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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소년들의 폭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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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뒷면/원장님의교육이야기

2020. 1. 30.








착한 소년들의 폭력성

 

    


 

   살아오면서 남녀의 차이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사람의 성품이란 개인에 따라 다른 것이지 남녀의 차이가 큰 영향을 준다고 여기지 않았고, 후천적인 영향이 더 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학원을 경영하고 여러 학생들을 만나면서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특히 남성의 근원적인 폭력성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의 생각이 달라진 것은 초등학생을 가르치면서였다. 고등학생의 수업은 인성이 드러날 일이 별로 없지만, 초등학생의 경우는 달랐다. 설명 위주인 중 고등학생 수업과 달리 초등 수업은 묻고 답하는 피드백이 많고 토론과 의견 발표의 비중도 많다. 또한, 고등학생에 비해 시청각 자료도 많이 이용한다. 무엇보다 초등학생들은 어리기 때문에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나의 생각을 달라지게 한 것은 사회의 환경 수업이었다. 수업 중에는 여러 가지 사진과 영상 등을 보면서 토론을 하곤 했는데, 그날은 환경오염이나 밀렵 및 남획 등으로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이 주제였다. 나는 여러 사진을 보여 주며 수업을 진행하였는데, 학생들의 반응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위의 사진은 밀렵으로 희생당한 코뿔소의 뿔과 코뿔소의 뿔로 자루를 만든 칼이다. 코뿔소의 뿔은 약재로도 쓰이고 칼 손잡이로도 만들기 때문에 인기가 좋다. 코뿔소 뿔로 자루를 만든 칼은 아랍 지역 남성들이 선호하고 코뿔소의 뿔로 만든 약은 중국에서 인기가 높다. 그래서 코뿔소의 수난은 끊이지 않는다. 밀렵꾼들은 산채로 코뿔소의 뿔을 잘라가거나 코뿔소를 죽이고 뿔을 잘라내어 판다. 코뿔소는 현재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사진을 보고, 나의 설명을 듣고서는 아이들마다 한마디씩 반응을 보였다. 여자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코뿔소가 불쌍하다고 말했지만 남자아이들은 칼이 멋있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정말로 큰 충격을 받았다.

   나는 밀렵꾼들이 코뿔소를 얼마나 잔인하고 고통스럽게 죽이는지, 밀렵과 인간의 탐욕 때문에 지구상에 남아있는 코뿔소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이야기 했음에도 여자아이들과 달리 남자 아이들은 코뿔소 뿔로 만든 멋진 칼에 더 관심을 보였다.

 






 



  두 번째 사진을 보여주었을 때 나는 더 큰 충격을 받았다. 뱃속에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로 가득 차 죽은 바다새의 잔해였다. 여자아이들의 반응은 코뿔소와 차이가 없이 죽은 새를 불쌍하게 여겼다. 그런데 남학생 중 한 아이가 이 사진을 보고 툭 내뱉은 한마디에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오오~! 신기한데!”

   단순히 처음 보는 것에 대한 호기심이 아니었다. 재미있는 것을 보았다는 듯 즐거운 말투였다. 나는 코뿔소의 뿔 사진보다 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런 반응을 보였다고 해서 그 아이가 폭력적이거나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순하고 얌전했고, 다른 학생들과도 두루두루 잘 지내는 점잖고 모범적인 학생이었다.

 

   많은 인권운동가들은 동물을 대하는 태도가 인권 의식의 척도라고 했다. 실물이 아닌 PPT와 영상으로 보는 동물이었지만, 동물을 대하는 태도와 감정은 남학생과 여학생이 그렇게 다를 수가 없었다. 죽어가는 동물의 모습에 여자아이들과 남자아이들이 보이는 연민의 정도는 확연히 달랐다. 여자아이들이 동물이 불쌍하다며 격한 감정을 드러낼 때 남자아이들은 상대적으로 덤덤했고, 밀렵과 남획으로 죽어가는 동물에 대한 자료를 보여 주면 여자아이들은 희생되는 동물에 감정을 이입했지만, 남자아이들은 밀렵꾼에 감정 이입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환경 수업을 진행하는 동안 나는 여러 번 충격을 받았다.


   내가 가르쳤던 남자아이들이 결코 폭력적인 것은 아니었다. 운 좋게도 나에게 온 아이들은 여학생이건 남학생이건 모두 착하고 온순했다. 그런 순한 아이들이 악의 없이 내뱉는 폭력성에 나는 깜짝 놀랐고, 때때로 온몸에 소름이 돋을 만큼 공포를 느꼈다.

 

   몇 년 동안 초등학생에게 사회를 가르치며 남자는 여자보다 약자에 대한 연민이 부족하고 공감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며, 폭력성과 충동성이 매우 강한 반면 자제력은 매우 부족하다는 결론은 내리게 되었다. 이것은 나의 개인적 주장이 아니라 여러 학자들이 다양한 연구를 통해 밝혀낸 것이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몸소 경험하니 공포스러웠다.

 

  굳이 연구 결과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오랜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사실이다. 여자아이들은 벌레를 보고 소리 지르며 도망을 갈지언정 죽이는 일은 드물지만 남자아이들은 장난삼아 벌레를 잡아 죽인다. 요즘 심심찮게 일어나는 동물 학대 사건의 가해자도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으며, 폭력사건의 가해자 또한 대부분 남성이다.

 

   사회 수업을 하면서 교육의 문제에도 좀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의 교육은 어떠한가? 남자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나? 폭력성을 순화하고 통제할 자제력을 갖추도록 가르치고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인류는 수천년 동안 남성의 폭력성에 관대했다. 남성의 폭력성은 남성다움으로 묵인되었고 현대 사회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않고 성차별이 심한 사회일수록 이런 경향은 더욱 강하다.

   민주주의는 발전했지만 가부장적 문화와 성차별이 심한 한국 사회에서도 결코 긍적적인 답을 할 수는 없다. 남자 아이들의 폭력성은 남자답다”, “개구지다는 변명으로 용인된다. 싸움을 하거나, 남을 때리거나 괴롭혔을 때는 다른 잘못을 저질렀을 때 보다 상대적으로 관대하다. “아이들은 싸우면서 큰다며 어영부영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 폭력성은 순화되지 못한 채 사춘기가 되고 성인이 되고, 급변하는 사회와 공동체 해체, 자극적인 미디어에 노출되며 폭력성을 더욱 심화되고 있다.

 

   정말 이대로 괜찮은가? 예전부터 그랬다고 내버려 두어도 되는 것인가. 싸움은 나쁜 것이라고, 약자를 괴롭히는 것은 남자다운 것이 아니라고 엄하게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이 글은 필자의 개인적 견해입니다. 물론 여자 아이들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 문제는 다음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