 하여 장사를 지내 주었다.

 

 

 

-義犬碑-

 

 

임실군 지사면 영천리'에 살던 김개인<金蓋人>'이 술에 취하여

잠이 들었는데,

때 마침 들에 불이 나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자 그를 따르던 개가 주인을 구하기 위해

몸에 개울물'을 적셔 불을 끄다가 지쳐 죽었다.

뒤늦게 잠에서 깬 김개인'은 개의 지극한 마음을 잊지 못하여

개를 묻고, 지팡이를 꼿아 두었는데,

지팡이에서 싹이 나와 큰 나무가 되었다.

사람들은 이 나무를 오수<獒 :개-오,: 나무-수>'라 부르고,

마을 이름도 오수'로 바꾸었으며,

개'를 위해 비석까지 세워 주었다고 한다.

지금의 비석은 1955年에 다시 만든 것이다

-義犬碑 안내문'에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전라북도 임실'의 "오수견<鰲樹犬>" 이야기'와 상통하는 이야기이다.

오수견 이야기는 이미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려

온 국민이 잘 알고 있는 바이고,

비슷한 이야기가 전하는 이웃 일본도

동경 시부야<東京 Tokyo 渋谷>'에 충견 동상이 있어

그 지방의 명물이자, "약속의 장소"이며,

영화로까지 제작되는 등 지역의 명소'로 유명하다.

그러나 오빈역의 의로운 개무덤 이야기는

문헌자료로 전함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잊혀져 가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라 하겠다.

 

 

관동대로 娛賓驛'과 중앙선 오빈역<:벽오동 나무'',濱:물가 '',驛:정거장 '>

 

 

 

 

 

 

2011年'은 양평에 철도가 들어온 지 72年'째 되는 해이다.

비록 일제가 강원도의 지하자원과

경기도 너른 들의 양곡을 침탈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 철도였다고는 하지만,

복선 전철화된 중앙선로'를 보면 길고,

곧게 뻗은 철로만큼 양평의 발전이 가시화되는 상쾌한 느낌이다.

또한 오빈역 설치사업은 주민편의 도모뿐만 아니라

지역史'를 되찿고저 하는 노력이 숨어있는 뜻 깊은 일이기도 하다.

 

 

 

 

 

 

 

'찿는 이'가 즐겁던<娛賓>'역이

일제가 조선을 침탈하던 어느 시기부터

"오동나무가 많은 물가<梧濱>'로 변해

정식 지역명'으로 자리를 굳히고 말았다.

호불호<好不好:좋음과 나쁨 >'를 떠나 지역의 이름 변화에 대한

세심한 관심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from : H & H 양평소식' 특집 2011<단기4343年> 2月 28日字

재미로 읽는 양평역사 이야기

양평 학예연구사 이 강웅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770-2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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